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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1.07.11 [Films on Musicians] 반 고흐는 안 나오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 2011.06.08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의 역사 만들기
  3. 2011.05.03 [and so on] <나가수>에서 주목해야 할 커플
  4. 2011.04.28 [and so on]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들: 위트레흐트의 SPEELKLOK 박물관
  5. 2011.03.25 [and so on] 모차르트와 김건모
  6. 2011.03.21 [and so on] 과연 립스틱만 잘못 발랐을까
  7. 2011.03.10 [New York Music Guide] 뉴욕의 클래식 라디오 채널 1: WQXR
  8. 2011.02.17 [Concert Review] 작곡가 진은숙, 탈레아 앙상블 뉴욕 공연: Unsuk Chin Portrait Concert
  9. 2011.02.03 [New York Music Guide] 뉴욕 공연 예술의 중심 링컨 센터 (Lincoln Center) -1-
  10. 2011.01.24 [Music Story] 죽은 동물들을 위한 음악
  11. 2011.01.16 [Films on Musicians] 스팅(Sting)과 클래식
  12. 2011.01.06 [Concert Review]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La Fanciulla del West)>
  13. 2010.12.24 [and so on] 뉴욕 크리스마스 트리 콜렉션
  14. 2010.12.22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
  15. 2010.12.09 [Films on Musicians]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모습 <Das Reichsorchester (제국 관현악단)>
  16. 2010.12.02 [Music Story] 19세기판 <너의 결혼식>: 슈만과 말러의 가곡
  17. 2010.11.19 [Films on Musicians] 현대와 만나는 중세: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일대기 <Vision>
  18. 2010.11.17 [New York Music Guide] [뉴욕 음악관람의 준비운동] 카네기 홀 찾아가기
  19. 2010.11.09 [Concert Review] 오페라 A House in Bali
  20. 2010.11.04 [and so on] 재미난 소파 세트

포스터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영화가 있었다. 반 고흐의 명화 <별이 빛나는 밤>이 파리 세느강의 정경과 그 강가를 걷는 남자의 모습과 절묘하게 합성이 되어있는 포스터. 바로 <Midnight in Paris>라는 영화의 포스터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이 영화

.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들이 판치는 가운데,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조용히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우디 알렌 감독의 최신작이었다.

(
마지막으로 본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가 97년작 <Everyone Says I Love You>였는데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뉴욕이란 곳을 정말 가보고 싶었단 것, 그리고 강가에서 골디혼과 우디 알렌 감독이 춤을 추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이 영화도 아마도 '파리'라는 도시에 엄청 가보고 싶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역시나 영화의 시작은 파리의 아름다운 정경들로 채워진다
.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사크르 쾨르, 몽마르트,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여러 뒷골목의 정경등등, 마치 엽서 속에나 등장할 법 한 아름다운 경치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비가 내리는 파리의 모습이 다시금 새롭게 비춰진다. 파리는 비가 내릴 때 더 아름다워보이지 않느냐는 감독의 시선이 영화 처음의 몇 컷에서부터 벌써 느껴진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 커플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는 (그리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는)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Gil)은 약혼녀 가족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왔다우연치 않게 만나게 된 약혼녀 친구 커플의 잘난척에 심기가 불편한 길은 혼자 호텔로 돌아가겠다며 자리를 뜬다. 술에 약간 취해 길을 잃고 어떤 계단 앞에 앉아있던 중, 12시가 되는 종이 울리자 아주 오래 된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앞에 선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야타족을 연상시키듯 주인공을 차로 끌어들이고, 그를 데리고 어떤 장소로 향한다.
그가 따라간 곳은 바로 1920년대의 파리 살롱. 스코트 피츠제럴드콜 포터, 헤밍웨이 (이 중에서 아마 우리에겐 '헤밍웨이' 정도만 익숙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문학, 음악계에서는 매우 저명한 분들이시다.) 길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 동경해온 인물들이 자신의 눈 앞에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날로 부터 시작된, 일종의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가는 '시간여행'은 매일 밤 12시에 다시 시작된다. 이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참으로 재미있다. 미국의 여류 시인 겸 소설가로서 당시 파리 예술가들 사이의 핵심인물 격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의 애인이었던 패션전공의 아드리아나), 살바토르 달리, T.S. 엘리엇  국어, 영어, 미술시간에나 들어봤음직 한 작가, 예술가들이 현실 속의 인물들처럼 등장을 한다.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밤마다 이어지는 시간여행을 통해, 주인공 길은 자신의 소설 초고를 거트루드 스타인과 헤밍웨이가 읽어봐주는 행운을 얻게되고, 또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에서 알게 된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낮시간에 (현재로 돌아와) 파리의 길거리를 거닐다, 길거리에서 파는 중고 책들 가운데에서 아드리아나의 비망록을 발견한 길은, 아드리아나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날 밤(1920년대로 돌아가)에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 순간 이들은 또 다른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고, 이 곳에서는 고갱, 드가 등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시대는, 바로 19세기 말부터 세계 1차 대전 (1914-1918)이 있기 이전의 시기인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였고, 이 곳에서 그녀가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이 시대에 머물겠다고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카메오처럼 짧게 등장하는 (유명 배우들의) 유명 예술가들 연기를 보는 묘미를 놓치기 쉬울 것 같다. 그리고시간여행에서, 길은 왜 1920년대를 동경하는지, 아드리아나는 왜 그 보다 이전시기인 "아름다운 시대"를 동경하는지, 시대적인 차이를 구분 못하고 넘어가기 쉽다.  

길이 동경하는
1920년대의 파리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이 예술적인 망명지로 삼았던 곳이다. 반면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 파리는 '황금시대'라고 할 만큼 훌륭한 예술가들이 한 데 모여있던 곳이다음악사를 들춰볼 때도, 한 시대(1900년대 전반), 한 도시(파리)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렇게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꿈꾸었던 것인지가 신기하게까지 느껴졌었는데, 1900년대의 전반부도, 전쟁 이전과 전쟁 이후의 시대로 구별이 되고, 각각의 예술가-미국 작가인 길과 패션 전공의 아드리아나-에게는 그 각각의 시대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끔씩 음악을 들을 때
, '이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은 자신이 동경하는 ()문학작품이 만들어진 그 시대로 가고 싶었을 테고,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는 의상을 만들 수 있는 그 시대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 과거에 머물 수 없는 길은 날이 밝으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자신이 매일 밤 과거로의 여행을 다니던 사이, 약혼녀는 친구의 약혼남과 바람이 나 있었음을 알게 되고... (연인관계가 깨지는 과정이 우디 알렌 스럽게도 유쾌하게 그려진다.) 약혼녀와 헤어진 후 정처없이 세느강 다리 위에 서있던 길은,  포터의 유성기 음반을 팔던 고음반 가계의 아가씨를 우연히 세느강 위의 다리에서 만나고, 파리엔 갑자기 비가 내린다비가 오면 부리나케 우산을 쓰던 헤어진 약혼녀와 달리, 이 아가씨는, '파리는 비가 올 때 아름답다'면서 비를 맞으며 함께 걷자 한다. (뭔가 좋은 관계가 될 것을 암시)





약혼녀와 깨진 그날 저녁에,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거냐며, 저 주인공 남자가 이해가 안된다면서 영화의 스토리와 결말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열을 내는 (영화를 함께 본) 친구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지만, "예술가들은 다들 어린내 스러운 면이 있다"고 하면 좀 변명이 되려나. 주인공 길의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맞는 선택 보다는, 순간적인 감정과 감성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예술가의 모습이 느껴져서 난 더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아무튼
, 영화는 예술가, 예술애호가들이 과거, 특정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향수 같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때가 좋았지' 혹은 '내가 그 때 태어났더라면....(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을 영화적인 판타지로 풀어놓는다역사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재미난 시간 여행을 만들고, 거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더한 우디 알렌 감독의 '위트' 내공에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한국에서
 아직 개봉되지는 않은 듯 하다. 낯선 이름의 예술가들의 줄줄이 등장해서 그 묘미를 놓치고 넘어가기 쉽지만, 이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본다면 더욱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설명해주는 관광안내원으로는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칼라 브루니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 음악가들만을 엮어서 영화를 만들어도 재미있을텐데
....1920년대에 파리에서 활동한 유명 음악가들도 수없이 많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가는 오직 한 명-콜 포터 (Cole Porter)이다.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로 유명한 분으로 대표작이 <Kiss Me, Kate>라고 함. 영화 속에서도 미국 재즈 풍의 노래를 피아노를 치면서 연주한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잠시 망명했던 미국의 전후세대 위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다른 음악가들의 등장은 불가능했던 것 같다. 콜 포터의 음악을 덧붙이면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친다. 





p.s. 포스터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차용해서 파리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켰으나, 막상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미술가들 가운데 고흐는 없다. 당연한 것이, 빈센트 반 고흐는 1890년에 사망. 포스터만 보고 좋아서 영화를 고르신다면, 요즘 말로 '낚이게' 되시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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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무심코 응모했던 카네기홀 음악회 티켓 이벤트에서는 당첨이 되지 못한 대신, 카네기홀 투어 이벤트에 초대가 되었다. 보통,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투어도 10불에 상당하는 티켓을 구매해야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짜 투어를 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나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는데, 이건 그냥 투어가 아니라 VIP 투어란다. 이름하여 "카네기홀의 문서관리자(achivist) 지노 프란체스코니(Gino Francesconi)와 함께 하는 VIP 투어!"
 
음악회 시즌 중에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기는 한데, 내가 참석한 투어를 VIP 투어로 만들어준 건, 이 홀의 문서관리자인 프란체스코니가 가이드를 해준다는 점이었다. '문서관리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으로 들릴 것 같다. 우선은 문서들을 보관한 창고(archive)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더 자세히 말하자면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모으고, 보관하는 일을 맡은 분이다.

 

 

나같이 이벤트에 당첨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약속된 시간에 카네기홀 로비에 모였다. 프란체스코니라는 분이 나와서 직접 자신의 소개를 하는데, 카네기홀에서 거의 40년 간 일을 했다고 했다. '외모를 봐선 40대 같은데, 40년을 일했다고?' 귀를 의심하면서 그 분의 설명을 듣다보니, 정말 줄리어드에서의 학창시절부터 카네기홀과 인연을 맺어 대략 40년 동안 이 곳에서 일한 것이 맞다. 나이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동안(?)의 문서관리자였다.ㅋㅋ

이 분은 워낙 줄리어드에서 지휘를 공부했고, 학창시절에 카네기홀에서 보조 지휘자로 가끔씩 무대 뒤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줄리어드 졸업 후에, 지휘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태리로 유학을 떠났고, 매우 유명한 지휘자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져서 계속 지휘 공부를 했단다.
하지만, 레슨비가 떨어져 잠시 돈을 벌 생각으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 때가 대략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자신이 무대 뒤의 지휘자로 일했던 카네기홀로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를 찾던 중, 당시의 디렉터는 그에게 카네기 홀의 역사를 만드는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수 년 후면 카네기홀의 역사가 거의 100년에 가까워질터인데, 카네기홀에 관련된 기록들이 너무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디렉터의 아이디어였다. 이 일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프란체스코니는 일단 뉴욕에 머물며 카네기홀에 관련된 가능한 한 많은 기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단 시작한 일이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어 30년간 일하게 된 셈...)

 

카네기 홀의 제일 큰 Stern Hall 무대. 리허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카네기홀이야 워낙 세계적인 홀이고, 역사적인 공연이 많이 열린 곳이라, 공연의 티켓이나 프로그램, 포스터 같은 것들이 당연히 잘 보존되어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를 설명해 줄 '문서'라는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었다는 것. 사실, 차이코프스키가 지휘를 했던 1891년의 개관기념 공연도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날 공연의 프로그램이나 티켓은 카네기홀 내부에는 보관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물들을 찾아내어 오늘날의 역사적인 컬렉션으로 복원한 이야기는 무용담에 가깝다. 그는 우선, 카네기홀의 개관당시(1891년) 부터 초반기의 역사를 설명해줄 기록들을 찾아내야 했으나 이 일을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때마침,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온 "미국 은퇴인 연합"의 잡지를 접하게 되었다. (이 잡지를 알게 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당시의 여자친구는 은퇴할 나이도 아니었는데 (홍보용으로) 집으로 배달된 이 잡지를 받고는 매우 기분 나빠했다고.ㅋㅋ 하지만 프란체스코니에게는 그야말로 일생 일대의 행운이었다.)
이 잡지가 그야말로 '은퇴인들' 그러니까 카네기홀의 초반기를 알만한 나이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는 바로 이 연합에 회비를 내고 가입한 후, 잡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모읍니다." 하고 말이다. 도움을 구해야할 대상을 정확하게 찾은 셈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던 음악회 티켓과 프로그램들이 "혹시 이게 도움이 될까?"하는 메시지와 함께 엄청나게 배달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프로그램 노트 모으는 게 취미인데, 나중에 이것들이 빛을 볼 날이 있으려나.^^

 

이렇게 해서 자료들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그는 이베이(ebay)나 플리마켓(벼룩시장)을 누비며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집했다. 예상치 못한 타주의 작은 마을 플리마켓에서 발견한 카네기홀 공연실황 음반이며, 공연 사진들은 그에게 희열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해서 어딘가에 흩어져있던 사진, 그림, 포스터, 프로그램, 레코딩, 그리고 ephemera 라는 단어로 분류되는 잡다한 물건들이 그에게 속속 입수되었고 그것들로 역사적인 컬렉션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런 카네기홀에 관련된 희귀 물품들을 찾아내느라 늘 인터넷이나 실제 옥션을 분주히 찾는다는 그는, 홀의 투어를 안내하는 동안에도 경매인으로부터 낙찰여부를 알려주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로즈 박물관의 한쪽 벽. 카네기홀 공연 실황 음반 자켓들로 꾸며져 있다.


그가 모아놓은 카네기홀 관련 기록물과 사물들의 범위와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번스타인을 뉴욕시립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임명하는 서한이며 리스트, 스토코프스키 같은 유명 음악가들의 자필 편지들, 개관기념 공연의 티켓, 비틀즈 공연 당시의 사진과 친필 사인들 등, 카네기홀의 역사가 이렇게 해서 쌓이게 되었다.
개관 100주년(1991년)에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가지고 카네기홀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Rose Museum을 열었다. 이제는 역사 속에 남은 거장 뮤지션들의 친필 사인은 너무나 대단한 기록물이지만 다른 소장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하게 느껴진다. 20세기 초반 스턴 홀 무대 위를 비추었다는 전구부터, 엘라 피츠 제럴드가 공연에서 썼던 안경, 카라얀이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 사용한 지휘봉, 베니 굿맨이 연주했던 클라리넷 등의 진귀한 물건들은 사실 구입하는 데에 (혹은 기증받는 데에) 든 돈 보다 보험료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희귀품들이 되었다.

 



 

  (사진 위) 비틀즈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노트 위에 남긴 멤버들의 친필 사인
(사진 아래) 엘라 피츠제럴드의 카네기홀 공연 실황 음반과, 공연 당시 착용했던 안경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물은 베니 굿맨의 클라리넷이었다. 배니 굿맨의 카네기홀 공연 자료를 수집하던 차, 프란체스코니는 그의 딸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고 한다. 배니 굿맨의 역사적인 카네기홀 공연 (1938년)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공연에 자기가 객석에 있었고, 그 공연의 분위기와 아빠가 연주한 곡들, 그리고 아빠가 남긴 공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남아있는 공연관련 '자료'는 없었지만, 이로써 베니 굿맨의 카네기홀 무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기록할 수 있었다.

