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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3.09.27 (16) 디자이너 조수용
  2. 2013.09.06 (15) 소설가 김영하
  3. 2013.08.23 (14) 개그맨 남희석
  4. 2013.08.09 (13) 철학자 강신주
  5. 2013.07.26 (12) 사진가 윤광준
  6. 2013.07.12 (11) 디자이너 정구호
  7. 2013.06.08 (10) 영화감독 장항준
  8. 2013.06.07 (9) 여행가 유성용
  9. 2013.05.24 (8) 신부 홍성남
  10. 2013.05.10 (7) 정신과 의사 서천석
  11. 2013.04.26 (6) 작가 박상연
  12. 2013.04.12 (5) 광고인 박웅현
  13. 2013.03.29 (4) 변호사 금태섭
  14. 2013.03.01 (2) 건축가 문훈
  15. 2013.02.15 (1) 영화배우 류승룡

ㆍB급 느낌이 가장 좋아… 남들이 다 망할 거라는 일에 승부 걸죠



사진 _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들어…

“모든 길과 식당이 대형몰에 잡아먹히는 세상,

‘자본주의 암부’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어”


패션에 예민한 여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구두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슈어홀릭’은 아니지만 내게도 구두와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구두 브랜드 ‘토즈’는 땅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쿄의 오모테산도힐즈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진행 도중 건물의 디자인을 전면 변경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주변 상인들이나 민원, 고비용이 아니라 느릅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토즈’는 나무를 베거나 훼손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느릅나무의 나뭇가지를 이용한 디자인으로 설계를 변경한다. 내가 본 사진은 바로 ‘토즈’의 도쿄 매장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늙은 느릅나무였다. 그날, 나는 신발장 안에 있던 낡아빠진 내 토즈 플랫슈즈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신고 내가 걸었던 수많은 길들 사이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에 둘러싸여 산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브랜드는 무엇일까. 디자이너 조수용은 인터넷을 켜면 눈앞에 등장하는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을 만들었다. 건축가가 아닌 그는 네이버 사옥인 그린팩토리 건축을 진두지휘했다. 자선사업가일 리 없는 이 남자는 한글 나눔 폰트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네이버 최연소 부사장을 그만두고, 3년 전 독립한 그는 JOH라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만들었다. 회사는 인천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근처에 호텔을 짓고 있다. 가방 마니아인 그는 얼마 전 재봉사까지 고용해 가방을 만들어 판다. 이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광고 없는 잡지로 프랑스 칸에서 상도 받았다. 나는 부록 하나 안 끼워주는 1만원 넘는 이 잡지가 절판될까봐 읽지도 않을 잡지를 미리 사놓는 후배를 몇 명 목격했다. 


■ 직원 채용 때 선배들이 일대일 면접으로 뽑아


반듯하게 자란 소년에겐 일찌감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감각이 있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소년에게 직접 옷을 고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소년은 교복 조끼에 찍힌 유별난 체크가 싫어 조끼를 바꿔 입고, 금색 단추도 검은색으로 바꿔 달고 다녔다. 인간의 자율성을 신봉하는 이 남자가 가장 싫어했던 게 ‘야간자율학습’. 권위와 서열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다. “자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직원은 저랑 같이 못 가요. 법인카드 한도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룰’이라 싫어요.” 그는 얼마 전, 식당도 차렸다. “왜요?”라고 물으면 “직원들 밥 먹을 데가 없어서”라는 허망한 대답이 날아온다. 그 식당 ‘일호식(1好食)’의 밥은 모두 현미에 유정란 계란이며 재료들도 친환경적인 걸 쓴다고 하니 남는 장사는 아닐 거다. 


고백하면, 때때로 나는 애플이 그냥 사과였을 때, 블랙베리가 그저 딸기였을 때가 그립다. 디지털은 공허하고, 아날로그가 좋다는 구태의연한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레코드 가게에 들러 CD를 사지 않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지 않던 순간부터 내 삶이 좀 시시해졌단 생각을 끝내 지울 수 없다. 골목과 사람들, 오늘의 날씨가 놓여 있는 풍경들이 삭제된 ‘광 클릭’의 세계에는 이야기가 존재하지도, 작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Soundhound’ 같은 앱으로 즉각 찾아내 듣는 게 정보를 습득하는 지금의 디지털 문법이다. 하지만 음악을 튼 카페 주인에게 물어 대화를 시도하면 ‘정보’가 아닌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사람들에게 매혹당하곤 했다. 디지털의 최전방에 서 있던 조수용은 0과 1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날로그라는 대지 위에 선 유랑민처럼 여기저기 깃발을 꽂고 방랑 중이다. 마우스를 광속으로 클릭했던 손이 연필을 손에 쥐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모양새다. 


- 직원 40명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고, 직원은 선배 직원들이 일대일 면접으로 뽑는다고 들었어요.


“전 포트폴리오를 믿지 않거든요. 사람이 믿을 만하고 괜찮으면 일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사람을 뽑지 않는 건, 그렇게 채용했던 선임 직원들이 저보다 더 꼼꼼히 보기 때문이에요. 재밌는 건 가장 최근에 입사한 친구가 질문도 제일 예리하게 하고, 잘 본다는 거죠. 주방에서 일하는 셰프가 디자이너 뽑는 면접도 봐요. 다른 분야 사람에게 자기 일을 제대로 설명해내는 게 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면접을 하면 3~4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입사하면 사법시험 패스한 느낌이 들죠.” 


- ‘JOH’는 주로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 ‘무지’란 회사를 좋아해요. 무지는 브랜드가 없다는 뜻의 브랜드잖아요. 극강의 실용주의를 지향하고, 디자이너들에게 과감하게 투자해요. 사실 심플하고 미니멀한 게 좋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나중에 ‘무지’가 집도 팔아요. 땅을 사서 찾아가면 무지가 집을 지어주는 거죠. 그 집이 기가 막혀요. ‘무지 하우스’ ‘무지 플라워’ 그렇게 콘셉트를 갖고 식당도, 카페도 하죠. 상업이라는 게 경계가 없다는 걸 느꼈죠.” 


-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네이버 사옥 건축을 진두지휘했어요. 아름다운 외관도 그렇지만 그린팩토리의 계단에는 칼로리 표가 그려져 있어요. ‘노동’을 ‘운동’의 맥락으로 바꾼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다른 분야의 경계를 넘는 일에 거부감이 많죠. 그래서 말이 늘 조심스러워요. 제 생각에 건축이란 말은 공급자 입장에서 만든 말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그게 건축인지, 인테리어인지, 도시계획인지에 대한 구별이 없어요. 가구를 잘 배치한 걸 건축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실 전 어떤 걸 기준으로 건축적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건축과를 나와야 건축가냐, 라이선스가 있어야 건축가냐, 기준이 불분명해요. 네이버 사옥을 지을 때도 제가 건축 전공을 안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불안해했어요. 그땐 제 역할이 건축이 아니라, 건축 설계해주는 많은 분들을 한쪽 방향으로 모아가는 역할이었던 거죠. 제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고요. 전 크리에이티브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봐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얻어지는 거죠. 그린팩토리의 주차장을 일례로 들면, 우리가 몇 층에 차를 세웠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층마다 소리가 다르면, 아! 새소리 나는 층에 세웠지, 하는 식으로 기억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새 그림’이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손쉽게 해결되죠. 전 미술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도 쇼핑하는 느낌으로 보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내 방에 걸어놔야 할 대상으로 그림을 보면 복잡하고 거창한 이론보다 더 정확하다는 거죠.”


- 요즘처럼 ‘네이버’가 신문에 자주 등장한 때가 없었어요. 인터넷 생태계의 파괴자, 검색시장을 왜곡시키고 광고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으로 말이죠.


진짜 이유는 네이버가 돈을 너무 많이 벌었기 때문이에요. 그걸 얘기 못하니까 딴 이유를 드는 거죠. 사실 시야를 좀 더 넓히면 다른 게 보여요. 과연 네이버를 잡으면 누가 이익을 볼 것이냐의 문제예요. 사람들은 언론사가 이익을 보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제 생각에는 구글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 거의 모든 포털을 구글이 잠식했어요. 서버가 미국에 있는 구글은 제도에 의해 통제가 되지 않는 서비스예요. 네이버에는 음란성 키워드를 쳐서 나오면 큰일이 나잖아요. 구글은 그렇지 않죠. 전 검색에 대해서도 밤새 토론할 수 있어요. 네이버가 만들어진 즈음에는 뭔가 검색해서 찾을 대상이 없었어요. 개인 홈페이지나 일기, 우체국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이런 것밖에 없었던 거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문서가 없으면 검색도 없단 얘기예요. 그래서 전 세계 비영어권 나라는 아직도 검색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일본만 해도 일본어로 된 문서가 많지 않아서 좋은 정보를 얻으려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야 하거든요. 한국은 그걸 네이버가 한 거예요. 백과사전도 넣고, 뉴스나 지식인을 통해 정보를 짜내고 없는 문서를 문서화시켜준 거죠. 비영어권 국가들은 검색을 해도 문서가 거의 안 나오니까 구글이 한 일이 재빨리 번역기를 개발한 거였어요. 근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원래 문서가 있었는데 왜 네이버에서만 검색되게 하느냐고 비판해요. 유튜브는 야후에서 검색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하려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거고요. 그건 시장의 룰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네이버를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처럼 생각해요. 워낙 인터넷을 많이 하는 나라다보니 드는 착시현상이죠.” 


■ 디지털의 최전방에서 유랑민처럼 새로운 깃발 꽂아


- 디지털 피로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 빨리 변해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세였다가 인스타그램이나 텀블러를 하지 않으면 쿨하지 않은 게 되는 세상이고요. 이럴 때일수록 전 본질이 무엇일까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제가 볼 때, 디지털의 순기능은 정보 취득의 시간을 줄여주고,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장점을 확장해서 사업을 벌이기엔 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전 깨끗이 포기했어요. 네이버 출신이지만 제가 만드는 잡지는 아이패드 서비스도 하지 않고요. 인스타그램만 놓고 보면, 저는 아직 그게 외줄타기라는 생각을 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추억을 나누세요’라고 하면 가치관이 들어와요. 멋진 순간을 이곳에서 사랑하는 친구와 나눠야겠다, 생각하면 말이 되죠.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요? 광고를 붙일 거예요. 누가 광고를 하죠? 게임회사예요. 전 아직 이 시장은 가치와 자본이 맹렬히 싸우는 중이라고 봐요. 제가 광고가 없는 ‘매거진B’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들이 광고 없인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전 지구 평화니 이런 거창한 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기업을 하는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얼굴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러려면 지구도 오래 가야겠고, 전쟁도 안 났으면 좋겠는다는 거죠. 사실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매거진B’에 나오는 브랜드들은 거의 그런 패턴을 갖고 있어요. 흔히 생각하기에 사업적으로 가치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면 가난하게 살 것 같은데, 그런 기업들이 오히려 돈을 훨씬 잘 벌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수용 JOH(제이오에이치) 대표 (출처 :경향DB)


- 매거진B는 브랜드 하나를 선택해서 만드는 잡지예요. 잡지의 제품 사진은 어떻게 촬영되나요. ‘펭귄북스’ 편에선 책들을 전부 비닐 커버링한 애서가의 서재도 등장하더군요. 


“주로 그 브랜드 마니아들을 접촉해서 촬영협조를 받아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물론 해당 회사가 취재 요청을 거부한 경우도 있어요. ‘레고’ 같은 곳이 거절했죠. 취재를 하면 자신들이 검수하겠다고 하는 곳도 있어요. 근데 우린 협조를 안 해주면 그냥 우리 방식대로 해요. 전직 레고 디자이너 찾고, 인터뷰하고. 물론 레고가 협조했으면 더 정확한 현재의 모습이 나갔겠죠.” 


- B는 브랜드의 B인가요.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밸런스를 뜻하기도 해요. 전 가격과 실용성과 아름다움과 철학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느낌이 B급이에요. 누구나 선망하고 좋아하는 A급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아주 많이 좋아하는 B급. 가령 사람들이 좋아하는 루이비통은 돈이 있는 사람은 사고 없는 사람은 못 산다는 공감대가 있잖아요? 근데 ‘프라이탁’ 하면 어쩐지 특별한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사실 잡지를 좋아해서 엄청 사들였는데 요즘은 잘 안 보게 돼요. 이젠 기사 하나가 나가도 의도가 있고, 팩트 하나를 두고 완전히 다른 기사가 나갈 수도 있단 걸 아니까요. 광고성 키워드처럼 미디어에서 어느 브랜드가 잘되기를 의도하는 것처럼 보이면 필시 광고구나 싶어요.” 


- 하지만 어떤 잡지를 읽는다는 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삶의 태도를 보는 거잖아요. 


“그걸 사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규정하기도 하죠. 사람들이 영어로 된 ‘모노클’ 같은 잡지를 정독할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보통 잡지를 보면 얘는 경제야, 얘는 패션이야, 이런데 모노클은 그 모든 걸 담거든요. 멋있는 사람이라면 정치나 시리아의 난민에 대한 관심도 있으면서 어느 식당이 맛있는 곳인지도 알아야 한다란 가이드죠. 인간이 가진 지적 허영심을 잘 건드렸어요. 소비란 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너머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버킨백을 메고 있는 이효리와 프라이탁을 메고 있는 이효리는 어떤 사람에겐 별 의미 없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니까요.” 


- 서울 논현동 ‘일호식’ 이후에 한남동 골목에 식당 하나를 더 냈어요. 엄청난 땅값을 자랑하는 곳이죠. 


“바로 그래서 제가 부자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겼죠. 사실은 아닌데! 하하. 게다가 그곳은 주차도 어려워서 임대료만큼이나 발렛 주차비도 비싸요. 강남의 잘되는 식당이 왜 망하는 줄 아세요? 그런 식당 중엔 발렛 컨트롤비가 임대료보다 큰 곳이 많아요. 한국식 뉴 임대료죠. 사실 음식이라는 건 문화잖아요. 제 경우에는 인사동에서 가야금 소리 들으면서 현미밥 먹는 게 크게 재밌진 않아요. 저는 건강하고 의식이 뚜렷할수록 스타일리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러쉬’같이 컬러풀한 친환경 브랜드를 좋아해요. 친환경은 백색, 베이지색에 코튼이란 편견을 과감히 깼거든요. 제겐 남들이 잘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끝까지 해보려는 승부사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다들 망할 거라고 장담한 ‘일호식’이나 ‘매거진B’도 만든 거죠. 전 ‘일호식’을 가지고 뉴욕에 갈 거예요. 그게 정확한 글로벌 코드라고 짚었거든요. 건강하게 먹는다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인데 서양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조리법도 무척 제한적이에요. 서양 쪽은 주로 샐러드만 먹잖아요. 근데 우리에겐 발효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조리법이 있어요. 맛있고 건강에도 좋죠.”


- 두 개의 식당 모두가 찾기 힘든 골목 안에 있어요. 하지만 세상의 많은 길과 식당이 ‘대형 몰’에 잡아먹히고 있어요. 조선시대부터 존재하던 종로 피맛골은 통째로 블록이 씌워져 ‘종로타워’라는 대형건물에 삽입됐죠. 


“전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의 미래가 밝다고 보지 않아요. 그런 몰이나 프랜차이즈는 산업화되어가면서 흥하는 시기가 있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안정화되지 않은 나라에선 프랜차이즈가 서비스나 맛, 안전에 대한 기준이 되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죠. 지금은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케이크를 선물로 받으면 어쩐지 성의 없어 보이잖아요. 차라리 동네의 개성 있는 빵집의 빵들이 더 좋아 보이죠. 이전에는 신뢰의 기준이 크고 센 놈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있어 보이면 작아도 그 사람을 더 믿게 돼요. 믿음의 관점이 바뀌고, 브랜드가 점점 작아진 거죠.” 


- 자본의 총체라 할 수 있는 ‘호텔’을 짓고 있어요. 외관 공사뿐 아니라 객실, 레스토랑, 하다 못해 화장실 안에 놓일 꽃병의 위치까지 조율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라고 들었어요. 


운이 좋았죠. 이 일을 하면서 국내의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이 적지 않은 브랜드 로열티를 해외에 지불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들은 이 브랜드라 역시 서비스가 좋아,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서비스나 가격정책이 그 브랜드 본사와 상관없는 일도 많구요. 실제 계약이 끝나면 호텔 간판이 바꿔다는 경우도 허다해요. 이건 역설적으로 제대로만 하면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전 그렇게 판단했고, 남에게 로얄티 주느니 직접 이름을 짓자고 판단했죠. 지금 대림 쪽에서 짓는 비즈니스 호텔은 글래드호텔, 영종도에 짓는 건 네스트 호텔이에요. 영종도는 갈대가 많아서 갈대를 엮은 개념으로 지은 거죠. 


■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 믿는 희귀한 확신범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라는 말을 한 건 워런 버핏이다. 내가 알기로 기적과 관련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린 사람은 생텍쥐페리다. 그는 <어린 왕자>에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해주는 것. 그게 바로 삶의 가장 큰 기적’이란 말을 했다. 성공하는 게 기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성공이 어려운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기적적인 성공’이란 말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제대로 된 기적이라면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을 동반한다고 믿는다. 


뷰티 브랜드 ‘에이솝’은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 대신 창립한 1987년부터 2012년까지 매해 출판된 도서 가운데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해 신문 형식의 자료로 만들어 고객에게 무료 배포했다. 그중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9년작 <남아 있는 나날>,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작 <순수 박물관> 등이 있다. 싱가포르에선 에이솝의 추천 도서를 읽는 북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캠핑용품 업체 ‘스노우피크’의 호즈키랜턴은 바람이 불면 불빛이 흔들리는 기능이 하나 더 탑재되어 있다. 호즈키랜턴을 들고 캠핑을 떠났던 한 친구는 이 랜턴이 바람에 흔들리던 캠프파이어와 작은 모닥불을 연상시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얘길 했다. 


자본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착취하는 얘기들이 널리고 널린 이 시절에도 아름다운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10년 후, 100번째 매거진B에 ‘JOH’라는 브랜드가 실리면 좋겠어요. 우리 스스로 옳고 아름답다고 믿는 기업 중 하나가 되는 거죠. 전 자본주의의 암부가 조금도 없는 기업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꼭 증명해내고 싶어요.” 그는 말을 하다가 자주 웃었다. 그때마다 비쭉 솟아난 덧니 아래로 축구를 하다 무릎 꽤 깨져본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극렬한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과 기업의 성선설을 믿는 이토록 희귀한 확신범의 나이가 마흔이나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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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이젠 하루키 읽으면 졸려… 번역은 힘들어서 그만두려 해요



사진 _ 위즈덤하우스 제공



▲ “밀당하는 게 피곤해 출판사는 한 곳으로 단일화… 사람 보는 눈은 없어도 글을 보면 정확히 판단해요, 그래서 누가 청탁하면 이메일을 보내라 하죠”


‘나쁜 살인은 나쁘다’라는 말을 쓴 사람은 <아웃사이더>의 작가 콜린 윌슨이다. 그렇다면 좋은 살인도 있는 건가, 라는 질문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내게 매혹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맥박을 단박에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70대 연쇄살인마의 시간은 분명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김경주의 시를 인용해 ‘내 고통에는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는 열 살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는 이 남자의 과거를 떠올렸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동안 김영하의 창세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17년 만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다시 읽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이었다. 신촌의 독수리다방 앞에서 만난 그날,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는 목이 쉬도록 얘길 했다. 당시 이 남자는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조용필의 어떤 노래들을 극찬했으며, 작가들의 작가인 김승옥의 문장을 얘기하다가 ‘번역을 견디는 단단한 문장’에 대해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면 없는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생의 인터뷰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그도, 다짜고짜 전화부터 한 나도, 참 별났다. 


김영하를 두 번째 만난 건 2005년이었는데, 그가 싸이월드에 썼던 글을 모아 <랄랄라 하우스>라는 산문집을 발표한 때였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던 나는 우연히 이 남자의 신간낭독회를 봤는데, 그가 책을 읽다가 따옴표를 표현하기 위해 검지와 중지를 높게 들고 구부릴 때마다 폭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하긴 머리만 감겨주는 ‘머리방’이나 덕수궁이나 창덕궁에 재현배우를 섭외해 보여주자는 ‘조선왕조주식회사’ 같은 아이디어로 번득한 ‘랄랄라’한 산문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그의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멈칫했다. 창문까지 모조리 검게 막은 그곳이 너무나 ‘안 랄랄라’한 동굴 같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탓에 나는 황당한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매끈한 피부의 비결이 뭔가요?” 그때, 예의 낭랑한 목소리로 그가 했던 대답이 “안 씻는 게 비결입니다!”라는 말이었다. 아이 없는 삶에 대한 질문에는 “그럼 아이 안 낳는 사람들의 얘기는 누가 써요?”라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이후 밴쿠버, 시칠리아, 뉴욕을 떠도는 흔적의 행간들은 그의 팟캐스트와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2013년, 8년 만에 부산에서 만난 이 남자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씻지 않는 게 동안의 비결이냐고 묻자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 과거의 기억들이 차례로 호출되었다. 그중 한 가지만은 아주 명료하게 떠올랐다. 인터뷰 말미에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쉬었다는 것. 


■ 정신적 건강 챙겨 지속 가능한 소설가로 살고 싶어


- 몇 년을 밴쿠버, 시칠리아, 뉴욕, 부산을 떠돌며 살았어요. 뉴욕에는 꽤 오래 머물면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썼고요. 


“천천히 살았죠. 전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는 게 아니고 센트럴파크가 뉴욕인 거 같아요. 처음엔 그냥 공원에 갔는데 나중에는 많은 게 필요하더라고요. 비도 오니 우산도 가져가고 읽을 책도 필요하고, 물이나 음식도 필요하고, 나중에는 카트가 필요했어요. 근데 하루는 카트를 끌고 우산도 꽂고 가는데 어떤 놈들이 나를 자꾸 쳐다보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노숙인들이 카트를 끌고 지나가면서 나를 본 거였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자기한테 필요한 걸 다 갖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노숙인이구나. 가로수길의 갑은 슬리퍼 끌고 개 산책시키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뉴욕에선 연극을 많이 봤어요. 전부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 맘대로 상상하기도 했고요. 연극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채우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도시에서 조용한 곳을 좋아해요. 시골은 생각보다 시끄러워요. 새들 지저귀고 맨날 이장님 방송하시고. 한번은 캠핑을 좀 다니다가 산에서 텐트 치고 자는데 새벽 6시쯤에 아이폰이 울리는 거 같아서 누가 이렇게 크게 알람을 켜놨나 했는데 알고 보니 시끄러운 새소리였어요.” 


-작가들은 공간에 유독 예민하죠. <살인자의 기억법>을 쓴 부산은 어떤가요. 


“경상도 남자들의 말은 짧고 시적이에요. 쫌! 됐다! 이런 말, 참 많은 걸 함축하고 있죠. 이번 소설은 좀 남성적이고 짧은데, 그런 영향을 받아요. <퀴즈쇼>를 쓸 때는 문학동네 반품창고에서 글을 썼어요. 아마 세계 문학사상 자기 책이 반품되는 창고에서 글을 쓴 작가는 없을 거예요. 글 쓰고 밥 먹으러 나가다 보면 제 책들이 반품되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직원들은 막 숨기려고 하는데, 제가 됐다고 하고. 하하하. <퀴즈쇼>는 앞에 홍대 얘기가 나오다가 뒤에는 창고로 가거든요. 파주 산속에 있는 창고에서 그걸 쓴 거예요.” 


- 이번 소설은 ‘살인’이 아니라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쯤이겠네요.


“10년 전에 구상하고 그 뒤로 계속 잊고 살고 있다가, 올 초에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작을 쓰기 전에 잠깐 가볍게 쓰고 간다, 스티븐 킹이 <쇼생크 탈출>을 쓰듯이 그렇게요. 서두를 썼을 때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이 인물이 치매 때문에 자꾸 생각이 끊기잖아요. 인물의 호흡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잘 설계된 카오스가 필요한 소설이었죠. 회상과 실제 일, 여러 단상들이 섞여서 굉장히 복잡한 플롯을 이루고 있거든요.” 


- 한 호흡에 쓴 소설이 있나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보름 만에 쓴 거예요. <검은 꽃> 같은 경우도 취재는 오래 걸렸지만 연대기 순으로 갈 수 있는 거라서 편한 면이 있었고.”


- 열 살 때 기억이 사라진 체험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나요.


“최근에 돌아보니까 제 소설에 잊혀진 사람들 얘기가 많더군요. <빛의 제국>도 주인공이 북한에서 남파됐다가 잊혀져버린 인물이고요. 강제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단절되어버린 거죠. 지금 여기서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 필요하질 않아요. 제가 어릴 때 그랬어요. 열 살 때 기억을 잃어버린 이후에 계속 전학을 다니고, 서울에 오고,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되고, 과거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검은 꽃>도 멕시코로 떠나서 완전히 잊혀져버린 사람들이에요. 한국 이민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들이죠.” 


-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시나리오도 썼어요. 손예진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죠. 


“처음에 쓸 생각이 없었는데, 초고를 읽고 나서 뭔가 오는 게 있었어요. 손예진이 자기한테 잘해주는 정우성을 보고 너무 고맙다고 옛날 남자 이름을 불러요. 치매는 단기기억을 잊는 병이니까 상대편에선 그걸 감당해야 하는 사랑인 거예요. 그게 2004년의 일이니까 10년 만에 소설을 쓰게 된 거죠. 언제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혹해요.” 


- 지금까지 낸 작품을 보면, 장편은 과거의 이야기를, 단편은 당대적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이건 균형의 문제인가요.


“저는 단편을 쓸 때와 장편을 쓸 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요. 단편을 쓸 때는 이런저런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써요. 장편을 위한 연습이랄까. 장편은 인생이 걸린 문제잖아요. 2~3년 길게는 5년씩 걸리잖아요. 그 기간 동안 그 인물들하고 살아야 되는데, 제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장편을 하나 끝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전 일기를 쓰기 때문에 알 수 있거든요.” 


- 소설을 쓰면 착해진다는 얘기는 작가의 말에도 나와요. 하지만 신인 때, ‘귀걸이 한 소설가’라는 레테르가 아직도 유효해서 김영하 하면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있는 것 같은데….


“신인 땐 예술적 자아가 어리고 미숙했죠. 그래서 귀걸이 하고 맨살에 조끼 입고 클럽 다녔나봐요. 지금은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게 됐어요. 오히려 예술적 자아들은 소설로 풀면 되는 거 같아요. 더 과감해지고, 소설 속에서 더 미친놈이 되는 거죠. 작가는 삶을 분별없이 살아선 안돼요. 제 몸을 불사르면서 한두 작품쯤 좋은 작품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래요. 전 지속 가능한 소설가로 살고 싶어요.


김영하 (출처:경향DB)


■ 번역은 끝이 없고 확신이 안 서


- 이번 책은 공교롭게도 하루키의 책과 같은 시기에 나와 선전 중이에요. 이런 속도라면 김영하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처음 초고를 넘긴 다음에 출판사에서도 이거 꼭 70대 노인이어야 되느냔 말이 있었어요. 정말이지 독자는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전 하루키가 이제 졸리더라고요. <1Q84>나 <해변의 카프카>나 절 흥분시키는 게 없어요.” 


-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여행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종종 하루키와 비교되기도 해요. 작가 입장에선 좀 지루한 비교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하루키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니까요! 요즘 고양이 키우는 작가가 한둘이에요? 그나마 뉴욕 가느라 맡긴 고양이도 장모님이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하루키가 <개츠비>를 번역한 게 2006년인가요? 좀 억울한 게 전 2003년부터 번역을 시작했어요. 하루키의 문학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가 번역가로는 정말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어요. 물론 저는 그런 훌륭한 번역가가 아니고요. 힘들어서 이젠 번역을 안 할 거예요. 내 소설은 이쯤 되면 됐다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번역은 끝이 없어요. 확신이 안 서요. 책을 낸 지가 3년이 됐는데 쇄를 거듭할 때마다 고치고 끝이 없더라고요. 사실 2003년부터 이걸 혼자 번역하다가 관뒀는데 뉴욕에 가니까 제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거죠. 이게 소설에 나오는 퀸즈보로 다리고, 플라자호텔이구나, 5번가는 이렇구나. 그때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할 때라서 론칭에 맞춰서 마무리를 지었죠.” 


- 작년 제가 뉴욕에서 느낀 건 지하철에서 종이책보다 킨들로 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였어요.


“미국에서 종이책을 주문하면 사나흘 걸려서 와요. 그래서 킨들로 다운받아 책을 보는 거예요. 하루면 책이 오는 우리가 굳이 전자책 볼 필요가 있나요? 몇 년 전까지도 전자책에 대해서 적극적인 편이었어요. 근데 요새는 다 종이책으로 사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종이신문은 대형 화면이고, 사람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어요. 게다가 다양한 형태의 판형으로 접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시작과 끝이 있잖아요. 이건 매우 중요한 감각이에요. 어떤 사람이 프랑스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면 처음과 끝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대요. 어딘가 더 많은 정보들이 또 있을 것 같다면서요. 하지만 잘 편집된 책은 서문부터 인덱스까지 이 정도 하면 됐다 하는 느낌을 주죠. 종이책과 전자책은 상당 기간을 공존할 거 같아요. 문제는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가 아니라 다른 매체의 등장인 거죠.”


