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훌훌 뚝딱 말아먹고, 식의 표현이 흔하다. 노동하는 음식, 간편식의 골자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식생활에서는 국과 국밥의 역사가 그랬다. 국밥의 대표격인 설렁탕이나 곰탕은 싸지 않았지만, 속이 든든하고 오래 허기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깃국이었기 때문이다. 국밥이 노동 음식이었다는 근거는 토렴을 든다. 밥을 말아내어 들이마시듯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토렴은 밥알의 온도를 적당하게 해주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식사 속도를 높여주어서 환영받았다는 뜻이다.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시대에 토렴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지혜였다. 특히 한국처럼 대륙성의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술이었을 것이다. 토렴한 국밥을 먹으면서 우리 선조가 버텨온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

 

 

고기에 대한 열망은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부터 수없이 등장한다. 수천년 동안 기근이 이어지다가 불과 30여년 전부터 고기 풍요의 대혁명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간혹 값이 뛰는 채소보다 못한 고기 신세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근자의 일이다. 미국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충분한 양의 사료, 사육 기술의 고급화, 수입육의 대량 공급으로 이제는 고기 자체에 대한 기근은 더 이상 없다. 설렁탕과 곰탕의 주재료인 소고기의 대체품인 닭과 돼지고기의 공급량이 넘치는 것도 그 영향이다.

 

고기를 구워 먹지 못하고 탕으로 내어 먹는 것을 자조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국밥을 서구의 스테이크에 비교해서 생기는 일이다. 소고기 1㎏을 국밥으로 끓이면 10명이 먹고, 스테이크로는 셋이서 먹는다는 수학적 계산을 해보면 선명해진다. 근대 도입기에 이 땅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며 시작된 충격이다.

하지만 유럽도 오랜 기간 우리와 같은 국물 문화를 거쳤다. 유럽도 한때 고기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까닭이다. 산업혁명과 사육 기술의 발달이 고기를 국물로 먹던 시대에서 ‘덩어리’의 시대로 진전시켰다. 위생과 동물 예방의학이 발전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다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쌓으면서 고기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먹는 수프라는 음식은 국밥처럼 적은 고기와 재료를 나눠 먹으려는 열망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수프는 고급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일본과 한국의 기록은 그런 면에서 살짝 코믹한 구석이 있다. 경양식집에서 팔던 밀가루로 만든 싸구려 수프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우리의 추억에는 그런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시내 국밥집이 바글바글해진다. 거칠어진 속을 위로하는 데에는 뜨거운 국물이 최고겠지. 어쩌면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도 같다. 세상 일이 뭐랄까,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게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헛헛한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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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