 



베니 굿맨 밴드의 1938년 카네기홀 공연 실황 "Sing, Sing, Sing"

 

이렇게 연락을 하며 가까워진 베니 굿맨의 딸은, 로즈 뮤지엄의 개관을 기념하여 아버지가 사용하던 클라리넷을 카네기홀에 기증했다고. 카네기홀 공연때 사용한 클라리넷은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 하며 기증했다는데, 후에 소수의 클라리넷 연주자들에게 비밀리에 악기를 불어보게 했더니, 이 악기가 코플랜드가 베니 굿맨을 위해 작곡했던 클라리넷 협주곡 음반 녹음에 사용되었던 바로 그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악기가 가입된 보험회사가, 악기가 안전하게 박물관 윈도우 안에서만 전시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실제 연주에 사용하고 있지는 못한다지만, 어쨌건 대단한 가치의 유물을 기증받은 것은 분명하다.       

 

 

베니 굿맨의 클라리넷과 밴드의 타악기주자가 사용한 스틱들 (그리고 오른쪽 옆엔 번스타인의 지휘봉)

 

 

위의 악기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베니 굿맨이 연주하는 코플란드의 클라리넷 협주곡


지휘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프란체스코니 아저씨는 30년 간의 작업을 통해 카네기홀의 오랜 역사를 훌륭하게 복원해 놓았다. 이 분의 인생 자체가 마치 카네기홀의 역사를 보는 듯,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었다. 이렇게 모든 사료들을 책임지고 모으고 관장하는 분이 계시니, 어딘가에 버려졌을 기록들이 역사적인 자료로 남게되고, 역사를 서술하는 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날 카네기홀도 속속들이 구경 많이 했지만, 기록, 문서, 물증, 그리고 역사의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카네기홀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이 개관 이후 90년 가량이 흐른 무렵이다. 올해가 카네기홀 개관 120주년이라고 한다. 30년의 세월 동안 archivist 한 분이 창출해 낸 이 컬렉션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우리나라 공연장들의 기록문서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고, 그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 88년 올림픽 기념으로 정부에 의해 발주된 메노티의 오페라 악보도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니 (이웃 블로그의 '나사못회전님'께서 알려주심) 한국에서의 음악 관련 사료들의 보관 상태가 심히 궁금해진다.   

(카네기홀 관람기는 다음 편에 계속)


<뉴욕 음악 가이드>의 일부가 마로니에 북스 블로그에도 연재됩니다.  
 http://maroniebook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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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다시금 시작된 <나는 가수다> 방송이 나간 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야기의 끝에는 꼭 '그래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등장한다. 청중평가단의 선호도 조사가 순위 결과로 발표되었지만, TV로 지켜본 시청자들이 저마다 마음 속에 꼽는 1위는 방송으로 공표된 순위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출연진 모두 1등이라고 할만큼 참 대단했지만, 굳이 나에게 조금 더 와닿았던 무대를 꼽으라면, 첫
주자로 나와 관중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공감을 끌어낸 이소라의 무대를 꼽고 싶다.

이전의 무대들을 볼때도, 마치 이소라씨가 오늘날의 예술가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무엇이 그런 느낌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해보니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는 듯 하다. 그녀의 의상이며, 헤어스타일을 보면 마치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을 떠올리게 된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예술가 분위기다. 그리고 그 무대에는 패턴이 보인다--무대 위에 늘 피아니스트가 함께 한다. 마치 가곡연주할
때의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세팅을 연상시킨다. 물론 또 다른 세션들이 반주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무대의 중심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 반면, 어떤 무대에서건 피아노(피아니스트)는 항상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다. 

             

      

          

    

이 앨범 표지 때문에 모딜리아니를 떠올리게 된걸까? 아님 이소라씨의 헤어스타일 때문일까?

 

피아노와 목소리의 결합과 무대의 세팅에서 늘 무언가 클래시컬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느낌이 가곡 무대 같기도 하고, 재즈 무대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소라 음악 가운데 좋아했던 곡들 대부분이 이런 편성(보컬+피아노)을 기본으로 한 음악들이다. 개인적으로 7집 앨범에서 보여준 강한 변화도 참 좋아했고 평소에 많이 들어왔지만, 결국 문득 그녀의 음악이 듣고 싶어서 찾아듣게 되는 노래는 이런 노래들이었다.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 너무 다른 널 보면서 / 바람이 분다

이 노래들 모두 사랑의 아픔과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 시적인 감동을 피아노가 훌륭하게 받쳐준다. 사실 이소라의 노래에서 피아노가 그저 '반주'라고 하기엔 좀 아쉽고, 이 노래의 감동을 만들어 내는 데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만 하면, 예술가곡(Lied)을 정의할 때 언급되는 특징들이 대략 포함이 되는 것 같다. 


가곡에서 한 쪽의 주도가 아닌,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사이의 동등한 만남이 강조되듯이, 이소라의 무대에서도 가수와 피아니스트의 협력은 참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가곡 독창에서는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꼭 성악가의 이름과 함께 쌍이 되어 언급되는 것과 달리, 이소라의 연주에서 피아니스트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눈치채신 시청자도 있으리라고는 보는데, 바로 이 피아니스트가 <나가수 자문위원단>으로 가끔 방송에 등장하는 이승환 씨다.

 

 

이름이 가수 '이승환'과 똑같아서 혼돈을 가져올 수도 있겠는데, 이 분이 바로 '바람이 분다'의 작곡가이다. 처음 '바람이 분다'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작곡가가 이승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 두 사람의 협업이 한창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소라 작사, 이승환 작곡).
사도 듣는 순간 '예술이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피아노 파트를 들어보시라. 이 피아노 반주가 아니었다면 이 음악이 이런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피아노 전주에서 왼손 베이스의 무게감 위에 실리는 오른손 화성은 참 적절하고도 담담하게 가사가 가진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가사와 음악의 관계 분석할 때의 연구대상으로 써도 된다 싶게, 이 노래의 시적인 감흥과 음악의 관계가 참 절묘하다.)     
         
작곡가가 아닌, 이소라의 피아니스트로서 이승환의 존재감은 그 동안 <나가수>에서 있었던 모든 이소라의 무대에서 발휘가 되어 왔다. 첫 무대의 <바람이 분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4회에서 박정현의 <나의 하루>를 편곡해서 불러야 했던 미션에서는 두 사람의 음악적인 협력이 더욱 눈에 띄었다.
이소라는 중간점검에 앞서 편곡이 나와있지 않다며 불안해 했지만, 피아니스트의 반주 위에 재즈풍으로 노래를 부르며
중간점검 무대를 성공적으로 넘겼다. 중간점검 단계에서 사전에 어느 정도 편곡이 되어있던 것인지는 몰라도, 보기에 두 사람은 대략의 음악적인 스케치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피아노가 안정적으로 음악의 분위기를 이끌어주니, 가수도 여유있게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무대 위에서 연주한 곡은 중간점검때와 편곡이 좀 달랐다. 음원으로 출시된 이 나중 버전은 '오버 더 레인보우'에 등장하는 친숙한 음형을 섞어 더욱 준비된 편곡으로 재즈풍의 느낌을 살려줬다.)
     

 

 
이정도면, 예술가곡에서 유명한 성악가-피아니스트의 쌍을 부르듯, 이 둘을 이소라-이승환 '듀오'라 부르고 싶지만, 아무래도 무대 위의 주인공이 가수이다 보니 피아니스트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작게 비춰질 수 밖에 없는가 보다. 무대 위 피아니스트는 대부분 카메라의 포커스에서 벗어나 실루엣이나 뒷모습으로만 화면에 등장한다.     
 

 

 박정현-김태현의 열애설이 등장했다 사라졌지만, 사실, 그 커플보다 음악적으로 더욱 주목받을 만 한 커플이 바로 이분들이 아닐까 싶다. <나가수>에서의 무대도 그렇지만, 앞으로 <바람이 분다>에 버금가는 어떤 명곡이 이 듀오를 통해 또 탄생하게 될지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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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란 도시에 다녀왔다. 네덜란드의 도시로는 암스테르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헨델의 곡 가운데 <위트레흐트 테 데움(Utrecht Te Deum)>이라는 곡이 있었다.
찾아보니, 18세기 초, 유럽지역의 영토 분쟁
을 마무리하는 평화협정이 1713년에 위트레흐트에서 맺어졌고, 이로 인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종결되어 헨델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위트레흐트 테 데움>이라고 한다.


위트레흐트의 유서깊은 건물들: 대학 건물 가운데 하나 (상), 위트레히트 돔 (하)
(대학건물은 1600년대에 지은 건물이라고 하고, 돔의 역사는 중세시대로 거슬러가더군요.)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일 것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큰 도시가 아니고, 위트레히트 대학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 동네 자체에 구경할만 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학회에 참석한 위트레히트 대학 교수님들께 물어보니 SPEELKLOK이라는 박물관을 볼만한 곳으로 추천해 주셨다. Mechanical musical instrument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의 박물관이라고 했다.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라... 처음에 소개를 들었을 땐, 전자음악이나 컴퓨터 음악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의 음악 도구들을 전시해 놓았다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주자가 없이, 말하자면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기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었다. 교회의 종, 시계의 자명종, 오르골 같이, 사람이 일부러 소리를 내기 위해 작동하지 않아도, 사전 조작에 의해 스스로 소리를 내는 도구들 말이다.

 

 MUSEUM SPEELKLOK의 입구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매시간 정시에 있는 가이드 투어를 기다리며, 일단 제일 꼭대기층인 3층부터 돌아보기로했다. 콜렉션을 보기도 전에 반한 장소는 바로 3층에 있는 휴식 공간.

 
 

 

사람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조용하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된 느낌이, 이 곳에 앉아 책 읽거나 공부하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장소가 이 박물관 건물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곳인데, 사진에 보이듯이 전면에는 오르간이 자리잡고 있고, 건물의 구조가 딱 유럽의 교회 모양새다. 아무래도 교회 건물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든 것 같다.


 건물의 2층, 3층의 양쪽 복도에 이렇게 컬렉션들을 전시해 놓았다. (사진은 오른 쪽 복도)


양쪽 복도를 따라 걸으며 전시된 것들을 하나하나 보다보면, 그냥 골동품 가구가 아닐까 싶은 물건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악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기엔 그냥 골동품 옷장이나 시계, 반짓고리 정도로 보이는데,
모두 소리를 내는 (혹은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다.

이런 도구들을 보면서,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아가던 차, 박물관의 한쪽 편에서는 낯선 모습이 펼쳐졌다. 작은 상자들이 마치 서가에 책이 정리되어 있듯이 쭉 쌓여있었다. 저 상자들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악기 부품들이라도 들어있는 걸까 의아해하면서 다가가보니, 상자의 겉에는 음악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이 적혀져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없이 연주되는 악기의 악보인 셈.
 

 

앞에 전시된 악기들이 사람없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들이고, 뒤에 보이는 상자들이 이 악기들을 위한 악보를 담고 있다.
원시적인 CD Player와 CD의 관계랄까.

 
이 전시물들을 보다보면, 연주자가 없이도 음악을 듣고 싶어했던 인간의 욕망이 참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이 주로 교회나 왕실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연주자들'에 의해 전파되고 향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라디오나 음반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도, 연주자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꽤나 오랜 세월, 진지하게 고민이 되어왔던 것 같다.
많은 전시물들의 기원
이 1700년대로 거슬러간다. 물론 이런 도구들이 그냥 보기에도 꽤 고가의 품목으로 보이는 걸로 봐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의 귀족 계층이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악기들을 둘러보다가, 매 시간 정시에 있다는 가이드 투어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현관에서 관람객들을 모은 후에, 함께 1층에 마련된 한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이드는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악기들이 어떤 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각각의 악기를 직접 시연해준다.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연주자 없이 연주되는 악기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전시된 악기들 저마다 소리내는 매체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음반'같은 음악 매체의 혁신이 기술이 발달한 20세기 초에나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혁신을 가져온 그 이전의 (음악을 연주자 없이 들으려는) 인간의 필요와 기술의 발전사가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유튜브에서 가져온 동영상. 다양한 시연 악기들이 보인다.
동영상에서 보이듯, 이 신기한 악기들 소리에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을 위한 관람 프로그램이 따로 마련되어 있음)

 

 

사람 없이 연주되는 피아노 (Pianola).
이 악기의 옆면에는 연주자 없이 피아노 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장면이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사람 없이 연주되는 오르간
이런 오르간은 20세기 초반 카페나 댄스홀에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댄스음악이었던 셈)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거리에서 연주되었다는 오르간 (아래에 마차처럼 바퀴가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거대한 휴대용(?) 오르간들을 접하고 나니, 이런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쳤을 장인들이,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담은 음반 혹은 음악 저장도구의 탄생으로 받았을 타격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고가의 도구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탄생하면서 급격하게 수요와 설 자리를 잃게 되었을 것 같다. 교회에서나 접했던 악기 오르간이 이렇게 세속적인 악기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변화다.

이 박물관은 과거의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생각들과, 테크놀로지와 음악의 관계, 연주자와 음악의 관계 등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어느 하나를 바라봐도 '어머나!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탄성을 지르게 하는 재미난 장소이다. 아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재미난 음악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전시된 악기들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시다면,    
http://www.museumspeelklok.nl/Collec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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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천당에서 교향곡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전자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유명 작곡가들이었다. 슈베르트는 "미완성"을 썼기 때문에 참가할 자격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들이 심사위원이었는데, 마침 심사위원장이 "운명"의 신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이 우승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우스개지만, <나는 가수다> 사태에 빗대어, 예술가들을 줄세워 경쟁하게 만드는 것
이 가당키나 했던 것인지 묻는 것 같기도 하고 , 결론적으로  “천당도 지옥으로 만드는” 경쟁이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232052515&code=990201 
 

천당에서의 교향곡 경연대회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만약 심사위원이 “운명”의 신이 아닌 음악비평가나 음악학자였다면, 과연 누가 우승을 했을까' 였다. 물론 우승자를 골라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게다. 하지만, 내심 '운명의 신'이 심사를 보지 않더라도, 베토벤이 우승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베토벤 이전에도 교향곡은 존재해왔지만, 베토벤 이후 교향곡의 역사가 참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이름 앞에 붙는 ‘악성 (음악의 ‘성인’—신의 경지에 근접한 인간)’이라는 별칭은 모든 인간적인 역경과,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며 쟁취해 낸 음악적 혁신에 대한 찬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베토벤에게는 매일매일 극복하고 넘어서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사명감과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와의 힘든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서도 이런 치열한 고민과 싸움의 흔적은 그대로 드러난다.   

