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후배가 귀국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재미있는 대목. “그쪽 사람들이 농 반 진 반으로 한국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 유럽 베이컨(삼겹살이 재료다) 값을 올렸다는 거다.”

 

한국은 세계 삼겹살의 20% 정도를 소비한다. 인구 대비 엄청난 양이다. 세계 17개국 내외에서 수입한다는 것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돼지를 대량으로 기르는 나라는 웬만하면 한국에 수출한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비교우위에 있는 모든 부위가 해당한다. 족발, 목살, 갈비, 등뼈 등이다. 한국에선 비싼데 외국에선 헐값인 부위다. 한때 수입 삼겹살 구분법으로 ‘오돌뼈가 붙어 있느냐’를 보라고 했다. 이젠 의미없다. 한국 기호에 맞춰 뼈를 함께 잘라 정형해서 수입한다. 수입은 냉동이라고? 아니다. 냉장도 꽤 된다. 이베리코 돼지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스페인 명품이다. 물론 여러 등급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한국의 수수한 길거리 고깃집에서 이베리코를 파는 걸 보고 유럽인 관광객이 놀란다고 한다. 대개 돼지를 세세하게 잘라 정형하지 않는 유럽에서는 한국의 특정한 기호에 맞춰 이익을 낸다. 이른바 항정살, 가브리살 등이다. 일본만 해도 흔한 등심 돈가스가 약간 다르다. 한국은 등심만 튀기는 반면, 일본은 붉은 살이 섞여 있다. 바로 가브리살, 즉 등심 덧살이라는 부위다. 그래서 일본과 돈가스 맛이 다르다고들 한다.

 

황학동이라고도 하고, 청계천이기도 한 중앙시장은 원래 양곡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릇과 주방설비 가게가 많다. 이곳에는 ‘불판’만 전문적으로 파는 집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고기 굽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인도 총 몇 종이나 있는지 모른다. 대략 세어보면 100종이 넘는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솥뚜껑형, 사각철판형 등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고 돌, 합금, 무쇠, 스테인리스, 강철 등 소재로도 나눌 수 있다. 석쇠처럼 불꽃이 직접 닿는 형은 적은 편이다. 삼겹살은 불에 잘 타고 기름이 일어 석쇠 같은 형태는 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속은 안 익었는데 겉만 탄다. 야외에서 숯불 피워 삼겹살을 굽다가 낭패를 보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석쇠는 대개 소고기용이다. 삼겹살은 사실 그리 오래된 구이 형태의 외식이 아니었다. 먹더라도 주로 찌개나 보쌈용으로 쓰였다. 한식요리를 다룬 오래된 책 어디에도 삼겹살 구이는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잘 상해서 유통이 어렵고, 잘 익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이용으로 각광받지 못했다. 가격도 싸지 않았다. 1950~60년대 신문에는 ‘공설시장 가격’이라는 일종의 물가 안내 기사가 나오는데, 부위 불문하고 소와 돼지 고기 가격이 비슷했다. 미국에서 다량의 사료가 수입되고 식용유 산업이 발달하면서 콩깻묵 같은 부산물이 흔해졌다. 돼지고기 양산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삼겹살집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불판을 가는 문화가 없었다. 점차 위생과 건강을 따지는 손님의 요구에 맞춰 불판이 가벼워지고, 갈아주는 문화가 생겼다. 삼겹살 불판 교체를 비유로 들면서 정치개혁을 온몸으로 실천하던 분이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그가 꿈꾸던 새 불판 교체는 아직도 요원하다. 시민들과 함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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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