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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두 세 마디로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가득차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사람부터, 끝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 찍힌 사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모순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왜 일관되지 않으냐고 타박한다. 상대의 굴곡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은 자연스레 단 두 세 마디 인상비평의 소재가 되기를 거듭한다. 나쁜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누군가의 삶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그래서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렵다. 필요 이상의 주관이 개입되어 실제 역사의 사실관계와는 별 관련이 없는 픽션이 되기 쉽다.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조명한다면 이야기는 뒤죽박죽이 되고 캐릭터는 일관되지 않으며 흐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전기영화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태도란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명확한 비전을 갖추는 것일 테다. 그의 눈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를 관찰할 것인가. 요컨대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가깝게, 혹은 멀리 둘 것이냐의 문제 말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성격의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감안할 때 올리버 스톤의 <닉슨>은 보기 드물게 공정하고 사려 깊은 전기영화라 할 만하다. 올리버 스톤의 가장 근사한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몇 가지가 거론될 수 있다. 그것은 <플래툰>일 수도 있고 <7월4일생>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JFK>라고 대답할 테다. 그러나 내게는 <닉슨>이야말로 올리버 스톤의 독보적인 걸작이다.

 

사실 <닉슨>은 <JFK>에 비해 평가절하되기 쉬운 영화다. <JFK>는 케네디라는 대중의 오래된 결핍을 보상하는 영화였다. 반면 <닉슨>은 리처드 닉슨 이야기다. 리처드 닉슨.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 부패와 거짓말의 상징. 수많은 텍스트에서 인용되는 악의 화신. 영화가 공개되었던 1995년 당시 대중은 이 작품에 그리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닉슨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여론도 많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간 닉슨을 미화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영혼이 왜,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그의 모순을 가능케 한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가 어떤 맥락에서 작동했던 것인지에 대해 멋대로 판단하거나 비평하지 않고 묵묵히, 끈기있게 관찰하고 드러낼 뿐이다.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도청 사건. 처음에는 별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닉슨의 재선은 거의 확실한 상태였다. 민주당의 맥거번 후보에 비해 무려 19퍼센트나 앞서고 있었다. 백악관의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자신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미 모두 알고 있듯,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침몰해가는 닉슨의 모습을 조명한다. 동시에 그의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 시절과 정치입문, 반미활동위원회에서의 반공운동, 아이젠하워 정권에서의 부통령 시절,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불과 10만~40만표 차이로 패배한 후 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케네디의 지원을 받는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되는 등의 에피소드들이 반복적으로 오고 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리처드 닉슨이라는 인간의 불안한 영혼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했다.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닉슨은 하버드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도 돈이 없어 가지 못했다. 훗날 하필 케네디라는 최대의 정적을 만난다. 명문가 출신의 케네디는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하버드를 나왔다. 바로 그 케네디에게 간발의 차이로 졌다. TV토론 때문이었다. 케네디의 수려한 외모와 비교되는, 끊임없이 흘려대는 땀과 웅얼거리는 말투로 인해 그는 언론과 민주당으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당한다. 이로써 그는 평생 ‘아이비리그 출신 부잣집 도련님들’, 그리고 언론에 대한 혐오와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이 피해의식은 그를 말 그대로 황폐하게 망가뜨린다.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정적을 감시하고 도청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대목이다. 한밤중이다. 닉슨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목전에 두고 결국 사임을 결심한다. 그는 술에 취해 무릎 꿇고 기도하며 흐느낀다. 왜 여기까지 와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그 자신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을 추스른 닉슨은 백악관의 어둡고 드넓은 홀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케네디의 초상화 앞에 당도한다. 닉슨이 나지막이 내뱉는다.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이상향을 보는데, 내게서는 그들 자신을 보는군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반면 실패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기 드물다. 타인의 불행과 실패를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정작 전염될까봐 사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담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잠시 동안의 쾌감과 환상뿐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혹시 모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굴복하고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다.

 

 

허지웅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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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를 무대로 인기를 얻고 있는 캐주얼웨어 브랜드 '러버스 + 프렌즈(Lovers + Friends)'의 2014 S/S 시즌 컬렉션.

 

과감한 색상을 바탕으로 거리맵시를 강조한 이번 컬렉션은 가벼운 니트웨어와 레이스로 장식한 윗도리를 통해 캘리포니아만의 매력을 담아낸 탐미주의 경향의 디자인이 인상에 남는다.

 

특히 열대의 유혹이 새겨진 프린트를 바탕으로 시원한 색조 배합과 발랄함을 더해주는 액세서리가 특징이다.

 

 

 

 

 

 

이번 시즌 룩북은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를 잇는 베니스비치에서 촬영되었으며 모델 크리스 신타니와 사라 새릭의 아름다운 금발머리가 매혹 넘친다.


전위 예술가들의 작은 공동체로 잘 알려진 베니스비치에는 외관이 다채롭고 앙증맞은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숏 팬츠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활기 넘치는 명소다.

 

(이미지 = Courtesy of Lovers + Friends)

 

김희진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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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랜드 '블루마린(BLUMARINE)'이 1920~30년대에 유행한 장식 미술양식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아르 데코(Art Deco)'에서 영향을 받은 캡슐 컬렉션(동일한 컨셉에 기반한 한 디자이너의 6~12가지 소품종 교차조합 아이템 구성)을 선보였다.

 

검정과 흰색 그리고 베이지색을 기본 색상계열로 그래픽 프린트를 특징으로 하는 이번 컬렉션은 실크프린트 블라우스를 비롯 니트웨어와 롱가운으로 구성됐으며 12월부터 전 세계 블루마린 부티크에서 판매되고 있다.

 

1977년 27세의 나이로 자신의 브릿지라인 브랜드 블루마린을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나 몰리나리는 여성미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섹시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격조 높은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당시 파리에서 피카소・아폴리네르・프루스트・제임스 조이스・장 콕토 등 예술가들이 일으킨 큐비즘 예술 활동에서 시작된 아르 데코는 패션계도 디자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에는 드레스와 신체 움직임의 조화를 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슬린, 크레이프 드 신, 실크, 벨벳 등 얇고 부드러운 천이 주로 사용되어 새로운 패션 동향을 선보였다.

 

(이미지 = Courtesy of BLUMARINE)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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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소재에 보다 편한 움직임의 활동성을 부여하고 있는 프랑스 명품 가죽 브랜드 '지트루아(JITROIS)'의 2014 S/S 시즌 컬렉션.

 

이번 시즌엔 새봄을 맞는 느긋한 감성의 바탕 위에 발랄한 색조를 더했으며 단순미가 강조된 운동복 바지의 스포츠 기능성이 눈에 띈다.

 

특히 섞어맞춰 입기 위해 상하의에 주목한 지트루아는 장식이 화려한 재킷을 비롯 부드러운 드레스에 걸쳐입기로 주름을 넣거나 유선형의 옷태를 지어내기도.

 

 

 

 

 

 

장 클로드 지트루아의 이번 컬렉션은 파리 상제리제의 명소 '그랑 페레'에서 열린 여름 전시행사에 참석해 영감을 얻었다고.

 

가죽 명품 디자이너로 유명한 장 클로드 지트루와(Jean Claude Jitrois)는 가죽을 통해 여성의 관능미와 고상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프랑스 남동부의 휴양지 니스에 첫 부띠크를 연 장 끌로드 지트루아는 이후 생트로페(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휴양지)에 이어 1983년엔 파리의 유명 명품거리인 포부르 생트 오노레에도 매장을 선보이면서 명품 브랜드의 입지를 다져왔다.


한편 그랑 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건립한 건축물로서 당시 혁신성 넘치는 건축디자인 양식인 '기마르(Guimard)'를 구현해 주목받았다.