 


베토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에서 '환희의 송가'가 연주되는 이 장면에는, 어린 시절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베토벤 이전에 모차르트가 있었다. 모차르트에게는 ‘천재’라는 별칭이 붙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사실 베토벤 음악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치열한 고민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악보로 옮겨도 그런 자연스런 음악이 나왔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당구대에 공을 굴려가면서 악보를 술술 적어내려가는 (영화적으로 허구화된) 모차르트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베토벤 같이 스스로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었을까? 글쎄… 그는 ‘천재’니까, 그냥 재능과 감에만 의존
해서 곡을 써도 그만큼 탁월한 음악을 썼을 것 같다. 하지만 <아웃라이어>의 저자는 모차르트에게도 ‘1만시간의 법칙’ (성공을 위해 필요한 훈련과 연습의 시간)이 적용되고 있고, 그가 음악가로서의 역작을 만들어내기까지 18년 동안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가수다>를 지켜보면서,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들과 모차르트를 떠올렸다.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들이 가지고 있던 예술가로서의 역사
적 사명은 조금 더 나은 음악, 더 새로운 음악, 더 나아가서는 완벽함에 대한 추구였을 것이다. (역사적 사명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하지만, 그냥 예술가들에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하던 것, 다른 이가 하던 것 보다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느껴진다.)

논란이 된 첫 미션 무대에서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인간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반면 김건모에게서는? 김건모에게는 사실 그런 고민이 필요없는 '천재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있었다. (방송중 자문위원의 코멘터리로 언급되기도 했듯이, 김건모와 그의 음악은 여러 면에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았던)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가 7등을 했던 그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차르트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슈가 된 건, 재도전 원칙에 대한 전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에 대한 반감이 컸었고, 그를 ‘국민가수’로 칭송해왔던 청중들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재도전 논란 이후의 그의 무대는, 이 청중들의 기대와 경고를 잘 알아들었다는 응답처럼 느껴졌다.
(이 응답을
꼭 ‘재도전’이라는 형식으로 했었어야 했는지—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도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루라도 빨리 응답하고 싶었던 가수의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더보기

 

영화 <블랙 스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가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은, 스릴러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끔찍하고 잔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예술가가 스스로를 극복하는 순간, 예술가 자신과 지켜보는 이가 맛보게 되는 감동은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다.
예능 서바이벌을
보면서, 이런 예술가의 모습을 마주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란 이후의 무대를 바라보며 이 모든 가수들에게서 '예술가'의 모습을 봤고, 거기서 감동을 느꼈다. 어떤 TV프로가 이렇게 생생하게 좀 더 나은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가수들의 노력을 담아냈었던가. 그 어떤 ‘교양 예술 프로그램’보다 예술적인 감동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분께서 아래 글에 댓글을 붙여주셨듯이) 재도전 논란
이전의 무대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가 낮잠을 자고 나서 꼴찌한 후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걸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논란 이후의 무대는 토끼가 낮잠자지 않고 거북이들을 격려하며 함께 걷는 길을 택한 모습이었다. 모차르트에게 베토벤의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베토벤의 고통을 모차르트가 조금은 함께 해줬으면 하는 평범한 인간적 기대가 먹히는 모습, 지나간 역사 속에서는 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가수다>에서는 맛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떤 예술가들의 모습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감동을 느
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nnfm.tistory.com


p.s. 블로그 문닫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워낙 '나가수' 평론가는 아닌데, 주변에서 하나 더 써보라 하셔서 제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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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과 <남자의 자격-하모니 편> 같이 음악을 배우는 것을 소재로 했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붐이 일면서,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궁시렁댈 수 있는 수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oo 프로 봤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출연자의 노래는 왜 좋았고, 누구는 뭐가 문제였고…’ 하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걸 보면, 이제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심사위원이자 평가단이고, 음악을 듣는 귀가 참 날카로와 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누누히 방송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시청자들도 모두 공감하듯,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얼마나 훌륭한 가수들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 취향의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들의 능력을 순위로 매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서로 다른 색깔의 가수들이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억지스런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대형 가수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수퍼 메가 콘서트'나 '빅 쇼'가 아닌, '서바이벌' 예능의 모습으로 나타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가수가 노래를 잘 하는지 아닌지, 인기가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순위프로가 아니라, 주어진 미션에 대한 해결능력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 속에 나타나는 경쟁, 긴장감들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평가를 이미 뛰어넘어선 출연진들이므로, 꼴찌를 해서 탈락을 한 다 해도 가수로서의 능력이 꼴찌가 아닌, 특정 미션에 대한 해결 능력에 대한 순간의 평가가 최저점으로 나왔을 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꼴지를 하게 된 가수가, ‘나는 노래도 열심히 했고, 피아노도 잘 쳤는데’ 떨어졌다며, 탈락하게 된 것에 아쉬워하고, 결국은 재도전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우선은 ‘꼴찌 탈락’의 룰을 첫판에 뒤짚어버린 방송 제작진들과 가수의 선택이 실망스럽지만, 사실 ‘음악청중’의 입장에서 불쾌한 것은 그의 재도전을 정당화시키는 과정이다. 그가 떨어진 이유가 립스틱을 바른 퍼포먼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노래가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 탈락된 것이라면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한다고 하고, 가수 스스로도 립스틱을 괜히 발랐다고 한다.

정말? 난 이 논리가 평가단의 귀를, 더 나아가 시청자들의 귀를 참으로 무시하는 말들로 들렸다. 요즘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국민가수가 립스틱을 얼굴에 문대는 자기희생적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 이유만으로 꼴찌를 만들었을까.


기존의 곡들 가운데에서 미션곡을 선정하게 된다면, 미션의 평가 기준은 그 곡을 얼마나 새롭게 들리도록 만들어졌는가에 있는 것 같다.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뻔한 노래를, '얼마나 뻔하지 않게 새롭게 재창조 하는가', '진부함과 익숙함을 어떻게 그 가수만의 색깔과 독창성으로 살려내는가'가 관건이었다.
여기서 가수는, 과거에 히트했던 미션곡들의 가치(사랑받았던 이유)를 간직하면서도, 그들이 새로운 옷을 입혔을 때 얼마나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펼쳐놓아야 했다. 스스로 편곡을 했건, 전문 편곡자의 도움을 받았건, 미션 수행의 포인트는 옛 히트곡의 진부함을 무대 위의 참신함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수의 음악적인 역량이었을 것이다.
가수만의 곡을 꿰뚫는 안목, ‘재해석’ 능력이 중요하고, 그것을 살려낼 구체적 방법을 알고 있는 연주자, 편곡자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것이 이들이 평가받아야 할 미션이었다.


첫 공연을 했던 윤도현이 1위의 평가를 받은 것은 음악적으로도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윤도현은 <나 항상 그대를> 원곡 피아노 반주에 뭔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음을 잘 잡아낸 듯 하다. 준비과정에서 피아니스트를 등장시킬 계획을 이야기할 때에는,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위한 의도라고 짐작했었는데, 막상 실제 공연을 보니 이 원곡이 워낙 피아노 반주가 좋은 곡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장점을 1절에서는 전문 피아니스트를 등장시켜 극대화시켰고, 2절에서는 락 스타일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했다. 피아노와 락밴드의 어우러짐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것 같은 화려한 소리 효과를 만들어냈고, 윤도현은 이러한 음악적 비전을 무대 위에 이끌어낸 지휘자와도 같았다. (무대 위의 단 위에 올라가서 음악에 몸을 맡긴 윤도현의 퍼포먼스는 실제로 지휘자를 연상케 했다.)

백지영, 이소라 두 여자 가수의 노래는 편곡 자체가 음악을 새롭게 들리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수들의 뛰어난 감정표현력 때문에 이 노래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나치게 슬프게 불렀다는 비판들도 있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을 극대화시켰고, ‘이 노래가 연주자(가수)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노래가 될 수 있구나’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편곡의 힘을 제대로 이용한 경우가 김범수와 정엽의 노래였다.  김범수의 곡은 1절과 2절의 대조가 귀를 사로잡을 만 했고, 어떤 분위기의 노래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이 가수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편곡이었다. 
댄서의 등장 역시도 무대 위의 음악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치였기에 평가에 플러스 요인이되었으리라 본다. 정엽의 곡은 트로트가 편곡을 거쳐 거듭나면 이렇게 새로운 맛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정엽이란 가수가 어떤 음악을 가져와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재창조할 능력이 있는 가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사실 제일 좀 판단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박정현의 공연이었는데, 특별히 편곡이  곡 자체를 새롭게 들리게 만든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감정 표현이 대단해서 감동을 끌어낸 것도 아니었다. 곡 자체가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을 만들어내기에 그리 좋은 재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심하게 템포변화를 줄 수도 없는 곡이었고, 트로트처럼 다른 스타일로 편곡해놓으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장르의 곡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의 곡에서 새 느낌,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마치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것과 같은 진지함과 열정이 분명 느껴졌다.


이에 비해, 김건모의 공연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의 화려한 피아노 전주는 흠잡을 데 없이 연주되었지만, 그 진행이 옛 발라드 노래에서 들었던 전주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았고, 반주의 화성 또한 그리 새롭게 들리지가 않았다(그의 노래 어디선가 들어봤던 소리).
편곡이 특별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고, 노래에서 다른 가수들처럼 연주에서처럼 극대화된 감정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냥 잘 부른 노래였지, 크게 남다르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이 없었다. ‘진지한 걸 싫어하는' 가수에게 너무 진지한 원곡이 아니었나 싶다. (원곡보다 감정을 극대화 했다면 신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편곡을 좀 더 달리할 수는 없었을까. 다른 이들은 생명이 다한 노래를 살려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우리의 국민가수는 자신의 해오던 음악의 틀 안에서, ‘경험상 이 정도 하면 먹히던데…’하고 자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문제는 립스틱을 바른 퍼포먼스가 아니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에서 진짜로 ‘립스틱 짙게 바르는’ 퍼포먼스를 떠올리는 생각의 진부함이 음악으로 드러났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의 청중들이 얼마나 예리한데…

 

립스틱 바른 게 잘못은 잘못이었다. 보는 순간 노래의 맥락은 사라지고, 영화 배트맨 속의 조커만이 떠올랐다.


그 무대에 ‘노래를 잘 못하셔서’ 혹은 ‘음악이 별로여서’ 탈락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을 만 한 가수는 아무도 없다. (그저 어떤 미션에 역량이 좀 덜 발휘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저 자의식 강한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누구도 감히 ‘음악적 이유’로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가장 완곡하게 말할 수 있는 탈락의 이유가 가장 눈에 띄는 음악 외적인 이유—립스틱 바른 퍼포먼스—였을 것이라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 빈약한 이유를 근거삼아 결과적으로 게임의 룰까지 뒤집히게 되니, 시청자들은 더욱 우롱당한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이번 논란 때문에 시청률이 더욱 올라가게 될지, 아니면 시청자들이 영영 등을 돌리게 될지 앞으로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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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선배로부터 들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한 음대생이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자신은 일일히 연습하고 공부해서 수년간 '습득한' 클래식 레퍼토리가 그 곳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들도 흥얼거리는, 현지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음악이었다는 데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의 뿌리가 서양에 있으니 그럴 것이라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뉴욕에 살아보니, 아무리 서양에 살아도 서양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과 더 친숙할 것이라는 가정이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세계 어디서나,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클래식 음악과 전혀 상관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인 듯 하다. 클래식 음악회에 가 봐도 한 눈에 흰 머리 청중들이 객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클래식이 이곳에서도 젊은 청중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인상까지 받게 된다.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클래식 음악청중의 저변'이란 것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인터미션 때, 공연장의 화장실에서, 혹은 다른 객석에서 사람들이 '졸렵다'라는 말 대신에, 연주된 음악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고 왜 저런 연주가 의미가 있는지, 혹은 그 작품이 뭐가 특이한 지 짚어내는 대화들을 엿듣게 될 때이다.
그냥 동네 할머니 같은 행색의 아주머니들 사이에도,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자신들만의 의견이 (너무나 사소할지라도) 분명하고 간결하게 표현이 된다. 나는 책으로 배운 사실이 그들에게는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무엇이 이런 보통의 사람들이 음악에 관한 수다를 떨며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걸까? 음악회에 가는 것 말고, 무엇이 생활 속에서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일까?...아마도 음악회보다는, 이들이 가깝고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매체, 라디오가 그 공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시차극복이 안 되어 새벽녘에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며 클래식 음악을 찾아 귀에 꽂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뉴욕의 라디오를 통해 처음 들었던 클래식 음악이 중세시대 성악곡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음악사 책에서 봤던, 그리고 일부러 공부하기 위해 선곡집 찾아 들었던 음악을 얘네는 라디오로 듣는구나...!' 하는 게 나의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라디오에서 중세 성악곡이 나오는 일은 여기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어쩌다 그 곡이 내 귀에 딱 걸렸던건지...ㅋㅋ)
처음에는 라디오를 영어로 듣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으나, 작곡가 이름과 곡명 소개가 전부이고, 사실 작품 해설이나 다른 말이 하나도 들어가있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과거에 한국에서 클래식 FM 프로그램에 원고를 쓰는 것이 직업이었던 나에게 좀 충격이기는 했다--여기서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은 없는 것이구나 싶은... 하지만 계속 라디오를 듣다 보니, 음악을 듣는 일에는 말이 필요 없고, 좋은 선곡만이 청취자를 사로잡는다는 이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이 인터넷으로도 제공이 되기 때문에, 뉴욕의 클래식 라디오 채널이라고 해서 굳이 뉴욕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 많지 않은, 그리고 다양한 선곡의 클래식 음악을 줄창 듣고 싶다면, 혹은 일하는 시간의 배경으로 깔아놓고 싶다면, 전 세계의 어디에 계시건 앞으로 소개할 라디오 방송국들의 링크를 따라가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아래 툴바를 통해 이 블로그에 와 보신 분들의 지도를 펼쳐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전 세계 계신 분들이 이 블로그에 와보셨구나 싶은...)

 


몇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방송국 기금 모음 캠페인 기간에 WQXR 채널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그림. 피아노와 뉴욕의 상징 옐로우캡이 어우러져 그려진 그래픽이 흥미롭다.  


WQXR (www.wqxr.com)
뉴욕의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방송국. 주파수 105.9 fm.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들로만 봐선 참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프로그램의 제목조차 없이, 방송 진행자의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특별히 '이 시간엔 이런 음악만'(예를 들어 한국에서 오후 4시경에 라디오를 틀면 성악곡만 나오는 것 같이)이란 컨셉이 없어서, 어떤 시간에 틀어도 다양한 음악들이 흘러 나온다. 주로 바로크-고전-낭만-초기 현대음악 레퍼토리 위주. 

홈페이지 화면의 오른쪽 상단 "WHAT"S ON"에는 현재 방송되고 있는 음악의 제목과 작곡가 이름이 바로 바로 뜬다. 음악을 듣다가, '어, 이거 누구 곡일까?' 싶을 때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 창의 하단에 있는 'Listen Now'를 클릭하면 라디오 방송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요 홈페이지가 음악을 들을 때 아주 유용한 것이, WHAT'S ON 바로 밑에 WQXR 말고도 3개의 클래식 채널을 더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Q2, FM 93.9, AM 820 요렇게 세 개의 탭이 WQXR 옆에 더 보이는데, 각각의 채널이 또한 차별화된 취향의 클래식을 들려준다.
Q2
현대음악을 주로 들어볼 수 있는 채널인데, 미국에서는 어떤 현대음악들이 자주 연주되고 알려져 있는지, 어떤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현대음악 라이브 연주를 녹음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작곡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도 하는, 정말 현대 음악의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방송이다.
FM 93.9AM820미국의 공영방송인 NPR 채인데, 전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할당된 채널이 아니지만, 때때로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미국의 교양 라디오 채널인 셈. 음악 말고도 교양이 될만 한 다양한 소재들이 방송으로 등장한다. 

