데이지는 창밖을 보며 읊조린다. “아름답고, 예쁜 바보로 컸으면 좋겠어. 딸아이 말이야.”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여자,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팜므 파탈의 말치고는 어딘가 처연하고 게다가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다. 여자는, 딸아이는 성찰적이며 똑똑한 여성으로 크는 것보다 아름답고 예쁜 바보로 크는 게 낫다고 말하는 건, 직설법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결혼한 첫날 밤부터 다른 여성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고 있다. 지금, 데이지가 독백을 한 그 순간은 경박한 여자 머틀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저녁 식사를 망치고 난 이후이다.

 

이 비슷한 말을 영화 <밤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젊은 여성도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가만히 서서 바보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라는. ‘밤쉘’은 폭탄 같은 성적 매력을 지닌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한 여배우 헤디 라마는 1940년대 미국의 밤쉘로 통했다. 첫 작품 <엑스터시>는 여성의 오르가슴을 처음으로 영화적으로 재현한 작품이었다. 나체로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배우, 그녀는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으로 나뉘어진 할리우드 영화 시장에서 너무나 쉽게 창녀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이후 그 분류함에서 거의 빠져나오지 못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한 장면.

 

영화 <밤쉘>은 예쁘고 멍청하고 섹시하기만 한 줄 알았던 여배우가 현재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의 근간이 되는 주파수 도약을 발명했음을 알려준다. 세상은 그녀의 진짜 재능은 숨기고, 그녀의 일부였던 아름다움만을 착취했다. 영화는 그녀가 얼마나 똑똑했는지가 아니라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 왜 지워져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여자가 똑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니까. 아니, 여성에게 요구했던 건 그저 아름다움이지 지성이나 내면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헤디 라마의 일생은 여러 면에서 곱씹을 만하다. 따뜻했지만 지나치게 엄격했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출 연기를 감행했고, 각성제와 수면제에 취해 3류 영화를 찍어야 했던 불공정 계약에 항의하며 자신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U보트의 만행에 주파수 도약을 발명했지만, 전시이므로 특허에 관한 모든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며 주도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녀를 통제 불가능하고, 제멋대로인 여자로 규정한다. 이건, 70여년이 지난 요즘, 지금의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여자에게 아름다움만 요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2018년의 여성이 어떤 판옵티콘, 시선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주인공 르네 베넷은 꽤 통통한 여성이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갖지 못해 온라인 담당 부서에서만 일을 할 정도이다. 스피닝, 요가, 다이어트 등 날씬하고 예뻐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피닝을 하던 르네는 자전거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자신이 너무 예뻐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실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 눈에만 자신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원래의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자 세상이 그녀를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다정하고 섬세하게 사람들을 챙기고, 솔직하고 사려 깊은 성격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르네가 그 모든 관심과 배려를 달라진 외모 때문이라고 착각한다는 데에 있다.

 

맨스플레인으로 유명한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하이힐로 인해 여성의 보행권이 얼마나 침범받고 있는지 고발한 바 있다. 까짓것 하이힐을 벗어버리면 그만이지 보행권 침범이라고 왜 엄살이냐고 여길 사람들도 있을 테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싶어서가 아니라 신어야만 해서 착용한다. 화장도 마찬가지이다.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출근할 때, 회의할 때, 출장 갈 때, 해야만 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 힘겹게 해내는 경우가 더 많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뻐 보여야만 하기 때문에 하이힐과 화장에 속박된다. 세상이 그게 여자의 준비된 모습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어느새 여성들은 좋아서 시작했던 자기 관리를 억지로, 세상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쩔쩔매며 해내고 있는 셈이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누가 봐도 100명 중의 한 명꼴에 속할 미녀조차도 자괴감에 시달린다는 고백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또 세상이 자신을 한심하게 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작아진다. 르네 베넷이 경험한 마법의 실체는 옛날 동화처럼 진짜 예뻐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완전히 만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뻐야 좋다는 강박을 어린 시절부터 주입받고 자란, 이 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예쁜 여자란 세상이 강요했던 속박과 상품의 하나라는 것, 그래서 그 요구는 맞출수록 자신이 더 작아만 지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버려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을 위해 굳이 예뻐질 필요는 없다.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