 

(이미지 = Courtesy of JITROIS)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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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토탈패션 브랜드 '탑샵(TOPSHOP)'을 위해 영국의 '미드햄 커츠호프(MEADHAM KIRCHHOFF)'가 네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은 귀여운 인형을 연상시키는 '베이비돌 드레스(허리선이 높은 헐렁한 치마의 여자용 원피스)'를 비롯 다채로운 색상의 줄무늬 스타킹, 반짝이 덮인 슈즈, 화사한 색상의 모피 코트 그리고 쪽모이세공(패치워크) 가죽 재킷까지 다양하다.

 

브랜드 공동창립자인 에드워드 미드햄과 벤자민 커츠호프는 상상 속 여성밴드로부터 이번 컬렉션의 영감을 얻었다.

 

 

 

 

 

 

'체리스(Cherrys)'라는 이 밴드는 순응을 거부하고 유별난 네 명의 소녀들로 이뤄졌다. 이교도의 과격함과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함 사이를 오가는 극단의 마음가짐을 가진 꿈꾸는 소녀들인 것.


과장된 디자인과 독특한 키치(kitsch) 양식을 반영하는 이번 콜라보 작품 80여점은 탑샵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 Courtesy of TOPSHOP & MEADHAM KIRCHHOFF)

 

김희진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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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인을 위한…’처럼 무력감을 이야기하는 ‘카운슬러’

 

“당신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헤매고 있는 그 세상은, 애초 그 실수가 행해진 세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카운슬러>는 냉엄한 영화다. 리들리 스콧은 코맥 매카시의 각본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국내에 이미 출간되어 있는 코맥 매카시의 카운슬러 시나리오와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의 잔재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될 본인의 영화를 이토록 완전한 ‘타자’처럼 다룰 수 있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씨줄과 날줄이 드러나듯 사연과 정체가 선명해지는 종류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는 언뜻 서로 별다른 관련이 없는 길고 지루한 대화 시퀀스들이 성기게 모여 있는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말에 이르는 정확한 사연도 동기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협소하다.

 

그렇다. <카운슬러>는 친절하지 않은 영화다.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를 고안해낸 사람들이 단 한 가지 사유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에만 주력하기 때문이다. <카운슬러>는 본연의 질문에만 충실한 일종의 우화다. 그 외의 디테일은 완전히 배제된다. 중요하지 않거나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전통적인 전개 방식에 익숙한 관객들은 어색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카운슬러>라는 제목의 이 우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 사유란, 바로 무력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무결한 의미로써의 무력감이다. 분하다거나 아깝다거나 다음번에는 잘해봐야겠다는 여지를 느낄 수 있는 종류의 무력감이 아니다. 그것의 크기도 질감도 성격도, 도무지 어떤 식으로도 가늠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무력감이다. <카운슬러>가 보여주는 무력감은 그 앞에서 열패감을 드러낼 소박한 사치마저 앗아가버린다.

 

<카운슬러>는 여러 방면에서 작가의 대표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유사한 지점을 드러낸다. 잠시 그 영화를 떠올려보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 명쾌한 영화다. 이 영화는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마주한 노인의 뿌리 깊은 한숨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거꾸로 그런 폭력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의 비관을 비난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노인의 지혜로움이라는 것이 결코 세상을 다스릴 수 없음을 조용히 관조해내는 영화다.

 

모든 노인이 지혜로운 건 아니지만, 시간의 녹을 먹은 노인들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자들임이 틀림없다. 마침내 세계의 원리에 가깝게 가 닿았지만, 결코 그것을 감당해낼 수 없는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늘 은퇴뿐이다. 이 세계에 시간의 개념이 생기고 역사가 기록된 이래 꾸준히 되풀이돼온 노인의 비극이다.

 

시공간을 통틀어 그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안관의 마지막 꿈 이야기가 바로 그 반복의 메커니즘을 친절하게 은유한다. 이 원칙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극 종반, 절대악 안톤 시거의 무력한 표정은, 그 역시 언젠가 모든 걸 알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울림을 가져온다. 그렇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세상이 늘 어리석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혜로운 노인이 늘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원리를, 그 모든 아비규환과 폭력과 살인과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끝내 설명해내고야 만다.

 

 

영화 <카운슬러>의 한 장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앞선 자들의 무력감’에 대해 관조하고 있다면, <카운슬러>는 ‘다가올 파국을 앞둔 우리들의 무력감’에 대해 다루는 영화다. <카운슬러>는 누군가 자신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에 발을 들이밀고 잘못된 선택을 감행했을 때,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원래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찾기 어렵다는 게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매 순간 선택과 동시에 내가 사는 ‘세상’이 탄생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지금의 이 지옥은 빠져나갈 길이 따로 존재하는 이계가 아닌 현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카운슬러>의 우화적인 감각은 주인공에게 이름을 주지 않고 ‘카운슬러’라는 직업으로 호명함으로써 그의 실수와 실패를 개인적인 사건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는 데서 빛을 발한다.

 

대개 우화의 목적이 그렇듯, <카운슬러>의 이야기 또한 ‘우리’가 대입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주인공이 범하고 있는 실수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들도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물욕이든 자만이든 욕정이든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무방하다. 작가는 바로 그런 개인들의 선택과 거기서 파생된 ‘세상들’이 겹치고 쌓여 결코 대비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공공의 파국, 요컨대 이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대학살’이 코앞에 닥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는 철저하게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두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보안관의 꿈 이야기는 앞서 살아간 아버지들의 무력감이 자신에게 반복되고 있으며 그것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원리임을 설명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와 닮은꼴이되, 그보다 더 순수한 악 그 자체로써의 익명성이 강화된 <카운슬러>의 말키나가 “다가올 대학살은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할 때, 그리고 곧바로 급작스레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암전이 이어졌을 때 우리는 전율할 수밖에 없다. 대학살이 가까워 왔다.

 

 허지웅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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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탄생의 계절 봄과 역동의 계절 여름을 위해 대담한 색조와 프린트를 통해 발랄한 멋을 강조한 '소니아 바이 소니아 리키엘(Sonia by Sonia Rykiel)'의 2014 S/S 시즌 컬렉션.

 

가로줄무늬를 비롯 추상성 짙은 꽃무늬와 동물 문양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프린트로 장식성을 더함으로써 젊은 취향의 디자인을 부각시킨다.

 

또 윗옷과 아래옷을 따로 맞춰입는 연출에 주목한 결과 소니아 리키엘의 인증 의류인 니트웨어가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스웨터와 드레스는 니스소재 고유의 따뜻한 기능성은 물론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봄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듯. 이번 시즌 룩북의 여신은 한나 홀먼과 쿠에렐 잰슨이 나섰다.

 

프랑스의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 소니아 리키엘이 유행을 감성에 접목시켜 지난 1990년 첫 선을 보인 '소니아 바이 소니아 리키엘' 역시 패셔니스타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독특한 색채감을 바탕으로 창의성이 담긴 일상복 디자인으로 '니트의 여왕'이라 불리는 소니아 리키엘은 코코 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못지 않는 파리 패션계의 대모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지 = Courtesy of Sonia by Sonia Rykiel)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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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년 파티 시즌을 위해 '립시 런던(Lipsy London)'이 선보인 F/W 컬렉션은 여성 몸매를 부각시키면서도 현대스럽고 고전미를 담아내 눈길을 끈다.

 

이번 시즌 역시 검정 미니드레스의 세련된 멋이 립시런던만의 매력으로 탄생해 눈길.

 

여기에 관능미가 강조되면서도 섬세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레이스 드레스는 물론 눈길을 사로잡는 프린트의 드레스는 파티 애호가들의 필참 의상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매혹 넘치는 긴 소매가 인상에 남는 세퀸 드레스는 금속의 장식미와 함께 우아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지난 1990년 영국 런던에서 첫 선을 보인 립시런던은 도심의 번화가를 수 놓는 여성복 맵시를 통해 브랜드를 알려왔다.

 

(이미지 = Courtesy of Lipsy London)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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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미가 흐르면서도 편안한 몸매 윤곽선으로 인해 여성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독일 명품 브랜드 '슈트레네세(Strenesse)'의 2014 S/S 시즌 여성복 컬렉션.