WQXR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WQXR 방송국의 홈페이지와 방송을 통해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클래식 음악관련 뉴스와 이슈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 음악에는 말이 필요없다고는 했지만, 음악에 말로 해설을 붙이는 방송이 있다면 이런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은 방송이 주로 밤시간에 흘러나온다.
이 가운데 Bill McGlauglin이라는 분이 진행하는 방송이 특히 재미있다. 건반을 앞에 두고 작품에서 특이한 선율이며 화성 진행들을 짚어주면서 방송으로 듣는 음악이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는데, 클래식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야 할 지, 음악을 듣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쉬우면서도 유익한 방송이다. 토요일 오후 (주로 1시-5시 사이--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7시)에는 메트 오페라 실황을 중해주는 경우가 많다. 시간대가 한국과는 잘 맞지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 메트의 오페라 실황을 인터넷 라디오로나마 들어볼 수 있는 방법이다.        

방송국이 어떻게 운영이 되길래 크게 상업적인 색채 없이 양질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는건지 궁금한데, 아마도 일년에 서너번 씩 있는 Pledge (기금 모금) 기간에 청취자들에게 받는 기부금들이 주요 재원이 아닐까 싶다. 워낙은 뉴욕타임즈 소유였으나 수년 전에 워크아웃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MP3 플레이어의 시대에 누가 굳이 '클래식 음악'을 '라디오' (이제는 인터넷)으로 들을까 싶지만 (그래서 "Help save the classical music on radio in New York City"라는 위 이미지에 적힌 글이 좀 절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고전적인 매체는 그 나름의 강점이 있는 법. 그냥 틀어놓기만 하면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매체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익숙하게 계속 우리 곁에서 맴돌다가, 나중에는 안 들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무언가로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클래식 음악을 가지고 화장실에서도 수다떠는 흰머리 청중이 될런지....^^ 아무튼 클래식 음악만을 듣고 싶으실 때, 이 WQXR의 방송은 아주 유용하다.  

WQXR 이외에도 인터넷으로 들어볼 만 한 클래식 음악 채널이 몇 곳 더 있다. 이곳들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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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의 소규모 앙상블 작품들로만 구성된 연주회가 2월 16일 뉴욕 보헤미안 내셔널 홀에서 있었다. 진은숙은 현재 세계 무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곡가의 주요 활동무대가 유럽이어서인지, 미국에서는 그 이름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미국의 음악가들에게 "Unsuk Chin"을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 갸우뚱 하거나,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름만 들어봤다는 정도. 그러나, 이 분이 2004년 그라베마이어 수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음악을 들어본 후의 반응은 확실히 달라진다. 

 
그녀가 유럽보다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유를 꼽는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미국이 그녀의 베이스캠프가 아니어서이기도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이들의 음악이 활발하게 연주되다 보니,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양) 작곡가의 작품을 올리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그녀의 작품이 연주되는 음악회를 접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2008년의 몬트리올 심포니의 '로카나' 카네기홀 연주, 그리고 지난 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첼로 협주곡' 세계 초연 등의 굵직한 연주를 통해 이제 미국에서도 그녀의 입지를 확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뉴욕에서 '진은숙의 작품들로만' 짜여진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다. 게다가 연주된 네 곡 가운데 세 곡은 뉴욕 초연이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현대음악 연주단체인 '탈레아 앙상블'에 의해 짜여졌고, 뉴욕 한국 문화원에 의해 후원되었다.
탈레아 앙상블 악단의 크기에 맞게, 소규모의 앙상블 작품들로만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작인 바이올린 콘체르토, 그리고 <로카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대편성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들로 알려져있는 가운데, 쉽게 접하기 힘든 소규모 작품들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작품들은 소규모 편성이라는 면에서 연결고리를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 1990년대에 작곡되어 2000년대에 수정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래서, 이번 연주는 대규모 작품으로 명성을 얻기 이전에 이 작곡가는 어떤 작품들을 썼던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탈레아 앙상블>

 

<공연이 열린 보헤미안 내셔널 홀 입구>


연주된 작품은 <Allegro ma non troppo>, <ParaMetaString>, <Piano Etudes> 가운데 II, IV, V, VI번, 그리고 <Fantaisie Mecanique>였다.
첫 두 작품은 테입에 녹음된 음원들 위에 악기 연주가 덧붙여지는 아이디어로 구성된 작품이었다. 첫 작품 <Allegro ma non troppo>은 타악기 독주자가 종이장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서부터 시작하여, 테입에 녹음된 우리 주변의 생활 소음들이 위에 자연스레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들을 얹어 새로운 소리의 세계로 청중을 이끌었다. 녹음된 소음들의 바탕으로, 우리가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우리 삶 속의 숨겨진 소리들을 음악적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이었다. 테입에 녹음된 음원의 사용, 소음의 활용이라는 점에서는 셰퍼나 케이지 같은 과거의 현대음악가들을 떠올리게 되긴 했지만, 테입에 녹음된 음원은 스피커로 흘러나오고 거기에 실제 연주가 함께 얹어지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음악적인 내용은 진은숙 만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ParaMetaString> 역시, 테입에 미리 녹음된 현악기 소리들을 각 악장마다 하나의 화두로 삼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그 소리를 중심으로 네 명의 현악기 주자들이 다채로운 소리의 탐험을 보여주었다.

  

<공연 시작 전 객석 풍경>


앞의 두 음악이 다소 전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은숙의 명성만 듣고 음악회장을 찾은 현대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에게 전반부 프로그램은 다소 어렵게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비해 피아노 독주곡, <Piano Etudes>는 일단 시각적, 청각적으로 청중들을 사로잡는 데에 가장 용이했던 레퍼토리였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진은숙의 음악이,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소리(음향) 자체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특성은 대편성 작품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날 연주된 곡들 가운데에서는 이 피아노 곡에서 그런 생각을 가장 잘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일본 출신 피아니스트 타카 키가와가 게스트 독주자로 이 작품을 연주했는데, 연주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연주가 더 좋았다면 작품도 훨씬 더 멋있게 들렸을 거라 본다.         

마지막 곡 <Fantaisie Mecanique>는 여러 타악기, 트럼펫, 트럼본, 피아노를 위해 구성된, 이날 연주된 곡 가운데에는 가장 대편성의 곡이었다. 제목이 <Fantasie Mecanique>라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생각했는데 ('기계적인 환상곡? 환상은 자유로워야 하는 거 아닌가? 환상이 기계적으로 펼쳐진다고?'), 역시나 작곡가는 위대한 존재였다. 이 아이러니컬한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펼쳐놓다니...작품을 밀고가는 음악적인 틀을 구성해 놓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환상이 다양한 악기들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느 한 음도 그냥 대충 얹어지지 않았고, 그냥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숙고와 그에 바탕을 둔 참신한 아이디어가 함께 빛을 내는 작품을 듣고 있다보니,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기까지 작곡가가 얼마나 심각하게, 치열하게 고민하며 곡을 썼을지가 느껴지는 듯 했다.

<연주 후 지휘자의 요청에 따라 전면으로 나와 연주자들과 함께 객석에 인사하고 있는 진은숙 작곡가>

(사진이 좀 흐릿합니다요.^^)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을 만 한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나를 포함,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을 하기 힘든 일일 게다. 음악회의 중간에 <탈레아 앙상블> 소속의 앤소니 층(Anthony Cheung) 박사와 진은숙 작곡가와의 토론이 있었다. 어떻게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스승 리게티에게서 배울 때 어땠었는지, 이 소규모 작품들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등 흥미롭고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대답은, 리게티에게서 배우던 시절이 진은숙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단 것. 리게티가 너무나 비판적인 스승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작곡가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시기였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협주곡, 관현악곡, 오페라 등의 대규모 작품들을 쓰고 있는데, 이날 연주된 소규모 작품들을 쓸 때와 최근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작곡가는 나이가 들수록 (음악적으로) 보수적이고 낭만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했다.(언젠가 이 단어들 뒤에 놓인 깊은 의미들에 대해 후대 학자들의 코멘터리가 붙게 되리라 본다.)
덧붙여, 대규모 작품들 속에서 아직도 "searching for a new harmony" (새로운 하모니를 찾고 있다)라는 마지막 말에서, 작곡가로서의 확고한 사명감이 느껴졌다.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오랜 여정길에 만들어졌던 앙상블 작품들의 연주회. 이 연주회에는 "PORTRAIT CONCERT"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초상화(portrait)가 의미하듯,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얼굴을 걸고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은 생각을 남겨준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진은숙의 피아노 연습곡 V. 토카타. 이날 공연에서 연주된 피아노 곡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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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음악회를 보고 싶다면, 제일 먼저 체크해 봐야 할 장소가 바로 링컨 센터다. 사실 링컨 센터는 클래식 음악만을 위한 장소라기 보다,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아우르는 복합 공연 예술 컴플렉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건 뉴욕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이 가장 많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링컨 센터를 꼽아야 할 것 같다.

링컨 센터는 카네기홀에 비하면 그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5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 한 규모다. 카네기홀을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에 비한다면, 링컨 센터는 예술의 전당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다양한 공연 예술들을 위해 특화된 공연장들과 상주하고 있는 예술 관련 기구들의 성격이 예술의 전당과 많이 닮아 있다. 아니, 반대로 예술의 전당이 분명 링컨 센터의 구조와 구성을 모델로 삼아 지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링컨센터의 50여년 역사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곳 http://new.lincolncenter.org/live/lpca_timeline/beyond.php

링컨 센터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upper westside)에 자리잡고 있다. 아직도 계속 전체 컴플렉스의 위치가 인근으로 확장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공연장들과 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브로드웨이 선상의 62가부터 66사가 사이. 지하철 1번 라인, 66 St-Lincoln Center 역에서 내리면 바로 링컨 센터의 앞이다. 

 


오늘 이야기 할 주요 건물들이 위치한 곳은 62가부터 65가 사이. 66가 지하철 역에서 내려 스트리트 숫자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이런 글씨가 나온다.



이런 간판(?)이 설치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링컨 센터의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던 2009년 이래로 이 일대에는 리노베이션 공사가 한창 진행이 되어왔는데, 작년 가을 무렵부터 링컨 센터 플라자라 불리는 이 광장의 외관이 많이 달라졌다. 중앙에는 다양한 모양새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가 설치되었고, 계단 사이 사이에도 링컨 센터에서 벌어지는 공연들에 대한 안내가 가능한 작은 전광판들이 설치되었다.
(계단 사이 사이에 희끗 희끗 보이는 것들이 바로 공연을 알리는 문자들.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작은 공간도 홍보에 이용하려한 시도가 느껴지지만, 사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좀 산만한 느낌)


어쨌건 이 정면의 계단을 올라가면 세 개의 건물이 눈에 보인다. 오른 쪽이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 왼쪽이 데이빗 코흐 극장(David H. Koch Theater), 그리고 정면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litan Opera). 세 개의 굵직한 공연장들이 서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아무래도 오른 편의 애버리 피셔 홀 (위 사진). 이 곳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로 연주하는 공연장이다.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위한 전용 홀. 가끔씩 뉴욕 필 이외의 외부 오케스트라들의 공연도 이루어지만, 뉴욕필의 홈 스테이지다 보니, 건물 안에는 뉴욕필의 역사와 명성을 일군 거장 지휘자들의 사진들과 그들의 친필기록들, 악보들의 일부가 잘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뉴욕필의 공연을 보고 싶다면 www.nyphil.org 에서 공연 일정을 체크해볼 수 있다. 가끔씩 예매단계에서도 학생할인(student promo)이 되는 공연이 있고, 공연 당일에 학생할인 여부가 확인 가능한 공연들이 있다. 이 또한 여의치 않을 땐, 오픈 리허설(open rehearsal) 일정을 확인해 보자. 아침 10시 경에 시작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학생이나 무직자, 여행객만이 가능한 시간...-.-) 저렴한 가격에, 평상복을 한 지휘자와 단원들의 리허설 무대를 지켜볼 수 있다. 워낙 프로들이다 보니, 리허설일지라도 공식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준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전면에 보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악가들의 무대이다. 오페라 시즌이 주로 9월 말에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가게 되는데, 한 시즌에 공연되는 오페라가 대략 30여 개. 일요일에는 공연이 없고, 토요일에는 낮 공연과 저녁 공연, 두 개의 공연이 잡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무대 세팅이 이 많은 다양한 오페라 공연에 맞게 바로바로 전환되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도 이곳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스타들의 사진들이 멋있게 전시되어 있다.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 건물 양 옆의 유리창을 통해 그림이 보이는데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창이 빨간 현수막으로 가려져 있긴 하다. 왼쪽에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서는 약간 그림이 보임) 이것이 샤갈의 작품 "The Triumph of Music"이라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와 이곳에서 만날 약속을 하는데, "메트 오페라로 와"라고 하니 링컨센터에 있는 여러 건물들 중 어떤 건물인지 헷갈려 하더니만, "아 그 샤갈 그림 걸려있는 극장!" 하면서 알아들었다. 건물 양쪽 끝 창 속으로 보이는 샤갈의 그림 두 점이 주요 이정표가 될 수 있겠다.

오페라를 보려면, www.metopera.org 에 들어가 공연 일정들을 체크해 보고, 오페라를 고르면 된다. 이만하면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 할 만 하지만, 볼만한 화제의 오페라 공연들이 너무 많아서 몇 가지만을 고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문제, 그리고 좋은 공연들은 미리 매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하는 공연은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티켓의 가격은 제일 싼 패밀리 서클의 스탠딩 룸 티켓부터 제일 비싼 오케스트라석 (객석 1층) 티켓까지 다양한 초이스가 있다. 개인적으로 측면 자리는 피하라 권하고 싶고 (오페라 공연이 보통 3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긴 시간동안 고개를 무대 쪽으로 향하고 있다 보면 무척이나 목이 피곤해 진다.) 저렴하게 보기 위해 스탠딩 룸 (서서 보는 자리-서서보는 자리도 그 공간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다.)을 택할지라도 오케스트라 스탠딩 룸 (객석 1층의 맨 뒤에 위치한 입석)은 가능하면 피하시라 권하고 싶다.
극장 객석의 맨 윗층, 패밀리 서클에 있는 스탠딩룸보다 1층이라는 이유로 가격은 더 비싸지만, 윗층 객석이 시야를 가리는 극장의 구조상 무대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스탠딩 룸 또한 두 줄이라, 운이 좋아 첫 번째 줄 티켓을 사게되지 않는다면, 앞 줄에 서 있는 다른 관객의 뒷통수만 보다가 나오게될 확률도 높다. 때때로 학생 할인 티켓이 뜨기도 하는데, 학생 티켓이 있는지 여부는 공연 당일 오전에 박스 오피스에 확인해야 한다. 가장 저렴하게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는 방법은 가능한 한 평일 공연을 택하고, 평일 공연에 제공되는 Rush Ticket에 도전해 보는 것. 선착순으로 하루에 200장까지, 오케스트라석을 20불에 판다.
판매 자체는 공연보다 2시간 전에 시작되는데, 선착순이다 보니 줄이 보통 11시경부터 형성되기 시작. 극장의 지하에 이 Rush Ticket을 위한 줄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주말에도 Rush Ticket이 있긴 한데, 이건 추첨에 의해 당첨된 사람만이 구매할 수 있다. 이 주말 Rush Ticket에 도전하려면 그 주 월요일부터 메트 홈페이지를 들락거려줘야 한다. 