- 스티브 잡스가 디지털에 감수성을 집어넣은 건 맞지만 종이를 몽땅 잡아먹은 것도 사실이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큰 충격은 사람들이 전부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단 거였어요. 예전엔 메트로라도 읽었는데. 뉴욕은 지하철에서 대부분 책을 봐요. 하지만 그들이 유독 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3G는 고사하고 통화도 안되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들도 나가면 지하철역에 올라와서 다 검색하고 난리라고요. 제가 해외에 나가면 외국 작가들에게 그런 얘기 많이 해요. 한국이 겪고 있는 일이 곧 너희들이 겪을 일이야. 한국 작가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잘 지켜봐야 돼!” 


- 작가를 침몰하는 타이태닉에서 연주하던 현악 사중주단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문학 출판 모임에서 축사를 하라고 해서 새로 상을 받은 사람들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어찌나 암울해하던지. 그때, 우리에게는 침몰한 배에서 우아하게 가라앉을 의무가 있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그 뒤에 소설가 김중혁씨가 올라와서, 그 배가 생각보다 천천히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말을 위로처럼 하더라고요. 참 착한 사람이야. 하하하. 세네카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늘 상상했대요.” 


- 불행을 예비하고 걱정하면 학습되나요. 


“세네카가 말하는 건 걱정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자기가 잃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훈련이에요. 내년부터 내 책이 하나도 안 팔린다면, 나는 뭘 잃게 되나를 생각하는 건 걱정이 아니에요. 걱정은 구체적이지 않아야 걱정이죠. 인디언 속담에 그런 게 있잖아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막연한 걱정은 현재를 살아갈 때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나쁜 결정을 하게 만들거든요. 전 최악을 상상해봐요. 전 선인세도 안 받고, 인세도 1년에 한 번만 받아요. 그럼 어떤 해는 적게 들어오고, 어떤 해는 많은데 그걸 12개월로 나눠서 사는 거예요. 그럼 덜 불안하거든요. 요즘 생각하는 건 작가로 오래 살아가려면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 다양한 출판사에서 낸 책을 전부 한 출판사로 모았어요.


“여러 출판사를 만나니까 피곤하더군요. 연말에 망년회 하면 가야 되고 편집자가 뭐 써달라고 하면 써줘야 하고, 출판사가 여러 군데가 되면 밀당을 해야 되잖아요. 2008년에 마흔이 됐는데 그때 삶을 단순화하자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강연 요청이 많은데, 그것도 ‘마이크 임팩트’라는 회사에서 관리해요. 제 담당자가 딴 데 가면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김영하 선생님의 일을 보고 있습니다. 주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 우스갯소리지만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본 친구가 “김영하 책이 드라마화됐네!”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비슷한 면이 없진 않아요. 고등학생 나오고 남의 마음을 읽고 제목도 같고. 처음에는 모티브를 가져갔나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 드라마를 제 소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제목이랑 표지를 ‘너목’들로 바꿀까 농담한 적도 있어요.” 


- 김영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경영학과 출신의 스마트한 소설가예요. 계약과 집필도 체계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나 같은 사람이 헛똑똑이예요. 사람 보는 눈이 없어요. 이걸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사람 때문에 철없이 멍청한 짓에 합류하거나, 황당한 일에 휘말리거나 했죠. 재밌는 건 제가 그 사람의 글을 보면 판단이 꽤 정확해요. 그래서 요즘은 누가 청탁하면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해요. 전화로 하면 다 속거든요.” 


■ 사십대 중반 되니 장편 쓸 시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 이번 책을 읽다가 김영하 북리스트를 봤는데, 문학상 수상작이 아니라 해외 판권을 판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번역이 중요하진 않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 해적판으로 일본어 중역으로 된 거지 같은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렇다고 톨스토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이 사라졌다고 생각은 안 해요. 번역보다 중요한 건 나라가 매력적이어야 해요. 필리핀 문학에 우린 관심 없잖아요? 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1998년에 프랑스에서 나왔는데, 프랑스 번역자가 집이 한국이라서 우연히 그걸 샀고, 그 책 얘기를 들은 프랑스 출판사가 책을 냈죠. 그때, 전 제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그후 7~8년 동안 어떤 연락도 없었어요. 이 책은 대산재단에서 번역 지원한 영어판도 있었어요. 근데 하코트 출판사에서 영어판을 보고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다 거기 편집자가 마침 불어를 잘해서 불어판을 보고는 ‘이거 재밌는데’라는 반응이 나온 거예요. 아마 그 편집자가 불어를 몰랐으면 이 책은 지금까지 판권이 하나도 안 팔렸을 수도 있어요. 다 운이죠.” 


- 이제 사십대가 지나가고 있어요. 요즘 중년은 53세부터라는 기사도 있지만. 


“장편을 쓸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해요. 장편을 잘 쓰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되거든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시간 법칙처럼 소설가의 창의성은 10년 이상의 숙련이 있을 때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새는 뭘 해볼까 하는 욕심이 들기도 하다가 늙으면 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과 영화 모든 것들이 다투는 건, 결국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으려는 거잖아요. 시간이라는 건 너무 희소하고 가치 있는 자원이기 때문에 아껴 써야죠.” 


고백하면, 2005년의 인터뷰 때, 내가 물었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 고민이었다. 소설을 쓰는 대신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는 대신 소설가를 인터뷰하는 ‘대신’ 인생에 지쳐가던 직장인은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써보라는 소설가의 충고에 퇴근길, 집 앞 호프집에 혼자 앉아 연달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작가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억조차 못할 일이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과, 한 명의 작가가 작가를 꿈꾸는 한 명의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이토록 지극하다는 것을. 장편소설을 한 권 쓸 때마다, 자신이 변했다고 말하던 그에게 “전 왜 안 변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 변했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부산발 열차에서 그 말을 되씹다가, 마침 대구역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부서진 열차의 잔해들을 긴급 투입된 복구반이 치우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성장이 그러했다.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 참혹한 잔해들을 청소하면서 내가 조금씩 변했고, 그 ‘전쟁’이 내겐 대부분 ‘소설’을 쓰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장엔 예외도 있다. 소설가가 된 내게 소설가 김영하는 여전히 듣고 배워야 할 게 많은 전문가로 보였다. 그의 말처럼 인터넷에 없는 ‘시작과 끝’이 계절에 있었다. 복구를 기다리느라 멈춰선 기차 속에서도 여름의 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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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연예인은 잘못하면 법적 제재 외에도 자숙해야 돼요…

정치요? 돈 때문에 생각도 안 해요,

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해야 되는데”


27승64패. 승률 0.297. 9개 구단 중 압도적 꼴찌. ‘한화 이글스 팬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은 개막 후 13연패를 내달리던 김응용 감독 자신이 2013년 4월24일자 인터뷰에서 직접 꺼낸 말이다. 단체로 부처님 가면을 쓰고 목탁을 두들기며 응원하는 한화 팬들의 사진은 ‘불교TV’의 자료화면으로도 쓰였으니 말을 말자. 개그맨 남희석을 만났을 때, 그는 충청도에서 유독 개그맨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내게 “충청도엔 열사도 많아요. 유관순 누나, 윤봉길 의사!”라는 말을 꺼냈다. 어지간해선 자기 속을 내비치지 않는 허허실실한 충청도 사람의 특징이 꾹 참았다 폭탄 던지는 것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그는 내게 “한화 야구복 입고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자리 양보해준다”는 말도 꺼냈다. 한화 이글스 기사를 검색하다가, 8월20일자 신문에 실린 ‘팬들은 당신의 사퇴를 기다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유심히 바라봤다. 다른 구단 같았다면 ‘감독, 당장 집어 치워라!’라고 광분할 수 있는 말을 그들은 놀랍도록 오래 기다려 ‘당신의 사퇴를 기다립니다’라는 참으로 점잖게 표현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류현진마저 없는 한화다. ‘한화! 이길 때까지 단식투쟁’이란 플래카드를 걸고 응원했던 여자 팬이 그만 아사하고 말았다는 ‘한화식 개그’가 존재하는 이 야구단 얘길 이렇게 오래하는 건, 내가 남희석에게서 그런 특징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심리적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 마련한 삶의 무기’라는 말을 한 건 프랑스 소설가 마르탱 파주다. 그는 유머를 세상의 단단한 고통을 뚫고 나오는 유연한 아우성이라 정의하면서, 유머는 소외를 상대로 벌인 작가의 내면적인 승리라는 말을 남겼다. 얼핏 웃기는 것과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고통’ ‘소외’ 같은 단어가 유머의 연관 검색어라는 아이러니를 이해한다면, 그는 이미 어른인 건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좋은 친구들> <멋진 만남>에서 이 남자는 이십대에 이미 자신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11살 소년이 서울에 상경해 개그맨으로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유재석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남희석이 어느 날부터 공중파에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건, ‘나다운 것을 하겠다’는 어떤 고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성기로 되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한마디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유재석같이 오랜 인기를 누리려면 유재석처럼 술도, 담배도 없이 일 자체만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은 지금의 자기가 가장 좋단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미녀들의 수다> 등 탈북자, 이주노동자, 한국 거주 외국인처럼 그는 주로 사회의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예능과 교양의 경계를 고민했던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중학교 2학년 이후 영어를 포기했다는 이 남자는 얼마 전, 재능기부 형식으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저자인 스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 강연의 진행을 무료로 맡았다. 그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소신을 주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대선에선 75.8%라는 투표율을 소수점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신공을 발휘했다. 그는 직접 글도 쓴다.


■ 길게 말하거나 착한 척하는 사람은 몽땅 편집 당해


- 일간스포츠에 ‘남희석의 아무거나’를 3년째 연재 중입니다. 최근에 쓴 기사를 보니 ‘남성연대’의 성재기씨 기사였고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해서 칼럼 제목도 ‘아무거나’가 된 거예요. 맞춤법도 헷갈려서 친분이 있는 김탁환 작가에게 물어볼 정도였는데, 지금은 담당기자가 다섯 개 중 한 개 정도는 읽을 만하다고 하더군요. 성재기씨와는 프로그램을 같이해서 세 번 술자리를 함께했어요. 뛰어내리기 열흘 전쯤 우리 집 앞에 찾아왔어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님이랑 셋이 만나서 마셨죠. 그때 우리가 했던 얘기가, 당신에게 좋은 의도로 들을 얘기가 있는데, 방송만 하면 적이 생기는 게 안타깝다, 주적이 여자가 아니잖느냐, 오히려 남자들이랑 싸워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죠. 사실 이분 얘기 중에 여성전용도서관을 없애자는 얘긴 일리가 있어요. 위험성이 있는 주차장도 아니고 도서관은 좀 뜬금없잖아요. 또 왜 혼자 사는 여성만을 위해서 집을 분양하냐,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한테 따지기도 하고. 7시에 불고기 파티하자고 예약까지 하고, 수영하기 좋게 바지를 양말로 감쌌던 분이 죽으려고 그랬겠어요? 너무 안타깝죠.”


-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그 많은 게스트들과 친분이 유지되나요. 


“전 방송 끝나면 꼭 뒤풀이를 해요. 그래야 친해지고 좋은 방송을 할 수 있으니까요.” 


- 요즘은 <부부상담전문가> <문화전문가> <국민엄마 종결자>처럼 전문가 표방 토크쇼도 많이 진행하시던데. 


“입맛에 맞는 걸 골라 하다보니까 종편만 하게 됐어요. 이주여성이 와서 상견례를 해봤냐 그래서 안 해봤다고 하면 아이디어를 모아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여기 어머니랑 상견례를 해주는 거라든지, 외국인들 데리고 토크쇼를 해보자 해서 미녀들의 수다도 하게 됐고요. 탈북자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미녀들의 수다 형식으로 풀었던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요.” 


- 떼토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건가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어요. 만들기도 쉽고, 스튜디오 대여 비용도 싸니까. 회당 4시간 반 정도를 하루에 두 번 찍으니까 점심 먹고 14시간 정도를 녹화하면 2주 방송이 나오거든요. 전문가 시대가 된 건 멘토 영향도 있을 거예요. 기업들이 옛날에는 행사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 비용을 멘토들의 강연회에 써요. 갈 길 잃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요즘 사람들은 멘토들을 찾거든요.”


- 남희석씨와 저는 <야외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12시간 녹화하고 몽땅 편집당한 경험자로서 질문합니다. 대체 편집되지 않는 비결은 뭔가요. 


“길게 말하는 사람, 착해 보이려는 사람, 몽땅 편집이에요. 하하. 말은 세 마디로 끝내는 게 좋아요. 아니면 궁금증 유발하는 말. 예를 들어 누구는 변태다, 이런 걸 먼저 쳐버려요. 그럼 CG를 넣기가 좋거든요. 갈등의 도화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에선 인기가 많아요. 그래서 변희재라든가 진중권 같은 논객들이 방송에선 인기가 있죠.”


-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처음에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판 미수다로 프로그램이 진화했어요.


“<무한도전>도 첨엔 ‘무모한 도전’이었고 지금의 <무한도전>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바뀌어 가는 거예요. 좋은 프로도 시청률이 안 나오면 없어지거든요. 요즘에는 사람들이 너무 예쁜 여자들만 나오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편집 때문에 생기는 착시 현상이에요. 앞줄에 딱 3명 정도만 예쁘고, 나머지는 평범한 이웃이거든요.” 


- 그래서 청문회에선 목말라도 물을 마시지 말란 소리가 있어요. 사진기자들이 귀신같이 찍고 ‘타들어가는 속’이란 헤드라인을 붙일 게 빤하니까요.


“예능은 중간에 어떤 컷을 넣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 보여요. <개그 콘서트>도 실시간으로 웃는 웃음은 없어요. 다 따로 떠놓고, 개그할 때마다 적당한 걸 끼워넣는 식이죠.” 


개그맨 남희석 (출처: 경향DB)


■ 트위터는 남 안 다치게 해요. 전두환 정도는…


- 방송하면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탈북자 중에 하나원 교육을 받고 임대아파트를 얻은 어떤 분이 심심하니까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게 된 사연을 들은 게 있어요.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클릭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컴퓨터가 고장난 거예요. 그래서 컴퓨터를 통째로 뽑아서 들고 밖에 나왔는데 컴퓨터 고친다고 써 있길래 가서 고쳐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지금 날 무시하나 싶어 화를 냈는데, 여긴 컴퓨터 고치는 데가 아니라며 자꾸만 다른 데를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분이 본 건 ‘컴퓨터 클리닝’이란 글자였죠. 거긴 세탁소였고요. 하하. 진옥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집에 외제차가 일곱 대 있을 정도로 부자인 친구였어요. 아버지가 무역을 해서 돈 벌었대요. 근데 북한은 한 10~12년 정도마다 정권 유지를 위해 한 번씩 물갈이를 하는데, 그 사이 집이 쫄딱 망해서 탈북을 한 거예요. 근데 이 친구가 이미 북에서부터 너무 많은 한국 드라마를 본 거죠. 나오자마자 진옥이가 옷을 사러 동대문 두타 근처에 갔는데, 거기에 디제이 아저씨가 멘트 치면서 타는 월미도의 유명한 ‘디스코팡팡’ 같은 게 있었나봐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더래요. 그래서 그걸 타고선 죽어도 안 떨어지려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는데 디제이가 그런 거예요. “어우, 공산당이야? 저 여자 왜 이렇게 안 떨어져!” 그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거예요. “헉! 티 나나? 날 어떻게 알았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게 2만5000명 정도 되는 탈북자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봤으면 하는 거예요. 이 땅에 함께 살면서도 그 누구도 ‘나는 탈북잡니다’를 못하거든요. 식당이건 어디건 다 조선족이나 강원도 출신이라고 해요.”


- 보람도 있겠지만 연예인이란 직업은 ‘한 방에 훅 간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기복이 심해요. 


“연예인은 법적인 제재 외에 자숙의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직업도 그런 직업이 없잖아요. 정치인, 경제인들도 몇 백억원의 세금을 탈세해도 80% 정도 형기를 채우고 가석방으로 나오면 당장 일해도 되거든요. 근데 연예인은 그게 안되거든요. 자숙의 시간은 형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건 내가 가진 이미지, 시청자와의 약속, 사고 친 이후의 말 한마디와 태도 이런 것들에 따라 달라져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은 진짜 조심해야 돼요.” 


- 부업으로 식당을 차린다거나, 책을 쓴다거나 할 생각도 하세요.


“차인표씨가 소설 썼잖아요. 저녁밥으로 ‘진지’ 드셔야 할 만큼 진지한 양반인데, 소설이 참 좋더라고요. 그거 보고 포기했죠. 사실 전 남을 자꾸 의식해요. 저 같은 놈이 <안네의 일기>를 썼으면 분명 남을 의식해서 썼을 거라고요. 예를 들어, 독일군이 잠깐 왔다갔는데, 남들 눈 의식해서 더 극적으로 쓰는 거죠. 근데 독일군이 봐도 기분 안 나쁘게 또 써야 하니까 머리 굴려야 하고.” 


- 아니, 이런 심약한 분이 어떻게 트위터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세요. 


“제 트위터 보면 웬만하면 누구 안 다치게 해요. 물론 전두환 정도는 씹어주죠. 욕 많이 먹어서 장수하시겠어요, 뭐 이런 거.” 


- 대선 때는 75.8%라는 투표율까지 정확하게 맞히는 신공을 발휘했고요. 정치에 의향 있으세요. 


“그것 때문에 SBS 아나운서실이 발칵 뒤집혔죠. 그때 제 공약이 투표율 맞히면 8시 뉴스 5년간 무료 진행이었거든요. 하하. 근데 전 욕 먹는 거 싫어서 정치 못해요. 정치인들은 욕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욕하면 그걸 등에 화살처럼 몽땅 박고 살지만 전 엄마가 욕을 해도 싫거든요. 정치할 생각이 없는 건 돈 때문이에요. 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정치하는 게 불가능하다던데, 전 오지랖이 넓어서 한 달이면 보내야 될 화환만 수십개예요. 예를 들어, 백 작가가 소리 없이 책을 냈으면 좋겠지만, 시끌벅적하게 책 내면 그래도 찾아는 봐야 하지 않나 하는 거죠.” 


- 개인적으로 개그맨 김미화씨의 노선을 걸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CBS 방송 대타로 진행도 하셨고.


“김미화 누나 못 만난 지 7년 됐어요. 땜빵도 누나가 부탁한 게 아니라, 정혜윤이라는 라디오 PD가 워낙 특이해서 한 거예요.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요.” 


- 책을 많이 읽게 된 게 전유성씨 때문이라는 얘길 들었어요. 


“그 소문 때문에 제가 책 많이 읽는 놈인 줄 알고 출판사에서 자꾸 책 보내고 그래요. 저 무식한데. 근데 재밌는 건, SBS에 <아이러브인>이라고 세계 석학들이 나와서 하는 강연이 있는데 세계 최고 협상 전문가의 강연 진행을 제가 맡았어요. 제가 의외로 겁이 없고, 무식을 안 부끄러워해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플루토늄이 뭐예요? 이렇게 물어야 해요. 석학을 만났는데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보단 죽으면 땡 아니에요? 라고 물어야 하고요. 만약 죽어서 영혼이란 게 있으면 지금 몇 백억이 돌아다녀야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물어봐야 되는 거죠. 그분이 여간해선 잘 안 웃는 사람이라는데 제가 여섯 번 웃겼어요.” 


- 개그맨이기 때문에 힘 빼고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많다는 건가요. 


“정소녀씨가 흑인 대통령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있었잖아요? 전 그걸 직접 물어봤어요. 강부자씨도 소문이 많았잖아요? 그걸 물어볼 수가 있었던 거죠.” 


- 충청도 남자가 개그에 강한 건 땅기운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어요. 딸 이름이 고향인 충남 보령과 같은 이름이에요.


“제가 만약 신씨였으면 창원이란 이름은 못 지었겠죠. 아내는 동사무소 가는 순간까지도 농담인 줄 알더라고요. 제가 이상한 곳으로 안 빠지고 버틴 건 고향 때문이에요. 사고 쳐도 날 받아줄 곳이 있다는 건 굉장한 안도감을 주거든요. 사실 둘째는 남태령으로 지으려 했거든요. 제가 남태령역에 있었어요, 근데 아내한테 혼났어요. 아이 이름 가지고 두 번 장난하지 말라고.” 


- 치과 의사 부인은 방송에서 봤어요. 가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진짜 벗는 노출은 아니니까 그나마. 크하하. 우리 가족들은 단타로 빠지잖아요. 가족이 나와도 1년에 한 번, 아내는 워낙 방송을 싫어해서 3년에 한 번.” 


- ‘남희석 부부 각방 써’라는 기사를 보고, 결혼관이 다를 것 같단 생각도 했어요. 전국 석차 47등과 반 석차 43등이 결혼하는 것만큼.


“아내는 알람시계처럼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피겨든, 일본어든 결혼하고 13년 동안 한 번도 뭔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어요. 심지어 일본어학원에서 1등 하면 10만원 준다는 대회에서도 1등을 했는데 일본어를 한마디도 안 해요. 문법 틀릴까봐. 토익 점수가 그렇게 높은데 영어도 안 해요. 역시 틀릴까봐. 아내는 차를 사줘도 일주일에 한 번만 타요. 지하철에서 애니팡 170만점을 찍어야 하거든. 각방을 쓰는 이유도 저녁 10시30분이면 반드시 자야 하는 아내와 제 사이클이 너무 달라서 그래요. 우린 참 달라요. 그런데도 와이프가 고마운 건 주기적으로 나를 여행 보내줘요. 여보, 나 일본 가고 싶어, 하면 호텔이랑 비행기 다 잡아줘요. 다르다는 거 인정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감 유지하면서 존중하는 거죠. 어차피 싸울 것 같으면 10분 안에 끝내버리자 하면서 빨리 끝내고요. 단둘이 여행도 잘 안 가요. 결혼생활하면서 깨달은 건,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죠.” 


■ 관계가 경색됐을 때, 일본 관련된 프로 하고 싶어


- 공황장애로 비행기 타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제가 가까운 일본만 가요. 근데 김탁환 작가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여행은 시간의 탕진이다. 어우, 그때부터 제 여행 개념이 좀 바뀌었어요. 그래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쉴 수 있어야 해요. 제가 떡진 머리로 짬뽕 먹고 문을 열었는데, 들어오던 사람이 아악! 하고 놀란다고요. 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연예인들 식당 가면 벽 보고 밥 먹어요. 그나마 전 말도 하고, 좀 나은 편이죠. 공황장애는 고치는 게 아니라, 누르는 기술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찬물 먹고, 심호흡을 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거죠.” 


- 일종의 직업병이겠군요.


“제가 사람들 간을 아주 잘 봐요. 사람들의 입장에서부터가 다 이유거든요.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제가 이런 얘길 했어요. 무당, 점쟁이, MC, 술집 아가씨, 건달, 다 같은 사람들이다. 다 사람 간 보는 직업들이다. 머리 모양, 자세, 나를 맞이할 때의 태도, 옷, 안경, 자리한 위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걸 몇 초에 간파하고 해체하면서 재구성하는 게 MC예요. 개그맨 출신들이 눈치가 빠른 건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웃길까 끊임없이 관찰하기 때문이에요. 처음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라고 할지, 악수를 할지, 그걸 판단하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여자 잘 꼬시는 사람들이 방송도 잘해요.” 


- 만약 프로그램을 한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가장 경색됐을 때, 오히려 일본과 관계된 프로를 하고 싶어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엉켜 있지만 오히려 삼국이 만나서 얘기를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어려울 것 같지만 재밌게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사실 SNL은 참 좋아하는 프로였는데, 정치가 빠지면서 좀 밋밋해졌어요. 코미디는 균형감각이 필요하잖아요. 김형곤 같은 기술자가 없으니까 그게 안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형곤은 노태우 때 정치인들을 많이 씹었는데, 노태우 대통령도 그걸 보고 웃었거든요. 센 놈이 맞아야 재밌겠죠. 거기엔 불편함도 있겠지만.” 


그와 인터뷰를 끝내고 며칠 후, 길을 걷다가 ‘개판 오분 전’이라는 애견숍 이름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인터뷰 말끝마다 자신을 ‘무식하다’고 말했던 이 남자에게 겸손은 인성이며 오랜 연예인 생활 끝에 장착된 스타일일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위트란 결국 지능을 드러내는 일이다. 1992년 <봉숭아 학당>에 출연했던 남희석은 ‘하회탈’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니까 하회탈은 21년이나 된 꽤 유서 깊은 별명인 셈이다. 인터넷에서 한화를 치면 나오는 연관 검색어는 ‘눈물, 보살, 부처, 해탈’ 등이 있다. 해탈과 하회탈의 발음과 모양이 어찌나 비슷한지 그걸 보고도 한참을 웃었다. 아마도 웃기는 이 남자 때문에 내 얼굴에 주름살 몇 개 더 늘었을지 모르겠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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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누구에게 상처 줘 봤어요? 상처 받을수록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



강신주는 “회의할 때 입 벌어지게 하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_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사는 그…

미워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단다


강신주. 1967년생. 경찰서에 붙잡혀가도 잠을 잘 정도의 공대생이었으나, 진로를 바꿔 철학을 공부했다. 2013년 7월 현재, 스물일곱 권의 책을 썼다. 두 권의 대표작은 <철학 vs 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 객관적 철학사는 표방하지 않는다. 가령 제자백가 시리즈에서 맹자의 지위를 현격히 떨어뜨려 중국 고대철학 최초의 악플러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식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자유의 의미를 체감한 시인 김수영은 강신주의 정신적 아버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에 김수영의 미발표작 ‘김일성 만세’를 소개하며 4·19를 바라보던 김수영의 자유정신에 대해 독해했다.


지방에 20일 이상 머물며 하루 평균 2.5개의 강의를 소화했다. 철학자와 철학관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방의 노인들이 작명을 요구해 주역도 공부했다. 나름, 이름 좀 짓는 철학자다. 그가 거리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강단이 아닌 현장의 소리를 직접 채집했던 구체적인 기억들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 교회 안 다니게 하는 도구’가 철학일 수 있고, 기독교, 자본, 국가권력은 삼위일체로 비판해야 하며, 종교비판서를 쓰지 않는 건 철학자의 책무가 아니라 말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인간이 주인이라는 인문학적 정신의 표현이라고 강변한다. 미래의 천국은 없으니 지금 이곳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삶 전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법칙을 좋아한다. 은혜는 꼭 갚고,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가 그의 원칙이다. 힘이 없을 땐 ‘데스노트’라도 만들어 나중에라도 꼭 갚아줘야 하는 게 원수라고 말한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하지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 역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게 이 남자의 확신이다. 시를 좋아해서 시와 관련된 책도 몇 권 썼다.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같은 레테르는 별로다. 포괄적 독서는 없고, 책은 편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수영의 영향을 받은 이성복, 황지우, 허연의 시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여자 시인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여자가 왜 시를? 여자 자체가 아름다운 시인데!” 같은 소릴 하며 피식피식 웃는다.


■ 여자가 왜 시를? 여자 자체가 아름다운 시인데!


그의 사랑학 강연을 듣고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커플이 꽤 있단 소리도 들었다. 그는 사랑과 결혼을 이혼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잔인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남자는 이것이 모두 ‘행복’이 아닌 ‘불행’에서 온 생의 감각들이라고 말한다. 행복에서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성찰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밖엔 알 수가 없다. 이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다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늘 열리던 현관문이 어느 날 열리지 않을 때, “엇, 왜 문이 안 열리지?”라는 의문에서부터 비로소 생각은 작동되기 시작한다. 왜 그가 자신을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는지. 만약 열쇠를 떨어뜨린 곳이 어둠 속이라면 그는 기꺼이 어둠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을 것이다.


-박경철이나 안철수, 김미경 등 이 시대의 멘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강연입니다.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 멘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멘토는 희망을 주고 사람들을 위로해줘요. 하지만 전 철학자고 철학은 산파술입니다. 산모가 아파야지 산파가 아프면 안 돼요. 그 사람을 힘들게 해야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아이를 낳는 거죠. 당신들, 비겁하다고 직언하면서 벼랑 끝까지 몰고 가야 해요. 그럼 각자 그곳에서 뛰어들든지 뒤로 물러서든지 고민이란 걸 하죠. 벼랑 끝까지 가보고 나서, 자기가 결정해서 뒤로 물러나고 비겁해지는 건 괜찮아요. 스스로 결정한 거니까. 멘토는 파시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모세를 찾듯 종교적이죠.”


-진짜 강한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는 ‘침묵’이란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언어가 침묵이라면 최고의 강사가 구사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요?


“사장이 말 많이 하는 거 봤어요? 약자가 말이 많은 겁니다. 선생이 침묵하면 애들이 내 입을 봐요. 어색하죠. 근데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리듬이 생겨요. 모든 리듬은 소리와 침묵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생기는 거예요. 책은 그게 없어요. 시는 행을 띄우니까 가능하겠죠. 스타일이 별 게 아니에요. 리듬성을 말하는 겁니다. 처음에 어떤 작가나 소설가든 읽다가 잘 안 읽히면 나랑은 리듬이 안 맞는 거예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평론가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그 작가의 리듬이니까요.”