 

원피스 보다는 아래윗옷 각각의 독립성에 초점을 맞춘 이번 컬렉션은 섞어맞춰 입기를 통해 조화로운 맵시를 선보인다.

 

또 상자모양의 가죽 재킷과 바지는 기하학 문양의 프린트가 새겨진 주름장식 드레스와 절묘하게 어울려 눈길을 끈다.

 

 

 

 

 

 

특히 잉크색의 푸른색이 가진 생생함과 쪽빛을 비롯 고색찬연한 태양이 가진 노란색 그리고 갈색빛이 감도는 모카커피색까지 세련된 봄채비를 기다리는 여심을 닮아 있다.

 

고급 소재인 부드러운 가공 가죽과 오간자, 유연한 크레이프 새틴(광택이 곱고 보드라운 견직물)을 사용해 컬렉션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칼 라거펠트, 질 샌더, 휴고 보스와 함께 독일의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로 이름 높은 '슈트레네세'는 독일 노르틀링겐에서 사업을 시작한 슈트렐레 가업을 모태로 지난 1968년 여성복 브랜드로 첫 선을 보였으며 2013년 2월 나탈리 아카트리니가 새 총괄디자인 감독(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 됐다.


슈트레네세는 2006년 독일 축구대표팀 공식 정장으로 선정됐으며 감독 요하임 뢰브를 모델로 컬렉션 홍보에 나서기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지 = Courtesy of Strenesse)

 

김희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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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로잡힐 과거는 늘어간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죽음 따위는 근사한 문장 안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멀찌감치 초과해버린 과거의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스꽝스럽지도 비장하지도 않은 그냥 인류, 라고 부를 만한 광경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이 오십에 누군가는 백가지를 책임져야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열가지를 책임지고 있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 짊어질 깜냥이 되는 과거의 무게 차이일 뿐 절대량으로 우위를 따질 일은 아니다. 아름답게 나이 먹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결국 매순간 과거를 떠올리며 조금씩 죽어가는 길을 피해가기란 요원한 노릇이다. 피할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책임지지도 짊어지지도 않겠다며 뭐랄까 인류, 라는 단어를 내팽개쳐버리는 사람들이다. 현대사회라는 것이 운명공동체이다보니 평범한 어른이 된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나잇값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 같은 말을 떠벌이는 걸 지켜보는 일은 곤욕스럽다.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세계는 늘 이와 같은 화두를 관통해왔다. 그의 초기작이자 출세작인 <이나중 탁구부>는 막무가내의 화장실 개그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조차 정수는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막연한 동경과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소년들의 왁자지껄한 난장 이후에 찾아오는 덧없음에 있었다.

 

초창기 후루야 미노루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무책임한 어른들의 영향 아래 놓여있으되 자기 힘으로 삶을 일구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곤 했다.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그렇다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었다. <크레이지 군단>은 <이나중 탁구부>에서 <그린힐>에 이르는 초기 3부작 가운데 그러한 메시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 역작이었다. 주인공 형제가 아저씨에게 두들겨 맞고 실컷 눈물을 쏟은 다음 얼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는 <크레이지 군단>의 마지막 한 컷은 영화 <그래비티>에서 지구 위를 두 다리로 버티고 일어선 샌드라 불럭의 마지막 장면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어두워졌다’고 평가되는 중기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와 같은 화두는 더욱 본격화된다. <두더지>에서 <시가테라> <심해어> <낮비>에 이르기까지, 후루야 미노루의 주인공들은 더 나은 인간,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 최소한 평범한 어른, 아니 평범한 어른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골몰한다. 혹자들은 후루야 미노루의 근작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남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여자에게 구제되는 이야기의 동어반복이라고 비판한다. 확실히 그런 혐의가 있다. 다만 후루야 미노루가 방점을 찍는 건 그녀에게 구제되는 그, 가 아니다. 이것은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는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으면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나, 의 이야기다.

 

소노 시온의 <두더지>는 후루야 미노루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주인공은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소년이다. 그러나 이미 그럴 수 없을 것이라,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인간을 찾아 함께 죽고자 여정을 떠난다. 여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소년은 돌아온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

 

소노 시온이 <두더지>를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도대체 얼마나 어두운 영화가 나올지 지레 겁부터 먹었다. 소노 시온은 후루야 미노루와 닮은 구석이 많은 당대의 작가다. 후루야 미노루에게서 웃음기를 아예 제거해버리고 피와 배설물을 한 바가지 끼얹으면 소노 시온이 될 것이다. 소노 시온은 <자살 클럽>부터 <기묘한 서커스> <노리코의 식탁>에 이르는 초기작에서 “당신은 당신과 얼마나 관계 맺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가정의 붕괴와 책임의식의 부재에 관해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 그에게 <두더지>는 너무 어울려서 어쩌면 서로 어울리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2011년 3월11일, 대지진이 일어났다. 소노 시온은 이미 써두었던 <두더지>의 영화 시나리오를 폐기했다. 그리고 대지진 이후의 폐허를 배경으로 원작 <두더지>의 비전을 새롭게 펼쳐냈다. 원작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결말에서 드러난다. 소노 시온은 주인공에게 절룩대고 비틀거리더라도 살아남아 버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대지진의 여파로 상처받은 자국민을 향한 메시지였다.


놀랍게도 원작 <두더지>의 컨텍스트는 영화 <두더지>의 방향전환에 의해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두더지>의 주인공은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평범한 어른으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원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신이 너무 치명적인 과오를 저질렀다고 생각해 괴로워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어른이란, 바로 그런 과오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책임이다. 그것을 짊어지지 않고 도망가려는 자들 때문에 상처받았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 선택이 영화 <두더지>에서 평행우주처럼 갈라져 재생된다. 서두를 반복하자면, 인간은 그러니까 어차피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이다. 그 과거의 크기에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짊어질 수 있는 꼭 그 만큼씩을 가지고 살아나가면, 그것이 평범한 어른이다.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 이야기다. 그런 게 있다면 누를 거냐는 질문이다. 그는 우리 삶에 인생을 리셋하는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역설한다. 아무튼 산다는 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는 일과 비슷한 것이다. 떼어내어 다시 붙이려다가는 못쓰게 된다. 먼지가 들어갔으면 들어간 대로, 기포가 남았으면 남은 대로 결과물을 인내하고 상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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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이 운영하는 삼성패션연구소는 해마다 흥미로운 통계를 낸다. 서울 삼성동과 시청앞, 여의도 등 사무실이 모여 있는 주요 거점에서 출근하는 남성들의 복장을 체크해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연구소가 지난 5월 길거리에서 남성 2000여명의 출근복을 확인한 결과 58.6%가 캐주얼 복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장을 입은 직장인은 41.4%에 그쳤다. 1990년대 70%가 넘는 남성 직장인들이 정장을 착용했던 것에서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넥타이가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정장 차림이 부쩍 줄어들더니 이젠 오히려 넥타이를 맨 이들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 정장을 입더라도 색상이 짙은 옷에 한정되지 않으며, 셔츠 색상도 흰색 일변도에서 탈피했다. 이는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복장 코드의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 나아가 군대식 문화가 사라지고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이 발전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 _ LG패션 제공(출처 ;경향DB)



■ 삼성 복장 변경에 정장 ‘KO’


삼성그룹은 2008년 근무복장으로 ‘비즈니스 캐주얼’을 전격 도입했다. 삼성이 발표한 ‘비즈니스 캐주얼 착복기준’은 “칼라가 있는 재킷, 칼라가 있는 캐주얼한 드레스셔츠, 정장류 하의, 구두 스타일의 캐주얼한 슈즈”였고, 피해야 할 복장은 “T셔츠, 청바지, 면바지, 운동화 등”으로 적시했다. 이전에도 몇몇 기업이 이런 복장을 도입했지만 공식 도입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유도한 건 삼성이 처음이었다. 


이후 이 복장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2년여 만인 2011년 5월 삼성패션연구소의 ‘도심 길거리 조사’에서 캐주얼이 정장을 처음 앞섰다. 