(http://www.metoperafamily.org/metopera/contests/drawing/index.aspx)

오페라 시즌이 끝나는 봄에는 이 극장에서 ABT (American Ballet Theatre)의 공연이 이어지게 된다. 미국 국립 발레단이라고 보면될 듯. 최고의 무용수들, 최고의 프로덕션에 의해 이루어진 발레 공연을 맛볼 수 있다. 발레가 클래식 음악과 제일 깊은 연관이 있는 공연 예술 중 하나이니, 발레를 보면 눈이 즐거울 뿐 만 아니라 귀도 즐겁다.      



그러나, ABT보다 뉴욕의 발레를 대표하는 발레단을 꼽는다면 뉴욕 시티 발레단(New York City Ballet)을 꼽을 수 있겠다. 바로 Avery Fisher Hall의 맞은 편, Met Opera 극장의 옆에 위치하고 있는 데이빗 코흐 극장(David H. Koch Theater)이 바로 시티 발레단이 상주하고 있는 극장 (위 사진).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바로 이 발레단의 주역 발레리나로 연기한다.)
이 극장은 시티 발레단의 공연을 위해 주로 사용되지만, 시티 발레의 시즌이 아닐 때는 시티 오페라의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유사하지만, 주요 용도가 서로 바뀌어 있는 형태.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오페라 공연 위주로 사용이 되고 시즌이 아닐 때 ABT의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반면, 이 극장은 주요 공연 시즌(겨울)에는 주로 발레 공연을 위해 사용되고, 비 시즌에 오페라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뉴욕 시티 발레단의 홈이다 보니,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 뉴욕을 빛낸 유명한 무용가들의 공연을 담은 멋진 예술사진들이 마치 갤러리처럼 전시되어 있다. 겨울철에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 발레들이 뉴욕 크리스마스 시즌의 전통으로 자리잡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1930년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이 발레단을 이끈 이래로 발전한 현대 발레 작품들이 시티 발레의 강점인 듯 하다.          

극장이 무용공연 위주로 만들어져서 무대 양쪽으로의 폭이 넓고, 무대와 객석 맨 뒤 사이가 다른 극장에 비해 더 좁아서 음악공연장으로서는 음향적으로 다소 불리한 설계이지만, 오페라 공연이 이루어지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시티 오페라의 프로덕션이 메트 오페라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메트에서 하지 않는 실험적인 오페라들도 시티 오페라에 의해 공연이 되고, 메트 오페라에서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은 메트 오페라가 전 세계의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있다고 들었다. 메트 오페라 하우스 앞에도, 시즌이 시작될 무렵 위의 사진처럼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오페라의 시즌 첫 공연을 스크린으로 생중계하기 위해서다.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공연 예술은 실황으로 마주했을 때 더욱 그 감동이 큰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건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처럼 큰 경기장에서 대규모의 관객들을 모아놓고 하는 오페라 공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실황이기는 하지만, 야외에서 앰프를 통해 확성되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음향적인 테크놀로지가 발달을 할지라도, 이런 형태의 집단 체험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데에 얼마나 적합한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한 미국 친구가 함께 애버리 피셔 홀에서 있던 공연을 보고 나서는 2층 발코니에서 전면과 측면에 보이는 다른 두 건물들(메트 오페라와 시티 발레 극장)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시도해봄직 한 공연 아이디어가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세 건물 자체를 공연 무대로 삼는 오페라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건물 안의 무대가 무대가 아닌, 건물 자체가 무대가 되는 대규모의 공연. 서로 마주보고 있는 시티 발레 극장의 발코니와 애버리 피셔 홀의 발코니에 합창단을 위치하게 하고, 메트 오페라 극장 쪽을 무대 전면으로 삼아 그 곳에 오케스트라와 솔로이스트들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글쎄...' 마이크나 앰프 설치 처럼 기계적인 도움이 너무나 많이 요구되는 대규모 야외 공연에 다소 못마땅해하던 터라 적극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뉴욕 공연 예술의 메카인 링컨 센터의 세 주요 건물들을 공연의 스테이지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참 재미있게 들렸다. 공연장 건물이 공연장이 되는 트랜스포메이션. 자신이 그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면, 나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친구는 이런 기획을 할 행정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꿈꾸는 것이 좌절되지 않는 분위기, 그것이 바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곳으로 모여들게 만드는, 그리고 뉴욕이 예술적으로 풍성한 도시가 되도록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공연을 보게 된다면, 그 때도 객석은 이렇게 (아래 그림처럼)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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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는 일본 친구의 고양이 코코추가 지난 주에 죽었다. 한 두 달 전부터, 코코추가 음식을 잘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게 일종의 노환 증세였었나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고양이의 수명이 20년이 채 안 된다고. 코코추의 나이는 17세였다.

그 친구가 그 고양이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어떨지 짐작이 가기는 했지만, 사실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뭐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완전히 공감할 수 없기에, 괜히 무슨 말을 했다가 섯부른 위로가 되지나 않을지 조심스러웠다.

이 친구는 일본에서의 한 설문조사 이야기를 했다. 원래 일본의 전통을 따르자면 사람이 죽은 후, 가족들이 한 묘에 묻히게 되지만, 현재, 일본 사람들의 많은 수가 가족보다는 자신들의 애완동물과 함께 묻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있다고 했다.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그렇게 영원히 코코추와 함께 하고 싶다고.
실제로, 일본에 계신 그 친구의 양아버지 또한 애완견을 아끼셔서, 가족들이 다니는 절의 스님께 애완동물과 함께 묻힐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는데, 그럴 수는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스님께 상담을 할 정도라니,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원(?)이 그냥 무시할 만 한 사안이 아니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애완동물의 죽음이 주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그린 음악하면 떠오르는 NexT의 <날아라 병아리>

 

함께는 묻힐 수 없다고 하니, 그럼, 코코추를 먼저 떠나보내는 길에 (화장하는 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를 그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그 친구의 양아버지가 일본 스님께 대답을 들었듯, 불교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삶에 구별을 두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동물 또한 영혼을 지닌 존재로 귀하게 바라보는 종교가 불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불교식으로 염불(chanting)을 해주면 자신의 코코추가 그 소리를 듣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이런 대화 끝에,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 혹은 이제는 생과 사의 길을 갈라선 어떤 존재와 소통하려 할 때, '음악' 혹은 '소리'만큼 유용한 수단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한 스님께 말씀 들었던 '범음(梵音)의 세계'가 떠올랐다. 인간, 동물, 산 자, 죽은 자 등의 다양한 존재들이 모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뛰어넘는 세계에서는 '소리'가 소통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염불이 그런 매체일 거고, 다른 종교에서도 분명 다른 방식의 '소리내기' 방식이 있을 것 같다. 무속에서의 '굿'도 소리를 통한 매개가 있는 것이고,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도 죽은자를 위한 음악으로 레퀴엠(진혼곡)이 있다.

거창하게 염불, 진혼곡 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니 죽은 애완동물들을 위한 음악들이 참 여러가지가 떠올랐다. 죽은 영혼을 달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의 안타까움, 슬픔을 담아내고 있는 음악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기록으로서의 음악...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개에 대한 회상, 양희은의 <백구>


 



또 다른 개에 대한 추억, 마이클 잭슨의 <Ben>


이렇게 노래로 애완동물과의 추억을 아름답게 되새기는 가수들이 있는가 하면,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으로 애완동물을 추억한 음악가도 있었다. 언어(가사, 말)를 뛰어 넘어, 소리 만으로 그 존재를 표현하고, 추억해보고, 그 존재가 영원히 기억되도록 만든 음악--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olla)의 작품 <무무키(Mumuki)>가 바로 그런 곡이다. '무무키'는 피아졸라 부인의 이름이기도 하고, 피아졸라가 그의 개(Flora)를 부르던 애칭이기도 하단다.


 



피아졸라가 직접 반도네온을 맡아 연주하는 <무무키>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장례 의식이 벌어졌다가 마무리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곡이 작곡되었던 시기가 그의 개 무무키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고. 마치 장례식에 문상 온 조문객들처럼 악기들이 서서히 등장을 하고, 피아졸라는 무무키와의 기억을 (반도네온으로) 되살려낸다. 빠른 템포의 가운데 부분은 그런대로, 후반으로 가는 느린 템포의 부분은 또 그런 대로, 무무키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여러 순간들에 대한, (이제는 과거의 일이기에) 슬픈 회상들을 담아낸다.
이렇게 멋진 음악으로 기억되다니, '개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시니컬하게 떠오르지만, 그들의 동물을 추억해볼 수 있는, 그 동물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이라도 찾아보고 싶은 것이 애완동물을 키웠던 사람들의 마음인 듯 하다.

 

한편, 이렇게 음악으로나마 기억될 수 있는 '복받은' 동물들을 떠올리다보니, 반대로 버려진 동물들(반려동물들) 그리고 더 크게는 구제역으로 살처분 되고 있다는 돼지, 소들의 안타까운 소식까지 떠오른다. 이 동물들에게는 그야말로 진혼의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동물들이, 사랑받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온전히 생명이라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리 어려운 일이라니...   
 
아래는 뉴욕의 한 버스 정거장에 붙어있는 포스터. 반려동물을 입양하자는 취지의 포스터이다.
난 동물애호가도, 동물보호 운동가도 아니지만, 인간들의 잘못 때문에 힘없는 다른 생명들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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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팝스타 스팅이 내한공연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내한을 알린 기사들의 헤드라인들을 보니, "팝스타 스팅, 클래식 거장들 음악에서 영감얻어", "스팅,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에서 얻는다", "스팅과 오케스트라...웅장한 팝의 세계" 같이 클래식 음악과의 연관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스팅은 '클래식을 평소 좋아하고, 클래식 거장들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심포니시티> 공연 때문이기에 그나마 클래식 음악과의 연관성이 더욱 부각되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스팅이 그냥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정도로 이야기하기엔 아쉬운 감이 많다. 스팅이 그간 실제 클래식 음악계에 벌인(?) 일들이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싱어로서
, 작곡가로서기타리스트로서많은 재능을 지닌 스팅이지만, 그 중에서도 팬들이 그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요소는 '목소리'와 그 '탁월한 음색'이 아닐까 싶다. 이 매력요소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오랫 동안 그 빛을 발해오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그리고 전통적인 것 같지만 아주 현대적인 방식으로.       

첫 번째 소개하는 그의
 시도는, 1994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The Chamber Orchestra of Europe)와의 작업이다. 어린이들에게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소개할 수 있는 최적의 작품,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연주에 스팅은 내레이션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프로코피에프 <피터와 늑대>, 스팅 내레이션


스팅은 목소리로만 등장하지만
,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인형이 스팅과 참 많이 닮았다. (말하자면 아바타....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인형도 실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듯...^^)  
'쉽게 다가가는 클래식', '어린이들을 위한 클래식' 하면 가장 대표적인 이 작품의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그의 목소리 자체도 멋있지만동화구연가, 혹은 성우 못지 않은 목소리의 연기력이 느껴진다.

두 번째 소개할 스팅의 클래식 작업은
, 2007년에 있었던 <The Journey &The Labyrinth> 음반이다. 류트 연주자 카라마조프(Edin Karamazov)와 함께, 16세기에 영국에서 유행했던 류트노래들(주로 존 다울랜드의 곡들)을 연주하여 음반+DVD로 묶었다음반에는 영국 런던 St. Luke 교회에서의 연주를 모았고, DVD에는 라이브 연주장면과 두 음악가의 협업과정,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대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의 토론이 담겨있다.     




유럽에서 다울랜드 류트음악의 대중적인 인기는 서양음악사 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스팅은 류트와 독창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이 음악이 왜 그 당시에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받을만 한 지를 소리로 일깨워 준다류트가 옛 악기이기 때문에 현대의 기타류 악기들보다 음량이나 표현력에서 뒤떨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부드럽고도 섬세한 에딘 카라마조프의 반주는 나즈막히 그 존재를 드러내며 스팅의 목소리와 어우러진다.
스팅은 "나 스스로를 다른 이(다울랜드)의 작품, 다른 이의 창작 작업 속에 이입시키는 것이 나에게는 득이 되는, 그리고 매력적인, 발견의 여행(the journey)이자, 미궁(the labyrinth) 속으로의 여행이다"라고 음반에 적고 있다. 앨범의 제목에 등장하는 '미궁(labyrinth)'이라는 단어가 단어 자체로도 무언가 신비한 느낌을 주지만(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단어), 이 단어에 근거를 두고 등장하는 비주얼들 또한 참 아름답다.
스팅은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라비린트식 정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넓지만 그 끝에 이르는 길을 알 수 없는 푸른 정원의 모습과 스팅+카라마조프의 연주가 매치되면서 알 수 없는 고독감과 슬픔의 아름다움이 전달된다.   

  

카라마조프가 연주하는 르네상스시대 악기 류트의 가운데에도 미궁이 새겨져 있다.

스팅의 음색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오직 류트 반주 위에 가수의 목소리가 각별하게 드러나는 이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세기 팝스타가 부른 16세기 음악이라니 그 기획 의도가 무엇일까 싶지만(음반이 클래식 음악 레이블 Deutsche Gramophon에서 출시), 이 음반과 DVD 들어보면클래식과 팝 사이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그저 시공간을 떠나 예술적인 퀄리티로만 승부하는 탁월한 음악가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울랜드 <Come Again> / 스팅과 카라마조프의 협연



다울랜드 <Clear and Cloudy>, 스팅 <Fields of Gold>


세 번째 소개할 작업은
, 스팅이 그의 부인 트루디 스틸러(Trudie Styler)와 함께 한 <Twin Spirits>.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여성분들이라면, 아마 "저렇게 멋진 목소리의 남자는 어떤 여자와 살까?" 혹은 "저 남자와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정도의 상상 한번 쯤 떠올려 보셨을 거라 본다.ㅋㅋ DVD에 바로 그 행복한 여인이 등장한다. 스팅은 연극배우인 부인 스틸러와 함께, 이 필름에서 슈만 커플의 편지를 낭송하며 약간의 연기를 덧붙인다.  