-시와 관련된 책을 내기도 했는데 소설은 많이 읽나요?


“학창시절엔 문학을 전혀 안 읽었어요. 시를 읽은 것도 마흔 넘어서구요. 어릴 때 어정쩡한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고 철학을 읽었거든요. 최근에는 민음사랑 작업하면서 소설을 여러 권 봤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왜 어린 여자와 나이 든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걸 요즘 상황에 맞게 바꾸면 왜 어린 남자와 나이 든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가가 될 것 같아요.


“착각이에요! 연상연하가 포인트가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연상이나 연하인 거예요. 롤리타를 사랑하고 나니 나이가 너무 어린 겁니다. 그럼 괜찮아요. 근데 롤리타가 어려서 접근하면 아동성애자인 거예요. 롤리타가 문학성을 얻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강해서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자기감정을 수호하려고 하니까요. 여자를 많이 알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니까 여자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겁니다. 이걸 잘 구별 못해요, 사람들이.”


-삼포 세대란 말이 있습니다. 연애, 결혼, 직업 포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 꿈은 이건데 엄마는 다른 걸 원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현실과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비겁함과 비겁하지 않음의 문제인 거예요. 결국 용기 있음과 용기 없음의 문제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결혼은 사회생활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돼요. 공적 활동이라구요. 그건 연애 같은 사적생활이 아니에요. 상견례를 왜 합니까? 정말 사랑하고 함께 살고 싶으면 동거를 하면 돼요.


-사람들이 소유와 사랑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했는데….


“이 감독 좋아하다가 다른 감독 좋아할 수 있어요. 근데 남녀관계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사랑이 소유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스위스 좋아한다고 거기만 가야 되고, 이탈리아 가면 배신자가 되나요? 결혼은 소유의 제도입니다. 하지만 사실 사랑은 무소유의 형식이에요. 어떤 사람이 내 짐을 들어준다고 칩시다. 그럼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추운데 옷을 벗어주는 것도, 배고픈데도 나한테 먹을 걸 퍼주는 것도 다 사랑하는 거예요. 근데 결혼식이 뭐예요? 결혼식장에선 친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사진 찍고 그러잖아요? 왜 그러냐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이걸 보여주는 거예요. 모두의 목격자가 되는 거죠. 재밌는 건 인간은 일단 소유한 걸 아끼진 않는다는 거예요.”


-결혼이 소유의 양식이고, 사랑이 무소유의 양식이라면, 두 개는 별개인 건가요?


“옛날엔 사랑과 결혼이 확실히 분리되어 있어요. 부르주아들이 필요에 의해 결혼과 사랑을 합친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소유도 안 한 사람들이 무소유를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노숙자가 무소유를 얘기할 순 없어요. 무소유는 가진 걸 주는 겁니다. 내가 에너지가 있어야 줄 수 있고, 내가 힘이 있어야 내 음식도 주는 거고 그게 사랑인 거예요. 물론 결혼이 무소유의 형식일 때도 있어요.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나 죽을 때 내 재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 가기 때문이에요. 보르헤스나 조이스도 그랬어요. 말년에 결혼 신고를 왜 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였어요. 자유주의가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그렇게 결혼이 소유제도니까 자본주의와 잘 결탁하는 거죠.”


철학자 강신주 (출처 :경향DB)


■ ‘결혼은 소유의 제도이자 사회생활’임을 받아들여야


-요즘 이별살인, 카톡이별 같은 게 이슈가 되는데. 경찰청에서 이별하는 법에 대해서 공문을 낸 게 있어요.


“소유 형식이 너무 강해진 거예요. 죽겠으니까 죽여버리는 거죠. 예전에는 여자들이 힘들었으니까 남자들이 배신하면 여자가 남자를 죽였어요. 그런데 거꾸로 남자 연봉이 1500, 여자가 2억이면 남자가 칼을 들겠죠. 그런데 요즘은 남자도 천만 원이고 여자도 천만 원이에요. 그래서 서로 죽여요. 하향평준화가 된 거죠. 연봉이 아예 상향으로 가서 남녀가 모두 1억5000이면 그렇게 강하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거예요. 혼자 살기 힘든 불안과 공포, 실존적 문제가 건드려져야 살인이라는 게 일어나질 않아요. 경제가 안 좋으면 사랑이란 관계에 경제 상황이 투사가 된다고. 사회가 너무 힘들어진 거예요.”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을 강조하셨는데, 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정당한 건가요?


“누군가에게 제대로 상처 입혀봤어요?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이 상처도 안 줄 수 있는 겁니다. 약자들이 왜 타인에 대한 상처를 떠드는지 모르겠어요. 의외로 타인들은 상처 안 받아요.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인간의 마지막 비겁함은 주변 사람에게 상처 줄 거야란 말이에요. 죄책감은 비겁해지는 최고의 방법이죠.”


-보수화는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결과 아닌가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자본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식이 그겁니다. 어머님한테 에어컨을 사드렸는데 전기를 아끼겠다고 안 쓰신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리모컨 작동이 어려웠던 거예요. 우리 아버님도 더블클릭이 잘 안 돼요. 그래도 되는 척을 하세요. 그러다 예전에 잘나갈 때 이슈 하나가 나오면 보수적으로 변해요. 자기 존재 가치가 과거에 있다고. 경험이 축적돼서 얘기할 수 있는 현재적 가치가 없어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있어요.”


-자본이 나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교묘해진다?


“점점 빨라져요. 어린애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자기 개성을 만들거든요. 자본주의는 노인을 저주해요. 현 정권의 경우 그럼에도 그들의 지지를 받아서 만들어졌죠. 그래서 비겁한 겁니다. 지금 정권이 친자본주의적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에게 피해의식을 만들어놓고 그걸 보상해주는 것처럼 해서 지지를 받았거든요. 노인의 문제는 그런 겁니다.”


-감각의 제일 위치에 올라선 것이 ‘시각’이라는 말을 하면서, 과거엔 그것이 촉각이었다란 말을 했습니다. 감각의 변화 역시 자본주의와 관련 있나요?


“눈의 능력이 퇴화되면서, 안경을 많이 썼다는 게 증거죠. 처음에는 눈으로 보지만, 우리가 사이가 좋아지면 옆에 앉아요. 나중에는 방의 불을 끈다고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게 양수의 촉각이에요. 촉각의 세계는 위계관계가 없어요. 근데 눈의 세계는 위계가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한테 인사를 하는 건, 그 사람이 우월하기 때문이에요. 촉각이 강해지면 사회가 민주화돼요. 부모님이 아프면 제일 먼저 가서 뭐해요? 만지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린 영정이라도 만져요. 인간의 실존감각은 촉각에 있어요.”


-잡스가 스마트폰에 바로 그 ‘터치’ 감각을 넣었어요. 스마트폰이나 SNS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전 페이스북, 트위터 이런 거 안 해요. 그거 하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SNS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공한다는 선까지만 의미가 있어요. 문제는 소통의 제스처만 취하고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할 얘기는 많아요. 만약 우리가 이 휴대폰 케이스를 바꾼다고 칩시다. 그럼 케이스가 안 팔려요. 가족끼리 옷 바꿔 입으면 옷이 안 팔리니까 그걸 막으려고 하는 게 ‘개성’이란 겁니다. 네 형과 너는 달라! 뭐 이런 식으로 자본이 내면도 쪼개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이 세계를 화면으로만 겪어요. 스마트폰은 화면도 바꾸고 음악도 바꾸니까 내가 통제한다는 느낌을 줘요. 하지만 세계는 그냥 밀려온다구요. 그런 것들을 견딜 힘은 계속 약해지는 거죠.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잖아요? 근데 스마트폰이란 건 단점으로 시작했어요. 장점이라고 표방하는 건 그저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예요.”


-역시 경험은 어려서 하는 게 좋은 건가요?


“그럼요. 난로를 직접 만져야 뜨거운 걸 알고 다신 안 만져요. 이게 진짜 아는 겁니다. 문제는 가짜로 아는 거예요. 엄마가 저렇게 네모난 건 만지지 마 이러면, 배워서 안 만져요. 근데 나중에 그 아이는 동그란 난로를 만지게 돼 있어요. 네모난 게 포인트가 아닙니다. 뜨거운 게 포인트예요. 근데 일단 만져본 아이들은 동그랗든, 삼각형이든 안 만져요. 왜냐면 망가질 정도로 겪으면 안 되거든. 난로를 만졌는데 손이 다 타서 없어져버렸다? 그럼 안 되죠.”


-조개에 모래가 박히면 대부분 폐사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사람들은 진주의 존재만 얘기하잖아요.


“상처 많이 받으면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만약 누가 매일 와서 칼로 푹 찌른다고 생각해봐요. 그럼 강해지나? 더 무섭죠. 내일 또 와서 찌를까봐. 그래서 시련을 많이 당하면 사람 만나기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걸 사람들이 강해졌다고 하는 거예요.”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라는 시가 있어요. 시련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말인데….


“상처에서 피는 꽃은 자기 안에 피진 않아요. 타인한테 꽃을 피울 순 있어요. 내가 더럽게 많이 아파봤으면 다른 사람은 안 아프게 할 수 있어요. 흉터는 그대로 가는 겁니다. 흉터가 어떻게 예뻐지겠어요? 근데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들한테 하염없는 공감대를 만들어줘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잘해줄 수는 있겠죠. 그래서 선구자가 힘들어요. 본인도 그래서 작가가 된 걸 거예요. 글쓰긴 힘들어도 그 글을 읽은 다른 누군가가 위안 받고, 꽃을 피우니까 존재 이유를 찾는 거죠.”


■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림자가 깊고 짙어요


-<김수영을 위하여> 책 표지를 보면 편집자 이름이 저자와 함께 표기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도 휴머니스트에서 다른 곳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약 위반이었고, 소송까지 갈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별 악의적인 소문도 많았구요. 개인적으로 편집자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어요. 그 일 이후 교정지 나와서 책이 출간될 때까지 계약서를 안 써요. 지론이 편집자가 그만두면 그 회사에서 책을 출간 안 한다는 겁니다. 전 마케팅으로 책 판 사람이 아니라 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독자를 만든 사람이에요. 책은 그런 게 아니에요. 도서관에 들어가는 겁니다. 80년대 편집자들은 옛날에 사장들이랑 멱살 잡고 싸웠어요. 사람들이 이것을 읽어야 한다는 시대의 사명감이 있었구요. 책을 기획하는 건 편집자인데, 사장들이 날 만나고 싶어해요. 내가 안 만나주니까 사장들이 날 싫어하지.”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사세요?


“삶의 구체적인 것들에는 그림자가 있죠. 근데 그림자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거 못해요.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림자가 깊고 짙어요. 원래 그런 거예요.”


-산다는 건 견디고 감당하는 것과 동일한 건가요?


“본인이 다른 사람한테 적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야 착한 거예요.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건 본인이에요. 헤어질 때 상처 적게 남기고 헤어지는 것. 원래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은 최악의 컨디션일 때 나오는 거고, 성숙함은 헤어질 때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나는 그의 삼색 슬리퍼와 늘어진 보라색 티셔츠를 바라봤다. 철학자의 발은 피로해 보였다. 인터뷰 중, 틀어놓은 음악의 볼륨을 조금 줄여달라는 부탁에 이 남자가 말했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데 왜 줄여요.” 그는 음악의 볼륨을 줄이는 대신, 녹음기를 자신의 입 가까이 대고 목소리를 올렸다. 별나게 고집스럽다 싶어 한참을 웃었다. 왕실 근위병처럼 얼굴이 굳어 있는 사람을 보면 무작정 웃겨준다는 말도 했다. 여행 가서 그런 사람들 보면 어떻게든 웃기는 게 인문학자라고 개구지게 말한다. 강신주의 표현대로라면, 회의할 때 입 벌어지게 하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회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림자에도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이 존재한다면 그의 색은 언뜻 검은색처럼 보일 것이라고. 원래 그림자는 검은색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다가 인터뷰가 끝날 즈음 깨달았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을 전부 더하면 그것 역시 검은색이란 걸. 뭔가,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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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성직자도 아닌데 왜 참죠, ‘잔욕망’ 해소시켜 나를 가볍게 해야



사진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윤광준씨가 25일 경기도 일산의 작업실에서 소설가 백영옥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작가는 “먹고사는 문제 외에 또 다른 꿈을 꾸라”고 강조했다. _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감각주의자·오디오 칼럼니스트…

“먹어보고 짜면 안 먹을 테니, 즉각적인 감각이 주는 명확함에 더 끌려요”


사진 찍는 남자들은 당혹스럽다. 이 편견에 가득 찬 문장이 적어도 내겐 반쯤의 진실이다. 2005년 사진가 배병우를 헤이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내게 “사진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첫 번째 질문은 곧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졌고, 여수 남자인 이 사진가는 어부 같은 손으로 고등어 스파게티를 만들더니, 아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가 내게 물어본 질문이 내가 그에 관해 묻고 싶었던 질문지보다 더 길 것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순식간에 바뀌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경기 일산의 작업실 ‘B1’에서 사진가 윤광준이 대뜸 내게 “왜 나이 든 남자들을 인터뷰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8년 전 그 기억이 떠올라 문득 말문이 막혔다. “남자 말고 수컷을 보고 싶은 겁니까?” 그가 되물었을 땐, 그제야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과 그의 콧수염이 보였다. “여성화돼서 남녀 구분 안 되니까 이 시대를 사는 수컷의 느낌을 다루고 싶다, 뭐 그런 건가요?” 그가 피식 웃자, 비로소 이 남자가 갈아온 드립 커피의 향기가 맡아졌다. 마루가 깔린 작업실 소파 옆에는 쓰리세븐 777 손톱깎이와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 올림푸스 카메라가 섞여 있었다. 윤광준이란 이름을 오독하면 몇몇 사람들은 그를 명품주의자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 커피를 드립하는 과정에서도 ‘감각의 연마법’을 수행 중인 한 남자의 고집스러운 태도가 보일 것이다. 오디오 칼럼니스트, 커피와 와인애호가, 세상 물건들을 탐하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 나는 그에게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을 간신히 꺼냈다.


윤광준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마당과 객석 기자를 거쳐 웅진출판에 입사해 사진부장으로 ‘한국의 자연탐험’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8년간 진행했다. 인생의 절정기를 무당벌레와 거미와 공룡의 화석들을 좇으며 탕진한 남자가 고백하듯 ‘자연 자체가 내게 감동을 주는 부분이 없다’란 말을 할 땐, 어떤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다. 센베이를 들고 있던 그가 과자를 베어 물더니 “이걸 참 좋아하는데, 나는 이걸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누가 사오지 않는 이상 못 먹어요!”라며 낄낄 웃었다. “사람들이 이 과자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밀어도 봤을 거고, 푸석하게, 쫀득하게도 만들었겠죠. 그러다 동그랗게 말린 최적의 형태를 찾아낸 거고요. 자연은 즉각적으로 오는 거잖아요? 하지만 물건은 그 다음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세계가 있어요. 기계를 예로 들면 저 안에 부품 하나 바꾸면 소리가 놀랄 만큼 아름다워져요. 그 비밀을 알아내고 밝혀내는 게 재밌어요. 궁극적으로 사람의 욕망과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예요.”


■ 물건에 스민 사람의 욕망과 감각을 찾아가는 매력


2002년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을 처음 읽었다. 명품하면 프라다, 샤넬부터 떠오르던 시절에 메주몽고간장이나 빅토리아 녹스 칼에 대한 그의 글은 참신해 보였다. 인용 없이 직선적인 글에선 직접 써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수성과 우리가 ‘생활 기스’라 부르는 자잘한 시간의 흉터가 포착됐다. 카메라 렌즈나 오디오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박식한 흥분들도 좋았다. 나는 맨발로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과자와 커피를 마시는 덩치 큰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먹는 시간도 아까워 17년 전부터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실천한다는 그의 납작한 배도 보았다. 사진가로 세계를 떠돌던 그가 자연 속에서 본 사자 얘기를 하다가 “폼 나는 동물의 왕국? 순 뻥이지!”라는 혼잣말을 중얼댔을 땐, 이 남자의 콧수염이 빳빳한 바늘처럼 느껴졌다.


“사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냥에 성공을 해요. 운이 좋으면 잡아먹고, 아니면 3, 4일은 쫄쫄 굶는 게 동물의 세계란 겁니다. 그게 자연적인 거예요. 풍족함을 누리면서 사는 동물은 하나도 없는데, 인간만이 예외적인 존재예요. 그것도 문명을 일구다보니 생긴 시스템 때문이지 내 신체적 필요에 의한 건 아니란 거지. 과잉 상태가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겁니다.”


나는 작업실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이다 못해, 바닥을 뒹구는 물건들을 보다가 크게 웃었다. 하지만 곧 ‘나이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필요할 때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깨달아 가는 일이다’라고 쓴 그의 문장이 떠올라 쓸쓸했다. 한 인간이 소유한 물건들의 역사는 외로움과 결핍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사고 싶은 걸 안 사면 내 돈이 외로워할까봐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고 말한 누군가의 뒷모습도 떠올랐다. B1은 윤광준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이 공간 안에서 물건에 얽힌 천일야화 같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누구든 그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제야 내 눈앞에는 고독했을 어떤 시간에 분명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을 집채만한 탄호이저 스피커 두 개가 또렷이 보였다.


-윤광준 하면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란 말이 떠오릅니다.


“전 관념으로 세상을 조립하기 전에 행동이 먼저 앞섰고, 체험한 후에야 그게 도대체 뭐였는지 나중에 정리하는 삶을 살았어요. 즉각적 감각이 주는 명확함이 더 쉽게 와 닿아요. 먹어보고 짜면 안 먹을 거고, 아프면 손을 놓을 거란 거죠. 책을 몇 권 쓰긴 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독서가도 아니에요. 사람이 모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도 절대 동의할 수가 없어요. 고전은 이데올로기를 공감시키려는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꼭 책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인간의 기본이나 관계를 얘기하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텐데, 하는 기대가 아직 제게 있어요.”


-사진가라는 직업의 정체성과 감각적인 삶은 관련이 있나요?


“사진은 관념이 통하질 않아요. 어떤 경우에도 현장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상상할 수도 없고, 새로운 걸 연결시킬 수도 없는 사진의 특성이 불편하고 어려웠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한 장의 프레임에 세상을 다 담을 수는 없으니까요. 전 사진의 한계 때문에 글을 쓰게 된 경우예요. 근데 이쪽은 하이브리드고, 나쁜 의미로 말하면 한쪽에 몰입이 잘 안 되는 성격이에요, 내가.”


-첫 직장이 출판사였는데…. 


“웅진이 생긴 게 1982년인데, 내가 1983년부터 그곳에서 알바를 했어요. 윤석금 회장하고 같이 짜장면 시켜먹고 일할 때예요. 대한민국 출판 역사를 보면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이 있어요. 1970년대 갈 곳 없던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우리나라 1980년대 상황과 비슷했던 거죠. 데모하다 전과자 된 학생들을 받아준 곳이 출판계밖에 없었던 거예요. 내가 출판 쪽에 있을 당시에는 서울대 출신이 90%였어요. 나는 대학 때 날라리처럼 보내서 엄청나게 공부한 그 사람들하고 말이 안 통했어요. 처음 내 한심함을 깨달았어요.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잡지사의 사세가 기울어서 기자 뽑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고. 내가 사진도 찍고, 기사도 쓰고, 잡지 나르고, 그야말로 일당백이었죠.”


■ 카메라는 내 삶을 내 식으로 바라보는 도구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책은 대중적이고 정서적으로 잘 쓰여진 사진 입문기 같은 느낌이에요.


“그 책이 세 번째 쓴 책인데 13만 부나 팔렸어요. 직장 때려치우고 백수로 지내면서 집 팔아먹고 하다가, 마누라한테 큰소리 쳤던 유일한 때였어요.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소리지. 사실 일반인들이 명작 찍어서 뭐하게요? 전시를 할 겁니까, 갖다 팔 겁니까. 사진에 대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이유는 카메라의 기능을 너의 삶에 재현시키라는 거예요. 카메라는 세상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거죠.”


-‘우리’라는 주어가 익숙한 세대가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건가요? 


“자기 이야기가 없는 거죠. 내 또래 남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럴 때가 제일 힘들어요. 민주당은 이랬다, 새누리당은 이랬다, 흥분하며 떠드는 이야기의 내용도 실은 남의 대변이니까. 내 삶을 내 식으로 보고 살아내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카메라는 내 삶을 바라보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스갯소리로 외국여행 가서 겉모습만으로 한국인을 구별하는 방법이 커다란 DSLR 카메라를 들고 빨리빨리 사진 찍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는 말도 있는데, 유독 우리가 도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한풀이예요. 과거의 습성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돈을 쓰는 주체가 되니까, 옛날에 가난했을 때 못 샀던 것들을 배터질 때까지 먹고 쓰는 거예요. 북한산 가는데도 고어텍스에, 스파이크 다섯 개 박힌 신발을 신어요.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한풀이인 거죠. 장비도 마찬가지예요. 근데 난 그게 하나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갖고 싶은 장비를 가져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경쟁적으로 큰 차 사려는 심리랑 다를 게 없죠.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압축 성장을 한 나라예요. 30년의 시간을 우리 스스로 메모리하지 못해요. 유럽처럼 내가 살아온 이력을 단계적으로 정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과 세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후지게 노는 덴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좀 참아주면 안 되겠느냐는 거죠. 하하. 우리가 파리처럼 되고 싶다고 해서 서울이 단번에 파리가 되진 않아요. 난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풍요를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럼 제 풀에 지치는 순간이 올 거고, 진짜 좋은 것을 선택하고 찾아가는 시점이 오게 되는 거죠.”


-서양의 ‘에피큐리언’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인 오해가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이 쾌락주의라고 보는 관점이기도 해요 


“그 말에 공감하는 게, 배가 고파야 음식이 정말 맛있는 거거든요. 내가 비워지는 상태가 되어야만 나의 선택이 도드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 끼만 드시는 거예요? ‘감각주의자 윤광준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라고 쓸까요?


“그러세요! 하하하. 우리는 풍족의 역사를 누려본 적이 없어서 펼쳐 놓아야 잘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결핍 때문에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은 지금까지 번 돈을 다 쓰게 되는 삶이에요.”


-소비하는 삶 말인가요? 


“욕망은 해소시켜서 가볍게 해야 되는 겁니다. 성직자도 아닌데 왜 다들 참으라고 하는지. 참을 수 있으면 참지, 참아지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잔욕망을 터는 연습을 해야 돼요. 돈이 모인다는 건 쓰고 남은 돈이 넘쳐야 되는 거잖아요? 전 이 사회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하는 게 보험회사라고 봐요. 불안을 담보로 돈을 버는 거잖아요. 인간이 보험이 없었을 땐 인생에 불행이 닥치면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정리를 하는 지혜가 있었어요. 근데 이젠 언제 해약할지 모를 그것에 기대 살아야 한다고. 인간이 욕망을 해소하는 데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그럼 잔욕망을 턴 흔적들인가요?


“내 얘길 잘 들어봐요. 절실함이 사라지게 되면 물건들은 하등 소용없어요. 세상이 재밌는 게 끊임없이 후학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내 관심은 끝났는데 새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이 나이가 되니까 어떤 분야를 내가 다 알 수 있나란 생각이 들어요. 알아서 얻는 깨달음은 이만한 범위에서 난 이만큼만 아는구나의 한계를 아는 게 앎이더라고. 나이가 들수록 확신이 잘 안 생겨요. 물건은 그냥 다 필요한 사람 줘버리고.”


-감각의 세계를 줄곧 얘기했는데, 고백하면 전 와인 맛을 잘 모르겠어요. 


“이 보르도 와인이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것인데 280만원이에요. 55년이 된 와인인데 내가 얼마나 맛을 기대했겠어요. 근데 딱 따니까 첫 느낌이 뭐냐하면. ‘이 와인 썩었네!’였어요. 와인색이 거의 죽은피 색깔이에요. 근데 한 시간쯤 지나니까 여기서 향이 올라오는데 또 맛이 완전히 달라요. 다른 와인은 시거나 달거든요. 근데 얘는 주장을 하지 않아. 내가 100년 된 간장을 먹어봤어요. 조선간장이 100년이 되면 결정화돼서 찐득찐득해요. 간장에서 향기가 나는 게 상상이 돼요? 조선간장은 원래 짜고 격한 냄새가 나는데 걘 짜질 않아요. 달고 묵직하게 짜고, 결국 통합의 맛이라는 겁니다. 그런 감각은 결국 희소성의 감각이에요. 그게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미친 짓이지만 그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평생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죠.”


-송로버섯 같은 것 말인가요?


“내 돈 주고 못 먹는 그 요릴 사람들과 먹은 적이 있어요. 송로는 언제 주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웨이터가 엄숙하게 흰 장갑을 끼고 오더니, 가늘게 채 써는 슬라이스 칼을 갖고 착착 채를 썰어서 제 스테이크 위에 몇 점 얹어주는 거예요. 내가 허리 딱 펴고 엄숙하게 있으니까 ‘에라~ 너니까 한 점 더 준다’ 딱 그런 얼굴이더란 말이지. 송로버섯의 핵심은 결국 꼬리꼬리한 발가락 냄새였어요. 식물성인데 동물성 맛이 나는 것도 그렇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건 모두에게 드러나는 게 아니고 그걸 감각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궁극의 세련된 감각인 거예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런 경험들을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얘기해주는 거예요.”


윤광준 오디오평론가 겸 칼럼니스트 음악 CD를 들고 있는 모습 (출처: 경향DB)


■ 죽음을 수긍하고 인정할 때 또 다른 가능성 생겨


-시간이 부족해서 누울 시간도 없다고 했는데.


“난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늘 시간이 부족해요. 에너자이너 선전 알아요? 백만돌이? 그게 내 꿈이라고. 요즘은 유일하게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뒤에 있는 시간을 앞으로 가져오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는 평생을 돌아다녔던 사람이라 항상 죽음의 현장 가까이에 있었어요. 차에 깔려 죽은 사람, 떨어져 죽은 사람, 다양한 죽음들을 코앞에서 봤어요. 초등학생 때 외삼촌이 돌아가셨는데 사람이 썩으면 물이 흥건해져요. 죽으면 이렇게 되는구나를 그때부터 느꼈어요. 그러니까 난 죽음이 저쪽의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30대에 히말라야에 올라갔는데, 5000 미터 위에 올라서면 바닥의 끝이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 지역이 있어요. 그곳에 햇빛이 비추는데 정말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났어요.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딱 거기였어요.”


-그 순간 죽고 싶단 생각이 드셨어요?


“그랬어요. 내 의지로 이곳을 넘어가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내 존재가 낫싱이 되는 공간을 발견한 거죠. 코끼리도 죽을 땐 지 무덤 찾아가고, 거북이도 그래요. 훼손되지 않은 생명에겐 알아서 자기 삶을 정리하고 마치는 지혜들이 있는 거지. 지금도 그런 유혹이 있어요. 좀 더 나이가 들면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클럽을 만들려고 해요. 내 의지가 작동되는 순간만큼 살고 싶은 겁니다. 죽음은 닥치기 마련이에요. 피해야 될 게 아니라 수긍하고 인정할 때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전제로 좀 더 잘살고 싶다는 문제죠.


-죽음이 결국 시간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란 건가요?


“나이 먹어서 좋은 거 하나는 해야 될 짓과 하지 말아야 될 짓을 분간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이제 난 내가 해야 되는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짧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280만원짜리 와인도 먹어야 하는 거예요. 다 먹어보고 해본 사람이 인생 별거 아니더라 하는 거랑, 꿈만 꾼 거랑 다르잖아요. 대한민국 남자의 불행은 꿈만 꾸는 데 익숙하다는 거예요. 능력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이미 다 갖고 있는데도 스스로 그런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공의 삶을 사는 거죠. 인생을 두 번 산다면 당연히 연습하고 다음에 더 잘하겠죠. 좋은 것만 누리고 살기에도 삶은 짧아요.”


맥주를 마시며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와인을 두 병이나 땄다. 오디오 애호가의 탄호이저 스피커에선 베르디의 오페라와 경기민요, 탐 웨이츠의 ‘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편지’까지 다양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수컷은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가 얘기한 것은 먹잇감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사자의 속성이었다. 사자는 먹이를 잡다가 죽거나 심하게 다친다. 하다못해 아름다운 나비를 봐도 날개가 멀쩡한 건 거의 없다. 자연 상태에서 멀쩡한 개체와 종족은 생존을 위해 우아한 자태를 보여줄 수가 없고 폼을 잡을 수 있는 틈이 없는 셈이다. 열정이 없을수록 삶은 언뜻 순해진다. 사랑 없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건 그러므로 세상에 대한 선포일 수 있겠다 싶었다. 화창한 봄날은 이제 나의 풍경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성찰 뒤에야 비로소 “보잘것없는 행적과 허비한 시간만이 내 몫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감각주의자 윤광준의 문장이 단단해진 건, 오직 아는 것만을 쓰겠다는 그 결벽 가득한 고집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나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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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옷 잘 입는 비결은 자신감… 좋은 옷은 사람이 먼저 보이는 옷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하루 10번의 회의·10개 이상의 패션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남자…

“남자를 유혹하고 싶으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입으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말했다. “제게 성공은 쇼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또 하나 끝났고, 다음 쇼 준비해야죠!” 그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성공론이 꽤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아기 토사물 같은 맛이라는 망고 스틴즙과 우유 단백질, 고지즙 같은 요상한 액체류와 소화제 몇 알을 첨부해 식사로 챙겨먹는 이 골초가 루이뷔통 같은 거대 브랜드를 이끌며 쇼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칼로리’가 꼭 ‘에너지’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담배와 커피, 프로틴 바가 식사를 대신하고, 물만 마셔도 반드시 소화제를 함께 먹어야 하는 소화불량의 세계도 있다는 돌연한 깨달음 같은 것도 얻고 말이다. 