삼성 관계자는 18일 “한마디로 삼성그룹의 복장 변경으로 한국 직장인의 복장이 ‘짙은 정장과 넥타이’에서 ‘노 타이 셔츠와 재킷’으로 바뀌었다”며 “당시엔 이 정도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치 못했는데 우리도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복장 간소화는 사실 삼성만이 아니라 삼성으로 상징되는 IT기업의 득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하기 전 이미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 HP, 필립스, 노키아 등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있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은 아예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캐주얼 복장을 도입한 상태였다. 이런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고 또 한국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된 측면이 있다. 이들은 왜 자율복장을 시도했을까.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천편일률적인 복장에서 벗어나 개성있는 셔츠를 입으면 직원 개인의 다양성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경영상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 IT업계, 특히 게임업체는 극단적일 정도로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한다. 게임업체 넥슨 관계자는 “밤샘 개발에 몰두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됐다”며 “여직원들도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등 자신이 원하는 복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IT산업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율복장 문화가 확산됐고, 규모와 영향력이 큰 삼성의 전환이 ‘결정타’ 역할을 한 셈이다. 


■ 넥타이 확인사살 ‘전력대란’


정장과 셔츠를 입더라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경우가 확연히 늘어난 것에는 정부의 ‘노 타이’ 지침도 한몫했다. 정부는 냉방에 소비되는 전기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넥타이를 풀 것을 권장해왔고, 2005년 행정자치부의 ‘강력 권고’가 나오면서 ‘여름복장=노 타이’가 공식처럼 굳어졌다. 넥타이만 풀어도 체감온도가 2도가량 떨어지고 냉방비 또한 크게 절약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엔 여름이 아니더라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일터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휘들옷’이라 불리는 쿨비즈를 개발해 공무원들에게도 권장한 게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공무원 복장 변화는 최근 전력대란과 무관치 않다. 2011년 9월 초유의 순환단전 사태가 벌어지는 등 꼭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늘 전력이 부족한 현실이 작용하면서, 실내 근무자들이 넥타이를 착용하면 오히려 에너지 문제에 둔감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휘들옷은 이듬해 1월부터 정부 주도로 개발됐다. 기존 와이셔츠뿐 아니라 가벼운 캐주얼 셔츠와 재킷 등을 권장하는 개념이어서 민간기업의 비즈니스 캐주얼에 근접한 자율복장으로 평가된다. 홍석우 당시 지경부 장관이 국무회의 등에도 이 복장으로 참석하면서 민간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일례로 보수적인 복장 관행을 유지해온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여름 이후 사계절 내내 넥타이를 풀고 다닌다. 김연강 대한상의 총무팀장은 “지난해 여름 지경부가 여름 복장 ‘드라이브’를 건 뒤 내부적으로 여름이 아니어도 넥타이를 하지 않는 복장을 권장하게 됐다”며 “경제단체와 민간 기업도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차원에서 이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복장이 간편해진 뒤 직장인들은 “사내 서열문화가 완화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게 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옷차림에 신경쓰게 되거나 (옷을 사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는 반론도 내놓는다. 


■ “탈권위 반영”…금융가 정장 여전


삼성과 정부 등 민·관의 대표적인 일터의 복장 간소화 영향도 있지만, 직장인들의 ‘캐주얼화’는 사회 전반의 변화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권위 바람이 확산되면서 유니폼 내지 천편일률적 정장 등에서 개성있는 옷차림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우찬 패션칼럼니스트는 “획일적인 군사적 문화가 깨지면서 ‘남녀 직원들은 이러이러한 복장을 각각 착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큰 변화가 왔다”며 “개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보수적인 패션에서 벗어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탈권위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런 변화가 가시화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통 정장 차림을 유지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은행이나 증권사, 법조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셔츠 색상이 다양해지는 등 일부 영향은 있지만 여전히 정장과 넥타이 차림을 유지하고 있는데, 금융거래를 다루는 직업 특성상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 등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업종도 비슷한 이유에서 정장을 선호한다. 현대·기아자동차 직원들은 대체로 정장 차림을 유지한다. 이는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한국지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닛산 등 일부 외국계 회사가 매주 금요일 청바지를 허용하지만 아직은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정장 수트야말로 성공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한다는 시선도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부분 회사원들의 복장이 간편해지면서 짙은색 정장과 넥타이, 단정한 헤어스타일 등이 차별화된 ‘엘리트 직종’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세상이 변해도 우리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부심도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 5년 새 넥타이 판매 27% 감소… 캐주얼 액세서리·백팩이 대세


정장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찾는 직장인이 늘면서 유통업계와 패션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넥타이 대신 남성용 잡화와 캐주얼 브랜드가 더 다양해지고 있는가 하면 기존 정장 브랜드도 스타일과 편안함을 강조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자료를 보면 이 백화점의 지난해 전체 넥타이 매출은 전년보다 10.8% 감소했다. 최근 5년 동안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율을 보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2008년 매출과 비교하면 27.3% 감소했다. 캐주얼 복장 근무를 허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데다 정장도 넥타이를 매는 기존 스타일에서 청바지에 재킷만 입는 방식의 ‘세미 정장’이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넥타이 소비가 줄어들면서 최근 업계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벨트, 지갑, 스카프 등 남성용 잡화다. 현대백화점의 남성용 잡화 매출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고 지난해엔 36.3%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 5월 새롭게 문을 연 남성 전문관 ‘현대 멘즈’ 내에 국내 최대 규모의 남성 잡화·액세서리 매장을 열었다. 495.9㎡ 규모의 매장에서는 남성용 신발과 액세서리뿐 아니라 화장품과 소형 가전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각각 2011년과 지난해 서울 강남점과 본점에 남성 전문관을 만들어 패션에 관심있는 남성 고객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의류업체도 남성용 캐주얼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LG패션의 남성복 브랜드인 ‘마에스트로’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장과 캐주얼 상품 구성비가 6 대 4였지만 올해는 4 대 6으로 비중이 역전됐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이탈리아 남성들의 캐주얼 복장을 콘셉트로 하는 ‘일 꼬르소 델 마에스트로’도 출시해 사내 남성복 중 캐주얼 상품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닥스액세서리’의 백팩(배낭)은 2011년 이후 올해까지 매년 2배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승기 LG패션 액세서리 부문장(상무)은 “남성들이 이탈리아 등 패션 선진국 남성 패션에 영향을 받아 몸에 꼭 맞는 슬림한 핏의 옷을 찾기 시작하면서 정장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지갑 대신 클러치백이나 백팩 등 대체 아이템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성용 정장 수요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제일모직의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가 최근 만 26~45세의 직장인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장을 주 5회 이상 착용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4.2%를 차지했다. 착용 이유로는 사내 복장 규정과 분위기(29%), 비즈니스 미팅과 발표(21%) 등이 꼽혔다.


로가디스 관계자는 “편안함과 스타일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자주 정장을 입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6.6%에 이른다”며 “파워네트(폴리우레탄 등이 사용돼 신축성이 강한 직물)를 사용해 활동성과 편안함을 높인 ‘스마트 슈트’로 정장을 찾는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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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가 선보인 2014 리조트 컬렉션은 디자이너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있어 행복한 삶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희망을 표현한다.

 

실크를 원단으로 한 드레스는 꽃무늬 프린트는 파스텔 색조로 인해 우아하면서 이번 컬렉션의 새로움을 더해준다.


여기에 비단뱀 프린트와 원석 장식의 섬세함은 사랑스럽고도 은근한 반항기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톡특한 멋을 선사해 준다.

 

 

 

 

 

 

이렇듯 일상복의 캐주얼하고 발랄한 면이 강조됨으로써 스텔라 매카트니를 인증하는 또 하나의 컬렉션이 탄생했다.

 

그럼에도 격조 높은 항공 재킷(허리 부분이 꼭 끼고 앞은 지퍼로 잠그는 짧은 재킷)은 다양한 프린트 장식을 더해 신선한 면모가 돋보이기도.