스팅은 로베르트 슈만의 화신으로
, 스틸러는 클라라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주고 받았던 러브레터의 주요 부분들이 이들에 의해 낭독된다. 이들(스팅 커플)의 낭독 사이 사이에무대 후면에 자리잡고 있는 음악가들이러브레터에서 표현되고 있는 이들(슈만과 클라라 커플)의 감정이 담긴 가곡들과 기악곡들을 연주한다.
슈만과 클라라의 편지를 낭독으로 듣는 것도 흥미롭지만, 사이사이에 슈만/클라라의 대표작들이 연주되어 이 커플의 강렬했던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스팅 커플의 낭독을 듣다 보면, 슈만-클라라 커플이 필름의 제목대로 'twin spirits (쌍둥이 영혼? 영혼의 동반자? 소울메이트?)'이라기 보다, 이 스팅 커플이 'twin spirits'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 만큼, 각자 슈만과 클라라로 빙의하여 두 예술가의 사랑을 표현해 준다



<Twin Spirits>의 트레일러


DVD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스팅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필름을 제작한 감독 존 캐어드(John Caird)가 스팅 부부의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이 감독이 슈만의 열렬한 팬이었고, 슈만 커플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아름다운 문장들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그래서 이런 필름을 기획하게 되었고, 여기에 딱 제격이었던 스팅 부부를 참여시키게 되었다고 했다

슈만 커플의 사랑이야기 위주로 가다 보니, 낭만적인 사랑이 좀 격하게 드라마적으로 미화된 것이 아닌가 싶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이를 들면서 더욱 멋있게 늙어가는 두 예술가, 스팅 커플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는 필름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슈만의 생가(현재는 슈만하우스라는 이름의 슈만 아카이브(연구소)로 보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슈만의 생애를 되짚어보게 해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정도라면
, 그냥 '클래식 음악 쫌 좋아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현대의 클래식 음악 씬 안에 스팅이 꽤나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그가 클래식 음악가들과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예술적 협업과정에서 정말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싶다
대중음악/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는 의미있는 협업이, 시도를 원한다고 해서,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팅이 그만큼 내공이 있는 음악가이기에주변에 그와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클래식 음악가, 클래식에 관심있는 타 분야 예술가들도 많고, 다양한 기회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한 기자회견에서 스팅은 '음악가로는 고전에서는 바흐,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를 꼽으며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훔쳐오기도 한다'고 했단다. "훔쳐왔단" 표현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아마 스팅이 의미한 바는 '표절했다'는 의미라기 보다 '이들의 음악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다음 작업은 "모던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는데앞으로 또 다른 '클래식' 작업이 또한 없을지한편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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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 날, 링컨센터 도서관에 가던 길에 잠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하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 관객들의 인파가 메트 오페라 극장 앞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였다. 연휴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무슨 공연이 있어서 그런고 했더니, 바로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축소 영어 버전 오페라 <마술 피리 (The Magic Flute)>(모차르트 작곡)의 공연이 11시부터 있단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무대 감독이 연출했다 하여 더욱 유명하기도 한 이 공연에 오래 전부터 관심은 있었으나, 그 동안 시간을 내지 못했고, 이날 막상 공연을 볼 수 있을지 기웃거려보니, 역시나 모든 표는 매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에, 오페라 마니아들인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두 버전 (축소된 영어 버전과 독일어 풀 버전) 모두 공연 자체는 재미있는데, 기왕이면 축소된 영어 버전을 보지 말고 독일어로 된 풀 버전 <마술피리 (Die Zauberflote)>를 보라는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래서 일단 가볍게 이 공연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메트 오페라 시즌에 뉴욕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마술피리>를 찾아보시길)


뭔가를 놓친 아쉬운 마음에 다른 공연 일정을 보니, 이날 저녁에는 또 다른 오페라의 공연이 있는데, <마술피리>에 못지 않은 올 해의 문제작 <서부의 아가씨 (La Fanciulla del West)> (영어 제목은 The Girl of the Golden West)였다. 오페라의 대가 푸치니의 작품으로, 사실 한국에서는 제목도 들어보지 못했었고, 미국에서도 드물게 연주가 되고 있는 오페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래의 장면 사진이 나의 전공 논문자격시험 기출문제 목록에 껴 있었기에 수년 전에 따로 공부를 해야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세계 초연 100주년을 맞아서, 이번 시즌에 새로운 공연으로 야심차게 준비되었고, 지난 12월에는 이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뿐 만 아니라 뉴욕 시 안의 몇몇 곳과 보스턴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진은 이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으로, 100년 전 이루어진 이 오페라의 초연 무대를 담아내고 있다. 가운데 로프에 목 매달려 처형되기 직전인 남자가 딕 존슨 (초연때 이 역할을 맡은 성악가가 바로 카루소. 그렇다. 보첼리와 파바로티의 연주로 유명한 노래 '카루소'의 주인공, 카루소다.) 그의 옆에 로프를 잡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미니, 그리고 우측 전면에서 딕 존슨을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 보안관 잭 랜스

 

줄거리 보기


이 공연 또한 표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공연 당일에만 판매하는 러쉬 티켓을 사기 위해서는 5시간 가량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다시금 오페라 매니아 친구들의 의견들을 모았다. 이렇게 줄을 서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인지. 친구들의 반응은...'그럴 가치가 있다'였다. 이번을 놓치고 나면 다시금 실제 공연을 보게 되기 어려울 것이고, 음악이며 무대 연출이 잘 된 좋은 공연이라는 평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은 티켓을 구했고, 매우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날, 여주인공 미니 역을 맡은 데보라 보익트(Deborah Voigt)가 아파서 대역 성악가가 등장했다. 금발의 푸른 눈에 체형까지 보익트와 상당히 비슷했는데, 역시나 갑작스레 무대에 오르게 되어서 였는지 전반부에는 목소리가 다소 약했다. 후반부로 가면서는 훨씬 좋아졌지만...
여 주인공 성악가의 교체는 이 오페라에서 특히나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면, 미니의 집을 돌보는 인디언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미니가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 배역의 노래가 한 성악가에게 집중이 되어 있으니, 데보라 보익트 정도의 대가가 아니고서는 배역을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아파서 못 나온다니....!

공연의 측면에서 제일 눈에 띄는 점은, 2막에 동물 '말'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음악 이외에 세트나 무대 의상 만으로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2막 자체가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위주로만 느리게 진행이 되어 덜 극적인 느낌이었는데, 이 단조로움을 해결하는 장치로 실제 동물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냥 말이 등장인물들을 태우고 무대 위로 등장한 후, 등장인물들을 내려놓고는 바로 무대 뒤로 퇴장을 했지만, 어쨌건 무대 위에 실제 동물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이목을 끌기 좋았고, 화려함이나 볼거리 제공이 너무나 중요한 (그래서 부르조아 예술 아니냐고 비판받기도 하는) 오페라의 일면을 느껴볼 수 있었다. 영상광고에서 이야기하는 3B법칙(Beauty, Beast, Baby를 등장시켜야 성공한다는)이 영상광고에서만 통하는 법칙은 아닌 듯 하다.

 


말을 데려오고,? 무대 위로 올리는 과정이 담긴 영상물


음악적인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푸치니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푸치니의 음악에 매료될만 한 기회였다. <나비부인>, <토스카>, <라 보엠> 등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화성적으로도 풍부하고, 오케스트레이션도 아름답고, 전체 오페라가 음악적으로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왔는데, 이 오페라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이곳 저곳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몇몇 선율들이 느껴졌는데, '설마 웨버가 푸치니에게서 그 부분을 가져왔을까?' 의심이 많이 들었다. 나중에 이번엔 오페라/뮤지컬 매니아 친구에게 물어보니, 웨버가 푸치니에게서 '훔쳐온 것'이 분명하고, 이 오페라가 아주 드물게 연주되어왔기 때문에, 자신(웨버)이 이 선율을 가져다 써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푸치니에게서 가져왔단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떤 오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고.) <오페라의 유령> 때문에 웨버의 음악도 꽤 좋아해 왔는데, 다소 실망했다.-.-

역시나 요즘의 영화나 TV 드라마, 혹은 가수들의 쇼무대나, 뮤지컬 같은 다른 매체들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극적인 전개는 느리게 느껴지고, 성악가들의 비주얼에도 불만이 생기고 (이쁘고도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 듯...), 160년 전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다 보니, 현대의 눈으로 봐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웃을 수 밖에 없는 대사들이 많았다. 이야기 전개상으로는 굉장히 진지한 대목인데, 자막으로 대사를 보는 관객들이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들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렇다고 이제사 대본을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래서 오페라가 현대에 살아남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끝에 무대 인사를 하고 있는 지휘자 니콜라 루이조티(Nicola Luisotti)


오페라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니의 설득 장면을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범죄자인 연인을 살리기 위해, 처형 직전, 미니는 자신이 이 시대, 이 광산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를 강조한다.
'이 척박한 광산에서 당신네들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여자형제로서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의 젊은 시간을 바쳤고,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나 함께 하고자 하는데, 너희들이 이리도 안 도와주고 이 남자를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냐'는 이야기인데, 이런 설득이 먹혔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까칠한 탓일까.
내가 과거에 좋은 일 많이 했으니, 이번엔 이 남자의 죄를 눈 감아 달라는 논리가 너무나 쉽게 설득을 이끌어내어 좀 허무하기까지. (사실 2막의 카드 게임에서 미니가 술수를 써서 승리하는 플롯도 너무나 허술하다.) 그래도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용서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겠지. 과거에 '나쁜 일'을 많이 했다면, 이제사 '착한 일'을 한다 해도 의심이나 받았을 터.  

결국 극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오페라는 굉장히 특이한 오페라다. 전체 오페라에서 여자 주인공이 오직 한 명이고, 이 강인한 서부의 아가씨가 사랑에 빠지게 되자, 궁지에 몰린 연인을 첫 번째는 속임수로, 두 번째는 진심이 담긴 설득으로 구해낸다. 이야기의 흐름은 모두 이 여자 주인공의 행동에 달려 있다. 다른 오페라에 등장하는 어떤 여성 주인공과도 다른 강인한 캐릭터. 그래서 <서부의 아가씨>가 이 오페라의 제목일 수 밖에 없었나 보다.
이 오페라의 100주년 기념 홈페이지가 있다. http://www.fanciulla100.org/
우리나라에서도 이 오페라가 공연될 가능성이 있을까? 다시금 공연을 보게 될 날이 있을까 싶지만, 음악만이라도 꼭 다시 들어보고 싶은 오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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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트리 모음!

우선 링컨센터


크리스마스 트리라면서 분수 사진을 먼저 올리는 이유는..... 이 자리에 원래 해마다 설치되는 큰 트리가 있었는데, 올해는 분수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작년까지 있던 트리는 요렇게 눈꽃송이처럼 하얀 전구 장식물을 단, 심플하지만 화려한 트리. 꽤 좋아하던 트리였는데, 사라져서 아쉽다.


이 트리가 사라지고 나서, 대신 올해는 메트 오페라 극장 입구 위에 트리가 설치되었다. (실제 크기는 꽤 큰데, 저렇게 입구 위 지붕에 얹어놓으니 너무 작아보인다.)

 
트리는 아니지만, 해마다 57가, 5번가에 걸리는 Baccarat UNICEF Snowflake (눈송이)

 

화려한 5번가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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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을 전구들이 달린 선들로 완전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이들이 자랑하는,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 트리


그러나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그리 큰 지 모르겠다. 카메라로 담으니, 가까이 있는 작은 트리가 세계에서 젤 큰 트리보다 더 커보인다.^^


이건 스왈로브스키가 제작한 크리스탈 눈송이


이 트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과연 세계에서 젤 클까?)


주변은 넘쳐나는 인파로 이 일대는 제대로 걸음을 걷기가 힘들 정도



아래는 피아노회사 슈타인웨이 홀 내부에 설치되어있는 트리

 


이건 매디슨 애비뉴를 지나가다 보면 나오는, 전등만으로 장식된 트리. 마치 꿈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 주변이 온통 전등들로만 장식되어 있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전통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백화점의 인형 모형 디스플레이. Macy's와 Lord and Taylor백화점의 모형전시가 유명하다. (아래는 Lord and Taylor 백화점 전경-올해는 건물 자체를 하려하게 꾸미지는 않아서, 화려했던 과거의 사진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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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y's 백화점 앞에는 'Believe'라고 적혀있다. 뭘 믿을까?....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실꺼라고? ^^ 새해에는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지리라고 믿으련다. 믿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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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도 Macy's 백화점의 다른 면. 트리 없이 전구달린 선 만으로 트리를 만들었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아치 근처에 세워진 트리. 뒤에 조그맣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빌딩이 크리스마스 색깔 초록색-빨간색 전등으로 꾸며져 있음)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지 않은 트리도 좋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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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홀에 관한 오래된 일화가 있다. (영문 wiki사전에 소개되어 있음).
어떤 사람이 57가 근처(카네기 홀 앞)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를 붙잡고 (그가 누군지를 몰라보고) "카네기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하고 물었단다.

하이페츠의 대답은....
"연습이죠! (Practice!)" 였다고... 

이 일화로 인해, 카네기 홀 홈페이지의 <찾아가는 길(directions)>도 이런 조크로 시작된다.

"(혹자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카네기홀에 가기까지 일생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아래의 간단한 방법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While it takes some people a lifetime of practice to get to Carnegie Hall (as the saying goes), others just have to follow these simple directions.)"

음악가에게 카네기 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위의 일화처럼 일생의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는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카네기 홀'이라는 이름이 거장만이 설 수 있는 무대의 대명사는 아닌 듯 하다.

'카네기 홀'이라는 이름의 건물 아래에는, 총 3개의 공연장이 있다. 메인 홀로 불리는, 카네기 홀 공연장 가운데 가장 큰 이작 스턴 오디토리엄(Isaac Stern Auditorium), 실내악 규모의 연주가 적당할 잔켈 홀(Zankel Hall), 그리고 독주에 적당한 바일 리사이틀 홀(Weill Recital Hall)이 그것이다.
카네기 홀 자체에서 기획해서 올리는 굵직한 공연들이 주로 메인 홀인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이루어지는데, 자체 기획 공연이 올려지지 않는 날에는 공간들을 외부에 대관해준다. (즉, 예산과 일정이 맞으면, 일생을 연습한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대관할 수 있다는...)
그러니 '카네기 홀'에서 공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음악가가 예술적으로 '거장'임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음악회를 고를 때, 어떤 이들에 의해 음악회가 기획되었고, 어떤 연주자가 나서게 될 것인지 잘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곳에 들리게 될 기회가 온다면, 그냥 카네기 홀 건물, 내부 공연장들만을 구경할 것이 아니라, 이 무대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최고의 연주자들을 만나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턴 오디토리엄 무대>

 

제일 큰 홀인 스턴 오디토리엄 좌석의 티켓 가격은 13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First Tier (1층이 아니라, 무대를 가장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첫번째 복층석), 그리고 1층에서는 음향이 가장 좋게 들리는 (앞뒤,좌우의 극단을 제외한) 가운데 자리들(Prime Parquet)이 가격이 제일 높다.
Second Tier는 말 그대로 First Tier보다 또 한 층 위라고 할 수 있는데, Second Tier 가운데에서도 Center과 Side의 가격이 다르다. 왜냐, 측면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려면 고개가 아프니까. 비교적 무대와 가까워서, 연주자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마치 특별석에 앉은 것 처럼 뽀대가 나지 않을지 기대하게 되는데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앉았던 좌석 정도의 위치를 상상하시면 되겠다.) 보통 2시간 가량 이어지는 음악회에서 한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중간에 인터미션(공연 중간 쉬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층층이 쌓아 올려진 객석>


이 위로 올라가면, Dress Circle이라 이름 붙여져 있는 좌석 한 층이 더 있고, 그 위에 Balcony라 불리는 좌석 한 층이 더 있다. 맨 아랫층을 1층이라고 보면, 5개층이 있는 셈. Balcony 좌석도 Center와 그렇지 않은 좌석으로 나뉘고, 각층마다 건물의 구조상 무대 전체를 볼 수 없는 좌석이 몇 개씩 있다. 일명 Partial View 좌석. 조금 답답하기는 하지만, 가격이 현격하게 저렴하므로, 음악만 듣겠다는 각오라면 고려해볼 만 하다.