2010년 뉴욕 컬렉션. ‘하퍼스 바자’와 함께한 패션필름 속의 정구호는 진지하고 피곤해 보였다. 미국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가죽제품 때문에 사업부문 담당이 멸종위기동물과에서 브로커를 만나고, 쇼 당일 내린 폭설 때문에 학교들이 일제히 휴교령을 발표하는 동안, 쇼를 이끌어갈 모델은 컨디션 난조로 백스테이지에서 쓰러졌다. 이때, 하루에 5년씩 늙는 것 같다는 이 남자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야흐로 중국과 태국, 필리핀의 디자이너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는 패션 아시아의 시대였다. 그는 국가대표처럼 뉴욕에 서 있었다. 


첫 뉴욕 진출,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노력해야죠”라는 대답을 남겼다. 카메라 속 누군가가 한 번 더 “그래도 안 되면요?”라고 묻자 더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그래도 안된다면요?” 좀 얄궂게 들렸다. 하지만 정구호는 지치지 않고 “그럼 죽기 살기로 더 노력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노력이란 말을 세 번에 걸쳐 말하는 이 남자의 얼굴을 나는 천천히 바라봤는데, 비음 섞인 그의 목소리는 티슈처럼 나긋나긋했다. 노력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조화였다. 숫자 3은 서양에선 완벽에 가까운 수다. ‘헥사 바이 구호’의 첫 이름은 ‘33by kuho’였다. 


아마도 사람들이 정구호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시간과 효율에 관한 것일 게다. 어떻게 ‘제일모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하루 10개 정도의 회의를 주관하고, 자신의 브랜드 ‘구호’ 이외에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총괄하면서 영화의 미술감독을 하고(영화 <스캔들>로 미술상을 받았다), 무용극을 연출하고(단순히 의상 디자인이 아니라!), 방송에 출연하며(<프로젝트 런웨이> 심사위원과 요리 방송들), 강연, 패션쇼, 기부행사,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뉴욕에서 몇 년 동안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던 정구호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내가 그에게 처음 전화를 건 것은 패션지 기자였던 2005년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비서실이었고, 바쁜 스케줄로 인터뷰는 세 번 이상 거절당했다. 그때 주제는 ‘패션’이 아닌 ‘음식’이었다. 


■ 구호, 남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1위에 뽑힌 적도


“전 항상 뭘 더 할까를 생각하지 빼거나 덜 할까는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무용 연출은 2015년까지 잡혀 있어요. ‘단’ 공연 이후에 국립극장에서 제의가 와서 임성주 감독님과 한국무용을 주제로 새 작품을 할 것 같고요. 최근에는 여유가 좀 생기는데, 스스로 너무 나태하단 생각이 들어서 뭘 열심히 배워볼까 고민 중이에요.”


잠자는 게 별로냐는 질문에 그는 자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깨어 있는 쪽이 더 좋아요!” 이틀에 한 번꼴로 잔다는 오지 여행가 한비야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다윈의 진화론에 새로운 챕터가 붙어야 한다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종’의 수면 패턴! 새로 적힌 이론에는 잠을 줄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우성인자라는 가설이 첨부되어 있을 것 같다.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소설을 쓰는 삶이 내겐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과대학을 나온 여자가 난데없이 단추 디자이너가 되거나, 생명공학으로 힘들게 박사학위를 딴 남자가 전업가수를 선언하고 난데없이 소설집을 냈다면, 그 삶은 돌연 패턴을 벗어나 매혹적인 성공과 실패담으로 뒤덮인다. 바늘이든, 찰흙이든, 밀가루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손안에 넣고 조몰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만들던 몽상가 기질의 소년은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좌절한다. 유학길에 올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가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며 회사에 다니고, 레스토랑을 차리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이야기는 두세명분의 이야기를 압축시켜 놓은 듯했다. “전 사랑 때문에 직업을 세 번이나 바꿔야 했어요.” 사랑 때문에 직업을 세 번이나 바꾼 남자에게 매혹당하지 않을 여자란 없다. 그런 남자가 만든 옷이라면 어찌됐든 입어보고 싶지 않을까. 


오래전, 어느 카페에서 ‘돌체 앤 가바나’의 인터뷰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자신은 여자가 입기에 편한 옷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불편함을 디자인한다는 말은 나처럼 편안한 옷을 선호하는 여자에겐 선정적인 캐치프레이즈 같았다. 


“그게 대표적인 남성 디자이너와 여성 디자이너의 차이점이에요. 여성 디자이너는 편한 옷을 만들지만 남자들은 편한 옷을 만들 수가 없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여자들은 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지만 남자들은 상상해 옷을 만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봤을 때 좋아 보이는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하죠.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있으면 약간 불편함이 있다 해도 그 이미지를 위해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전에 트임 없는 9부 스커트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패션지 편집장님이 제가 만든 스커트를 입고 버스를 타다가 넘어지셨다더군요.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중엔 생각을 정리했대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뜻인 거 같다고. 전 트임이 안 예쁘니까 스커트에서 그걸 없애고 싶었던 거예요. 불편을 감수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할 수 없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거죠. 남자를 유혹하고 싶다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사는 게 더 유리하죠. 예전에 조사한 적이 있는데, 구호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1위에 뽑힌 적도 있어요. 하하하.” 


■ 생각은 화장실서도… 브레인스토밍 안해


한국의 디자이너들 중, 대기업과의 협업에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얻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구호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일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를 조화와 균형에 극히 민감한 사람, 중간자, 스타일리스트 혹은 코디네이터로 규정하기도 했다. 


“다른 장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통역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디네이터죠.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중요한 일들을 해낼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매개하고, 연결시키는 거죠. 저도 패션을 하지만 패션디자이너가 순수예술 장르의 아티스트랑 협업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런 걸 굉장히 잘하는 영국 브랜드 중에 ‘프레드 페리’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거긴 레이 가와쿠보 같은 전위적인 디자이너와도 성공적으로 일을 하더군요. 비결을 물었더니 ‘협업’만 도맡아 처리하는 담당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렇게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과 설득의 기술이 궁금했다. 


“회사에 들어와서 대화의 스킬이 느는 것 같긴 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의 대화와 계산하는 사람의 대화는 다르거든요. 사실 영화감독들도 그림을 못 그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글’로 생각하고 ‘플롯’을 짜는 게 그들의 언어인 거죠. 그래서 다른 분야의 분들과 얘기할 땐 처음엔 얘기가 잘된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가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전 끊임없이 반복해서 체크해요. 확인에 재확인을 해서 서로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는 거죠. 그런 반복이라면 얼마든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가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해가 돼?”였다. 그는 기능과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완벽을 지향하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메모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여행 중엔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다. 이미지는 스캔하듯 그의 머리 어딘가에 늘 저장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훈련 효과인지 물었다.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시간을 줄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브레인스토밍도 안 좋아해요. 전 오히려 그걸 찢어져서 하자고 말하거든요. 생각은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옷도 굉장히 빨리 사요. 매장의 크기와 상관없이 옷을 고르는 데 5분도 안 걸려요. 옷을 보면 디테일들이 전부 상상되거든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같이 가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제 속도에 맞추느라 하나도 보질 못해요. 뉴욕에서 공부할 때 하던 일이 하루 종일 옷을 보는 일이었으니까. 그때 산 마틴 마르지엘라의 첫번째 쇼의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디자이너 정구호의 해외 컬렉션 라인 '헥사 바이 구호'에서 선보인 매니시 룩 (출처 :경향DB)



■ 인간의 ‘몸’ 알기위해 해부학 책 읽어


정구호를 규정하는 말들 중엔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가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그가 곤충의 몸을 인간의 몸에 얹어 놓았을 때, 인간의 몸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고민하며 만든 옷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해부학 책도 열심히 본다. 


“뫼비우스라고 해서 2000년, 밀레니엄쇼를 덕수궁에서 한 적이 있어요. 밀레니엄 버그니 뭐니 해서 그때 말이 많았잖아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정의도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 기준을 찾기 위해 만든 것이지, 우리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르는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 있잖아요. 그걸 규정지으려는 게 싫어서 만든 옷이었어요. 옷 패턴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옷이었고, 쇼 중간에 모델이 살짝 멈췄던 적이 있어요. 삐 소리가 나고, 다들 멈춤 상태로 있고. 사람들은 사고가 난 줄 알던데, 전 잠시 모든 걸 정지하고,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생각해보란 의미로 기획한 쇼였죠. 또 제가 만들었던 옷 중에 ‘탈피’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한 게 있어요.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건 다 똑같잖아요. 원래의 나를 탈피해 사랑과 용서와 믿음으로 좋은 사람 되는 것. 근데 왜 서로 자기 종교만 믿으라고 하며 싸워댈까 생각하다가, 여러 나라의 종교를 섞어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예전부터 사왔던 옷, 더 이상 못 입는 옷들을 가지고 종교복식의 형태를 만들었어요. 재밌었어요. 뉴욕에선 패션디자이너가 왜 그렇게 복잡한 아이디어를 냈냐는 얘길 들었지만요.” 


뉴욕 사람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더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도 놀랐는데 정말 싫어해요. 하하하. 오히려 화이트 드라마, 러시아 인텔리즘 같은 쉽고 명확한 접근을 훨씬 더 좋아하죠. 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유럽도 그렇게 변하고 있고, 제가 확실히 느꼈어요.”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자신의 생각과 노선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비주얼을 읽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자꾸 하고 싶은 거예요.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스토리를 직접 설명하려면 어려우니까. ‘하트 포 아이’를 통해서건 ‘비이커’를 통해서건 다른 일들을 통해서 설명을 드리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하트 포 아이’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 아이들의 개안수술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편집매장 ‘비이커’에 전시된 많은 물건들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었다. ‘구호플러스’의 옷들은 모피와 가죽을 사용하지 않으며, 힙합 브랜드 ‘푸부’의 경우, 다양한 독립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기부나 사회환원에 이야기를 담으려는 노력은 인문학과 철학적 상상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요즘 ‘자크 데리다’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문득 한복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입힐 것인가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그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정구호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한복을 많이 안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복은 제대로 입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이 남자는 불편하단 이유로 고름 대신 벨크로 여미고 단추를 다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조용히 주장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전통 의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왔던 사라 제시카 파커 같은 여인이 옷을 잘 입는다고 하는데 그녀의 몸 보셨어요? 키가 150 몇밖에 안되고, 팔다리도 길지 않고 마르기만 한 여인인데 모든 옷을 소화하잖아요. 그건 자신감이에요. 예전에 허리가 40이 넘는 어떤 여자분을 봤는데 옷을 너무 잘 입는 거예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전 다리가 짧으면 무슨 치마를 입어야 하고, 허리가 두꺼우면 무슨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건 조금도 와닿지 않아요. 전 키가 작아도 항상 롱 재킷만 입거든요. 그게 제 캐릭터니까. 옷을 입으면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보여야 합니다. 전 그런 옷을 만들고 싶어요.” 


■ 구호에서 시작된 내 오랜 사랑의 역사


디자이너 정구호를 인터뷰하러 가기 전, 옷장을 뒤졌다. 나는 ‘구호’의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인터뷰에 나설 참이었다. 하지만 2012년, 유독 이사가 많았던 내 유목생활의 피폐함은 옷장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구호의 스커트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구호’의 옷과 관련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에릭 클랩튼의 공연이 있던 날, 그 남자와 나는 서울 잠원동의 버거킹 매장 앞에서 만났다. 그의 손에는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니체 전집이 들려 있었다. 니체는 우리의 첫번째 접선을 위해 필요한 표식이었다. 당시 나는 휘문출판사에서 나온 니체 초판본을 구하기 위해 신림동 녹두거리의 헌책방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모든 연애에 실패했던 나는 ‘당신은 당신 삶의 규칙의 희생자다’라는 미술가 제니 홀저의 구호를 신봉하던 정신주의자였다. 물론 패션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클래식한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 남자의 발에 신겨져 있던 아디다스 운동화가 불균형하다고 느꼈다.


“달리기 좋아하나 봐요?” 그것이 내 첫 질문이었다. 바야흐로 PC통신의 시대였고, 누구라도 본명을 대신할 자신만의 대화명을 가지고 있었다. 내 대화명은 무표정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무표정한 여자였다. 사진가였던 그 남자는 그날, 에릭 클랩튼을 찍고 잠실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운동화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구호’의 옷을 처음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보통의 어느 날, 그 남자가 데려간 곳이 구호의 매장이었다. 매장의 옷들은 대부분 검거나 흰색이었고, 얼핏 수녀나 신부의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검은색 외투 앞에서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입는 게 아니라, 벗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선물하는 거예요.” 그는 H라인 스커트를 내밀며 나를 바라보더니, 좋아하는 축구팀 선수와 마주친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패션에 관심이 없던 나는 패션지에 취직했고, 번역된 소설 따윈 읽지 않던 그 남자는 보르헤스를 읽기 시작했다. 짐작하건대, 구호의 옷이 어디에 있는지는 우산이며 귀고리를 수도 없이 잃어버리는 나보단, 침착하고 꼼꼼한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알아보는 것. 커져가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조용히 다가서는 것. 그리고 끝내 결핍 안의 공기가 되어 숨쉬게 하는 것. 정구호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실루엣은 공기가 있는 실루엣이에요. 옷이 살에 붙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건 너무 불편하지 않아요? 나는 자연인데 옷과 살 사이의 어떤 공기가 꼭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기준으로는 그래요.” 구호의 옷은 공기를 닮았다. 벗는 것과 입는 것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옷이 누군가에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에게 고마웠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내 오랜 사랑의 역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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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는 인간’이라 정의될 법한 남자… 실패도 독창적으로, 재밌게



 사진 _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배우·작가·연출자·스타 작가의 남편으로 다양한 이력…

“드라마 찍으며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 배웠죠”


영화감독 장항준과 관련된 내 첫 번째 기억은 그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었다. “제가 모텔 단골이라서, 돈 없는 날 여자친구랑 가면 외상을 해줬어요.” 소설가 K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숙박 3만원, 대실 1만5000원’이란 팻말을 보고 했단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데, 대(큰 대)실 말고, 소(작을 소)실은 없어요?” 하하하! 두 남녀를 떠올리며 눈물 나게 웃어댔었다. 두 사람 모두 돈이 없었다는 점에선 동일하나, 한 명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한 명은 여행을 떠나는 여자로 모텔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만약 장항준이라는 이름 앞에 누군가 ‘개그맨’이란 잘못된 타이틀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태반은 “아! 장항준. 기타노 다케시처럼 영화도 찍는 개그맨 아니었어?”란 표정일지 모르겠다. 하긴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킬러들의 수다>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역을 소화했고, ‘상습 카메오 출연자’라는 희귀한 타이틀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뛰어난 작곡가인 윤종신을 개그맨으로 살짝 오해하는 착시현상이 그의 친구 장항준에게도 적용되는 셈. 


미제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던 시절, 미국 잔디가 넓게 깔린 집에서 장항준은 엄마에게 시국선언을 하듯 소리쳤다. “나 비밀과외 시키지 마! 경찰에 확 신고해 버릴 거야!” 엄혹한 전두환 시절, 엄마를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냅다 소릴 지르는 날라리 아들을 바라보던 모친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린이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거든요. 이 정도 재롱이라면 요건 면죄부가 된다, 느끼는 거죠. 전 어딜 가든 부모님이, 누나들이, 귀엽다고 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개근상을 계속 탔던 이유도 학교에 놀러 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만약에 공부하러 학교에 갔으면 개근상을 못 탔겠죠. 전 초등학교 6년 동안 숙제를 여섯 번도 안 해갔어요. 대단한 어린이었죠. 숙제하느니 차라리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마음은 또 얼마나 편해요. 즐거운 학창생활이었죠. 하하.”


■ 특유의 낙천성, 그의 인생엔 고난은 없고 행복만


세상이 ‘대책 없음’이라 규정하는 것들을 그는 대책 있는 것들로 바꾸어나갔다. ‘맞으면 그뿐’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무서운 게 있을 리 있나! 호모 루덴스. 마땅히 ‘노는 인간’이라 정의될 법한 이 남자는 애정이 결핍되지 않은 희귀한 성장기를 보낸 후, 누가 뭐라든 자기 리듬에 맞춰 사는 법을 습득했다. 장항준에게 무심함은 제2의 천성 같은 것으로 특유의 낙천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발이나 손을 보면 굉장히 심한 상처가 나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아물어가는 중이라 스스로 놀란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는 통증을 감각하는 데 대체로 무감하다. 어느 점집에 가든 “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주”라는 격찬을 받는다는 장항준의 팔자소관엔 인생에 고난이 없고 행복만 가득하단다. 나는 좀처럼 믿기 힘든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은희랑 신혼 때, 돈을 못 내서 가스가 딱 끊어졌어요. 쌀통에 쌀 한 톨도 없던 시절도 있었구요. 그럼 전 이렇게 생각해요. 브루스타가 있는데 뭔 걱정? 술 마시고 싶으면,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고 전화하는 거죠. 야! 너, 우리 집에 놀러 안 올래? 근데 올 때 술하고 세제하고 하이타이 좀 사와. 뭐, 라면도 몇 개 사오면 더 좋고. 그때 윤종신 같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쌀도 많이 사다주고 그랬어요.” 


그가 라이터를 켰다. 작업실 안으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노는 남자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작가 커플이 되었나


“옛날엔 영화 광고가 신문 하단에 흑백으로 조그맣게 나와 있었어요. 전쟁 속에 핀 사랑과 관능, 관능의 여신 실비아 크리스텔, 어쩌고저쩌고! 첩자 마타하리 불꽃같은 삶을 살다, 국도극장 절찬 상영 중, 뭐 이런 식이었죠. 그걸 보고 애들한테 뻥을 치기 시작했어요. 첫 신부터 정말 본 것처럼! 그러다 <대부>와 <영웅본색>을 보면서 갱지에 볼펜으로 이 둘을 짬뽕시킨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애들이 재밌어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반 애들이 실제 등장하는 얘기였거든. 내가 갓파더인데 그 상대편 패밀리가 수학, 도덕 선생이고. 맨 우두머리가 학교 교장이고. 우리는 정의로운 마피아지만 저쪽 선생들은 악당들. 이런 상황에서 매회 한 명씩 처참하게 죽이는 거죠. 나중엔 청탁까지 받았어요. 항준아! 물리도 죽여줘!” 


이야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저급으로 시작해서 약간 고급으로 빠졌다가, 시 동아리 활동을 하고 김수영을 읽으면서부터 저항시까지 이어졌다. 6·29 선언이 나오기 전, 넥타이 부대들과 함께 시청 앞에서 있었던 평화대행진의 생생한 역사 속 현장에도 있었다. 공부보단 노는 것에 몰두하던 그가 해야 할 공부를 깨닫기 시작한 건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고부터였다. 


늘 시간이 모자랐어요. 처음으로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공부했으니까. 글도 잘 쓰고 싶고, 영화도 더 알고 싶고, 다른 과 강의도 청강하고, 극작하고, 대본 보고, 연극 보고. 대학 다닐 땐 책 보느라 말도 별로 없었어요. 제가 문창과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도 제야의 종 친 게 어제 같은데 오늘 또 치고 있더라고요.”


미국적인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스콧 피츠제럴드이다. 하지만 소설가 천명관은 그 말을 ‘영화감독의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꿔 말하며 감독으로 사는 일의 비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될 확률 70퍼센트’의 세계에선 대부분의 감독들은 ‘감독은 감독이되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유령감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내 공연되지 않을 2막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유령 감독으로 떠도는 삶 말이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하고, <불어라 봄바람>으로 추락했던 장항준 역시 그런 충무로의 낭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아 하던 그는 영화 <그해 여름> 집필을 끝낸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장항준의 표현대로라면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김은희 드라마 작가를 입봉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찰리 채플린의 후예들은 상상하기 힘든 칼과 망치를 든 슬랩스틱. 이 죽음의 난타극은 숨겨진 금괴를 찾기 위해 무너지기 직전의 풍년빌라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속고 속이는 게임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될 이들 부부의 첫 작품은 ‘위기일발’이란 타이틀과 궤를 함께 한다. 이 드라마는 백윤식과 신하균을 캐스팅하고도 찌그러진 프로젝트로 공중분해될 뻔했다. 


“애초에 16부작으로 만들어졌던 드라마가 공중파 편성에 실패하고, 케이블로 가면서 20부작이 된 겁니다. 편집이고 뭐고 전부 뒤틀린 거죠. 게다가 처음에 김은희 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이 왜 재미없는지도 몰랐어요. 타이핑이 빨라서 내 대본을 대신 타이핑하는 것으로 극작 공부를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10부 정도가 지나면서 점점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실력이 무서운 속도로 일취월장하기 시작한 거죠. 드라마 <싸인>이나 <유령>을 거치면서 지금은 저희를 ‘김앤장’이라고 부르더군요.”


■ 드라마는 투쟁의 산물,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


드라마 <싸인>은 방송국의 1차 편성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건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1년 1월5일 방송예정이었던 드라마가 엎어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준비 중이던 <싸인>이 투입되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감독으로 살았던 삶과 드라마 피디로 살았던 삶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하룻밤 새우는 건 영화하면서 많이 해봤으니까 괜찮아요. 근데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면 피 냄새가 계속 나요. 피는 안 나는데 코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거죠. 24시간은 안 잘 수 있어요. 48시간까지도 뭐 그럴 수 있더라고. 근데 한 바퀴 더 도는 순간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연출봉고라고, 연출자를 위해 만들어진 봉고차가 있어요. 그걸 타면서 제가 기사에게 물어요. ‘다음 장소까지 얼마나 걸려요?’ 기사가 ‘바로 요 앞입니다’라고 하면 아이 씨! 막 욕이 튀어나와요. 그러다가 한 시간 걸린다고 하면 바로 기절해서 자는 거예요. 좀 자다보면 다 왔다고 막 두들겨 깨워요. 그럼 멍한 상태로 ‘뭐 찍냐?’하며 걸어가면서 파트를 막 쪼개는 거죠. 투샷 원샷 투샷 원샷…… 콘티고 뭐고 짤 시간 없어요. 그런데 방송국 연출자들은 이걸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때 오랜 미스터리가 풀렸어요. 왜 방송국에서 서울대 나온 사람들을 뽑는지 알겠더라고요. 밤잠 안 자고 코피 쏟으면서 공부해본 사람들을 뽑는 거였어요! 나처럼 잠 펑펑 자면서 놀았던 인간이 아니라!”


그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엔 현장에서 너무 헤맸는데 나중엔 적응이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이렇게 찍으면 효과적이겠구나, 부딪치면서 깨닫게 된 거죠. 근데 김은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오빠, 우리 완전 망했어! 대본이 없어! 제가 어떻게 된 소리냐고 물었더니 10부 이후에 대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번 주는 작가 사정으로 한 주 쉽니다’가 대체 말이 됩니까? 안 그래요?”


그가 <싸인>의 연출을 포기하고, 대본 집필에 투입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싸인>의 시청률이 고공행진할 때였다. 애초에 <싸인>의 검시관 윤지훈(박신양 분)은 소신을 버리고 변절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청자가 사랑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바꿀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판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윤지훈은 어느새 절대 악과 싸우는 안중근 의사가 되어 있었다. 이미 완성된 대본 몇 회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는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으니까 사람들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구나가 바로 반영이 됩니다. 드라마가 인간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거죠. 그런 현실 자체는 엄청난 단점과 모순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생각지도 못한 이점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우리가 박신양이 변절하는 걸로 갔더라면 나름대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하고는 너무 다른 게 됐겠죠.” 


그가 생방송 시스템을 옹호하는지 물었다.


“아뇨! 절대로요! 다만 세상에 다 안 좋은 건 없구나. 하다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곰팡이도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잖아요. 그래서 전 요즘에 담배의 장점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담배가 백해무익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는 한참을 웃더니 다시 한 번 라이터를 켜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인>은 방송국에서 8부 연장을 하자고 했었어요. 4부까지는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었죠. 근데 최종 시청률이 25.5%인가가 나왔어요. 수도권은 27.8%였고. 그해 방송사 통틀어서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이 된 거죠.” 


그의 말투에서 후속작 <드라마의 제왕>의 주인공 김명민이 오버랩됐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싸인>의 성공 이후, 장항준은 <드라마의 제왕>으로 사람들을 찾아왔다. 김명민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 카드, 드라마계의 <하얀 거탑>을 쓰겠다는 야심은 <드라마의 제왕> 1회의 긴박한 이야기만 보더라도 파괴력을 가진 듯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부모라도 버릴 수 있는 남자, 통계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드라마의 왕 앤서니 킴의 캐릭터는 냉혹하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첫 회 시청률은 6%. 이 업계에서 한 자리 시청률이란 ‘이제부터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되는 어떤 것’이었다. 성공담보단 실패담 쪽에 훨씬 관심이 갔던 터라, 그에게 직설적으로 실패 요인을 물었다. <온 에어>는 되고 <드라마의 제왕>은 안 됐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보여주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16부에 하는 얘길 전 4부 안에 끝내버렸으니까. 왜 투수들도 어깨에 힘 빼고 던지면 성적이 잘 나오잖아요. 어깨에 힘을 준다는 건 부담감이에요. 속도를 빨리해서 강속구를 꽂아야 된다는 부담감. 그렇게 던지다보면 계속 볼넷이 나오고, 어떻게든 주자를 안 보내려고 실컷 가운데에 던지면 치기 딱 좋은 빠른 공이 나오는 거죠. 근데 힘을 빼면 몸이 활처럼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은숙 작가는 대단한 것 같아요. 통산 300승을 한 선수가 대단한 선수인 거지, 매 경기 퍼펙트하고 부상당하는 선수가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드라마의 제왕>을 하면서 장항준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투쟁의 산물이다’란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파의 얼굴 같아졌다.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기 주관대로 대본을 쓰다가 잘리는 건 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일로는 분노가 생기지 상처가 생기진 않거든요. 이 자식들 날 잘라? 두고 봐라. 하지만 타협하고 쓴 대본 앞에는 창작자로서 변명을 할 수 없잖아요. 성과를 떠나서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가장 큰 데미지는 스스로 입거든요. 질병은 극복하면 내성이 생기지만 그런 식의 상처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으니까요.”


영화감독 장항준(출처 :경향DB)


■ 적당히 이기적으로 세상 즐기는 게 ‘살아내는’ 방법


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60세 생일날, 활엽수 가득한 숲 속의 디렉터스 체어에 앉아 ‘생일 축하합니다, 감독님!’이라고 외치는 스태프와 함께 있는 모습이란다. 사는 게 즐겁냐고 물으니 즐겁게 사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전 게리쿠퍼보단 게리쿠퍼의 몸종 같은 사람들이 늘 편했어요. 그래서 제 영어 이름이 페르난도예요. 나 꼴리는 대로 사는 거죠. 조금만 이기적이면 세상이 너무 편하거든요. 그 이기적이란 게 남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구요. 정말 웃긴 게 뭔 줄 아세요? 남자들이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내가 누구 땜에 술 먹는 줄 아느냐고, 돈 벌려고 밖에서 접대하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휴, 자기도 술 먹고 싶어서 먹은 거지, 밤새 술 먹고 들어온 걸 마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듯이 포장하는 거 말도 안 돼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 직업이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의 남편’이라고 말하던 장항준에게 마지막으로 ‘돈’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돈은 지금까지 내가 벌어왔고, 앞으로는 우리 마누라가 벌 무엇이죠. 하하하. 그런 건 있어요. 돈을 쫓았더니 돈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 돈을 쫓으면 평생 돈의 뒤꽁무니만 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재밌는 게, 일하느라 바쁠 땐 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이 모여요. 돈이란 건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 별것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돈이 많이 생기면 전에 만족했던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가족끼리 여행 가서 특급호텔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어디보다 후지네 이딴 소리나 하고 말이죠. 이 작업실을 얻었을 때 은희가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넌 앞으로 이것보다 후진 작업실에서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예전엔 책상 두 개만 들어가는 비좁은 곳이어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거든요. 돈은 그런 의미로 생각해요. 나한테는 삶이 좀 편해지는 것이라고요. 다만 내가 편해지면서 뭘 잃어 가는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가 다시 라이터를 켰다. 나는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꽁초들을 바라봤다. 이 속도대로라면 1.5리터짜리 생수병 가득 담배꽁초를 집어넣고도 남을 것 같았다. 끽연에도 하나의 장점은 있을 것이라 믿는 이 남자의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에는 전 재산 300원을 털어 산 싸구려 라이터 하나 때문에 인생이 뒤집어지는 백수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장항준이 라이터를 켤 때마다 나는 싸구려 라이터 하나 찾겠다고 졸지에 기차 속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영화 속 허봉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범죄와 비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 = 비극 +시간’이라고. 그렇다면 장항준은 코미디를 좀 알고 있는 남자다. ‘눈물 나게 웃긴다’라는 이율배반적인 문장이 어째서 가능하겠는가. 살다 보면 슬퍼서 너무 웃긴 그런 순간과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성공에는 누구나 알 법한 교훈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실패담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멋진 실패’라는 말의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중엔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란 얘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2008년 ‘씨네 21’의 장항준 인터뷰 기사 제목은 “인생은 즐겁다.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니까”였다. 문득 이 남자의 실패담은 참으로 독창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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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사람들이 굳이 올레·둘레길을 택하고 완주에 집착하는 게 희한



사진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지금 필요한 건 나를 좀 버려두고 걸을 수 있는 공간…

요즘 사람들은 여러 겹의 인생 안전장치 쳐 놓아 다양한 사건 못 만나



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하나의 해독제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 카를 마르크스 


“제니 필즈는 마흔한 살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가아프가 본 세상>에 나오는 존 어빙의 말을 내게 처음 얘기해준 사람은 소설가 C였다. 마흔이 되면 뭐가 달라지냐는 서른 몇 살 후배의 말에 그는 40대야말로 장편을 쓸 수 있는 최고의 나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게 그것은 쓸쓸한 위로의 말이었다. 소설을 잘 쓸 수 있다는 말보다, 마흔 살이 앞으로 쓸쓸한 줄 알면서도 살아야 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40대가 아주 절망적이진 않아. 커트 보네것이 그랬지. 남자가 여전히 빳빳하고 섹시할 수 있는 나이가 마흔세 살이라고 말이야.”