 

부드러운 고급 공단 직물인 뒤셰스 수자직(새틴) 소재로 직하하는 선이 특징인 칵테일 드레스는 아플리케(천 조각을 덧대거나 꿰맨 장식)와 자수가 놓인 장식미가 눈길을 끈다.


또 초현실주의 느낌의 입술과 타다 만 성냥개비로 장식한 드레스는 문신예술을 동경하는 소녀의 취향을 반영한 듯.

 

(이미지 = Courtesy of STELLA MCCARTNEY)

 

<한국형 SPA 패션편의점 '미즈나인'(www.ms9.co.kr) 과장 = 김희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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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프랑스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클레어 피뉴(Claire Pignot)가 새롭게 선보인 여성복 브랜드 '에뉴이(HEINUI)'의 2013~14 F/W 시즌 컬렉션.


2006년 고급여성복 브랜드 '꼬꼬떼(Cocotte)'를 설립한 그는 이번 시즌을 맞아 새로운 '인디고 걸(쪽빛 색상 계열 중심의 젊은 여성복)' 브랜드로 에뉴이를 선보였다. 


그동안 주문받은 의상 제작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보다 대중 취향에 영합하는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로 자신의 컬렉션 문턱을 낮췄다. 











실크처럼 고급스러운 원단을 사용하고 일본식 데님이 주종을 이루는 에뉴이의 이번 컬렉션은 프린트를 강조하면서 파란색 중심의 색상 계열이 특징. 


또 단순미를 강조한 디자인 선은 지극히 여성미를 부각시키면서 우아한 일상복의 느낌을 선사한다. 


여기에 실용성이 가미됐으면서도 낭만이 담긴 의상들은 블라우스를 비롯 드레스와 핫팬츠 그리고 스타킹같은 액세서리가 눈길을 끈다. 


패션전문 사진작가 세르게이 푸스터가 룩북 촬영을 맡았다. 


(이미지 = Courtesy of HEINUI)


<한국형 SPA 패션편의점 '미즈나인'(www.ms9.co.kr) 과장 = 김희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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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지아 울프를 비롯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예술 지상주의'를 표방하며 문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여성 예술가들의 '블룸즈베리 그룹'이 '안토니오 마라스(ANTONIO MARRAS)'의 2013 F/W 시즌 컬렉션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세계에 대한 미적 해석 재능과 능력이 탁월했던 당시 여성 예술가들은 높은 교육수준은 물론 창의력 넘치고 현대성이 가미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세기를 맞는 지적 기반을 마련해 줬다. 


안토니오 마라스의 이번 컬렉션은 무한한 섬세함이 담긴 디자인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해 냈다. 


 






특히 흑백의 대비감 속에 기하학적인 꽃잎으로 표현된 튤립과 형태가 뚜렷한 의상에 구현된 꽃무늬 프린트를 비롯 붓으로 그린듯 가을 색조 속에 담아낸 붉은 장미는 트위드와 울, 털이 무성한 앙고라 소재를 바탕으로 옷감을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 


또 중간길이 스커트와 무릎에서 펼쳐진 코트 디자인은 낭만과 극적 느낌을 선사하면서 매우 여성스러우면서도 예술가의 지적 면모를 대신해 주는 듯. 


이에 반해 예상 밖의 화려함에 더해진 1980년대의 맵시를 펼쳐보이기도 하고, 남성미가 묻어나는 스리피스 수트재킷과 배기바지까지 강인한 느낌이 강조된 컬렉션은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출신의 안토니오 마라스(52)는 2011년을 끝으로 '겐조' 여성복 디자인 총괄감독(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후 현재 '드라마와 낭만을 향한 시적 본능'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디자이너 브랜드 컬렉션을 통해 꾸준히 활동 중이다. 


(이미지 = Courtesy of ANTONIO MARRAS)


<한국형 SPA 패션편의점 '미즈나인'(www.ms9.co.kr) 주임 = 양현선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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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일까. 아니 요즘 유행하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가져와보자. 모방은 혁신의 어쩔 수 없는 그림자일까.

 

최근 삼성은 다시 한번 특허 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이번에는 애플이 아니었다. 다이슨이었다. 다이슨은 삼성의 신제품 ‘모션싱크’가 자사의 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청소기가 방향을 전환할 때 재빨리 회전할 수 있게 해주는 다이슨의 기술을 삼성이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은 적극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사실 후발 주자가 이미 그 영역에 있어서 일종의 생태계를 창조해낸 선두 주자를 모방하는 건 거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경쟁은 고사하고 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스스로 이미 글로벌 일류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지위를 누리면서 정작 실무에 있어 여전히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쪽이라면 법으로 어찌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허세’나 ‘양아치’라는 욕을 먹는 걸 억울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조도 산재도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튼 이 방면에 있어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이미 유명한 대화록을 남긴 바 있다. 목격자와 당사자의 증언에 따라 그것이 전화 통화였는지, 혹은 주차장에서 벌어진 것인지 말이 나뉘지만 내용에는 별반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널 망가뜨려버리겠어, 너는 매킨토시를 베꼈어!” “애초에 너도 제록스에서 베낀 거잖아!”

 

최근 애시턴 커처가 스티브 잡스를 연기한 영화 <잡스>가 개봉한 바 있다. 잡스를 흡사 기인처럼 살다 떠난 신세기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처럼 다룬 이 영화에 대해선 사실 별 할 말이 없다. 짧게 언급한다면, <잡스>는 영화라는 매체가 누군가의 인생 혹은 그 일부분을 소재 삼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종류의 실책을 꼼꼼하게 하나하나 남김없이 범하고 있는 망작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스티브 잡스를 신화가 아닌 모범적인 실수의 교과서로서,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사색할 수 있는 사건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한데 모아 있는 힘껏 구겨놓고선 마침내 먼지가 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맨발로 짓밟아대는 작품이다. 거리를 떨어뜨려 객관화시켜야 할 대상을 콘서트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 카메라의 시선에선 어떤 종류의 성찰도 발견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 중 가장 굴곡진 십수년을 소재로 삼은 영화 가운데 (아직 에런 소킨의 스티브 잡스 영화가 등장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꼽는다면 역시 마틴 버크의 TV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영화는 실리콘밸리의 총을 들지 않은 날강도들-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이 어떻게 기회를 잡고 모방으로 혁신을 이루어냈는가에 대한 흥미롭고 유쾌한 리포트다. 이 영화는 사실상 스티브 잡스에 의해 인증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은 1999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이날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 잡스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그의 신제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무대 위에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꺼지더니 어떤 영화의 프리미어 영상이 상영되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악연을 다룬, 바로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이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

 

 

영화 <잡스>의 한 장면.

 

▲ 모방 통한 혁신은, 같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태계 만들어야

 