 

<Center Balcony에서 내려다 본 무대>


때때로 학생들에게는 학생 할인 티켓을 따로 파는데, 이 정보를 얻으려면 카네기 홀 이메일을 구독하면 된다. 보통 학생 좌석은 10불에서 15불 정도. (한국에서 공연표 구입에 학생할인이 없는 것이 너무 유감이다.)
학생표를 구입하면 자리를 주로 Dress Circle의 뒷자리를 주는 경향이 있으나, 싼 표라고 해서 시야가 가리는 것도 아니고, 음향도 나쁘지 않다. 최근 수 년 사이에 음향기술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저 큰 홀의 맨 뒷줄에 앉아 있어도 피아노 독주자의 피아노 소리까지 섬세하게 잘 들린다.

문제는 음향이 아니라, 좌석의 크기.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인들 평균신장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의자와 의자 사이의 다리를 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보통 체격의 사람도 의자 사이에 낑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건 비단 카네기 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가 좀 있는 뉴욕의 공연장들(뮤지컬 극장들 포함)을 가보면 하나 같이 좌석 사이가 너무 좁다. 옛날 사람들이 체구가 작았던 것일까, 아니면, 수익이 목적인 공연장의 특성상, 최대로 많은 좌석을 만들어 넣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튼, 음악적인 이유와 전혀 상관없이, 인터미션이 왜 필요한지 실감하게 만들어 주는 공간 배치다.ㅋㅋ

스턴 오디토리엄 말고, 잔켈 홀, 바일 홀도 좌석이 좁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인파에 치이지 않고,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바일 홀은, 마치 학교의 작은 강당 같기도 하고, 아니면 서양 귀족의 집 안에 만들어 놓은 전용 공연장 같기도 하고 참 아담하다.
잔켈 홀에서는 원전악기 연주나 현대음악 연주 같이 실험적인 공연들이 많이 이루어지는 듯 하다. 아쉬운 점은, 잔켈 홀이 건물의 지하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근처의 지하로 통과하는 지하철의 진동/소음이 살짝씩 느껴진다는 것. 현대의 기술로도 극복이 안 되는 부분인가 보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네기 홀 주변도 둘러볼 곳이 많다. 원래, 카네기홀의 바로 뒤, 56가에는 Patelson's라는 악보 가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음악전공자들에게 '대한음악사' 같은 존재의 음악 서점), 제작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음악가들에게 중요했던 명소 한 곳은 사라졌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둘러볼만 한 음악가게(?)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 가게들이다.

 


                              <카네기 홀 윗 골목 (58가, 7번가와 브로드웨이 사이)의 피아노 가게들>


물론, 카네기 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슈타인웨이 홀(Steinway Hall)이 있고 (57가, 6번가와 7번가 사이, 6번가에 더 인접), 그 곳에 피아노 중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 슈타인웨이 악기들이 대규모로 전시되어 있지만, 이곳 샵들에서도 다양한 메이커들의 아름다운 피아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악기로서의 피아노, 혹은 가구로서의 피아노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들에게 이 거리는 지나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장소일 게다. 나의 한 친구는, 카네기 홀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네기홀에서 만날 때 이 거리를 지나쳐가기 위해 조금 먼 지하철 역에서 내려 일부러 걸어오곤 한다고 한다. 자신의 집 거실에 저런 피아노를 갖추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우리에게 그런 날이 언제 올 지 모르지만, 피아노와 옐로우 캡이 겹친 진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행운과 즐거움은 이 거리에서 가능하다. 

 

p.s. 카네기홀의 옛날 모습, 그 무대 위에 섰던 거장들(하이페츠 포함)의 실연 장면들이 담긴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제목이 <Carnegie Hall>. 대학원 시절 은사님께서 처음 소개해주셨던 이 영화는, 1947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인데, 이야기 전개 사이사이에, 실제 연주자들의 명연주 장면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묶여져 있다. 나중에 <Films on Musicians>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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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혹자는 음악은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어서 사회의 변화와 큰 상관없는 불가침의 예술 영역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 안에는 음악만의 내부의 논리가 있어서 함부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을 음악과 연관시키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다. 그럼 '음악가들의 삶' 또한 사회의 변화와 상관 없는, 사회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고유한 예일 수 있을까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바로 나치 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담은 <Das Reichorchester (제국 관현악단)>이다

스페인계 독일인 영화감독인 엔리케 산체스 란쉬
(Enrique Sánchez Lansch)는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과거와,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로 엮어 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클래식 음악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를 조명한다


영화 Das Reichsorchester 포스터.

 

영화는 우선 독일이 히틀러 치하의 괴벨 내각이 들어서게 되면서(1942), 베를린 필하모닉이 겪게되는 변화들을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로 설명한다. 필하모닉 연주홀에는 걸려있던 멘델스존의 초상화가 사라지고, 유태인 단원들이 하나 둘씩 오케스트라를 떠나게 된다. 전체 오케스트라의 단원 수에 비해 유태인 단원들의 비율이 그리 크지는 않았고, 그들이 오케스트라를 그만둔 (혹은 타의에 의해 그만 두게 된) 이유가 다양했기에, 다른 단원들은 그 변화의 뒤에 놓인 정치적인 배경에 다소 둔감했던 것 같아 보인다.
감독은 오케스트라를 떠난 유태인 단원들의 향후 행적을 되짚어가는 한편, 생존하고 있는 단원의 경우는 직접적인 인터뷰로, 그리고 세상을 떠난 단원의 경우는 그들 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이 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삶을 추적해 간다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 이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을 인터뷰로 엮으면서, 사이 사이에, 푸르트 뱅글러가 지휘자였던 당시의 실제 연주장면을 삽입해서 이제는 역사로나 기억하는 사건들이 개개인 단원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백발이 된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에 깔린 기조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베를린필을 "나치오케스트라"라고 부르지만 그렇게만 불리기에는 좀 억울하다는 반론이다. 괴벨 치하에, 연주회에는 계속해서 히틀러가 초대되었으나, 실제로 히틀러가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 참관하지도 않았었고, 그들은 과거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오케스트라 전통 속에서 살아간 음악가들이었을 뿐이라는.
이 분들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이 상황에 대해 크게 비판적이지 않았고 비판적일 수도 없었던 것 같다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직업연주가로 살도록 길러진 이들에게 정치적 악행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감각도 없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들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나름대로 세상의 흐름에 깨어있었고, 개인의 삶 속에서 허용된 만큼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아오신 분들로 보이기는 하지만이런 인터뷰들이 결국,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라고만 주장하는 것 같아서 그리 보기 편하지만은 않았다.       

히틀러의 초상화를 배경에 두고 연주하는 베를린 필


영화를 지켜보던 중
, 이분들이 이렇게 정치적인 배경에 둔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를 알 것만 같았다.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누렸던 지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최소한, 영화상에 비춰진 장면으로 미루어 보건데) '큰 조직의 일개 부속' 같은 지위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 시대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음악 전통이 강한 독일이었기에 특히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장기 해외 순회연주를 다니기도 했고, 그 가족들은 독일 내에서 귀한 물자들을 단원이었던 아버지가 해외에서 구해왔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한다
월급을 받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기도 했지만, 베를린필의 단원이라는 것은 대단한 영예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배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이들을 찾았다. 단원들은 병역특혜를 받기도 했다. 예술가로서 개인의 삶을 꾸려가느라다른 이들의 고통에 귀기울일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나치치하의 베를린 필 미국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

 

감독은 한 쪽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견해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를 '나치의 오케스트라'라고만 비난하기보다, 오케스트라 안에 유대인이나 친나치 성향의 단원들 이외에도 비정치적이고, 양심적으로 살고자 했던 많은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있었음을 조명해간다. 감독의 시각이 특별히 비판적이라거나, 특별히 옹호적이지 않으면서그 판단은 보는 이들에게 맡기는 듯중립적이었다. 알고 보니,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자료조사단계부터 음악학자가 함께 했기 때문에, 영화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역사적 사료의 완결판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 같다.                   


<Das Reichsorchester (제국 관현악단)> 트레일러

이 영화를 뉴욕의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보게 되었었는데, 영화 뒤에 감독과, 함께 작업한 음악학자와 함께 하는 Q&A 세션이 있었다. 뉴욕에 유태인 인구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Q&A 세션에 쏟아져 나오는 (유태인들로 보이는 분들의질문의 홍수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질문들의 핵심은 '영화를 만든 이유가, 이 나쁜 베를린필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냐'는 질문을 가장한 비난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베를린필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감독과 음악학자의 설명대로, 생존단원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는 지금 시점에라도 빨리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고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증언을 듣고, 이 문제에 대해 되짚어보는 기회를 만든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유태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그들 조상들의 아픔을 떠올렸겠지만
, 나는 우리나라의 친일예술가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이들에 대한 (뉴욕의 유태인 관객들이 나치 시대의 베를린 필의 행적에 보이는 것 같은, 혹은 끊임없이 나치 시대의 참상을 영화로 만들어서 그 시대를 고발하는 류의) 공분을 보지도 못한 것 같고, 이들의 행적에 대한 (이 영화가 보여준 것 같은) 사료의 축적도 이루어지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감독의 말대로, 그 시대를 증언해줄 분들이 살아계실 때에나 그나마도 가능한 일일텐데....아무튼, <Das Reichorchester> 한 특정 사회 속의 예술가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여러 가지의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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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문턱에 접어들고 보니, 나무에 걸린 단풍잎보다 길가에 깔린 낙엽이 더 많음이 느껴진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이런 시기에 음악이나 듣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지만...... 가을, 특히나 늦가을의 저녁은 음악과 함께 상념에 잠기기에 참 좋은 때다.

이 계절에는 후기 낭만 시대의 심포니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는 성악곡을 더 자주 찾게 된다. (늦가을에는 왠지 발라드가 더 듣고 싶어지게 되는 느낌과 비슷)

서양 가곡은 사실, 들을 때 가사의 의미가 확 마음에 와서 꽂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잘 못 알아듣는 음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가사를 들여다보면서,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볼 여유를 가져 본다면, 이 가곡들이 왜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고 연주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다. (한글로 가사의 번역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최근에 두 남자 성악가의 독창회에서 각각 슈만, 말러의 곡들이 연주되는 것을 들었다. 많은 수 예술가곡의 주제 역시, 대중가요와 다를 바 없이 '사랑이 주는 기쁨과 슬픔'으로 요약될 것 같다. (시간,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주요 주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주제를 '기쁨'과 '슬픔'으로 나눠본다면, 아무래도 '슬픔'을 노래한 것이 더욱 더 심금을 울린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노래는 성악가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다보니, 더욱 직접적으로 듣는 이의 감성에 어필하는 것 같다. 

음악회에서 들었던 곡들 가운데, 왠지 더욱 슬픈, 주제적으로 통하는 두 개의 노래가 있었다. 슈만의 가곡집 <리더크라이스 (Liederkreis)> op.39 중의 한 곡인 <성(城) 위에서 (Auf einer Burg)>, 그리고 말러의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중의 한 곡인 <그녀의 결혼식 (Wenn mein Schatz Hochzeit macht)>이다. 두 곡 모두 19세기에 만들어진, 시기적으로는 대략 50년 차이가 나는 곡들이다.

 


 슈만, <성 위에서>


(시의 감흥을 살리는 번역이 어려워 내용을 서술형으로 요약해보자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중세, 한 남자는 성을 지키고 있다. 하늘에는 비가 내리고, 숲은 바람을 따라 스산하에 움직인다.(1연) 성 안에서, 그는 수세기를 어두운 침묵의 방에 갇혀있는 듯 슬픔의 시간을 보낸다.(2연) 성 밖을 바라보니, 아무 일 없는 양 세상은 평화로운데 (3연), 성 아래로 흐르는 라인강을 따라 그녀의 결혼의 행렬은 지나간다. 찬란한 햇살 아래 음악가들은 흥겹게 연주하지만, 아름다운 신부는 울고 있다.(4연)    

(2연에 붙여진 불협화 연속의 피아노 반주가 가사의 의미와 어우러지면서 가슴을 울린다.)


 

 
말러, <그녀의 결혼식>


슈만 가곡에 쓰인 시가 상징적인데 비해, 말러 가곡에 쓰인 시는 보다 직접적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그녀의 결혼식날, 나에게는 눈물의 날이 될 것이다 (1연). (하지만 그의 슬픔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은 아무일이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새들은 노래할 뿐 (2연). (자신의 슬픔으로 돌아와, 화자는 세상에 외친다.) 봄은 끝났다고. 노래는 이제 멈춰야 한다고 (3연). 

(암울한 '내 맘 속'과 아름다운 '바깥 세상'의 대조가 음악적으로도 명확하게 표현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 아마 이런 상황은 실연을 당하는 것 보다 더 가슴이 아픈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결혼식'은 이 생에서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그녀와 함께 한 한 시대의 마침표 같은 의미일 게다. 그 슬픔, 우울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참 절절하다. '그녀의 결혼식, 세상은 슬픈 나와 아무런 상관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나는 어둠의 방에서 혼자만의 슬픔을 눈물로 삼킨다.' (19세기식의 내러티브지만, 우리 가요에서도 참 익숙한...)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표현 방식이 다르기는 해도, 이 찌질한 상황(너의 결혼식에 나는 골방에서 슬픔을 삭이며 울고 있다)이 얼마나 범인류적 공감을 일으킬만한 소재인 것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노래들은, 세상은 나의 슬픔과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세상은 그 슬픔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로 차 있다는 걸 입증해주는 듯 하다. 슬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공개적으로 '이게 너만의 문제는 아니야'라고 속삭이며 공감을 극대화시키는 작사가-작곡가들의 감성과 감각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늦가을, 겨울의 문턱, 일부러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지만, 19세기 가곡들로 바쁜 생활에 무뎌지고 닫힌 감성의 채널을 열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너의 결혼식' 같은 사연이 없는 이에게도, 이 노래들은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깊은 슬픔에 묘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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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요즘 세상돌아가는 모양새가 80년대도 아니고 '중세'라는 말을 들었다. (매우 암울하단 말씀...) '중세=암흑기'의 메타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진짜 중세시대는 그렇게 암울했을까

잠시
, 지식iN에서 검색을 해보니 그 중 한 답변이 재미있다.   