‘여행생활자’라 불리는 유성용의 나이가 마흔세 살이라는 걸 알고, 문득 이 얘기가 떠올랐다. EBS <세계테마기행> 속의 그가 면도하지 않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곳에서나 자고, 먹고, 걷는 걸 보며 테스토스테론이 100% 충전된 수컷이 여행의 시간대로 늙어간다면 저런 평온한 모양새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생활을 하던 3년을 제외하면, 한때는 꽃게 배를 탔고, 한때는 지리산에 들어갔던 돌연한 삶. 그는 10년 가까이 이런저런 곳에 짧은 글을 연재하며 연봉 400만원으로 살아갔다. 그렇게 굽이진 세상의 길들을 직립보행하고 있었다. ‘나는 길 탐식가다. 세상의 모든 길들을 맛보리라’란 말을 남겼던 리버 피닉스가 요절한 나이는 스물셋. 마흔셋 남자는 리버 피닉스가 살았던 삶보다 20년을 더 살았고, 그가 걸었던 길보다 더 많은 길들을 홀로 걸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루한 일상의 처방전처럼 통용되는 여행에 나는 꽤 회의적이었다. 어느 날 회사를 집어치우고 사표를 내고 해야 할 것이 여행이고,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떠나야 할 것이 여행이며,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효도 또한 여행이라는 게 좀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세계의 끝에 와 닿았을 것같이 보이는 이 남자가 여행을 시켜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닌 ‘사랑’인 것 같다고 말할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욕심 많은 인간들이 고백하는 거예요. 관계의 시간을 비용으로 치를 생각이 없으니까 고백으로 시간을 빨리 선점하려는 거죠.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전 그 말이 싫어요. 마치 내가 행복하려면 애인도 있어야 되고 돈도 있어야 되는 것처럼 행복의 구성품같이 있는 사랑 같아요. 사랑하지 않고도, 연애하지 않고도 별 문제 없어요.” 


■ 내가 세상에 소비될 때, 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


문득 내게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위로를 해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우리에겐 앞으로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그것이 소설 공모에 ‘또’ 떨어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위로란 게 놀라웠다. 죽음 뒤에 희망이란 단어를 갖다붙이는 결벽이나, ‘사랑받을 권리’ 대신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그 얼굴이 너무 순해 보여서였다. 그런데 유성용의 책에서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란 유서 같은 말을 발견했다. 그 말을 누가 처음 한 것이든, 두 사람이 너무 달라 아찔했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싫어 개나 고양이 대신 상추·고추 같은 식물만 키우는 남자와, ‘오해가 내 내용이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시골 할매든 도시 아가씨든 금세 친해질 것 같은 남자가 ‘앞으로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란 말로 한 궤에 꿰어졌다. 그런 사람들이 쓴 여행기라면 그 책에 현지의 여행정보가 가득 담겨 있을 리 없다. 그의 책 <생활여행자>가 너무 외로워 사막에서 뒷걸음질쳐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걷는 사내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다양한 사건을 만나기는 쉽지 않죠. 여러 겹의 인생 안전장치를 쳐놓잖아요.


“제가 세상에 소비될 때는 자유로운 여행자 콘셉트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죠. 별점을 봤는데 세상의 귀여운 액세서리란 말이 나오더군요. 쓸쓸한 별점인 거 같아요. 세상은 나를 귀여운 액세서리로 인정해주는데 동시에 소외시키죠. 나쁜 보스가 조직원을 너 잘하는구나 인정하면서 써먹듯이. 세상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한다는 것, 그건 소외의 다른 이름인 것 같아요. 나에 맞게 알아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필요와 그들의 쓸모에 의해 소비되는 적당한 상품인 거니까.” 


‘맹물다방’의 운영자이기도 했던 유성용과 그를 표현하는 다양한 말 속에는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소박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가 놓여 있다. 오지만 다닐 것 같은 그가 실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꾸미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겨하는 얼리어답터고, 막걸리보다 와인을, 센베과자보다 딸기무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철학자는 이런 현상을 자본이 사람을 노동자로 만들어 착취하는 게 아니라, 매혹적인 상품이 되라고 부추긴다는 말로 표현했다. ‘가면이 곧 얼굴이다’란 말을 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이 자신을 ‘여행가’로 규정하는 것에 수긍한 듯했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시간이 사람을 느리게 변화시키는 데 비해, 공간은 사람을 빠르고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같단 말을 꺼냈다. 


“시간 속에서 진지해진다는 건 자기 안에 갇히는 형국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끊임없이 반추하고, 되새겨보고, 자기가 답을 모르면 모르는데도 자문자답을 하잖아요. 자기가 답을 모르면 자기 바깥에서 답을 구해야 할 텐데 말이죠. 한국 사람들은 믿을 게 자기밖에 없잖아요. 자기가 자기를 견디고 지키면서 자문자답 속에 갇혀서 지내는데 그 시간이 너무 없어도 문제겠지만 너무 많다는 거죠. 요즘 사람들이 사건을 만나기는 쉽지 않죠.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쳐놓잖아요. 각종 보험, 소셜 포지션, 하나가 무너지면 두 번째가 막아야 되고,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주식으로라도 막아야 되고, 어떻게든 안전장치가 있잖아요. 사실 사건을 만날 수 없도록 철저히 노력해요. 불안하고 보호본능이 과하게 인플레이션된 것 같아요.”


그는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오랫동안 교육받지만, 정작 그것들만으로 만날 수 없는 세상의 풍경들이 있다는 건 배울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대로 다 각별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전형적 패턴 속에 있어요. 친한 후배가 커피집을 하는데 오는 손님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한대요. ‘커피가 맛있네요. 제가 이태리 여행 때 마신 커피하고 너무 비슷해요.’ 다들 인정투쟁을 하듯 자기를 증명하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들이 가득하죠. 그래서 대화하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저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되는구나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여행 작가들 프로필을 보면 이런 식이잖아요. 광고회사 몇 년 다니다가 멋지게 때려치우고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전 그게 거만한 소리인 것 같아요. 여행마저도 자기 선택과 의지로 하려 한다는 거죠. 지리산에 와서도 풍류만 빨리 배우고 너무 도시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배경만 지리산인 거죠. 그런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그냥 나인 채로 배경만 여행지인 거죠. 전 제가 너무 답답하거든요. 정말 바깥으로 너무 나가보고 싶은 거죠. 여행을 해도 사람들이 너무 자기답게 해요. 여행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좋은 기회잖아요. 아주 소심한 사람이 연극적으로 대범하게 행동해 볼 수도 있고요. 모든 곳에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생활에서는 나답지 않게 다르게 살아보려 해도 그게 쉽지가 않잖아요. 사람들이 책을 내밀면 이렇게 쓰곤 했어요. 나를 줄이면 당신의 환한 바깥.” 


여행작가 유성용 (출처 :경향DB)


■ 세속적으로 행복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담담한 척하는 제스처를 아는 인간이었다면, 이제는 좀 담담한 인간이 된 것 같아요.


나는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상 것 다 가지고 있는 문화권력들이 참 쉽게 할 수 있는 말 같아요. 감히 생활하지 못하고 여행 쪽을 보는 거고, 감히 여행하지 못하고 생활 쪽을 보는 거고. 여행할 때 허방한 내 삶의 구석에 죄의식을 느끼니까 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거고, 생활할 때는 내 삶의 너머를 생각하니까 생활여행을 얘기하는 거고요. 히말라야가 왜 아름다운지 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사람이 살 수 없고, 생활이 없어요. 그러니까 경이롭고 신적인 느낌을 받는 거예요. 하지만 히말라야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기서 산다면 아름답다고 느끼진 않을 거예요. 히말라야에 지친 사람들은 생활에 내려올 수 있어야 하고,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넓게 열려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 같아요. 너무 명확한 금기로 구획되어 있는 게 싫어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게 왜 직업이 될 수 없냐고 하는 장정일은 이제 악이니까.”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생활을 여행처럼, 여행을 생활처럼’이란 말이 익숙한 곳이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듯 호기심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고, 낯선 곳이지만 익숙한 곳을 산책하듯 두려워 말고 경험하란 얘기가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글쎄요. 전 그게 아주 자본주의적인 모습인 거 같아요. 남들에게 불편한 밥이 되려는 게 아니라 최대한 먹기 편한 밥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 같아서 불편해요. 물론 좋은 의도와 선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조차 악도 선도 아닌 에너지 덩어리일 뿐인데, 아이들에게 읽히는 동화조차도 완전히 실용적이잖아요. 안데르센 동화 같은 건 세상적이지 않다는 거죠. 어찌 보면 그게 균형감 있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요. 인간적인 것 너머의 것이 아주 많잖아요. 공원을 만드는 것도 자연조차 인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나서서 벌이는 일 같아요. 자기 존재감은 과대 포장되어 있고, 인간적인 것이 아닌 것은 죄가 되고. 안데르센 동화와 실용동화의 차이 정도가 내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불편함인 거 같아요. 선의를 의심하진 않지만 선의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긍정성과 희망이 아니라, 그늘져 있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자기를 좀 버려두고 줄이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심지어 여행 가서 길도 올레길 둘레길을 걸어야 하고, 완주까지 해야 한다는 게 희한해요.”


백화점 1층에서 인공적인 화장품 냄새에 매혹을 느끼는 나 같은 도시 여자는 세상과 불화하는 이 남자에게 작업실 앞 호수공원의 잘 정돈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을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앉으면 의자, 쓰면 책상이 되듯 마구 굴러다니고 싶어 ‘맹물’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말할 때, 그 맹물이 ‘물’이 아니라 ‘물건’이라는 걸 알고 당황스러웠다. 


“책이라는 게 한 번 써내면 다시 안볼뿐더러, 그 시절을 마감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제게 그 시절은 이제 보관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물건이 되는 것 같아 좋고요. 과거에는 반추 전문가였어요. 예전에는 담담한 척하는 제스처를 아는 담담하지 않은 인간이었다면, 이제는 좀 담담한 인간이 된 것 같아요. 지금 모습이 좋긴 해요. 예전에 비해서.” 


나이가 드니 살아가는 게 좀 느슨해지고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사는데 내 가족들은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요. 세속적으로 행복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언젠간 끝나니까 최대한 시간을 잘 깊게 누리는 거. 고통이 오면 밀어내려 하지 말고 행복이 오면 받아들이고 다 좋은 체험이니까, 처음 만나 인터뷰하느라 느끼는 이 어색함도 좋은 체험이고요.”


사랑이 적극적인 방식의 소통이라고 하는데, 억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제게 사랑이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거든요.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많이 받은 남자에게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냉소일 것이다. 성욕 없는 평온한 삶을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한 영화감독의 얘기는 섹스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 남자의 말과 묘하게 겹쳐졌다. <여행생활자> <생활여행자> <다방기행문>처럼 딱 다섯 글자로 된 책만 쓰던 그가 쓴 가장 긴 제목의 책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이다. 그의 책 <여행생활자>가 소리 없이 많이 팔렸다면, 그건 길 위를 걸으며 풍기는 어쩔 수 없는 그리운 사랑의 냄새 때문이라는 생각을 나는 끝내 지울 수 없었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잊기 위해 첫 여행을 떠난 거였어요. 그때 내가 몽중몽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내 여행이 꿈속의 꿈 같았거든요. 고작 3, 4일짜리 레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거예요. 나와 다른 사람들, 생활들을 보면서 돌아보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이지만 이중의 현실이기 때문에 아득한 거죠. 우리는 우리 현실이 아득하진 않잖아요. 뭔가 애틋하고 그리운 사람이 있긴 한데, 막상 보고 싶진 않아요. 그걸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다시 만나서 그 변한 시간을 회복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하고 잘 만났을 텐데, 사랑 때문에 100을 가진 그 사람의 10도 못 본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보통 사랑이 적극적인 방식의 소통이라고 생각하는데, 전 합법적인 쌍방 스토킹 같단 생각도 들고. 왜냐하면 제겐 사랑이 자유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저리 가고 싶다면 당연히 저리 가게 해야 되는 거죠.” 


영화 <클로저(closer)>에서 사랑하는 주인공들 사이의 거리를 재다가 친밀함을 뜻하는 closer가 ‘문 닫는 자’라는 말을 기어이 찾아내고, 순정이란 연약한 마음이 아니라 제 속의 이유로 그 사람을 독점하려는 닫힌 욕망의 체계이며, 사랑과 상처 사이에 기생하며 꿈틀대는 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그에게 연봉 400만원으로 사는 일에 대해 묻는다면, ‘가난하게 산다는 건 신세진 일이 없어도 끊임없이 충고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 일’이란 말이 날아올 것이다. 


“예전에는 버는 돈이 얼마 안되다 보니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았어요. 담배나 사고, 기름이나 넣고, 있는 만큼, 되는 대로 썼어요. 근데 돈을 버니까 돈을 아껴 써야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몇 만원짜리 밥을 친구들이랑 먹으면서도 굉장히 아끼게 돼요. 오히려 고정수입이 생길수록 돈에 대해 꼼꼼해지고 더 집중하게 되죠. 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는데, 불편해도 참아야 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EBS <테마기행>을 하다가 최근 <6시 내고향>을 진행하거든요.”


■ 여행자의 시선 담는 ‘6시 내고향’ 방송진행 재밌어요


나는 <6시 내고향>이 맞느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6시 내고향>은 한국의 독특한 장르영화 같아요. 묻는 스타일, 대답하는 스타일이 구축된 거죠. 찍는 방식도 너무 다르고, 뭐가 옳고 그르다보다 낯설어요. 그리고 견주어보게 되는 거예요. 여행자의 시선이라는 건 그런 거잖아요. 바깥에 있다가 돌아왔잖아요. 이게 내가 사는 유일한 공간인데 마치 두 군데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 전 그게 재밌어요.” 


돈에 대한 얘길 묻다가 알게 된 이 남자의 놀라운 반전 뒤에는 <6시 내고향>이 있었다. 나는 그의 눈가에 난 주름 몇 개를 바라보았다. 유성용의 책에는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비문법이 있다. ‘바닷바람에 불리우면서’ 나는 왠지 이 구절이 각별하다. 세상 사는 일 중에, 기다리거나 의도하거나 나서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그 구절에 다 있는 듯 들린다”란 말이 있다. 아마도 그에게 전국 고향을 돌아다니며 여행 리포터로 참가하는 그 방송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시인 유하는 ‘세상의 모든 저녁’에서 ‘헤비메탈을 부르다 뽕짝으로 창법 바꿔 부르는 그런 삶은 살지 않으리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제 뽕짝을 부르는 누군가의 얼굴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이라는 진짜 시를 읽는다. 지구에서 담배 피우기 가장 좋다는 서울성곽 아래 그의 집 앞마당을 바라봤다. 새삼스레,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 한 대가 피고 싶어졌다. “인터뷰는 그냥 지어서 써주세요. 소설처럼. 어차피 다 날 오해할 텐데”라고 말하며 사라지던 그의 뒷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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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틱낫한 욕 많이 했다… 살 집 부서질 땐 평상심 대신 크게 싸워야



홍성남 신부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신부는 거주지가 불분명하고 마피아 조직이나 군대와 비슷…

순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


명동성당을 가던 길에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붙잡는 사람 없는 그곳에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성당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엔 접할 수 없는 높이 때문이었을까. 성당 천장 위에선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햇볕이 날아다녔고, 한없이 내가 작게 느껴졌다. 기도를 하다가 나는 조금 울먹였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는 천상의 소리처럼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내 죄를 사하노라!” 태어나서 신부님과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고해성사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신부가 고해성사를 듣다가 “차라리 헤어지세요!”라거나 “억지로 용서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어쩌겠는가. 몇 번 용서해야 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는 일곱번씩 일흔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화나고 욱하는 일이 많아, 성당 방 안에 샌드백을 걸어놓고 욕을 하며 마구잡이로 때렸다고 말하는 남자가 멀쩡히 신부복을 입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마주대해야 하는 걸까. ‘지각 있게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라는 스캇 펙의 말을 눈을 부릅뜬 채 인용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홍성남 신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건 스토커에게 노래까지 불러주던 천사 같은 보좌신부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히 대응하며 욕을 하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래와 욕바가지 사이의 간격이란 그런 것이어서, 하느님께 죄를 고하던 고문 같은 기도 시간이 자신과의 대화로 바뀌기 시작한 시간도 나이 마흔다섯이 지나서야 가능해진 일이라고 했다.


■ 화가 나면 화내고 미우면 미워하는 게 건강한 인간


“신부나 스님을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오해입니다. 출가하는 사람들은 독한 부분이 있어요. 나를 알고 싶은 갈망이 강하니까요.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다, 산에 들어가 도를 닦겠다고 나가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가는 거죠. 어떤 면에선 출가고, 어떤 면에선 가출인 겁니다. 전 대학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나중을 기약하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신부는 거주지가 불분명하고 마피아 조직이나 군대와 비슷해요. 반은 종교인이고 반은 군인들이고. 신학교는 육사와 아주 비슷해요. 축구를 하면 신학생들이 육사생도를 이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많이 다칩니다.” 


- 어떤 계기로 상담심리를 공부하게 됐나요?


“신학교 학생일 때 ‘밀알회’라는 곳에 들어가 쿠바 혁명사와 체 게바라를 만났어요. 저런 놈이 신부가 어찌 될까 걱정들이 많았지만 위태위태하게 신부가 됐어요. 본당 신부 되고 나서 2년 동안은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명동성당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게 청년단체 지도신부였고 그때 그쪽 사람들과 코드를 잘 맞추지 못했어요. 신학생 때 알던 것과 많이 다르더군요. 그렇게 어찌어찌 평범한 신부생활을 했는데 매너리즘에 빠진 거예요. 그때, 누군가 상담을 받으면 좋겠다고 해서 수도회 신부님께 상담을 받았던 거죠. 신부님 앞에 앉으니 내 얘길 하라고 하길래, 할 말이 없어서 화가 났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죠. 한 시간이 되니 나가라고 하더군요.” 


- 한 시간요?


“한 시간에 상담료가 5만원이에요. 신기한 건, 화를 내는 대상이 처음엔 근래 사람들이었는데 점점 과거로 내려가더군요. 결국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 얘기까지 하게 됐어요. 사제라는 모습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만 보여주려 했지, 내 맘에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기 때문에 창피하면서도 한편 시원하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상담 신부님께 인사라도 하고, 그동안 했던 얘기를 덮으려면 입막음을 해야 될 것 같아서 감사했다고 폼나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할 얘기 다 하셨죠? 그럼 이제 제가 얘길 해도 될까요? 그리고 그날부터 5년 동안 제 심리분석을 해주셨어요.” 


- 5년간의 정신분석 기간에 ‘내 안의 화나고 토라진 어린아이를 만났다’고 하신 기억이 나네요. 


“맞아요. 모든 문제가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화를 참지 말고 내라! 미우면 끝까지 미워해라. 마음이 끝까지 가야 사랑도 생기는 거라고 말했죠. 얼핏 복음서와 반대되는 말을 하니까 사제관에선 날 미쳤다고 말했어요. 평화방송에선 검열에 걸려서 하차한 적도 있고요.” 


- 검열요?


“시어머니와 불화 중인 며느리에게 시어머니 옷가지를 방에 깔아놓고 뛰면서 욕 좀 하라고 했거든요. 내가 시어머니를 밟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옷을 밟으라고 한 건데 그게 왜 문제인지, 안 그럼 화병으로 죽어요, 죽어. 상담 받는 분 중에 술주정 부리고 일 안 하는 남편을 참고 산다는 부인이 있기에 내 동생 같으면 헤어지라고 하겠다 했더니, 이혼 조장 신부라고 난리가 났었죠. 어느 분은 본당 신부 자체가 금서다, 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 금서요? 


“제 강론은 거룩한 종교인이 될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건강한 신앙인들을 위한 거예요. 고달픈 신경증 환자들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환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실 말씀이 뭐가 있겠어요. 병을 낫게 해주겠다, 그거밖에 없거든요. 12사도는 종교적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었어요. 복음서의 대부분은 그 제자들에게 하는 얘기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런 건 환자들이 들을 얘기가 아니에요. 그 원수가 정말 원수라면 감당 못할 요구를 받는 것이고, 그러면 내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 문제가 되는 거죠. 성경에서 이런 말이 나온 맥락이 있어요. 그건 융의 이론처럼 바깥에 있는 것이 내 안에도 있다는, 예를 들면 히틀러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걸 액면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란 말로 이해해서 따라 살려다 잘 안되니까 신경증 걸린 신앙인들이 참 많아요.”


■ 모든 종교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 연장선


- 가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좋은 해방구가 있지 않나요?


“고해성사는 운영자에 따라 다르게 쓰입니다. 심리 치료소가 되는가 하면 재판장이 되기도 하고요. 신도들이 힘들다고 말하면 신부들은 그럼 그분을 위해 기도하란 말을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공인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긴 게 병적인 죄책감이고 그게 더 진행되면 독성 수치심이 돼요.” 


- 좀 삐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한평생 자식도 없이 먹고살 걱정 없는 수도자들이 일반인들의 인간관계 갈등을 얼마나 세심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분들 스스로 한계를 느끼진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걸 느낀 게 가좌동 성당 신부 때였어요. 제가 5년 넘게 재개발을 보면서 거대 공룡들이 초식동물 잡아먹는 무법천지를 봤어요. 그때 처음 돈이 하느님이 됐구나란 걸 안 거죠. 감방에 가더라도 돈을 생각해요. 조합 임원 중에 감방에 갈 일이 있으면 장애인인 아들을 감방에 보냅니다. 그럼 빨리 나오거든요.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영악한 편법들이 판치는 데가 거기예요.” 


- 그때 화가 증폭된 건가요?


“그때 나한테 제일 많이 욕먹었던 게 틱낫한 스님이었어요. 그 양반이 얘기는 내 마음속에 화의 길을 만들지 말라는 건데 그게 절간에서는 가능해요. 하지만 살 집이 부서지고, 날아가는데 평상심이 어디 있어요. 작은 분노는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신 방법이 좋아요. 하지만 중자부터는 좀 달라요. 대자는 아예 전쟁을 벌여야 되는 거예요. 그건 싸워서 이겨야 돼요. 그런 놈들을 용서해주면 내가 무기력해집니다.” 


- 가좌동 성당 얘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철거돼서 황량한 그곳 성당 화단에 꽃을 심고 정리하면서 신부님이 ‘청소도 투쟁임을 배운다’고 독백한 부분이었어요. 


“그 다음 얘기는 책에 안 썼어요. 제가 치운 쓰레기는 성당 문 밖에 다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성당 안만 깨끗했죠. 재개발 지역이라 쓰레기차가 아예 안 올라왔고, 일부러 구청 사람들 보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철거업체들이 주민을 쫓아내는 방법이 그거예요. 사람들이 나가면 용역들은 그 집을 딱 절반만 부셔요. 그리고 유리창 잔해를 길에다 깔아 흉측하게 만들죠. 그럼 나머지 동네 사람들이 길 다니기가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하나 둘 집에서 사람들이 나가면 나간 집을 또 절반쯤 부셔요. 그렇게 부숴나가다가 안 나가고 버티면 그 옆집에 새벽 4시나 5시쯤 불을 지릅니다. 용역들은 재개발지역을 슬럼가로 만드는 특유의 작전이 있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주민들도 돈의 이해관계에서 입장이 전부 다르다는 거였죠.” 


■ 인간의 마음이 건강하려면 역동성이 있어야


- 철거현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성당 불빛을 좇아 동네를 걸었단 얘길 읽었어요. 성당 안은 평온했나요? 


“전 평온한 거 안 좋아해요. 인간의 마음이 건강하려면 역동성이 있어야 해요. 가만히 있는 것에는 심리적 등창이 생겨요.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은 등이 썩잖아요. 게다가 우린 처음부터 평화라는 게 없는 민족이었어요. 북한과 이렇게 대치하는 한 무의식 중에 늘 불안이 깔려 있어요. 그것을 인정하고 이겨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님들도 가끔 상담하는데 거기도 연옥이더군요. 어쩌면 바깥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요. 어떤 심리학자가 인간이 종교를 가지면 좀 더 포악해진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 종교 때문에 포악해진다? 


“주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합리화시키면 포악해져요. 종교방송에서 설교하는 거 잘 보세요. 구체적이지도 않은 얘기를 하느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분별해 말하지도 않고요. 일부 종교인들이 마귀니 사탄이니 하면서 믿음으로 협박하고 공포를 조장하기도 하고.” 


- 공포가 종교의 전략은 아닐까요? 


“인간의 불안을 먹고사는 업체가 종교하고 보험회사하고 점쟁이, 정치가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사회가 평화로우면 먹고살 게 없으니 끊임없이 양쪽에서 포를 쏴대죠. 그중에 제일 영악한 자들이 종교인이에요. 나는 종말론 부르짖는 사람들 보면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불안을 야기해서 밥벌이하는 한심한 놈으로밖에 안 보여요.” 


- 종교인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신부는 신도들의 관심을 엄청나게 받는 돈 못 버는 연예인 같아요. 그리고 심리적인 고아들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많이 상처받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고요. 종교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건, 감당 못하겠으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얘기했는데 99마리가 더 중요해요. 그 얘길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싸가지 없는 어린 양은 밖에서 쌔빠지게 고생하면 돌아옵니다. 그게 복음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 얘기잖아요.” 


- 돌아온 탕아가 신부님 자신이라고 느끼나요?


“거의 모든 종교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연장선이에요. 신은 없다! 하는 건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에요. 광신이다, 그럼 아버지의 부재감을 느끼는 겁니다. 전 신학적 신앙이 아닌 심리적 관점에서 봤고, 하느님이 참 무서웠어요. 아버지를 정말 무서워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자유로움이에요. 나는 종교가 백혈구라고 봐요.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수도자에게 거는 기대가 있어요.” 


- 성당이나 교회야말로 공동체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에는 친밀한 타인과 그렇지 않은 타인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각자 따로 살면서 필요할 때 모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 사회 공동체가 깨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전 재개발 현장에서도 공동체를 봤어요. 신부들은 그냥 한 달에 한 번 회합해서 헤어지는 존재들이었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더군요. 정의구현사제단도 조직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이 만든 말이에요. 사회분쟁에 관심 있는 사제들이 헤쳐 모이는 형태인 거죠.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은 정말 위험한 말입니다. 우린 남이에요! 서로가 남인 사람끼리 공존하는 게 가장 건강한 겁니다.” 


-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건 큰 행복인데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걸 원하지 않는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자가 종교적인 삶에 가까운 건가요? 


“근본적인 처방은 가져야 돼요. 애들이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면 실컷 사줘서 질리게 만들어야 해요. 제가 아는 비움은 지겨우니까 동생도 주고 여기저기 주는 거예요.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절간 들어간다고 갑자기 도인이 되나요?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나는 신학교 들어가는 애들한테 어차피 장가 못 가니까 여자친구 실컷 만나라고 해요. 혼자 사는 인간들은 수컷끼리만 있으면 포악해져요. 그래서 나는 남자들이랑은 절대 술도 안 먹어요. 수녀님들도 똑같아요. 나 같은 노인네가 가도 부드러워져요. 그게 음양의 조화예요. 균형이 중요해요.” 


- 신부님은 천당 가실 것 같나요? 