영상이 끝나고 장내 불이 들어오자 익숙한 차림의 남자가 무대에 나타났다. 검은 터틀넥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그러나 잡스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잡스를 연기한 배우 노아 와일이었다. 그가 잡스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자 웃음과 환호 소리로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 무대 오른쪽에서 진짜 스티브 잡스가 나타나 외쳤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내가 언제 그렇게 했어!” 와일은 “당신 아직도 총각은 아니죠?”라는 말을 남기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나는 에런 소킨이 <소셜 네트워크>를 쓰는 데 있어서 <실리콘밸리의 해적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혈받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대표적인 IT영웅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여기에는 탄생 비화와 인간관계, 이를테면 배신,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이야기가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영화의 만듦새는 꽤 인상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역사적인 1984년의 매킨토시 광고를 소개하는 대목으로부터 시작해, 1997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항복하는, 아니 동맹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근사한 캐스팅과 경쾌한 편집, 모나지 않은 흐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역시 잡스와 게이츠가 서로 퍼붓는 장면이다. 잡스는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운영체계를 그대로 베껴 윈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그 대화록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넌 매킨토시를 베꼈어!” “너도 베낀 거잖아!” 잡스는 할 말을 잃는다. 게이츠는 자리를 떠난다. 맞다. 잡스는 마우스로 작동하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아이디어를 제록스에서 훔쳐왔었다. 그리고 그것을 빌 게이츠가 다시 훔쳤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혁신은 오리지널리티가 아닌 일종의 미감과 순발력으로부터 발휘되는 것인지 모른다. 요는 서드 파티 혹은 개발자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어울려 먹고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광고 문구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유행가 후렴구처럼 ‘혁신’을 가져다 붙이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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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은 북한산과 한강을 잇는 서울의 주요 하천 중 하나이지만 본래 모습은 거의 없다. 물길 위로 고가도로까지 놓이니 하천의 한유함은 도회적 번잡함으로, 둔치의 해찰은 바퀴의 질주로, 풀숲과 돌 틈엔 밤낮없이 차량소음이 고인다. 그것은 도시의 밀도와 교통량의 증가가 불러온 변화로 과거에 없던 도시모습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거북해하는 거대한 교각에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잘했다” “멋있다”는 이도 있지만 “아니 홍제천에 뜬금없는 인상파 그림?” 하며 비웃기도 한다. 저마다 제 맘의 그림만을 원하는 감상평과 훈수가 넘치지만 으뜸 방책은 교각구조물 자체를 깨끗하게 관리하여 구조미를 드러내는 일이다. 혹 꾸밈이 필요하다면 구조물과 조화되는 새로운 미술형식을 탐구할 일이다.

열린 장소에 액자그림은 참으로 생뚱하다. 유명한 그림을 붙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명화를 복사해서 아무 곳에나 걸겠다는 생각이 바로 액자 속의 낡은 생각이다. 특정한 프레임에 갇히면 장소·환경·상황 등의 변화를 읽지 못하니, 작품도 빛을 잃고 보는 이의 안목도 낮아진다. 제일의 피해자는 이유도 모르고 액자에 갇히는 세상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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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B급 느낌이 가장 좋아… 남들이 다 망할 거라는 일에 승부 걸죠



사진 _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들어…

“모든 길과 식당이 대형몰에 잡아먹히는 세상,

‘자본주의 암부’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어”


패션에 예민한 여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구두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슈어홀릭’은 아니지만 내게도 구두와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구두 브랜드 ‘토즈’는 땅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쿄의 오모테산도힐즈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진행 도중 건물의 디자인을 전면 변경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주변 상인들이나 민원, 고비용이 아니라 느릅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토즈’는 나무를 베거나 훼손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느릅나무의 나뭇가지를 이용한 디자인으로 설계를 변경한다. 내가 본 사진은 바로 ‘토즈’의 도쿄 매장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늙은 느릅나무였다. 그날, 나는 신발장 안에 있던 낡아빠진 내 토즈 플랫슈즈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신고 내가 걸었던 수많은 길들 사이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에 둘러싸여 산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브랜드는 무엇일까. 디자이너 조수용은 인터넷을 켜면 눈앞에 등장하는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을 만들었다. 건축가가 아닌 그는 네이버 사옥인 그린팩토리 건축을 진두지휘했다. 자선사업가일 리 없는 이 남자는 한글 나눔 폰트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네이버 최연소 부사장을 그만두고, 3년 전 독립한 그는 JOH라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만들었다. 회사는 인천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근처에 호텔을 짓고 있다. 가방 마니아인 그는 얼마 전 재봉사까지 고용해 가방을 만들어 판다. 이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광고 없는 잡지로 프랑스 칸에서 상도 받았다. 나는 부록 하나 안 끼워주는 1만원 넘는 이 잡지가 절판될까봐 읽지도 않을 잡지를 미리 사놓는 후배를 몇 명 목격했다. 


■ 직원 채용 때 선배들이 일대일 면접으로 뽑아


반듯하게 자란 소년에겐 일찌감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감각이 있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소년에게 직접 옷을 고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소년은 교복 조끼에 찍힌 유별난 체크가 싫어 조끼를 바꿔 입고, 금색 단추도 검은색으로 바꿔 달고 다녔다. 인간의 자율성을 신봉하는 이 남자가 가장 싫어했던 게 ‘야간자율학습’. 권위와 서열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다. “자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직원은 저랑 같이 못 가요. 법인카드 한도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룰’이라 싫어요.” 그는 얼마 전, 식당도 차렸다. “왜요?”라고 물으면 “직원들 밥 먹을 데가 없어서”라는 허망한 대답이 날아온다. 그 식당 ‘일호식(1好食)’의 밥은 모두 현미에 유정란 계란이며 재료들도 친환경적인 걸 쓴다고 하니 남는 장사는 아닐 거다. 


고백하면, 때때로 나는 애플이 그냥 사과였을 때, 블랙베리가 그저 딸기였을 때가 그립다. 디지털은 공허하고, 아날로그가 좋다는 구태의연한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레코드 가게에 들러 CD를 사지 않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지 않던 순간부터 내 삶이 좀 시시해졌단 생각을 끝내 지울 수 없다. 골목과 사람들, 오늘의 날씨가 놓여 있는 풍경들이 삭제된 ‘광 클릭’의 세계에는 이야기가 존재하지도, 작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Soundhound’ 같은 앱으로 즉각 찾아내 듣는 게 정보를 습득하는 지금의 디지털 문법이다. 하지만 음악을 튼 카페 주인에게 물어 대화를 시도하면 ‘정보’가 아닌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사람들에게 매혹당하곤 했다. 디지털의 최전방에 서 있던 조수용은 0과 1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날로그라는 대지 위에 선 유랑민처럼 여기저기 깃발을 꽂고 방랑 중이다. 마우스를 광속으로 클릭했던 손이 연필을 손에 쥐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모양새다. 


- 직원 40명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고, 직원은 선배 직원들이 일대일 면접으로 뽑는다고 들었어요.


“전 포트폴리오를 믿지 않거든요. 사람이 믿을 만하고 괜찮으면 일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사람을 뽑지 않는 건, 그렇게 채용했던 선임 직원들이 저보다 더 꼼꼼히 보기 때문이에요. 재밌는 건 가장 최근에 입사한 친구가 질문도 제일 예리하게 하고, 잘 본다는 거죠. 주방에서 일하는 셰프가 디자이너 뽑는 면접도 봐요. 다른 분야 사람에게 자기 일을 제대로 설명해내는 게 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면접을 하면 3~4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입사하면 사법시험 패스한 느낌이 들죠.” 


- ‘JOH’는 주로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 ‘무지’란 회사를 좋아해요. 무지는 브랜드가 없다는 뜻의 브랜드잖아요. 극강의 실용주의를 지향하고, 디자이너들에게 과감하게 투자해요. 사실 심플하고 미니멀한 게 좋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나중에 ‘무지’가 집도 팔아요. 땅을 사서 찾아가면 무지가 집을 지어주는 거죠. 그 집이 기가 막혀요. ‘무지 하우스’ ‘무지 플라워’ 그렇게 콘셉트를 갖고 식당도, 카페도 하죠. 상업이라는 게 경계가 없다는 걸 느꼈죠.” 


-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네이버 사옥 건축을 진두지휘했어요. 아름다운 외관도 그렇지만 그린팩토리의 계단에는 칼로리 표가 그려져 있어요. ‘노동’을 ‘운동’의 맥락으로 바꾼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다른 분야의 경계를 넘는 일에 거부감이 많죠. 그래서 말이 늘 조심스러워요. 제 생각에 건축이란 말은 공급자 입장에서 만든 말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그게 건축인지, 인테리어인지, 도시계획인지에 대한 구별이 없어요. 가구를 잘 배치한 걸 건축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실 전 어떤 걸 기준으로 건축적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건축과를 나와야 건축가냐, 라이선스가 있어야 건축가냐, 기준이 불분명해요. 네이버 사옥을 지을 때도 제가 건축 전공을 안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안해했어요. 그땐 제 역할이 건축이 아니라, 건축 설계해주는 많은 분들을 한쪽 방향으로 모아가는 역할이었던 거죠. 제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고요. 전 크리에이티브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봐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얻어지는 거죠. 그린팩토리의 주차장을 일례로 들면, 우리가 몇 층에 차를 세웠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층마다 소리가 다르면, 아! 새소리 나는 층에 세웠지, 하는 식으로 기억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새 그림’이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손쉽게 해결되죠. 전 미술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도 쇼핑하는 느낌으로 보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내 방에 걸어놔야 할 대상으로 그림을 보면 복잡하고 거창한 이론보다 더 정확하다는 거죠.”