“천당 간다는 보장은 없어요. 천국인데 매일 기도만 하라고 해봐요. 찜질방처럼 뜨듯한 연옥에 앉아 화투치는 게 낫지. 예전에는 죽음 이후의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어요. 라틴어로 ‘Hic et nunc(힉 앳 누크)’라고 해요. Here and now. 예수님도 산상설교에서 행복 선언 하셨잖아요. 지금 행복하지 않고 우울하면 천당 간다고 행복해지겠어요?” 


홍성남 신부가 카톨릭회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 일단 나를 먼저 만나야 하느님도 건강하게 만나게 돼


- 신부나 목사님의 믿어라,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 저는 늘 의심스러웠습니다.


“만나본 적 없으니 당연히 의심을 하죠. 어떻게 보면 종교도 억지가 많아요. 그래서 믿음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자책하게 되는 거고. 히틀러가 독실한 신자였잖아요. 측근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어요. 어떤 게 진정한 신앙심인지 짚어봐야지. 일단 나를 먼저 만나야 하느님도 건강하게 만나게 돼요. 건강한 이기심은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다는 겁니다. 근데 성격 장애, 병적인 이기심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죠.


-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건가요? 


“성격은 안 바뀝니다. 장미가 백합이 되진 않아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할미꽃인데 장미가 되고 싶어 해요. 많은 종교들이 그게 회개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가톨릭의 성인, 멘토? 그들과 같아지면 안돼요. 나를 피워야지, 내가 왜 백합이 돼야 해. 민들레고 제비꽃이라도 그것이 시들고, 활짝 피고는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닭이 독수리가 되는 게 아니고, 새장 속을 나와 하늘 높이 나는 게 구원이라고 생각해요.” 


- 종교인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확실히 몸이 고달프고 돈도 적게 벌죠.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건 너무 기뻐요. 카푸치노 안 먹는 대신 자판기 커피 마시면 되는 겁니다. 근데 열성적인 수도자들은 아예 마시지 말자예요. 나는 수도원 체질이 아니고 그냥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저렴하고 맛있게 살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포 미드나잇>의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문득 18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오직 신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부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역시 그러한 것이었다. “나 혼자 기도할 땐 수없이 하느님을 봅니다. 워낙 갈망하니까 무의식이 주님을 보여준 거죠. 하지만 그건 상상임신 같은 거예요. 제가 아는 깨달음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생깁니다.” 어쩌면 신은 그렇게 존재들의 ‘사이’에 깃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나 내가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 말이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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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치유는 사실상 불가능, 상처의 흔적일 뿐인 흉터에 집착 말아야



 사진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여성도 아이들도 우울증은 흔한 병…

“위로는 상대에게 내 시간을 선물하는 것”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어른 마음까지 보듬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처음 던진 질문은 “아니, 왜 저를 인터뷰하시려고요? 제가 유명인도 아니고!”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너의 그림자를 읽다>란 책을 읽고 있었다. 동생의 자살로 괴로워하던 한 여자가 ‘왜?’라는 의문을 품고 동생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심리부검’이란 말을 만났다. 책의 부제가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자살생존자’란 말도 처음 보았다. ‘처음’이란 말에 이토록 세게 부딪치기도 처음이라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다. 친구가 우울증에 걸려 죽음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힐링이란 말이 백화점 전단지처럼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나는 정작 위로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서천석의 글을 보았다.


“위로는 상대에게 내 시간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충분히 옆에 머물면서, 당신이 내게 중요하다는 것을 시간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위로입니다. 어떤 보상이 없더라도, 당장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시간을 기꺼이 쓰겠다는 마음이 상대를 위로해줍니다.”


어떤 글은 ‘읽었다’가 아니라 ‘다가왔다’라는 동사를 써야 마땅하다. 그것은 서천석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글이었다. 귀로 들어야 할 말이 내겐 글이 되어 다가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은 백 몇 십 개의 글을 한자리에 앉아 꼼짝없이 읽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다면 상대편이 나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나를 욕하며 깨끗이 잊게 해주는 편이 더 속 깊은 행위라는 글이 눈에 보였다.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나쁜 역할을 받아들이는 게 사랑 이전에, 한 사람의 어른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낙관주의는 그저 정신 승리가 아닙니다. 가능성도 없는 일을 나 혼자만이 ‘잘 될 거야’ 하며 버티는 마음도 아닙니다. 지더라도, 다시 한 번 도전하려는 태도입니다.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존엄성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라는 글을 읽다가 그것을 타이핑했다. 친구에게 주고 싶었다.


막 사랑에 빠지면 스쳐지나가던 유행가 가사들이 달콤한 운명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똑같은 가사는 가시처럼 박힌다. 어떤 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안착할 때, 삶은 ‘나’와 ‘너’를 넘어 ‘우리’로 묶인다. 당장 그를 만나고 싶어 메일을 썼다. 이 남자가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같은 책을 쓴 ‘소아’ 정신과 전문의란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맙소사! 나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애완동물조차 키워본 적 없는데! 어떤 질문을 해야 한단 말인가.


■ 우울증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이중성


“우울증은 여성의 경우 14~16퍼센트에 달해요. 흔한 병이죠. 유교사회에선 고통을 드러내는 게 덜 된 인간의 모습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정신이 아프면 그걸 의지부족이라고 봅니다. 그런 문화에서 어릴 때 제일 먼저 읽는 책이 ‘명심보감’이에요. 명심보감이란 게 마음을 살피고 마음을 수련해서 밝히자는 책입니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렇지 못한 문화에 살고 있어요. 우울 성향이 있는 어느 판사분이 ‘인간은 왜 사는가, 죽는가’ 같은 존재론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불교 경전, 명리학 등을 공부하다가 마지막으로 정신과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고민 끝에 약을 먹기로 했죠. 훗날 그분이 제게 이러시더군요. 이런 방법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공부했는지 모르겠다구요. 하하. 제 처방은 ‘항우울증제’였습니다.”


그는 우울증은 치료만 받으면 경과가 좋고 잘 낫는 병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약 먹는 것에 거부감이 많은 것 같단 얘길 꺼냈다.


“우리 문화에선 약을 먹으면 단번에 효과를 봐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어요. 한약도 길게 먹어야 두 세 첩이고, 침 문화가 있어서 주사 맞는 것도 좋아하구요. 전 세계적으로도 링거 맞는 문화는 별로 없습니다. 서양에선 갑상선약이나 고혈압약처럼 약을 ‘조절’ 기능에 초점을 맞추죠. 고혈압약을 오래 먹는다고 몸을 해치지 않아요. 우린 항생제나 진통제처럼 부작용이 강한 단기간 형태의 약이 서양식 약의 표본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양약은 오래 먹으면 안 좋다는 인식이 생긴 거죠. 하지만 우울증약인 프로작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이에요. 약을 먹으면 졸리다거나, 멍하다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어떤 안 좋은 느낌이 들면 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사람 심리 때문이구요. 자신은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니까요.”


자분자분 얘기하는 그의 얘길 듣다가, 만약 정신과 의사에게 환자를 상대할 때 내야 하는 목소리 라이선스 같은 게 있다면, 이 남자의 목소리가 정답이 아닐까란 엉뚱한 생각을 했다. <별밤> <두시의 데이트>의 전성기 시절, 더블 데크로 음악을 녹음하며 라디오 디제이의 꿈을 꿨던 소년은 MBC <여성시대>의 상담코너에 참여하며 양육문제와 가족문제 등을 상담했다. 그러다가 ‘정신’의 문제를 세심히 다뤄줘야 한다는 어느 피디의 제안으로 <마음연구소>를 진행하게 되었다. 방송사 장기 파업으로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의 마음에도 갈등의 골이 깊이 파인 때였다. <마음연구소>는 몸의 건강을 다루던 <라디오 동의보감>과 <라디오 닥터스> 같은 프로그램의 후속 방송이었다.


■ 흉터에 집착하면 인생이 상처에 얽매인다


“지금 달려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데 나는 누군가, 행복이 뭔가 하는 게 사치스러운 고민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처음 <무한도전>을 보니까 30대쯤 된 사람들이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는 도전을 한 다음에 누가 이겼냐 졌냐를 따지며 기뻐하더군요. 상당히 인기를 끌겠구나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니까요.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사는 게 괴로운데 다행히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도 저렇게 살고 있으니 그게 위로고 재미인 거죠. ‘1박2일’의 야외 취침이나 까나리액젓 먹는 복불복 게임도 같은 것이라고 봤어요. 이런 프로그램의 웃음은 씁쓸함을 동반해요. 씁쓸하기 때문에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거죠. 또 허무하니까 월요일에는 ‘힐링캠프’를 보고.”


텔레비전에서 ‘대신’ 놀아주고, 힐링도 텔레비전이 ‘대신’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티비와 나의 일대일 대화죠. 스마트폰과 나. 정보와 나. 지금 개별화, 고립화 현상이 심각해요. 고립되어 있지 않고 일상에서 내 느낌이 공동체에서 통하고 이 공동체가 큰 공동체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있으면 티비나 SNS에도 매달리지 않겠죠. 지금은 개인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소통도 개인적 차원에서 카카오톡, 트위터로 하는 겁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공동체 지수(공동체 생활로 위안을 얻고 정체성에 도움을 받는 지수)가 33위예요. 그런데 문화적으로는 아직 개인화가 안 되어 있어요. 남이 자기를 타당하다고 인정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인 겁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금의 40대가 20대의 삶을 이해 못한다거나, 60대가 40대의 삶을 전혀 이해 못한다는 거예요. 심지어 자기도 자기세대를 이해 못해서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모를 상황에 처해 있어요.”


의학이며 과학기술이 이런 속도로 발전하면 인간 수명이 120살까지 대폭 늘어날 거란 기사를 보다가, 미래의 가장 큰 트렌드가 자살이 될지도 모른다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 상처 받는 게 기정화된 사실이라면 우리는 상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굳이 상처를 주고 그것을 위로하려는 게 문제예요. 원인과 결과가 뒤집어진 거죠. 힐링은 무척 어려운 개념이에요. 정신과에서는 치유란 말도 잘 안 써요. 치유가 된다기보다는 어떤 것은 묻고, 어떤 건 가진 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게 정신과 의사의 일입니다. 상처가 나으면 흉터가 되죠. 사실 흉터는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흔적일 뿐이에요. 흉터까지 없애야 그것이 치유일 텐데,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흉터에 집착하면 인생이 상처에 얽매이게 됩니다. 어제 저녁 못 먹었다고 지금 그것까지 채워서 오늘 다 먹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내게 ‘시간이 약이다’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시간 앞에 묻히고, 시간과 함께 묻는다는 뜻이다. ‘묻는다’란 말을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는 모든 상처가 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 역시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 방에 훅 간다’란 말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이 말이 우리 사회의 선동적인 표어처럼 느껴지는 건 언젠가부터 이 사회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부터인 것 같았다. 올라갈 수 없다는 열패감에 빠진 사람이 이미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며 상승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상승하는 쾌감’은 누군가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면서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유명한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이 사회에 누적된 분노가 높기 때문이 아닐까.


“몇 년 동안 한 개인을 최대한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됐어요. 최근 유행어 중에 ‘캐릭터’라는 말이 있어요. 요즘 ‘허당’ ‘초딩’ ‘돌직구’처럼 단순한 캐릭터가 인기 있는 건, 그래야만 게임 캐릭터처럼 소비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복잡한 존재가 되면 소비가 어려워지니까요. 연예인 역시 각자의 삶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 그것에 충실하길 바라는 거예요. 하지만 역시 소비재이기 때문에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거죠. 요즘 같은 세상에선 유명해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 정말 심각한 건 소외지역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


문득 겸손이 인격이 아니라 이 시대의 스타일일지 모른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내면의 성숙함이 전제되지 않은 채 스타일로 겸손을 채택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립되고 매장되지 않기 위해 어느덧 겸손을 무기처럼 장착해야 하는 사회가 된 건 아닐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가 ‘다르다’를 ‘틀리다’로 바꿔 말하는 어법을 가지게 된 게 무엇 때문인지 안타까웠다.


“1번을 찍든 2번을 찍든 선택하지 않은 걸 못 받아들인다는 점에선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독립된 다른 존재인데 때려서라도 바르게 해야 한다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어른들도 많아요. 애들이 잘못하면 체벌을 통해서라도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70~80퍼센트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체벌을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건 개인의 민주주의 의식이나 아동 인권 차원의 말이 아니에요. 이건 철저히 아동발달에 대한 연구 결과이고, 학자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아이 키우는 문제에선 체벌이 아니라 아이를 존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같은 데에도 매일 나오는 얘기예요.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진지하게 살피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결국 우리가 어릴 때 어떻게 키워졌는지에 영향 받아요. 지금 우리 아이들이 영향 받는 가치관으로 미래가 형성될 겁니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얘기죠.” 


얼마 전, 선행학습 금지법에 대한 기사를 본 터라 요즘 아이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소아의 우울증은 어른처럼 잠을 못자거나 밥을 못 먹는 형태가 아니에요. 짜증과 신경질이 늘고, 특히 남을 괴롭히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한 해 두 해 눈에 띄게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치료가 우선이었어요. 근데 요즘엔 학원을 갔다 온 다음에 치료 스케줄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에요. 부모 스스로가 아이는 안정되게 살게 하고 싶은 욕구가 크고, 당장 아는 방법이 공부를 시키는 것뿐이니까 그냥 공부를 시키는 겁니다.


그는 사교육 과잉 때문에 생기는 아이들의 학습 스트레스와 정신과 문제는 결국 강남, 서초, 목동 지역 아이들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전체로 치면 15퍼센트 정도라는 것이다.


“아동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심각한 건 소외지역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입니다. 일례로 안산은 인구가 100만이나 되지만 소아정신과가 없어요. 다문화, 조선족가족, 한부모 가정 등의 아이들이 3분의 1인 이 지역은 아이들이 한 대만 맞아도 난리가 나는 강남과 비교해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어요.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아동 학대 사례도 훨씬 더 많이 보고되고요. 복지부에서 ‘리스타트’라고 저소득층 지역의 정신건강 문제를 도와주는 서비스 등을 하고 있긴 해요. 하지만 더 활성화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지켜본 흥미로운 점은 화분에 물을 안 주다가 물을 한 번만 줘도 잎이 확 살아나듯이 오히려 이런 지역 아이들이 조금만 도와줘도 치료가 훨씬 더 잘 된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주요 이슈가 더 아래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 (출처 :경향DB)



■ “ 커서 어떻게 살고 싶니” 물을 수 있는 여유가 그립다


서천석이 심리상담을 통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도와준 건 이런 신념에 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바라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내겐 그저 ‘아이’가 아니라 내 안에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린아이까지를 포함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친구가 푸념처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월급의 반은 맛있는 걸 사먹느라 쓰고, 나머지 반은 다이어트를 위해 몽땅 써버리는 것 같다고 말이다.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런 우화들은 차고 넘친다. 돈을 벌기 위해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는 어른들은 돈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다시 지불하니까. 이 남자를 만나기 전, 행복하기 위해 꼭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벌린다는 이 시대 멘토들의 말이 꼭 진실인지를 되묻는 글을 보았다. 정말 절실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정말 절실한 전사가 왕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는 글을 읽다가 잠시 멈췄던 기억도 난다. 단 한 명이 가질 수 있는 것을 원하느라 스스로 자학하기보다 일상의 행복을 꼼꼼히 챙기는 삶에 대해 말하는 이 남자의 눈이 따뜻해 보여서였다.


내가 읽었던 <너의 그림자를 읽다>의 주인공은 결국 동생의 마음을 부검할 심리학자를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심리부검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고통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자살이란 심리적 고통입니다. 하지만 미리 경고를 드려야 하겠군요. 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몇 개의 정답만을 놓고 살아온 게 아닐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답’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어린 시절 어른들이 별 생각 없이 아이에게 던졌던 질문은 마땅히 이렇게 고쳐져야 했던 건 아닐까.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가 아니라 “넌 커서 어떻게 살고 싶니?”로 말이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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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잘 쓰는게 아니라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단 걸 알았죠



사진 _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복선 많이 넣으면 잘 쓴 것처럼 보여…

난 셰익스피어보다 글 많이 써, 그러니 내 드라마가 예술일 순 없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2세는 ‘형제 살해법’을 칙령으로 공표했다. 아들 중 누구라도 술탄의 왕좌를 물려받으면 즉시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죽여야 하며, 종교 지도자와 법률학자들이 이 절차를 이미 승인하고 허용했다는 말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이방원은 아들 ‘이도’(세종)에게 권력에는 독이 있어 그것을 밖으로 뿜지 못하면 안으로 썩는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피 냄새가 가신 적 없는 아비의 자리를 보고 자란 이도는 자신의 유약함을 저주하며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렇게 권력의 독을 안으로 품어 ‘문’(한글)으로 치세하려던 이도는 자신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결국 왕이란 사람을 죽이는 자리란 말인가!’라고 통탄하다 “네가 하려는 일이 인간의 길이라 생각하느냐!”라고 되묻던 아비의 말을 끝내 기억해낸다. 왕의 마음이 지옥이어야 겨우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드라마가 그러므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인 박상연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로열패밀리>의 원작 제목은 ‘인간 증명’이다. 원작은 주인공이 악마가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천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인간 증명의 예시가 될 수 있음을 드라마를 통해 증언한다. 나는 <선덕여왕>의 주인공이 제목대로 ‘덕만’(선덕여왕)이 되지 못하고 ‘미실’이 된 것은 고현정의 놀라운 연기 때문이 아니라, 박상연이라는 사람이 가진 ‘생에 대한 유별난 감각’ 때문이라고 예감한 바 있다. 그가 ‘착한 사람이란 아직 나쁜 상황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헤어진 애인의 말을 뾰족이 기억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 희망이나 사랑이 아니라, 공포나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제야 머릿속에 <선덕여왕>이나 <뿌리 깊은 나무>와 <고지전> 같은 작품들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신’이 되어 움직이는 세계에서 이도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덕만의 마지막 말은 ‘잘될 거야!’가 아닌 ‘버티자!’로 끝나야 했다는 것 말이다. 나는 행복을 다행이라 바꿔 부르는 남자들을 몇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말’ 비슷한 것이라도 되게 만들기 위해 쓰는 안간힘도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작가 박상연이 말하려는 건 결국 ‘희망 없음’이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나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 문학계에서 영화와 드라마계로 따라온 우연의 여신


그러나 이토록 어두운 세계관을 가진 박상연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탄해 보인다. 그는 1996년 이문열 선생의 추천으로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주위에 가장 젊은 작가가 김영하였는데, 그마저 박상연보다 나이가 네 살 많다. 그의 처녀작 ‘DMZ’는 1998년 발생한 김훈 중위 사건의 예고편처럼 받아들여졌고, 박찬욱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영화 ‘JSA’가 개봉해 주가를 높이던 2000년 부산에서 그는 <대장금>의 작가 김영현을 만난다. 운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나! 그가 문학계에서 영화계로, 드라마계로 오는 긴 행로는 분명 우연의 여신의 선한 미소에 이끌린 듯했다. 게다가 이 모든 이야기의 화룡점정은 박상연이 <고지전>이나 <공동경비구역 JSA> <화려한 휴가>처럼 인간의 가장 극한 폭력과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적확한 언어로 구사해 낸다는 점이다. 이때, 그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평생을 독신으로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 같은 끝내주는 연애소설을 쉬지 않고 써냈다는 아이러니를 상기시킬 만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찰리 채플린이다. 나는 다짜고짜 어쩜 그리 운이 좋으냐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결국 이 질문은 당신의 진짜 삶이 궁금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동아일보에 중편만 써서 응모했는데 계속 낙방했어요. 쓰다 보니 자꾸 양이 늘어나는 게 병이라, 중편이 장편 됐고 그걸 ‘오늘의 작가상’에 응모했고요.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최종심에서 떨어졌어요. 제가 전화로 울먹이는 것 같으니까 당시 심사위원이던 이문열 선생이 절 불렀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미 하늘을 한 번 만져봤기 때문에 작가인생 포기 못할 거라고. 어쨌든 등단을 하긴 했어요. 근데 친구들은 ‘민음사’가 무슨 절 이름인 줄 아는 녀석들뿐이었고, 제 학점이 당시 선동열 방어율과 비슷해서 취직이 잘 될 리 없었고요. 때마침 IMF까지 터진 거죠. 공무원 시험 봐도 떨어지고, 택시기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자격증 시험에서 또 떨어졌어요. 공부가 별로였어요. 제가 중대 안성 나왔거든요. 서태지가 은퇴했을 때라, 절필보단 은퇴가 멋져 보여서 글쓰기에서 은퇴했는데 마침 김훈 중위 사건이 터지고 신문사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한 거예요. 하루에 인터뷰를 17개나 한 적도 있어요. 근데 김훈 중위 사건의 디테일이 제 소설과 비슷하다고 경찰서에서 멀리 가지 말라는 경고성 전화가 온 겁니다. 그 얘길 해준 친구에게 피해가 갈까봐 무지 걱정됐었죠. 사실 심재명 대표에게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정지영 감독이 ‘DMZ’를 연출할 거란 얘길 듣고 기뻤어요. 근데 뜬금없이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를 연달아 망한 감독이 제 작품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아! 이건 뭐지? 전 두 영화 다 진짜 재미없었거든요.” 


■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 맞추기


문학상 최종심에서 떨어진 작품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달랑 망한 영화 두 편을 채워 넣었던 감독을 만난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그가 드라마 작업을 함께하는 작가 ‘김영현’을 만난 과정이 궁금했다. 


“제가 돈 벌고 나서 부산에 콘도를 샀어요. 당시 나우누리 상퀴(상식퀴즈방)에 빠져 있을 때라, 동호회 사람들이 가끔 그곳에 놀러왔어요. 동호회 출신 중에 훗날 <드림하이>의 작가가 되는 분이 아는 언니가 있는데 드라마가 안 풀려 힘들어하니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그게 김영현 작가였던 거죠.” 


퀴즈 ‘풀던’ 백수와 드라마가 너무 ‘안 풀리던’ 작가는 그렇게 만났다. 박상연은 잘나가는 영화 때문에 부산이 내 것 같았고, 김영현은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없는 드라마 때문에 세상이 등 돌린 것 같은 때였다. ‘자매’도 아닌데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이들의 비결이 내심 궁금했다. 나로선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한 대본을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김영현 작가는 약점이 거의 없는 분이세요. 반면에 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게 분명하고요. 그럼 이건 상연씨가 써야겠네 그렇게 나누는 거죠. 근데 그것도 초반에만 그랬고, 1회를 앞과 뒤로 나눠 쓰거나, 1회와 2회를 번갈아 쓰기도 해요. 좀 쉬운 부분을 맡았으면 좋겠다 막 기도하면서 지금은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요.”


내가 “가위바위보?”라고 되묻자 “가끔 동전도 던지고!”라는 말이 날아왔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 맞추기예요. 방영이 시작되면 작가가 24시간마다 잠을 잘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요. 나한테 딱 3시간만 더 주면 대본을 훨씬 좋게 고칠 수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넘겨야 할 때가 있어요. 밤중에 연애편지 쓰고 아침에 보면 얼마나 낯뜨거워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딱 그 심정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을 잘 써야 해요. 20개의 문제를 받았는데, 그 시간 안에 4문제를 완벽하게 풀고 16문제 틀리면 잘못된 거죠. 대부분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사전제작을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에 대한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그는 배우와 제작진의 실시간 교감을 말했다. 배우의 연기를 보고 강한 피드백으로 캐릭터가 점점 강화되는 걸 보는 게 드라마 작가가 느낄 수 있는 쾌감이란 말도 덧붙였다.


“사전제작에 대한 제 생각은 꼭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에요. 전 시청자와 교감하면서 쓰진 않아요. 어떤 캐릭터를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애초의 주제와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거니까요. 제작진과 배우, 작가의 교감은 굉장한 경험이에요. 제 경우 너무 많이 쓰고 들어가면 그 즐거움을 포기하는 겁니다. 50부작이면 한 10개 정도 쓸까? 대신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공을 많이 들이는 스타일이에요.”


그가 잠시 담배를 집어 들었다. 


“어느 순간, 잘 쓰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친구가 문제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야! 책임지는 게 뭐 중요해, 책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지. 그 순간 안 거예요. 조직에서는 누군가 책임을 졌다는 걸로 마무리되는 거고, 그 친구는 책임지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 조직에 살아남는 거죠. 굉장히 미묘한 차이이긴 한데 글 쓰는 것도 그런 측면들이 있어요.”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극본을 맡았던 작가 김영현과 박상연 (출처: 경향DB)


■ 캐릭터와 스토리가 충돌할 땐 스토리로 간다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어떤 건지 궁금했다.


“복선을 많이 넣으면 잘 쓴 것처럼 보여요. 제 작품을 예로 들면 민망하지만, 가령 선덕여왕에서 극 초반 덕만이 서역에 있을 때 상인들에게 받은 화주라는 게 나와요. 렌즈 같아서 그걸로 햇볕을 모아서 태울 수 있죠. 그리고 곧 사라져요. 그러다가 38회에서 세필을 보는데 덕만이 이때의 화주로 확대해서 보는 거죠. 복선의 간격이 넓을수록 사람들은 작가가 모든 걸 꿰뚫어 썼다고 생각해요. 정답은 모르겠지만, 방향은 맞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정말 잘 쓰는 것보다 사람들이 잘 쓴다고 믿는 게 더 중요해요.”


나는 그가 드라마를 쓰기 위해 직접 쓴 체크리스트가 있다는 얘길 떠올렸다. 


“영국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면서 1달러를 부치면 비법을 편지로 동봉해 보내겠단 얘기가 있었다더군요. 그래서 누군가 그 편지를 보고 1달러를 부치면 답변이 ‘저처럼 하세요!’였다는 거예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누군가 부자가 되었을 거라곤 생각 안 해요. 하지만 그걸 쓴 저자는 분명 부자가 됐죠. 같은 거예요. 작가는 직관에 의해 쓰기 때문에 평소 아카데믹하게 정리하지 않잖아요. 근데 책을 쓰려면 정리해야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쓰는 실력이 늘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차원에서 저만의 작법책을 썼어요. 주인공은 욕망이 있나? 그의 장애물은 거대한가? 내가 정말 쓰고자 하는 걸 쓰고 있나! 체크리스트가 100개 좀 넘는 것 같네요. 제가 영어과를 나왔는데 혼비의 25형식이라는 게 있어요. 그때, 문장을 25형식으로 통일할 수 있다면 스토리는 왜 못하겠나 싶었던 거죠. 그래서 직접 스토리의 유형을 나누기 시작했고 17형식까지 나와 있는 상태예요. 최근에 <분노의 윤리학>을 보다가 형식이 하나 더 늘어난 거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회사 ‘리치 글로벌’은 2012년 10월 파산했다. 이런 복잡요란한 세상에서 창작은 자주 현실의 음란함과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창작하는 사람들의 절망은 그것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더구나 드라마는 절대 다수가 본다는 매체의 엄청난 폭발력 때문에 작가 스스로 가져야 하는 딜레마도 깊을 것이다. 


“드라마의 화제성은 캐릭터에서 나와요. 하지만 시청률은 스토리에서 나옵니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대중과 발언하지 않는 대중의 차이예요. SNS 착시효과 같은 건데, 소수의 발언이 너무 커서 침묵하는 다수의 얘길 못 듣고 내가 하는 얘기가 옳다는 신념이 강화되는 거죠. 김 작가님과 제가 정해놓은 원칙이 있어요. 캐릭터와 스토리가 충돌할 땐 스토리로 간다는 것이죠. 스토리로 간다는 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로 돌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어요. 1회 시청률이 4%도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이 되는 거죠. 보통 시청률이 안 나오면 독을 타요. 그걸 이곳에선 ‘독 3종세트’라고 부르는데 울고, 때리고, 욕하는 데 장사 없다는 거죠. 하지만 우린 작품성으로 가자고 원칙을 세웠어요. 제가 시청자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두려워하죠. 시청률은 오전 6시40분에 나옵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 사랑한다고 떠들던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스코어가 매주 나온다면 정치를 그런 식으로 하진 않을 겁니다.” 


시청률은 어쩌면 그에게 직업윤리와 연결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그에게 드라마가 예술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가 셰익스피어보다 많이 썼어요. 크리에이터로 일한 것까지 치면 양으로만 원고지 2만9000장을 쓴 거죠. 이렇게 많이 쓰는데 그게 예술일 순 없죠. 사극에도 PPL이 있다는 거 모르실 거예요. <뿌리 깊은 나무>를 할 때, ‘뿌리 깊은 샴푸’라는 제품이 PPL로 들어왔어요. 가령 이런 거죠. ‘김 나인, 자네는 어찌 그리 머릿결이 좋소?’ 그럼 그 샴푸의 주성분인 백향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요.


■ 사람들 소통 많으면서 자기 자신과는 소통 전혀 안 해


김영현과 박상연의 차기작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물었다. 


“<뿌리 깊은 나무> 이전 이야기가 될 거예요.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 시기에 활약했던 풍운아들의 이야기인데 내년 상반기에 방영될 것 같고 제목은 미정입니다. <아이리스>를 쓴 김현준 작가가 친구인데,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니까 제목을 ‘파종’이나 ‘묘목’으로 하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그는 한참을 웃다가 무척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최근에 40대가 20대 극장 점유율을 앞섰다고 해요. 세계적으로도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던데. 전 20대들의 영화 관람률이 떨어지는 건 스펙을 쌓느라 바쁘고, 돈이 없어서는 아닐까 생각했어요. 근데 이유가 극장에선 휴대폰을 켜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더군요. 드라마가 방영되면 어째서 실시간 검색어로 드라마 주인공 패션이나 이름이 뜨겠어요? 문화의 축이 다시 움직이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마셜 맥루한 식으로 말하면 이 세대에게 휴대폰은 손가락의 확장, 여섯 번째 손가락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극장이란 공간조차 이들에겐 휴대폰을 못 끄는 희귀한 공간이 된 셈이다. 끝없이 소통하는 이들에게 소통은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던 박상연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소통’과 ‘자기계발’이라는 게 나로선 흥미로웠다.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너무 소통해서 자기 자신과는 소통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아요. 전 제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제 취향이 고급인 줄 착각한 거죠. 근데 로마네공티를 마시나 마주앙을 마시나 거기서 거기인 거예요. 1억원짜리 오디오나 내 방에 있는 280만 원짜리 오디오나 다를 게 없고요. 입맛은 후지고 ‘막귀’였던 겁니다. 하하.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힘든데 그럼 이 고통의 대가는 어디서 찾아야 하지라고 물으면, 기껏 모범택시 타고 밥값 안 아끼는 정도인 거예요. 한심하죠. 요즘 직업적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시간의 유한성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돼요, 왜 70까지만 살고 싶단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금은’ 죽고 싶지 않은 거거든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게 ‘지금’밖에 없는데, 그럼 죽기 싫은 거 아닌가? 예전에 한석규씨랑 얘길 하는데 갑자기 ‘인간은 평온해질 수는 없는 존재인가 봐요’라는 거예요. 그 양반이 나이가 50인데 50이 되어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는 건가 싶었죠. 어릴 때는 그때가 되면 다 안정되고 평온할 줄 알았는데. 얼마 전까지 마지막 꿈은 내 이름으로 된 ‘삼국지’를 쓰는 거란 말을 했어요. 지금은 그것도 만들어진 답 같고 잘 모르겠어요.” 


나는 다양한 장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겪은 후 결국 ‘모른다’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른 사람의 말이 갖는 천근같은 무게를 생각했다. 섣불리 나는 너를 ‘안다’라 말하지 않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후의 삶과, 그렇기 때문에 쉽게 위로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삶에 대한 것들까지. 거장들의 작품이 점점 단순해지는 건 어쩌면 ‘나는 안다’란 말이 ‘나는 모른다’로 회귀하며 벌어지는 간격의 진폭은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선 연신 싸이가 ‘알랑가몰라~ 알랑가몰라’를 외쳐대고 있었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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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밥 먹을 땐 먹고, 쉴 땐 쉬고… 개처럼 살며 ‘현재를 붙잡아라’



사진 _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가정 포기하려면 광고를 왜 해요”

모든 사생활이 모든 복무에 우선한다는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 닮아


누군가 카푸치노의 풍성한 거품을 보고 구름을 떠올렸다면, 맑은 하늘 위의 흰 구름일 것이다. 그런데 기상청에 전화했더니 일주일 안에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구름을 수렵하기 위해 떠나야 한다. 한 남자가 카푸치노 잔에 구름을 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이나영이 나오는 카푸치노 광고 ‘훔치고 싶은 거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제품의 실제 거품이 지중해 도시 한복판의 구름처럼 풍성한지 아닌지는 2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앤디 워홀이 광고주에게 들은 살벌한 충고도 ‘스테이크가 아니라 스테이크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팔아라!’였다. 


나는 카피라이터를 ‘세상과 타협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웅현은 ‘좋다’란 말을 ‘나쁘지 않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말하려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쉽게 타협하지 않은 덕에 박웅현이 만든 광고 중에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광고가 있다. “당시에는 ‘우리가 통신회사지 무슨 청바지 회사냐?’라고 엄청 욕먹었던 광고죠.” 그는 ‘잘 자 내 꿈 꿔’ 같은 추억의 광고도 만들었다. “그 광고 만들고 나선 너 인형 팔려고 그러지? 인형회사 지분 있느냐는 소릴 들었어요.” 박웅현은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광고들을 성공시켰다. 광고가 ‘광고주의 문제해결 방식’이라고 말하는 그는 KTF적인 생각과 SK텔레콤적인 생각 사이에서 많은 문장들의 쉼표와 조사들을 뜯고 채워 넣었을 것이다. 


나는 유독 시간에 엄격한 박웅현을 위해 2시간 먼저 인터뷰 장소 근처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 같은 천하의 귀차니스트가!) 하지만 ‘10시3분은 10시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이 남자의 인터뷰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에 대한 정의는 이미 밀란 쿤데라가 말했다. 광고는 현대시다. 그러므로 나는 광고인 박웅현에 대한 첫 인상을 급조한 졸작 하이쿠로 말하겠다. 앗! 하고 만나는 순간, 헉! 하고 감동받았고, 앗! 하는 순간 끝나버렸다. 그가 1500장짜리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15초짜리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란 걸 진즉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 엄친아 사회에 반기 ‘전.엄.연’을 만들려는 그


먼저 박웅현의 딸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쓴 책 <인문학으로 콩갈다>에서 본 어떤 문장 때문이었는데, ‘Best One’보다는 ‘Only One’이 되겠다고 말할 줄 아는 청춘이 좋아 보여서였다. 이 책에서 “널 키우는 건 내 이기심 때문이야. 무엇보다 넌 업그레이드 잘되는 재밌는 장난감이거든”이라고 말하던 박웅현이 어린 딸에게 ‘실패는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하며 던지는 위로는 그가 아픈 청춘들 모두에게 던지고 싶은 말처럼 느껴졌다. 넌 이미 대단해! 


“우리나라는 엄친아의 사회예요. 제가 ‘전.엄.연’을 만들려고 해요. 전국 엄친아 반대 연합! 엄친아는 점을 바깥에 찍어놓고 넌 왜 이 점처럼 안 생겼어? 라고 묻는 거예요. 저한테 원빈 되라고 하면 저는 자살해요. 근데 저한테 원빈 되라고 하는 거잖아요? 이 얘긴 자존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예요. 점을 바깥에 찍어놓는 사람들에게 발달하는 건 눈치입니다. 누구는 요즘 엄마들을 아동학대죄로 다 고소해야 된다는 말도 하더군요. 사회 전체가 이렇다보니 정상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다가도 사람들이 변해가더라고요. 애들도 이제는 학원 안 가면 놀 데가 없다는 말을 해요. 집단 광기 같아요. 언젠가 경향신문에서 ‘10대라는 형벌’이란 기사를 읽었어요. 그게 도끼자국처럼 박혔어요.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찬란해야 할 10대가 형벌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좋은 대학을 나온 어떤 어머니가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저는 우리 아들이 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만들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언젠가 그는 자신의 강연회에서 인생을 ‘42.195킬로미터’의 긴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10킬로미터만 달릴 거면 열심히 스펙 쌓으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이 사회가 점점 본질이 무엇인지 잊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제가 14년째 수영을 해요. 남들은 한 달이면 25미터를 대부분 가는데 저는 6개월이 걸렸어요. 물이 파란 이유가 내가 너무 때려서라니까요. 집사람이 저한테 쪽팔리지 않으냐고 물어요. 저요? 전혀 쪽팔리지 않아요. 제게 수영의 본질은 땀을 흘리는 거거든요. 그게 물이랑 싸워서 땀을 흘리건 25미터를 가서 흘리건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본질이 무엇인지를 뽑아내는 건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해요. 본질을 추구해온 10년과 주변부만 추구해온 10년은 나중에 비교해 보면 너무 다르거든요.”


박웅현은 달변가였다. 이토록 말을 잘하는 남자가 입사한 후 3년간 책상 정리만 하던 광고계의 지진아였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반복해서 읽은 독서력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말처럼 고전 읽기는 ‘써서 먹기 힘든 보약을 먹는 행위’와 흡사할 것이다. 나는 최근 공중파 유일의 책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됐다고 얘기했다. 


“안타까워요. 하지만 저는 책이 좋다는 편견도 위험한 것 같아요. 책이라는 권위에 무조건 굴복을 하는 것 말이죠. 영화도 있고 드라마나 만화에 나오는 한 구절, 얼마나 좋은 게 많습니까? 하지만 책이 한 사람의 머릿속 풍경을 가장 밀도 있게 압축적으로 정리해놓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게 되는 건 사회적 압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추천 권장도서 같은 긴 목록들. 나는 재미가 없는데 톨스토이의 <부활>을 안 읽으면 취급 못 받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억지로 읽긴 읽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 속물적인 책읽기가 무슨 소용이죠?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터랙션입니다. 예전에 제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후배들에게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10명 중에 7명은 지겹대요. 그건 내 잘못인 거예요.”


책 추천에 실패했다는 말을 할 때, 살짝 찡그린 그의 미간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실패란 그저 하나의 의견일 수 있을까. 세상에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실패엔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가 있다. 의미 있는 실패작을 남겼다는 의미에서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다룬 박웅현의 아디다스 광고는 의미 있는 실패일 것 같았다. 


(....) 

두 명의 소녀가 죽었는데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 네티즌이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작은 제안이었다 

한 개의 촛불이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

상대는 미국의 군대였고 

모든 이의 시선은 월드컵을 향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촛불이 옮겨 붙었다

그해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진입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해 한 개의 촛불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시작은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스포츠에만 한정하는 게 아깝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생각한 게 구족화가였어요. 그러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2002년은 월드컵 4강보다 시청 앞에 모인 10만으로 50년 후에 기억될 거예요. 그건 정말 불가능했던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반미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정치색을 못 본 거죠. 돌아보니 안 본 거예요. 그게 제 단점입니다. 일이 떨어지면 육식동물이 돼서 이렇게만 가요. 하지만 광고는요. 소설가나 영화감독처럼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일할 수 없어요. 그건 부도덕한 짓입니다.” 


그에게 우리나라가 광고를 하기에 제약이 많은 나라냐고 물었다.


“무슨무슨 협회가 많아요. 담에 걸리면 전국 담 협회 같은 게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예요. 독도 문제만큼이나 수용의 폭이 좁은 거죠. 미국의 힘은 전 세계 가장 극렬한 반미가 미국 내에 있다는 겁니다. 그게 그들의 힘인 거죠.” 


광고인 박웅현(출처: 경향DB)


■ 커피, 카피, 코피!! 개처럼 현실을 붙잡아라


나는 광고를 위한 광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광고 불변의 법칙>을 쓴 오길비의 책을 통해 알았다. 오길비의 책에는 ‘어떤 클리오상 수상 회사는 수상작을 텔레비전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어떤 클리오상 수상 회사는 다른 대행사에 광고주의 절반을 빼앗겼다. 클리오 상을 네 번이나 받은 광고 회사들은 해당 광고주들을 놓치고 말았다’처럼 믿기 힘든 사례들이 가득하다. 상을 위한 작품이란 논란은 해당 전문가 집단의 이슈가 되곤 했다. 언젠가 그는 칸 국제광고제를 ‘어떤 맥락에선 명작들의 공동묘지’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국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에게 국제광고제 수상은 포기한 건지 물었다.


“놓은 게 아니라 잡은 적이 없죠. 그렇게 일할 마음이 없어요. 정말 선수들은요, 자기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면서 상을 받아요. 상을 안 받겠다가 아니라, 받고 싶은데 내 일 먼저 잘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잘해서 받으면 좋겠고, 못 받으면 내 운명이 거기까진 거지. 광고주가 요구하는 문제 해결에 온몸을 던져도 잘 안 되는 게 이쪽 일이에요.”


나는 그에게 각기 다른 의견들을 어떤 방식으로 수렴하는지 물었다. 수십, 수백 가지의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너의 ‘좋아요’와 나의 ‘싫어요’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스며들 수 있는지 말이다. 


“근력이 생겨요. 그러면 얼굴 벌게질 일이 조금씩 줄고,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할까 객관화시키게 됩니다. 옳은 얘기 같으면 받아들여요. 이곳은 철저히 집단이 하는 일이에요.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카피가 나오는 과정은 작가 분들이 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이틀 밤 골방에 처박혀 있다고 절대 나오지 않아요. 모두의 얘기들이 섞인 후 반영되는 거니까. 그렇게 객관화하고 그런 능력을 늘려가는 거죠.” 


자유자재로 손을 쓰며 열변 중인 그의 모습을 보다가 학생 시절 보았던 오래된 영화 제목을 떠올렸다. <커피, 카피, 코피>. 이 영화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코피 터지게 일해야 하는 곳이 광고대행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책도 쓰고, 강연회도 자주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바쁠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물어야 하는 건, 어떻게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기술적’으로 쉬는가일지도 모른다. 


“쉬는 건 잘 못 쉬는데, 끊는 건 잘 끊어요. 이렇게 보면 작가님이 제 눈앞에 있어요. 이렇게 고개를 돌리면 남산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인 겁니다. 전 그걸 셔터 내린다고 말해요. 제가 바쁠 땐, 한 시간에 하나씩 회의가 잡혀요. 근데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고 급한 일이 아닌 이상 토요일엔 안 나와요. 물론 토요일에 두 시간만 나오면 월요일이 훨씬 편하다는 걸 알아요. 집에선 절 아주 한심한 놈으로 볼 거예요. 11시까지 자거든요.”


나는 장미란 선수의 일화를 얘기했다. 간만에 친구들과 동해안에 피서를 갔는데, 어김없이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건 무거운 ‘아령’이었다. <황금어장>에 나왔던 그녀의 하소연은 “쉬고 싶은데 못 쉬어요!”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텔레비전 속으로 기어 들어가 “저두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잊으려고 노력해야죠. 눈앞에 있는 게 다다. 모든 사생활이 모든 복무에 우선한다. 이게 제 원칙입니다. 사회 초년생 때 야근이 많으면 집에서 불만이 많으니까 선배들이 그래요. ‘광고를 잘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면 제가 했던 말이 ‘가정을 포기하려면 광고를 왜 합니까?’이구요. 전 이게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저는 광고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광고에 사명감이 있지 않아요. 근데 잘하고 싶어요. 왜? 그게 내 딸 등록금이 되니까. 죽을 때 누가 옆에 있는가가 중요한 거예요. 팀장이 옆에 있을 건가요? 죽을 때 옆에 있을 사람들을 존중해줘야죠.” 


■ 갈등을 삶의 기본으로 안고 가시라


박웅현에겐 올해의 목표가 ‘어처구니없는 한 해’를 만드는 것이다. 그의 회사는 신경정신의학회의 박람회에 ‘안나 카레니나 프로젝트’를 들고 참가한다. 


“안나는 현대 사회의 모든 우울증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남자에게 버림받고, 기차에 뛰어들어 죽어요. ‘바람기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다’란 말을 제 책 <책은 도끼다>에서 했어요.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해요. 갈등을 삶의 기본으로 안고 가라고.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이 없길 바라지 말라’란 말이 나옵니다.” 


어쩌다 ‘살아간다’는 말이 ‘견디고 버틴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고민하기 전에, 내가 되물었어야 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몸에 병이 없길 바라지 마라, 사랑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와 싸우지 않기를 바라지 마라……. 그렇게 불화와 갈등과 반목을 자연스레 함께 살아내는 것, 그런 것을 ‘견딘다’라고 말하고 나면 그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박웅현이 제일기획을 나와 TBWA라는 회사의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광고가 만들어지는 처음과 끝을 총괄하는 역할)로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의 직함을 ‘심하게 미친 강아지’, ‘익스트림리 크레이지 독’(extremely crazy dog)’이라고 설명했다. 굳이 한국말로 해석하면 ‘미친 개’가 되겠다. 그의 생활신조가 ‘개처럼 살자!’라는 걸 미리 얘기해두는 건 그런 맥락이다. “개는 말이죠. 밥을 먹을 땐 밥을 먹고, 쉴 땐 쉬고, 주인에게 꼬리칠 때는 그것이 자기 존재의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꼬리쳐요. 카르페디엠. ‘현재를 붙잡아라’에 가장 충실한 동물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패션 광고처럼 화려한 가로수 길을 걸었다. 외제차들 사이에 요란한 엔진 소릴 내며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광고 하나가 더 떠올랐다. “언젠가 타려고 했지만,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네!” 자신의 꿈이 마흔 살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은 김광석이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기에 그의 공연 음반에 나와 있던 세세한 문장까지 기억하는 걸까. 김광석은 서른두 살에 죽었다. 할리 데이비슨의 광고처럼 ‘언젠가’라는 요일은 정말 없었던 것이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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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퇴행하겠다 싶어 정치 뛰어들었는데, 입만 열면 욕하다 끝나


▲ ‘수사 제대로 받는 법’ 알리려다 검사복 벗은 자유주의자

‘금태섭, 넌 금테 둘렀냐’ 유머도 범죄로 보는, 표현 억압된 사회 안타까워


김두식의 책 <불멸의 신성가족>은 왜 검사들이 유독 조직에 찍히는 걸 두려워하며, 평판에 민감한지에 대해 “변호사가 되었을 때의 몸값 문제”를 꺼낸다. 많은 수임을 얻는 전관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판검사 간의 경쟁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평생 검사로만 일하면 생기지 않을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선배에게 도제식으로 배우는 검찰 조직의 특성상 그들은 윗분들에게 원만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원만함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된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에서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란 기사를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었다. ‘현직 검사’가 그것도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할 땐, 어떤 결단과 상상력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당장 금태섭이란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내 블로그 이웃의 친구라는 사실과 <세상을 바꾼 법정>이라는 소설을 번역했다는 걸 알아냈다. (그것이 ‘소설’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법 이야기’라는 사실은 인터뷰 며칠 전에 알았다) 아!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검사였구나. 내 머릿속에는 ‘스콧 터로’나 ‘제프리 디버’ ‘존 그리샴’ 같은 법조인 출신의 작가들이 떠올랐다. 몇 년 후, 한국에서 <무죄추정>이나 <코핀 댄서> 같은 끝내주는 스릴러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사진 _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출처 :경향DB)





애초에 10회로 예정되어 있던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은 1회를 끝으로 종료됐다. ‘연재를 시작하며’와 ‘연재를 끝내며’를 동시에 써야 해서 억울했을 이 남자의 소회는 “글을 못 쓰게 하면 나만 영웅 만들어주는 건데, 설마 그 똑똑한 검찰 조직이 원고를 못 쓰게 할 줄은 몰랐다”는 말로 이어졌다. 혼자 놀기 좋아하니 시골로 발령이 나면 그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말하다가, 그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쓴 자신의 글이 참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셜록 홈스를 읽으며 ‘논리적인 사람은 물 한 방울을 보고도 나이아가라 폭포나 대양을 상상할 수 있다’ 같은 말에 밑줄을 긋던 소년은 별 수 없이 검사복을 벗고, 수트가 어울리는 변호사가 되었다. 조직의 영업비밀을 누설한 것에 대한 죗값일지 몰랐다.


■ 소설가가 되고 싶은 한때 검사였던 변호사 


어쩐지 그에겐 “선거 이후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니까 속상한 것도 많고, 다른 사람한테 화가 치밀어서 입만 열면 욕을 하게 되더군요. 남미는 영어가 안 통해서 한 열흘 입을 닫고 있으니까 스스로 반성도 되고, 정리도 됐어요. 파타고니아에 갔다가 올라오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과수, 리우, 아마존까지 다녀왔습니다. 혼자서 23일 동안. 사람들이 왜 혼자 가냐고 물어보는데 전 항상 그래요. 비싸잖아!”


새로운 로펌에 출근한 지 20일 됐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그에게 정치적인 근력이 좀 생긴 것 같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이런 거 저런 거 하다 보니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다는 말이 날아왔다. 그럴 땐 글을 쓰는 게 최고라는 말을 건넸다.


“검사 시절,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마존에서 괜찮은 책 몇 권을 골라 그 중 하나를 번역한 게 <세상을 바꾼 법정>이에요. 꾸역꾸역 번역을 하고 책이 나왔는데, 그때 한겨레 사건이 터진 거예요. 근데 검찰에서 총장님께 사과하고 책을 내지 말라는 겁니다. 그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 그냥 번역서라고 아무리 말해도 연기하든지 내지 말라는 거였죠. 그래서 아는 기자한데 전화를 했어요. 번역한 제 책이 신문에 나올 것 같진 않지만, 만약에 나온다면 기사로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분이 웃으면서 책 내달라고 청탁하는 건 봤어도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주 토요일 북섹션에 제 책이 톱으로 떴어요. 무려 9개 신문이나! 한번은 친한 선배가 찾아와서 맘고생했으니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이러는 거예요. 그럼 네가 그 책을 다 사버리면 어떻겠니?”


첫 책과 관련된 얘길 하다가 그는 자신의 성향과 관련된 얘기 하나를 꺼냈다.


“잘 아시겠지만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관심보다는 개인적인 데 더 관심이 많아요. 어떤 분이 정치에 생각이 있으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전 사회나 국가에 대한 것보단 개인에 더 관심이 많거든요. 책도 편식이 심해서 주로 소설만 사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요. 바다가 무엇이냐. 결국은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전 ‘물 한 방울’에 관심이 있는 거죠.”


인터뷰집 <화>에 나와 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이 지구상의 모든 변호사들이 바다에 빠진다. 이걸 다섯 글자로 줄이면? 이 퀴즈의 정답은 ‘깨끗한 세상’이다. 그에게 유독 국민들의 ‘법 감정’과 사법적 판단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어째서 성폭행범이나 경제사범을 비롯해 한국의 형량은 왜 이리 낮은 것인지. 얼굴 공개처럼 피해자의 인권이 아니라 왜 흉악범의 인권이 보호돼야 하는지 말이다.


“이슈가 되는 문제들이 많아요. 사형제만 해도 그렇죠. 전 사형 폐지론자인데 사형이란 오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단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이라는 게 원칙이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강력범의 얼굴 공개 논란이 있었을 때 한 칼럼에서 “죄형법정주의나 무죄추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소중한 가치이다. 유영철이나 강호순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순 없다고 썼어요. 좋아하는 미드 중에 <빅뱅이론>이란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만화방 주인이 쉘든에게 ‘more wrong’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주인공이 틀린 건 틀린 거지 더 틀리는 게 어딨냐고 했더니 이 친구 말이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하면 조금 틀린 거지만 토마토를 브리지라고 하면 왕창 틀린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법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하는 거죠.


■ 대한민국의 수직적 문화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 억압


2005년 ‘미술교사 김인규 사건’에서 대법원은 변기 바닥에 그린 남자 성기가 ‘작고’ ‘발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란물이 아니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와 찍은 누드에 대해서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 음란물이라고 판단했다(문제의 사진은 훗날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되었다). ‘개인’과 ‘표현의 자유’에 관심이 많은 금태섭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자 성기 사진을 올려 파문이 된 방송통신심의위원 ‘박경신 사건’을 무료 변론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언젠가 이 재판을 참관한 소설가 P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성기가 그렇게 음란해서 대체 법정에 있는 양반들은 오줌을 어찌 싸는지 심히 걱정될 정도라고 말이다. 기소한 측에선 나체인 다비드 조각상의 경우 귀두 부위가 매끄럽고 이음새가 부드러워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거란 말을 했단다. 승화시킬 성기가 없는 여자들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라는 말로 P는 자폭하듯 술잔을 기울였다.


‘표현의 자유’와 ‘모욕’에 관한 얘기라면 한국의 법정만큼 바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진중권은 그런 현상을 문자문화로 넘어온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특유의 구술문화의 전통 때문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문자문화에 비해 구술문화는 논리적이라기보단 정서적이고 격정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가장 놀란 게 <셀러브리티 데스 매치>란 인형극 프로그램이었는데, 그걸 보면 타이거 우즈나 클린턴 등이 욕을 하면서 싸우고, 창자가 튀어나오고 천박해요. 근데 우린 이런저런 금기가 너무 많아서 웃기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지만원이 문근영에 대해 빨치산의 손녀라고 얘기했을 때의 일인데, 어떤 사람이 ‘지만원 지는 만원이라도 냈냐!’라고 쓴 글에 판사가 유죄 선고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건 운동장에서 애들이 금태섭, 너는 금테 둘렀냐, 이러면 범죄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의 얘길 듣다가 어쩌다 우리에게 이토록 여유가 없어진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유머감각이 사라졌다는 건 그만큼 각박해졌단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는 ‘산다’는 동사를 ‘견디고 버티다’라는 말로 치환할 만큼 불행해진 걸까.


“제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도 잘못하면 퇴행하겠다 싶었던 겁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안되죠. 전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다 지도자가 될 수도 없잖아요. 묵묵히 끌려가는 사람들은 절대 행복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나 MB나 오히려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MB도 항상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여의도에서 싸우는 걸 싫어하고 일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박근혜 대통령도 부정 없이 사심 없이 가면 되지 않느냐고 얘기하고. 플라톤의 철인정치 같은 것은 없어요. 같이 가는 거죠. 목표를 공유하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자유로운 토론과 표현이 억압받는 건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모두 사장이 되는 게 꿈이고, 잡지사에 들어가면 편집장이 되는 게 꿈인 나라에선 외국처럼 육십 넘은 자동차 전문기자나 현장 PD가 존재하기 힘들다.


“하위문화가 존재하고 자기들끼리 뭉치려면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개인의 공간과 자존감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우린 조교들이 교수 심부름을 해야 하고, 신문사들끼리도 입사 연도 따져서 선후배 가르는 문화가 있어요. 직위는 직위고 사람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린 기사랑 사장이 따로 밥을 먹잖아요. 지금 검찰엔 누군가 총장이 되면 총장의 동기들은 모두 다 나가야 하는 문화가 있어요. 동기가 편집국장이 됐는데 자신은 평기자로 일하면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주변에서도 말이 많은 문화는 정말 바뀌어야 해요.”


금태섭 변호사 (출처: 경향DB)


■ 사회보단 개인이 존중 받고 즐겁게 사는 것 꿈꿔


언젠가 금태섭은 사형수 오휘웅에 대한 얘길 꺼내며 절판된 책 한 권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저서 <디케의 눈>에는 그 책의 저자가 다름 아닌 ‘조갑제 닷컴’의 조갑제라는 사실이 명시돼 있다. 그는 1987년 자신의 형법 교수가 이 책이 우리나라의 형사법에 관한 명저이며 이탈리아 베카리아가 쓴 <범죄와 형벌>에 버금갈 만큼의 책이라고 말하던 때를 회상하며 ‘그 책은 훌륭하다’고 결론짓는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그 얘기에 귀기울여야 할 때를 아는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미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던 그에게 사형수와 강간범, 사이코패스와 사기꾼과 관련된 수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인터뷰 도중 직업 때문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좋아 보이더냐고 물었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좋더군요. 이 말은 결국 강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다는 말인데, 그게 남들보다 강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더라고요. 원하는 게 있으면 사람이 약해지잖아요.”


원하는 게 없다는 건 법조인 출신 아버지 덕에 풍족하게 자란 까닭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원했다가 안됐을 때의 실망감이 두려워 아예 원하지 않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솔직한 말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제 태도가 별 야망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중에도 금태섭은 특유의 균형감을 잃지 않고 이쪽과 저쪽 모두를 아우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원희룡과 나경원의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이 남자는 견해가 다르더라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건 ‘지성의 힘’이란 인상적인 말도 남겼다. 꿈에 대해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오래오래 사는 것”이란 대답이 나와 한참을 웃었다.


“정말이에요. 딱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시간이에요. 제가 죽은 다음에 세상이 변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어요. 한때 별 보는 게 취미였는데, 별이나 은하수를 보고 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저곳에 가지 못하겠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더라고요.”


별 보는 게 취미였던 이토록 낭만적인 남자의 책 맨 앞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당연히 너에게!’ ‘언제나 너에게!’ 책 앞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남자가 꿈꾸는 정치는 어떤 것일까. 나는 ‘당연히’와 ‘언제나’라는 부사를 보다가 책 속의 ‘너’는 ‘당연히’ 아내를 지칭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누가 물어보면 ‘바로 너야!’라고 대답하려고 쓴 거라고 말하다가 크게 웃었다.


‘당신 아들이 공부 못한다는 걸 받아들여라!’라고 일찌감치 자신을 교육시켰다는 그의 아내는 ‘금’씨 집안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박사 출신에 대학 동창이란다. 아내 덕분에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집에 놀러온 아들의 친구가 자신을 “저 사람, 네 형 아냐?”라는 말을 남겼다는, 나로선 ‘믿기 힘든 말’을 그는 참 천연덕스럽게 얘기했다. 거절하지 못하는 게 병이라 이런저런 강연을 많이 하다 보니, 단발머리 여중생으로부터 ‘사랑해요. 저를 변호해 주세요!’라고 적힌 사랑고백을 받았다는 휴대폰 증거물까지!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밤길이 포근했다. 봄이 온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용기 있다’란 말은 어떤 사람에게 쓸 수 있는 걸까를 생각했다. 평생 먹을 욕을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는 정치 입문이야말로 용감한 행동인 걸까. 검사면서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연재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야말로 용감한 행동이었을까. 나는 용기란 말이 태생적으로 단단한 말이 아님을 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용기란 끝없이 떨리는 두려운 마음속에서 끝내 밀려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심원한 것은 진리가 있는 산 정상이 아닌 진리를 찾는 과정에 놓여 있지”라는 에드거 앨런 포의 얘기를 인용한 그의 책을 보았다. 자신의 책 제목을 <확신의 함정>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내면 풍경에는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의 진폭을 가르는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자신이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건, 그가 자신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맥락 속에 있을 것이다. 문득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들의 누적분이다. 선택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하는 것이다”라는 김어준의 말이 떠올랐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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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람들의 욕망과 필요로 생겨난 서울의 디자인 좋다고 느껴



사진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지하철이 없어졌다고 가정하고

그곳을 나이트클럽이나 운하로 만들고 싶어요.