- 요즘처럼 ‘네이버’가 신문에 자주 등장한 때가 없었어요. 인터넷 생태계의 파괴자, 검색시장을 왜곡시키고 광고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으로 말이죠.


진짜 이유는 네이버가 돈을 너무 많이 벌었기 때문이에요. 그걸 얘기 못하니까 딴 이유를 드는 거죠. 사실 시야를 좀 더 넓히면 다른 게 보여요. 과연 네이버를 잡으면 누가 이익을 볼 것이냐의 문제예요. 사람들은 언론사가 이익을 보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제 생각에는 구글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 거의 모든 포털을 구글이 잠식했어요. 서버가 미국에 있는 구글은 제도에 의해 통제가 되지 않는 서비스예요. 네이버에는 음란성 키워드를 쳐서 나오면 큰일이 나잖아요. 구글은 그렇지 않죠. 전 검색에 대해서도 밤새 토론할 수 있어요. 네이버가 만들어진 즈음에는 뭔가 검색해서 찾을 대상이 없었어요. 개인 홈페이지나 일기, 우체국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이런 것밖에 없었던 거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문서가 없으면 검색도 없단 얘기예요. 그래서 전 세계 비영어권 나라는 아직도 검색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일본만 해도 일본어로 된 문서가 많지 않아서 좋은 정보를 얻으려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야 하거든요. 한국은 그걸 네이버가 한 거예요. 백과사전도 넣고, 뉴스나 지식인을 통해 정보를 짜내고 없는 문서를 문서화시켜준 거죠. 비영어권 국가들은 검색을 해도 문서가 거의 안 나오니까 구글이 한 일이 재빨리 번역기를 개발한 거였어요. 근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원래 문서가 있었는데 왜 네이버에서만 검색되게 하느냐고 비판해요. 유튜브는 야후에서 검색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하려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거고요. 그건 시장의 룰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네이버를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처럼 생각해요. 워낙 인터넷을 많이 하는 나라다보니 드는 착시현상이죠.” 


■ 디지털의 최전방에서 유랑민처럼 새로운 깃발 꽂아


- 디지털 피로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 빨리 변해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세였다가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를 하지 않으면 쿨하지 않은 게 되는 세상이고요. 이럴 때일수록 전 본질이 무엇일까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제가 볼 때, 디지털의 순기능은 정보 취득의 시간을 줄여주고,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장점을 확장해서 사업을 벌이기엔 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전 깨끗이 포기했어요. 네이버 출신이지만 제가 만드는 잡지는 아이패드 서비스도 하지 않고요. 인스타그램만 놓고 보면, 저는 아직 그게 외줄타기라는 생각을 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추억을 나누세요’라고 하면 가치관이 들어와요. 멋진 순간을 이곳에서 사랑하는 친구와 나눠야겠다, 생각하면 말이 되죠.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요? 광고를 붙일 거예요. 누가 광고를 하죠? 게임회사예요. 전 아직 이 시장은 가치와 자본이 맹렬히 싸우는 중이라고 봐요. 제가 광고가 없는 ‘매거진B’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들이 광고 없인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전 지구 평화니 이런 거창한 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기업을 하는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얼굴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러려면 지구도 오래 가야겠고, 전쟁도 안 났으면 좋겠는다는 거죠. 사실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매거진B’에 나오는 브랜드들은 거의 그런 패턴을 갖고 있어요. 흔히 생각하기에 사업적으로 가치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면 가난하게 살 것 같은데, 그런 기업들이 오히려 돈을 훨씬 잘 벌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수용 JOH(제이오에이치) 대표 (출처 :경향DB)


- 매거진B는 브랜드 하나를 선택해서 만드는 잡지예요. 잡지의 제품 사진은 어떻게 촬영되나요. ‘펭귄북스’ 편에선 책들을 전부 비닐 커버링한 애서가의 서재도 등장하더군요. 


“주로 그 브랜드 마니아들을 접촉해서 촬영협조를 받아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물론 해당 회사가 취재 요청을 거부한 경우도 있어요. ‘레고’ 같은 곳이 거절했죠. 취재를 하면 자신들이 검수하겠다고 하는 곳도 있어요. 근데 우린 협조를 안 해주면 그냥 우리 방식대로 해요. 전직 레고 디자이너 찾고, 인터뷰하고. 물론 레고가 협조했으면 더 정확한 현재의 모습이 나갔겠죠.” 


- B는 브랜드의 B인가요.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밸런스를 뜻하기도 해요. 전 가격과 실용성과 아름다움과 철학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느낌이 B급이에요. 누구나 선망하고 좋아하는 A급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이 좋아하는 B급. 가령 사람들이 좋아하는 루이비통은 돈이 있는 사람은 사고 없는 사람은 못 산다는 공감대가 있잖아요? 근데 ‘프라이탁’ 하면 어쩐지 특별한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사실 잡지를 좋아해서 엄청 사들였는데 요즘은 잘 안 보게 돼요. 이젠 기사 하나가 나가도 의도가 있고, 팩트 하나를 두고 완전히 다른 기사가 나갈 수도 있단 걸 아니까요. 광고성 키워드처럼 미디어에서 어느 브랜드가 잘되기를 의도하는 것처럼 보이면 필시 광고구나 싶어요.” 


- 하지만 어떤 잡지를 읽는다는 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삶의 태도를 보는 거잖아요. 


“그걸 사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규정하기도 하죠. 사람들이 영어로 된 ‘모노클’ 같은 잡지를 정독할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보통 잡지를 보면 얘는 경제야, 얘는 패션이야, 이런데 모노클은 그 모든 걸 담거든요. 멋있는 사람이라면 정치나 시리아의 난민에 대한 관심도 있으면서 어느 식당이 맛있는 곳인지도 알아야 한다란 가이드죠. 인간이 가진 지적 허영심을 잘 건드렸어요. 소비란 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너머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버킨백을 메고 있는 이효리와 프라이탁을 메고 있는 이효리는 어떤 사람에겐 별 의미 없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니까요.” 


- 서울 논현동 ‘일호식’ 이후에 한남동 골목에 식당 하나를 더 냈어요. 엄청난 땅값을 자랑하는 곳이죠. 


“바로 그래서 제가 부자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겼죠. 사실은 아닌데! 하하. 게다가 그곳은 주차도 어려워서 임대료만큼이나 발렛 주차비도 비싸요. 강남의 잘되는 식당이 왜 망하는 줄 아세요? 그런 식당 중엔 발렛 컨트롤비가 임대료보다 큰 곳이 많아요. 한국식 뉴 임대료죠. 사실 음식이라는 건 문화잖아요. 제 경우에는 인사동에서 가야금 소리 들으면서 현미밥 먹는 게 크게 재밌진 않아요. 저는 건강하고 의식이 뚜렷할수록 스타일리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러쉬’같이 컬러풀한 친환경 브랜드를 좋아해요. 친환경은 백색, 베이지색에 코튼이란 편견을 과감히 깼거든요. 제겐 남들이 잘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끝까지 해보려는 승부사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다들 망할 거라고 장담한 ‘일호식’이나 ‘매거진B’도 만든 거죠. 전 ‘일호식’을 가지고 뉴욕에 갈 거예요. 그게 정확한 글로벌 코드라고 짚었거든요. 건강하게 먹는다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인데 서양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조리법도 무척 제한적이에요. 서양 쪽은 주로 샐러드만 먹잖아요. 근데 우리에겐 발효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조리법이 있어요. 맛있고 건강에도 좋죠.”