상상을 실현해보는 거, 재밌잖아요?”


■ 무거운 남자의 가벼움에 대하여


건축가를 좋아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남자로 다시 태어나 해보고 싶은 일을 묻는다면 별 망설임 없이 건축가라고 말할 것 같다. 그들이 건축물에 쓰이는 다양한 나무와 돌과 흙에 해박하고, 공무원과 건축주, 시공업자들과 저돌적으로 싸워야 할 때를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과 끝내 타협해야 할 지점을 안다는 것도 맘에 든다. 고요한 사무실과 시끄러운 현장 사이를 오가는 그들에게서 나는 뛰어난 균형감각들을 보았다. 내가 아는 건축가들은 수학을 알고 있는 시인이다. 건축가를 좋아하는 나만의 편견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자신의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내 오래된 습성이었다.


사실 이 인터뷰는 어이없는 나의 난청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게 ‘남훈’을 추천해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덜컥 ‘문훈’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문훈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가 건축가라는 것과 이단아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그가 왜 건축계의 이단아일 수밖에 없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상상 사진관’ ‘S마할’ ‘정선 테일’과 ‘옹달샘’ 등 그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그는 자신의 전생을 뱀파이어라고 생각한 건축주를 위해 혼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계단을 만들고, 스페인을 사랑한 건축주에게 투우를 연상시키는 뿔이 달린 건물을 지어주었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비상하거나, 바람이 불면 움직이거나, 사람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이고, 물에 조응한다. 그는 ‘건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대체 바람과 구름과 비와 몸무게에 반응하는 건물이란 건 어떤 것인가.


■ “안되는 게 어딨어요? 안 하는 거지!”


영감은 이런저런 분야를 수박 겉 핥기 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문훈에게 만약 사과와 라일락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과는 먹고, 라일락은 향기를 맡아야죠!” 그에겐 향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수백페이지짜리 사과의 품종과 당도에 관련된 논문을 써내는 서양식 논법이 맞지 않는다. 그의 졸업논문 ‘Beyond opposite’은 동호대교 위에 화장장과 호텔을 함께 설치한 프로젝트다. 죽은 자를 태워 생기는 열과 에너지로 연인들의 공간인 호텔을 가동시키는, 이른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방식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모교인 MIT를 ‘미아리 텍사스 대학!’이라고 말할 땐 동양의 선과 불교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식 사고에 대한 가벼운 조롱과 유희가 느껴졌다.


문훈은 어느 곳도 아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커피숍을 내고 싶다고 상상하는 기이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게 될 그의 엘리베이터는 26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몇 호, 몇 호’로 불리는 익명의 사람들을 친교라는 이름으로 묶어줄 것이다. 2005년 문훈은 친구와 함께 지하철 안에 소파를 옮겨놓고 도시를 여행하는 실험을 했다. 장소를 바꾸는 요소가 소파 같은 ‘가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첫 번째 아이디어였다. 문훈에게 공간은 규정되거나 한정된 무엇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하철이 없어졌다고 가정하고 그는 그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상상했다. “나이트클럽이나, 운하, 거대한 수영장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문훈의 프로젝트와 믿기 힘든 말라깽이 시절이 담긴 이 잡지는 창간과 동시에 폐간되었다. “사라진 잡지의 아트디렉터로 일했었어요. 망하긴 했지만 상상을 실현해보는 거, 재밌잖아요?” 그런 그에게 남향으로 창을 내어달라고 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남향만 좋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창문을 꼭 사각형으로만 내야 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서 유년기를 보낸 문훈은 사람보다 장소를 더 오래 그리워하는 아이로 자랐다. 텅스텐을 처리하기 위해 내뿜는 지독한 암모니아 가스 냄새와 하늘을 온통 검게 메우던 상동의 공장들, 지구의 종말을 보는 듯한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던 그는 지질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호주의 낙원 같은 태즈매니아 섬에서 예민한 사춘기를 보냈다. 세기말 풍경과 지상낙원의 풍경 모두를 체험한 소년은 그렇게 건축가로 성장했다.


“안되는 게 어딨어? 안 하는 거지!”를 신조로 삼은 문훈은 건축가는 신중하고 조용하다는 내 편견 하나를 깼다. 빨간색 티셔츠가 자신을 섹시하게 만든다고 믿는 그는 빨간색 라벨이 붙은 중국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하다가 내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피자 시킬까요?” (나는 당연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만약 내가 집을 짓게 된다면 마당에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심어 그해에 수확한 열매로 잼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말하자 “마침 좋은 잼이 있는데! 드릴까요?”라고 말하더니 잽싸게 달려가 어디선가 잼 두 병을 들고 나타났다. 이토록 산만하고 명랑한 40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40년쯤 살아보면 알게 될 일이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내 첫 번째 질문은 의문이라기 보단 감탄사에 가까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사는 게 즐거운가요? 정말 많이 웃으시네요!”


“원래 인생이 비극적이잖아요. 비극을 희극으로 마스킹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조커처럼 보는 것일 수도 있겠죠.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why so serious? 뭐 이러는 것처럼.”


그가 히스 레저처럼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건축을 포함한 모든 분야가 신성을 찾을 수 있죠. 하지만 그걸 건축주 앞에서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중요한 걸 몰라서가 아니라 중요함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죠. 저는 건축가들이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것 같거든요. 무슨 모던 아키텍트라든지 자기랑 관련 없는 사조를 자꾸 얘기하잖아요. 전 제가 좋아하는 얘기만 해요. 제가 스타워즈를 좋아하니까 그 비슷하게 한다든가, 나에서 출발하는 거죠. 서양의 건축도 한국의 건축도 아니고 내가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려고 하니까 건축계에서 보면 그래 너 잘났다, 뭐 그렇게 얘기를 하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으니까. 뭐 그렇다고 건축주가 무시하는 게 아니거든요. 영어식으로 얘기하면 down to earth고,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소박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이 자꾸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왜 꼭 데카르트랑 들뢰즈를 알아야 돼요?”


언젠가 소설가 천명관이 일간지 인터뷰에서 요즘 평론가들의 ‘라깡대고 지젝거리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말한 장면이 떠올라 폭소가 터졌다.


“전 제가 정신분열증이래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여럿 있는데 하나가 우위에 있진 않은 거예요. 분열증의 문제는 하나가 주인이 되면 나머지가 싸우고 방랑하고 그런 건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없을 것 같아요. 여러 성격을 가져도 다 공평한 거예요. 구조가 없는 거죠. 물렁뼈로 돼 있다고 생각하면 되죠. 문어처럼. 성도 문씨잖아요.”


■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의 쾌감


문훈은 언젠가 자신의 건축을 ‘액션 건축’ ‘BE급 건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두 ‘움직인다’라는 동사에 수렴되는 말들이다. 나는 그가 고정된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들이 궁금했다.


“저는 반응하는 반응체로서의 건축에 관심이 가요.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하잖아요. 멀리서 보면 살아 있는 거 같은 거죠. 저는 바람 맞는 걸 좋아해요. 여자한테 바람 맞는 것도 좋아하고! 기계적 장치를 써서 뭔가를 할 수 있겠죠. 화전민의 집이나 공장처럼 연기가 난달지. 또 다른 방법은 부드러운 재료를 쓰는 거죠. 외로운 남자가 벽에 기대면 벽이 들어가면서 남자를 감싸주는 거예요. 뭔가 움직이는 거지. 건축은 딱딱하고 영원불멸성을 추구하는데 제가 그걸 바꾸려고 하는 거죠. 자꾸 이륙하려고 하고, 건물은 땅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걸 거부하려고 하고. 그래서 창을 갖고 다양한 시선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광각이나 착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아하고, 계단 페티시일 만큼 계단을 이용해 실험해 보는 것도 좋아하죠.”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가는 계단으로 건축물의 인상을 만들어낸다. 문훈이 만든 ‘파노라마하우스’에도 책장 높이에 맞춘 40센티미터 계단이 있다. 그는 “앉아보니 40센티미터 높이가 아이들이 벤치처럼 앉아 있기에도 좋고, 어른에게도 편한 높이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조경란의 <백화점>에서 가구디자이너들이 물건을 사용할 사람들의 행동패턴과 사회적 거리를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 ‘숨겨진 치수’라는 말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포옹이나 속삭임을 위한 친밀함의 거리는 15.2~45.7㎝, 친한 친구간의 상호작용을 위한 개인적 거리는 0.45~1.21m, 공적인 대화를 위한 거리는 3.65m 이상’이라는 식이다. 나는 문훈에게 그가 발견한 건축적 치수에 대해 물었다.


“아주 기본적인 수치는 있을 거예요. 계단을 만들 때 20㎝ 미만으로 유지하려고 해요. 22㎝만 되도 불편해요. 경험치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것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단을 5㎝, 2m로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이를테면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욕실의 세면대를 튼튼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는 겁니다. 침실에서만 사랑을 나눈다는 건 너무 빤하잖아요.”


그에게 농담처럼 러브호텔을 지으면 아주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한테 완벽하게 맞는 배역이 있으면 제가 더 뜨겠죠. 저는 하기 힘든 일을 하잖아요. 주택도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고. 근데 반대로 재밌어야 할 때 그렇게 안 할 수도 있죠. 어떤 건축가가 신전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주택도 신전처럼 지어요. 라이브러리를 지어도 신전처럼 숭고하게 짓겠죠. 전 얼핏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게 재밌어요.” 자신의 사무실 정중앙에 빨간색 ‘정자’를 들여놓은 것도 건축사무실이 너무 건축사무실 같아 보이는 게 싫어서다. 그는 무조건적인 ‘담’ 없애기 운동에도 반대한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차라리 담을 세우고, 마음을 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가 스코틀랜드나 몽골의 초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건물도 없어 뭐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고, 서울의 디자인이 좋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단계에 진입한 선진국이 건축적으로 더 많은 자유가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유럽이 아직 유년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건축에 비해 제한된 것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외적인 인물은 건축계의 슈퍼스타 몇 명 정도일 거라고 말이다.


“그중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도 있죠. 전 그걸 자하의 ‘똥’이라고 불러요. 위에서 보면 정말 똥처럼 보이거든요. 하하.”


언젠가 나는 명망 있는 전문가들이 의외의 선택을 한다는 아이러니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요리사는 라면을 즐겨 먹었고, 유명 편집자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사표를 낸다. 아파트의 대안으로 몰아닥친 땅콩집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문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왕십리 근처의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와이프가 서울에 살고 싶어 하고, 편하니까 살아요. 하지만 시공사가 돈을 많이 남겨야 하는 자본의 논리 때문에 모든 아파트가 박스형 구조로 희생된 건 문제죠. 빌트인 가구라는 것도 아파트를 짓는 브랜드와 관련되어 발달했다고 봐요. 가령 냉장고가 자꾸 커지면 썩는 음식만 생기거든요. 냉장고는 얇고 넓은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야 바로 보이니까. 깊으면 안 보이고 음식이 썩어도 모르게 되요. 안 보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집집마다 베란다가 사라지고, ‘몰딩’ 같은 과도한 인테리어 요소가 등장한 것이나, 아파트의 설계도에 맞춰 발달한 한국의 인테리어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건축을 설계한 건축가가 모든 인테리어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마당을 지붕 없는 실내 공간으로 보고 실내와 실외의 관계나 마당과 옆집 사이의 관계, 그 사이의 공간까지를 조율하며 설계하는 게 건축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문훈 문훈건축발전소 소장 (출처 :경향DB)


■ “그냥 재밌으면 하는 거예요. 나를 방목하는 거죠”


“원하기만 하면 전 사는 분들이 입었으면 좋겠는 옷까지 디자인해 드릴 수 있어요. 이 위치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런 인터뷰가 건축 수주에는 도움이 안 돼요. 건축주들은 진지한 건축가를 선호하거든요, 벌써 이단아라고 하면 저 사람 좀 불안정한 거 아냐, 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걸 고민하느니 저는 그냥 재밌으면 하는 거예요. 나를 방목하는 거죠.”


이쯤에서 문훈에 대한 오해 하나를 해명해야겠다. 그의 건축물들은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기발한 집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되었다. 2005년 그의 건축물 ‘상상사진관’은 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그는 재미와 상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거 제가 낸 것도 아니었어요. 아는 사람이 냈는데, 덜컥 된 거지”라고 말하는 그 무심함이 부럽기도, 얄밉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하러 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화장하는 것이 귀찮아 늘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나는 비밀스러운 개인 도서관을 꿈꾸었다. 인생의 80퍼센트 이상을 눕거나, 엎드려서 보내는 나 같은 사람이 원하는 건 게으름이 모던하게 흘러넘치는 안온한 집. 그러므로 티비는 천장에 붙어 있고, 해가 뜨면 유리로 만든 천장이 선글라스처럼 변하며, 어둠이 밀려들면 바깥의 별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지는 풍광을 원했다. 도서관에는 책상이나 의자 대신 밤새 책을 읽다가 잠들 수 있는 코끼리처럼 큰 침대가 놓여 있길 원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아주 게으를 수 있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버튼만 누르면 집이 기울어서 굴러서 내려오고, 계단과 책장이 움직이고.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안 되는 거 없어요. 그 자체가 감동적일 거예요. 일주일 동안은! 근데 싫을 수도 있어요. 완벽할 순 없는 거고, 부족함을 남겨놓는 게 맞는 거겠죠. 뭐든지 완성되지 않는 것에 열광하잖아요, 마릴린 먼로도 일찍 죽었고 제임스 딘도 그렇고, 사람들이 미완성 교향곡 좋아하고 그런 거 보면 완성되지 않은 그 나머지 부분의 상상 때문에 재밌어지는 거잖아요. 건축도 그런 거죠. 이 집은 벽도 반듯하지 않게 만들어야겠네요. 아! 집 이름이 떠올랐어요. 일명 떼굴떼굴 하우스! 하하.”


얼마 전 그는 유명 티비쇼에 나와 특유의 ‘성공론’으로 단박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문훈은 점점 더 섹시해지고 있고 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달랑 직원 세 명을 이끄는 건축가이다. 그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지은 떼굴떼굴 하우스에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당장 하기 싫은 일을 다섯 가지 이상 해야만 하는 내 처지를 생각했다. “오늘 할 일을 최대한 내일로 미루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다가 인터뷰 중 그가 시킨 피자를 보며 편견 하나가 깨지고 말았다. 누가 봐도 고기만 먹을 것 같은 육식주의자 풍모의 그가 토핑으로 스테이크가 촘촘히 박힌 피자 대신 샐러드를 먹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야채예요!” 그런 그의 얼굴이 봄날의 상추처럼 순해보였다.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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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후 감정, 선 신체! 기술 없이 감정만 사용하는 건 똥배우죠





▲ 그에게 정말 한번도 불행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평범함을 이어가는 게 가장 위대한 사람”이란 답이 돌아왔다



■ 배려의 건강한 삶은 여전히 상영 중 


내가 배우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잭 니컬슨’과 관련된 것이다. 잭 니컬슨은 37세 때 자신의 누나가 생모라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는 특유의 말투로 “이 집안은 연기가 좀 되는군!”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삶으로 자기 철학을 증명한다. 어떤 배우는 주름 몇 개를 간단히 구부리거나 뒷모습만으로도 연기를 하는데 내겐 영화 <파이란>에서 최민식이 그랬다.


“이 집안은 연기가 좀 되는군!”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달아 흥행시킨 류승룡은 요즘 가장 바쁜 배우다. 그를 검색하면 “류승룡이 류승완과 류승범의 첫째 형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같은 질문이 있을 정도다(이 얘길 하자 그는 “류승수의 둘째 형이란 말은 없던가요?”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내가 류승룡을 만나 알고 싶었던 건 최근 개봉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보여준 바보 ‘용구’ 얘기가 아니라 류승룡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저는 이름 박힌 의자를 한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현장에 의자가 없어서 못 앉아본 적도 없고요”라고 잘라 말했을 때 그의 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식적인 절차나 권위의식, 비효율성, 불합리성이 싫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6시만 되면 애국가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 하는 거, 이해 못했어요. 군대에서 그 고급인력들의 단순한 일과들. 할 일 없으면 눈 치우고 잔디 깎고. 그때도 그게 뭔가 싶었고.” 신문에 쓸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가 내게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한 건 집에 가지 못한 스태프를 위한 것이었다. “저 한 명 옷 갈아입고 오면 스태프가 퇴근해 쉴 수 있는데 왜 정장을 차려입고 인터뷰를 해야 하죠? 너무 비합리적이잖아요.” 누군가에 대한 ‘배려’를 ‘비합리적인 것이 싫다’는 말로 풀어 얘기할 수 있는 그에게 나는 자기 식의 매너를 습득한 남자의 건강함을 보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발음에서 ‘빠다’ 냄새가 나는데 외국에서 오셨어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쪽? 말할 때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혀 굴리는 거 알아요?” 게다가 직설적이기까지! 당혹스럽다기보다 호기심이 일었다.


류승룡의 처음을 얘기할 때 뮤지컬 <난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난타>로 많은 것을 얻고, 잃었다고 말했다.


■ ‘성공’이 아닌 ‘정주’를 택하다


“<난타>를 20대와 30대에 걸쳐 5년 동안 했어요. B형이라 낯선 공간, 낯선 스태프·감독들과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5년이면 굉장히 긴 시간이죠. 하지만 같은 공연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타이밍에 대한 경험치가 쌓였어요. 엇박자, 반전, 의외성, 반복, 이런 것들. 슬랩스틱, 모방까지. 강만홍 교수가 제 졸업 작품 교수님이세요. 그분과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갔죠. 유해진씨도 같이 종이 찢어서 옷 만들고 머리 빡빡 깎고 그런 것을 했어요. 그때 뉴욕에서 봤던 공연들이 <스톰프> <블루맨그룹> <튜브> 같은 해프닝 공연이었죠. 우리나라는 왜 저런 공연이 없고 연극이 다 교조적인 교훈을 주려고 할까. 이해하기 힘든 <대머리 여가수>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외국 실험극뿐일까 고민도 했고. 그런 고민을 할 때 장진 감독을 만나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죠.”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비극보다 희극에 더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가령 <광해>에서 이병헌의 농담에 반응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엿을 먹는’ 허균의 근엄한 표정이나,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물고기를 통째로 입안에 집어넣는 장성기의 연기를 보면서 그가 유머의 포인트를 찾는 데 대단한 균형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류승룡은 감독과 배우가 난상토론 끝에 캐릭터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을 지지직거리던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아 정확한 소리를 낼 때의 상황으로 비유했다.


“<난타>를 통해 얻은 건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었어요. 브로드웨이까지 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곧 깨달았어요. 정상이라는 목적성이 사라지더라고요. 후유증이 어마어마했죠. 목표를 정상이라고 세우지 않은 게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성공 대신 ‘정주’라는 표현을 해요. <난타>를 하기 전까지는 뮤지컬 학도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음악을 들었어요. 근데 <난타> 하면서 소리에 예민해졌죠. 5년 동안 꽝꽝꽝 해대니까. 냉장고 소리나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가 너무 거슬려요. 불행히도 그 아름다운 음악이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한 거죠. 전 차에서도 음악 안 들어요.”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다는 얘길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실패가 아닌 성공에도 대비하고 있는 사람이란 걸 눈치챘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 자신이 느끼는 ‘성취’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 말이다. 덕분에 그에게 예민한 질문이 될지도 모를 다작의 이유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모험을 하지 않아요. 악역, 카리스마 있는 악역, 코믹한 악역, 들어오는 게 다 똑같아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를 모르니까. 그래서 딱 그만큼만 소비되는 거죠. 그때는 감독님하고도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감독하고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에게 물었다.


“배우는 이기적이라 자기에게 집중해주길 바라는 개인주의자들인데 모든 배우가 그렇게 매달리면 감독으로선 피곤하겠죠. 필요 없을 때는 배우로서 기능적인 역할에만 충실한 게 중요해요. 가령 영화 <황진이>에서 사또가 안타고니스트잖아요. 그럼 그의 기능은 권력으로 주인공들을 압박해서 긴장과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이죠. 그 기능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생각해봐도 <황진이> 때는 굉장히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연기였어요. 그런데 그런 연기에서 승부를 걸려고 하는 건 정말 프로답지 못한 거죠.”


도를 치면 도만 딱 나오고, 미를 치면 미가 나오는? 


“맞아요. 그 이상을 해주면 더 좋겠지만, 전 제 기능을 충실히 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니까. 영화와 연극, 뮤지컬은 연기가 달라요. TV는 원투쓰리가 있어요. 기계적이죠. 엔딩을 주고, 상대편에게 토스를 해줘야 해요. 드라마를 연기하는 건 공식이 있는 거예요. TV적인 연기, 권력을 갖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이 원하는 어법, 쪽대본이라는 악습, 그러니까 빨리 외워서 텍스트만 전달하게 되죠.” 


연기에 대한 얘길 하자 그는 때때로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연기자가 되어 실제 그들의 목소리로 대답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에 대해 물었다. 언젠가 민규동 감독이 류승룡에게 보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테니스 선수의 팔뚝, 호나우두의 허벅지, 양조위의 눈썹’ 같은 50개 이상의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캐릭터처럼 사는 것과 긴장 없이 현장에서 액션에 몰입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 신체를 컨트롤하고 자아를 들여다보는 연기


“그건 작품마다 캐릭터마다 달라요. 가령 <활>에서 청나라 장수 쥬신타 연기를 하는데 오자마자 스태프 다 있는 데서 눈에 힘주고 있으면 아마추어 같은 거죠. 이건 한 영화 안에서도 바뀔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장성기도 임수정과 놀이터에서 얘기할 때는 긴장을 풀고 있다가 얘기하고 대사 좀 맞춰보면 되겠지만 우는 장면에서 장난치다가 돌변하면 얼마나 거짓말 같겠어요. 그러니까 한 30분 전부터 신체를 먼저 만드는 거예요.”


신체를 만든다? 


후 감정, 선 신체! 기술 없이 감정만 사용하는 친구들은 똥배우들이죠. 횡격막을 그렇게 만들어야 돼요. 우는 건 들숨이거든요. 스타카토. 손가락을 넣어서 웩 하면 눈물이 고이는데 그렇게 몸을 자꾸 울었던 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몸을 예열하는 거죠. 많은 배우들이 그걸 간과해요. 이걸 10분만 해보면 이미 횡격막이나 심장에서 울 준비가 되는 거죠. 노래할 때 성악가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이유가 있어요. 단계가 있어요. 몸을 만들고 감정을 입히고 텍스트를 더하는 거죠. 예를 들면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가 법정에 앉아 생각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건 용구가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뒤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건 내 안을 보고 있는 눈이에요. 그게 뭐냐면 내 자아를 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내시경으로 내 장기가 웃고 울고 졸릴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거예요.”


그는 현장의 배우처럼 몸의 근육을 움직여 내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배우 중에 못 웃는 사람이 많아요. 호흡을 몰라서 그래요. 스타카토로 하, 하, 하, 이렇게. 이 간격이 빨라지는 거예요. 횡격막이 바이브레이션이 되는 거죠.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이렇게 이게 배에서 터지면 사또, 움허허허허! 여기서 터지면 최불암, 파하하하! 여기서 터지면 간신, 헤헤헤헤헤. 그게 또 입이 자음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키키키, 하하하, 호호호 하면서 백 가지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거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번뜩이는 광기와 실없는 웃음이 거의 간격 없이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엔 ‘사또’와 ‘장군’과 ‘카사노바’와 ‘복면도둑’과 ‘학자’의 그림자가 모두 존재했다. 문득 일곱 살 지능을 가진 ‘용구’이다가, 파격적인 혁명가 ‘허균’인 동시에, 유혹하는 카사노바 ‘성기’를 살아내는 삶이 의문스러웠다. 작가로 말하면 아침에는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스릴러물을 쓰다가, 점심에는 사랑의 무용함을 설파하는 칼럼을 쓰고, 밤에는 19세기 제인 오스틴 풍의 연애소설을 쓰는 식이다. 뒤죽박죽의 삶을 살아야 하는 배우에게 정리의 기술 같은 책이라도 선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전 감정의 분리수거라는 표현을 써요. 예를 들어 오늘은 기분이 나빠요. 근데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어요. 근데 유추해보면 아까 누가 싫은 소릴 했는데 태연한 척하다 보니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든가 하는 식이더라고요. 전 이런 걸 음식물 쓰레기에 비유해요. 음식이 있고, 음식물 쓰레기가 있고, 재활용 그릇이 있는데 이걸 다 섞어버리면 다 버리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따로따로 정리하고 버릴 거는 바로 내려놓는 거죠. 자기를 비워내는 동시에 채워야 하는 것.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게 배우니까.”


작가들 역시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만나기 위한 혹독한 이별의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다음 작품을 영영 쓰지 못하는 작가를 나는 종종 보았다. 만우절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3층에서 뛰어내린 배우 장궈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잘 헤어지는 것이 잘 만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겐 지금 성공의 정점에 서 있는 듯한 류승룡에게 ‘행복하다’와 ‘불행하지 않다’가 동의어가 되어버린 시대, ‘행복’을 차라리 ‘다행’이라 바꾸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 대해 묻고 싶었다.


■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는 게 배우의 숙명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공짜예요. 제일 중요한 건 없으면 죽는 거예요. 공기. 5분만 없으면 다 죽잖아요. 그 다음에 중요한 게 물이에요. 3일만 없으면 죽잖아요. 그 다음에 햇볕, 달의 중력, 아마존의 밀림, 나무들, 이런 것들이겠죠. 그 다음에 소중한 게 공짜예요. 우리 부모님. 있을 땐 몰랐지만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지병을 얻으면 무너져버리죠. 그 다음에 중요한 게 없으면 불편한 거예요. 권력, 명예, 돈. 근데 요즘 세상은 그게 전부가 돼서 권력이나 돈이 없으면 자살을 해요. 어떤 것들도 내가 없으면 다 소용이 없는 거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거죠. 저는 무명일 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에게 정말 한번도 불행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청약저축 부어서 18평 임대주택부터 해서 휴가 간신히 얻어 애들하고 놀러 가고 토요일, 일요일 사람 복작복작한 롯데월드 가고, 빕스에서 밥 먹고,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거고 대단한 건데요. 평범함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특별한 삶을 산다. 그것이 설혹 연기라 해도, 7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며 어느 여자든 유혹할 수 있거나, 대낮에 복면강도짓을 벌이거나, 긴 수염을 휘날리며 혁명을 꿈꾸는 삶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토록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이 평범함을 말한다면 격랑 끝에 찾아온 평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역할 때문에 <유혹의 기술>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의도적인 나쁜 짓 같은 챕터는 옆에다 X표 치고 싶더군요. 40대의 섹시함은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사회적인, 일에 대한, 생각에 대한, 순간적인 경우의 수에 대한 여유. 여유 안에 유머나 매너, 태도도 나오는 거고요.” 


섹시함을 식스팩과 연결시키는 건 끝없이 가져야 할 것들을 수집해야 하는 20대와 30대의 사고일지 모른다.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서서히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나이. 인터뷰 말미에 그는 웃으며 “여자들은 남자를 빠져나갈 수 없는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예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길고 진한 연애사를 고백할 때 그의 단어장에 등장하는 말 중엔 ‘실어증’ ‘한강 다리’ 같은 단어들이 있었다. 인생의 바닥에서 그가 해보지 않은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요란스럽지 않게 웃으며 말할 줄 알았다.


힘겹게 30대를 건너고 보니 이제야 알 것 같은 일들이 있다. 이제 나는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자기연민이란 걸 안다. 울음이 즉각적인 육체의 힘이라면 웃음은 오랜 노력 끝에 쟁취하게 되는 정신의 힘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 때문에 망가진 사람이란 김훈의 말이 떠올랐다. 뭘 하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배우(俳優)를 한문으로 말할 때 ‘배(俳)’는 사람 ‘인’에 아닐 ‘비’를 품는다. 뜻을 풀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삶의 바깥과 안쪽 모두를 보여주는 귀신 같은 존재들이다. 생업으로 잠시 기자를 하던 시절, 내가 좋은 배우들에게 배웠던 것도 결국 영화가 아닌 삶이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유쾌하게 웃는 그를 보면서 ‘격무’가 아닌 ‘명랑한 노동’과 ‘성공’이 아닌 ‘실패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밤이었다.



▲ 소설가 백영옥은?

광고사 카피라이터, 인터넷 서점 직원, 잡지사 기자 등 여러 직업을 거쳐 2006년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장편 <다이어트의 여왕>,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2011), 장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2012)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소설을 쓰는 일이 가장 명랑한 노동이라 믿는 그는 예술가라기보다 직업인에 가까운, 자칭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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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