- 두 개의 식당 모두가 찾기 힘든 골목 안에 있어요. 하지만 세상의 많은 길과 식당이 ‘대형 몰’에 잡아먹히고 있어요. 조선시대부터 존재하던 종로 피맛골은 통째로 블록이 씌워져 ‘종로타워’라는 대형건물에 삽입됐죠. 


“전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의 미래가 밝다고 보지 않아요. 그런 몰이나 프랜차이즈는 산업화되어가면서 흥하는 시기가 있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안정화되지 않은 나라에선 프랜차이즈가 서비스나 맛, 안전에 대한 기준이 되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죠. 지금은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케이크를 선물로 받으면 어쩐지 성의 없어 보이잖아요. 차라리 동네의 개성 있는 빵집의 빵들이 더 좋아 보이죠. 이전에는 신뢰의 기준이 크고 센 놈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있어 보이면 작아도 그 사람을 더 믿게 돼요. 믿음의 관점이 바뀌고, 브랜드가 점점 작아진 거죠.” 


- 자본의 총체라 할 수 있는 ‘호텔’을 짓고 있어요. 외관 공사뿐 아니라 객실, 레스토랑, 하다 못해 화장실 안에 놓일 꽃병의 위치까지 조율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라고 들었어요. 


운이 좋았죠. 이 일을 하면서 국내의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이 적지 않은 브랜드 로열티를 해외에 지불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들은 이 브랜드라 역시 서비스가 좋아,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서비스나 가격정책이 그 브랜드 본사와 상관없는 일도 많구요. 실제 계약이 끝나면 호텔 간판이 바꿔다는 경우도 허다해요. 이건 역설적으로 제대로만 하면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전 그렇게 판단했고, 남에게 로얄티 주느니 직접 이름을 짓자고 판단했죠. 지금 대림 쪽에서 짓는 비즈니스 호텔은 글래드호텔, 영종도에 짓는 건 네스트 호텔이에요. 영종도는 갈대가 많아서 갈대를 엮은 개념으로 지은 거죠. 


■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 믿는 희귀한 확신범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라는 말을 한 건 워런 버핏이다. 내가 알기로 기적과 관련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린 사람은 생텍쥐페리다. 그는 <어린 왕자>에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해주는 것. 그게 바로 삶의 가장 큰 기적’이란 말을 했다. 성공하는 게 기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성공이 어려운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기적적인 성공’이란 말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제대로 된 기적이라면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을 동반한다고 믿는다. 


뷰티 브랜드 ‘에이솝’은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 대신 창립한 1987년부터 2012년까지 매해 출판된 도서 가운데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해 신문 형식의 자료로 만들어 고객에게 무료 배포했다. 그중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9년작 <남아 있는 나날>,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작 <순수 박물관> 등이 있다. 싱가포르에선 에이솝의 추천 도서를 읽는 북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캠핑용품 업체 ‘스노우피크’의 호즈키랜턴은 바람이 불면 불빛이 흔들리는 기능이 하나 더 탑재되어 있다. 호즈키랜턴을 들고 캠핑을 떠났던 한 친구는 이 랜턴이 바람에 흔들리던 캠프파이어와 작은 모닥불을 연상시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얘길 했다. 


자본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착취하는 얘기들이 널리고 널린 이 시절에도 아름다운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10년 후, 100번째 매거진B에 ‘JOH’라는 브랜드가 실리면 좋겠어요. 우리 스스로 옳고 아름답다고 믿는 기업 중 하나가 되는 거죠. 전 자본주의의 암부가 조금도 없는 기업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꼭 증명해내고 싶어요.” 그는 말을 하다가 자주 웃었다. 그때마다 비쭉 솟아난 덧니 아래로 축구를 하다 무릎 꽤 깨져본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극렬한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을 믿는 이토록 희귀한 확신범의 나이가 마흔이나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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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자신의 디자이너 브랜드 데뷔 후 처음 선보인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의 2014 리조트 컬렉션은 역시 장식성이 넘치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돋보인다. 


신비롭고 오묘한 전원 풍경에 꽃무늬 여기에 도식화된 도형 프린트를 통해 그녀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한때 유행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컬렉션이 갖는 섬세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시피 장식미를 배려한 결과는 꽃이 흐드러진 열대의 낭만이나 빛이 넘치고 색감이 강조된 도심의 독특한 멋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깔끔하게 재단된 드레스를 비롯 스커트와 재킷이 이번 컬렉션의 젊음을 유지하면서 마리 카트란주 디자인의 주제를 담아낸다. 


브랜드의 정체성에 열광하는 패셔니스타들에게는 첫 리조트 컬렉션에서도 그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듯.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디자이너로서 그의 관심은 프린트를 핵심 디자인 요소로 선택해 패션과 건축을 넘어 예술로까지 넘나든다. 


패션계에 입문하기 전 미국에서 건축 디자인과 영국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마리 카트란주는 옷감과 프린트에 관심을 두었다가 세인트마틴에서 수학하며 의상 디자인 공부를 본격화했다. 


(이미지 = Courtesy of MARY KATRANTZOU) 


<한국형 SPA 패션편의점 '미즈나인'(www.ms9.co.kr) 과장 = 김희진 패션 칼럼니스트>



김희진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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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 '샤넬'과 '펜디'의 디자이너로서 살아있는 패션계 거장 칼 라거펠트가 목걸이 시계의 작은 캐릭터 인형으로 변신했다.


토탈 디자인 브랜드 '토키도키(Tokidoki)'가 선보인 라거펠트 목걸이는 폴리카보네이트(창문, 렌즈 등에 쓰이는 투명하고 단단한 합성수지) 소재의 작은 상반신 조각상으로 독특한 멋이 눈길.


또 조각상이 쓴 안경은 위에 두 개의 단추를 조작해 디지털 스크린으로 시간을 표시해주며 127센티미터의 강철체인이 달려 있다.



(출처 :경향DB)



칼 라거펠트에 대한 경의로서 그의 캐릭터를 디자인 작품으로 선보여 온 토키도키는 '라거펠트 목걸이'를 오는 8월부터 199유로(한화 약 30만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토키도키(ときどき, 時時)는 '때때로, 가끔'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미술품과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다채로운 색상으로 디자인한 액세서리, 작은 인형, 옷장식품을 비롯 옷과 신발류로 알려진 이탈리아 브랜드. 2005년 이탈리아의 미술가 시모네 레그노가 공동 창업자로 본사는 미국 LA에 있다.


(이미지 = Courtesy of Tokidoki)


<한국형 SPA 패션편의점 '미즈나인'(www.ms9.co.kr) 주임 = 양현선 패션 칼럼니스트>


양현선 미즈나인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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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은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비행기. 그럼 비행기를 타고 직선으로 가면 어디든 제일 빨리 갈까. 출발과 도착 지점의 도로망, 공항의 접근성과 주변의 교통연계 상황 등을 종합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서울에서 인천을 가는데 비행기를 타면 가장 빠를까. 우선 복잡한 서울 시내를 지나 김포공항까지 가서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려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인천시내로 들어가야 하니 차량을 이용한 것보다도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린다. 그래서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사이에는 항공노선이 없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나 직선이 빠르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하나.


간단하다. 경인운하를 가보면 된다. 트럭으로 30분 걸리는 거리(18㎞)를 배로 가면 2~3시간 걸리니 화물터미널은 늘 파리를 날린다. 주변엔 볼거리도 없어 억지로 띄우는 유람선(여객선이라 우기지 않는 게 다행)은 텅텅 비고, 수질오염 문제도 제기된다. 경제성은 아예 없고 환경에도 도움 안되는, 한마디로 쓸모없는 직선 물길, 왜 팠는지 모르겠다.

 

불량식품이 화려하게 보이듯 이름만 멋진 아라뱃길, 전기료도 못 건지는 형편에 한심한 분수는 무지개를 뽐내더라. 에두르는 곡선보다 쓸데없는 직선을 만들다니 참 우매하고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아니라면 그 이유 더 불순하고.


 

이일훈 |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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