질문
: 중세시대가 왜 암흑기죠?
: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살았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신에 의지한 종교의 권위가 너무 강해서 고대에 발달하던 철학,조각,자연과학,건축,법률 등의 분야에서 더이상 눈에 띄는 진전이 없던  정체기였지요..모든 학문조차 신학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시기가 바로 중세입니다

이런 답변들을 볼 때 마다 그 간단명료함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진짜 그랬을까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종교적인 vision (환영, 혹은 예지력)을 받으며 그것을 적어가고 있는 그림


서양의 중세시대 하면, 기껏해야 아주 큰 서양의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위의 그림 같은 낯선 설정의 그림들로 짐작해볼 수 밖에 없다. 또 이런 그림의 종교적인 의미나 배경, 세세한 동작의 의미시대적인 맥락 같은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이런 와중에 현대인을 위한 중세시대 시청각 교재(?)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바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Vision>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라는 이름은 고음악애호가라면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이름일 것 같다이름 그대로 보자면, 빙엔 출신의(von Bingen) 힐데가르트(Hildegard). 이 인물에 대해 거슬러가보자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0년 전독일의 라인강 주변 지역에서 수녀원을 맡아 이끌며 종교활동을 했던 수녀님이시다
음악계에서 이 이름이 알려진 이유는그녀가 음악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작곡가이기 때문. (태초 이래로 음악을 처음 만든 여성분이 이분이 처음은 아닐텐데, 이런 수식어는 사실 조금 부담스럽다. '음악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정도로 말해두면 어떨까 싶다.) 다른 업적들로도 유명한 중세시대의 수녀님이신데, 현대에 그 기록이 발굴되고 연구되면서, 중세시대의 여성, 중세시대 여성 음악가의 대명사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Vision 속, 중세 수도원의 재현 그림이 아닌 이런 사실적인 재현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영화 Vision의 영문 트레일러>2009, 마가레테 폰 트로타 (Margarethe von Trotta) 감독작


영화는 어린 힐데가르트가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 당시는 신에 대한 복종과 참회를 스스로에 대한 고통(신체적 학대, 고문)으로 드러내던 시기. (영화 <다빈치 코드>의 하얀 머리 Silas가 참회를 위해 밤마다 철심들이 박힌 쇠사슬로 스스로의 몸에 고통을 주던 장면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신에 대한 자신의 참회를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쇠못 채찍질로 하고 있는 수도원의 수도사, 수녀들이 어린 힐데가르트의 눈에도 참으로 고통스럽게 비춰진다. 화면으로도 지켜보기엔 괴롭지만이것이 앞으로 펼쳐질 영화 이야기의 주요 암시가 된다.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고통이 아닌 방식으로 참회하고, 영혼을 다스리고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잠시힐데가르트는 곧 성인이 되고, 그를 딸처럼 사랑해줬던 수녀원장 역시 참회를 위해 스스로에게 물리적 고통을 주다가 그 상처가 썩어들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했던 힐데가르트는, 후대 수녀원장으로 선출된 이후우선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약학을 공부하게 된다각종 식물들, 돌들의 특성을 익히고, 직접 약에 쓰일 것들을 기르고, 채취하고, 다른 수녀들과 함께 그 지식을 나누며수도원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해준다.      


약초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있는 힐데가르트


사람을 정신적으로 치유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음악. 힐데가르트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환자들의 치료 때문이다.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힐데가르트는 노래로서 신의 메세지를 전하고, 사람들에게서 영적인 힘을 북돋는다.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종교체험인 "vision" (신으로부터 예지능력을 받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을 경험했던 힐데가르트는 다시금 "vision"을 통해 신의 말씀, 계시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 능력이 지역 교구의 종교회의에서 인정되면서 교회 내에서 힐데가르트의 입지는 더욱 더 강력해져 간다
이에 따라 그녀를 시기하는 수도사들(남성)과의 반목도 더욱 심해진다이 대목에서 힐데가르트가 남녀 불평등의 문제에 어떻게 맞서는지, 감독은 '페미니스트로서의 힐데가르트'의 면모를 그려주려 했던 듯 하나힐데가르트가 불의, 불평등에 맞서다가 생긴 문제들이 대부분 결국은 외부적인 힘(교회 내 더 높은 권위자나 귀족의 개입)에 의해 해결되는 시대적 한계만 드러낸다
아무리 남성 수도사들이 힐데가르트와 반목할지라도늘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이야기 통하는 남자인 친구 하나는 있음직(감독은 남성 전체를 여성의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폴마르(Volmar) 수도사는 늘 힐데가르트의 옆을 지키면서 힐데가르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준다.
 


폴마르 수도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힐데가르트

 
이야기는 힐데가르트를 무척이나 존경하여 종교에의 귀의를 결심한, 영주 가문 출신의 소녀 리하르디스(Richardis) 등장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간다. 리하르디스는 힐데가르트를 따라다니며 힐데가르트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적고, 힐데가르트의 지식들을 옮겨 적어 문자화 하면서 힐데가르트의 중요한 제자가 된다. 등장 초반의 리하르디스는 힐데가르트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그녀에게 헌신한다.(단순히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라고 보기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감정표현이 있다.) 
그러나, 수년 후, 리하르디스가 가정사정상(?) 수녀원을 나와 '영주'가 되게 되면서그 관계는 깨지게 되는데리하르디스의 사랑을 받기만 하던 힐데가르트가 오히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한다.(힐데가르트가 더욱 리하르디스를 아끼고 있었던 것여기서도 또한 단순히 윗사람-아랫사람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묘한, 애정관계의 암시가 풍긴다
하지만, 폴마르 수도사와의 관계도 그렇고, 리하르디스와의 관계도 그렇고, 어느 쪽도 세속적인 눈, 혹은 현대적인 눈으로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다 싶은 부분들이 많다.        

 

힐데가르트의 말들을 글로 옮기고 있는 리하르디스

 

리하르디스의 엄마와 오빠. 그 말로만 듣던 중세 '봉건 영주' 가문 분들이시다. ㅋㅋ박물관 그림 속에서나 봤음직한 복장들이 이렇게 재현되었다.

 
영화는 이렇게 힐데가르트라는 인물이 지닌 다양한 면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지자, 수녀원의 독립을 이끌어낸 종교지도자, 다양한 분야의 학자, 음악가, 초기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까지, 현대에 그녀가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하나하나 드러난다힐데가르트는 중세 '암흑기',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분명한 비전(vision--앞서 영문 'vision'으로 표현했던 종교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다.)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별다르게 '위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한 수녀의 삶이지만여러 가지의 제약이 많았던 중세시대에 이런 비전을 품고,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갔다는 점은 참 대단해 보인다.       

물론, 종교가 지배하던 시기, 종교의 중심 수도원에서 살았던 종교인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 공간은 암울하지 않다.
약초를 재배하고
, 그것들로 아픈 이들을 고치는 모습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 심신을 치유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도 떠올려볼 수 있고수녀들이 아름다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성서 속의 이야기를 노래극으로 만들어 즐기는 모습은 오늘날의 음악극들을 떠올리게까지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 복식, 그 외의 소품들이 참 세심하게 선택된 것이, 마치 서양 유명 박물관의 '중세시대관' 발품 팔지 않고 한꺼번에 관람하고 나온 느낌을 준다
암흑기라고만 생각했던 미지의 세계가, 현재, 우리의 눈 앞에서 현대와 함께 숨쉬고 있음을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도 비전을 지닌 탁월한 인물은 있고그들의 비전은 암흑 속에서도 세상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음을.        


Vision 영화 포스터. 힐데가르트 역을 맡은 바바라 주코바(Barbara Sukowa)의 배우로서의 포스가 참 강하다.




<
어디선가 들어봤다 싶을 법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음악. 개인적으로 중세음악에 이렇게 리듬악기 깔아서 remix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이름을 알려지게 한 가장 대중적 노래가 이 

 

요런 연주도 있다지친 몸과 마음 달래기에는 이런 연주가 더 낫지 않을지. ^^


(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공개된 소스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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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수년 전 부모님들이 뉴욕에 오셨을 때, 짧은 시간 내에 뉴욕의 지리를 익히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에 도착 첫날 2층 관광버스를 타고 맨해튼을 돌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도를 펼쳐놓고는 아버지가 젤 좋아하시는 바둑(판)에 빗대어 뉴욕의 지리를 설명했다.


"아빠, 맨해튼은 딱 바둑판이에요. 가로줄은 스트리트인데 위에서 아래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숫자가 줄어들어요. 세로줄은 애비뉴인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요. 그런데, 이 중에 사선으로 브로드웨이란 게 애비뉴들을 가로질러 지나가구요, 가로줄이 10번 스트리트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숫자로 붙던 스트리트 명칭이 사라지고 스트리트마다 제각각 이름이 붙게 되요." 


이미 2층버스를 타고 현장실습(?)도 했겠다, 아버지 입맛에 맞게 바둑판의 비유도 사용했겠다, 나는 뉴욕 지리의 핵심 정보를 이렇게도 짧고 간략하고 쉽게 설명한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던지신 한 마디.

"글쎄 그게 너한테나 바둑판이지, 우리같이 처음 여기 온 사람이 동서남북 자체가 분간이 안 가는데, 스트리트인지 애비뉴인지를 알고 있는 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지도로 알고 있는 들 찾아갈 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살펴 동서남북을 구분하신다는 분들도 더러 있긴 하더라구요......" ^^;;;

그러나 나 또한 이 방식-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살피기-을 적용해 지리를 찾아본 적이 없고, 사방이 빌딩숲인 맨해튼에서 해의 방향을 가늠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큰 지도를 머리 속에 그려드린 후, 세부적인 탐사로 이끌고자 했던 나의 안내 방식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맨하탄 중심부의 지도>

가로줄 세로줄이 있는 바둑판...가로줄은 스트리트, 세로줄은 애비뉴라구요...ㅠ ㅠ

 


<뉴욕 음악 가이드>라는 포스팅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지도를 먼저 펼치기보다는 해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지점에서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바로 위에 지도를 펼쳐놨군요....-.-)
그 지점을 카네기홀이라 해야할지, 링컨센터라 해야할지 잠시의 망설임이 있었으나, 오늘은 일단 지리상 맨해튼의 그야말로 정중앙에 위치한 카네기홀로 잡아두기로 한다.
(위 지도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

TIP 1. 괜찮은 음악회를 관람하고 싶다면, 우선은 뉴욕 음악공연의 양대산맥 카네기홀 (www.carnegiehall.org)과 링컨센터(www.lincolncenter.org)의 홈페이지를 체크해서 공연 스케줄들을 확인해 보는 것이 제 1 과제다. 예약은 온라인으로 대부분 가능하지만, 온라인 예약의 경우 자잘한 수수료가 따라붙는 단점이 있다. 티켓의 구매 방법에 관해서는 차후에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카네기홀은 57가 (스트리트)와 7번가 (애비뉴)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노란 라인 (N, R, Q)를 이용하는 것이 이곳에 오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57th Street 역 하차 (뉴욕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여기서 내리면 근처에 중요한 건물 있다'는 표시도 안 되어있고, 안내방송도 절대 안 해준다. 그것이 카네기홀일 지라도...)

<밖에서 바라본 57 Street 지하철 역>


카네기홀은 이 역과 사실상 붙어있다. (사진의 왼쪽면이 카네기홀 건물) 카네기홀도 리노베이션 공사중인지, 건물 주변에 scaffolding(비계)이 엄청나게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플랫폼에서 계단 위로 올라와 두리번거리면, 음악가들 얼굴들이 새겨진 타일 벽화가 보인다.  그 벽화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출입구로 나가야 한다.


 

이전 포스팅에 이 역에 설치된 그림 속 인물을 맞춰보시라고 문제를 냈었는데, 어쨌든 맞춰보려 시도해주신 분은 윤기자님 한 분 (상품이라도 내걸었어야 했나보다 ^^).

음악사 공부 좀 했다는 나도 처음에 한 눈에 알아본 인물은 둘 뿐이었다. 비틀즈와 번스타인. 왼쪽 상단의 붉은 머리 4인방이 비틀즈이고, 오른쪽 상단 그림의 지휘자가 뉴욕 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 레너드 번스타인이다(카라얀의 사진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흰 머리의 지휘하는 사람은 대략 카라얀 같아 보인다.).

음악가가 아닌데 익숙한 얼굴이 등장해서 다소 갸우뚱했던 이미지가 바로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전혀 감이 안 잡혔던 얼굴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부인 엘레노어 루즈벨트, 그리고 흑인 성악가 마리앤 앤더슨이다.

사실 전혀 감이 안 잡혔던 이 두 명 여성의 정체는 약간의 인터넷 검색으로 밝혀낼 수 있었으나, 가장 시선을 끄는 맨 왼쪽의 얼굴....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이분...젊은 시절의 차이코프스키였다.
나이든 차이코프스키의 초상화가 조금 더 익숙하다.
차이코프스키는 1891년 카네기홀의 공식 개관기념 음악회에서 지휘를 맡았을 정도로 카네기홀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커다란 차이코프스키 얼굴에 이끌리지 말고, 번스타인이 보이는 쪽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57가와 7번가 코너가 나온다. 바로 정면은 카네기홀 안에 있는 Zankel Hall 입구 ('예술의 전당'의 리사이틀홀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주로 독주나 실내악 공연이 이루어진다.)

지하철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카네기홀 공연 포스터 게시판>

<Zankel Hall 입구>


뒤를 돌아 코너를 끼고 돌면 카네기홀의 가장 큰 홀, Stern Auditorium의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Stern Auditorium의 입구를 지나쳐 더 몇 걸음 더 가면 Zankel Hall보다는 그 규모가 아담한 Weill Hall 입구가 있다. 건물이 지하철역과 너무나 인접해 있어서,  그 위치에서는 이 건물이 그 유명하고 멋진 카네기홀 건물인지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scaffolding의 압박까지... 나름 외관을 고려하여 카네기홀의 색깔인 빨간색으로 파이프기둥들을 설치해놨으나, 사실 시야를 많이 가린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 기둥에는 이 건물이 세워진 해 1890년이 새겨져 있고, 그 밖에 이 곳이 유적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시, 카네기홀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진 여러가지의 현판이 부착되어있다.

 

<Stern Auditorium 입구>
이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박스오피스가 보인다.

박스 오피스의 업무시간은 월-토 11시-6시/일 12시-6시
공연이 있는 날은 저녁에도 계속해서 열려있고, 공연 시작 이후 1시간 반 후에 문을 닫는다.

 

<길 건너에서 바라본 카네기홀>


한 블럭을 차지하고 있는 매우 큰 건물이다. 공연이 주로 저녁시간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일부러 지나치지 않는 이상) 사실 이렇게 해가 밝은 시간에 건물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워낙 오래되고 역사가 서려있는 건물이기에, 음악회를 보러가려는 목적 이외에도 낮시간에 유적지 관광 삼아 이 곳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실제로 카네기홀에서는 평일에는 하루 네 번, 토요일에는 두 번, 일요일에는 한 번 "카네기홀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투어를 위한 티켓은 별도 구매해야함).  

카네기홀 '찾아가기'는 여기까지. 다음 편은 카네기홀 '속 들여다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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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인 '가믈란'만큼 현대 서양 작곡가들에게 많이 어필한 비서구 전통음악이 있을까 싶다. 드뷔시, 메시앙, 케이지, 리게티, 글래스 등, 유명 작곡가들을 보면, 가믈란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수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 여행을 다녀온 한 선배가 그곳에서 가믈란 음악을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음악이 얼마나 매력이 있고 깊이가 있는지, 수많은 현대음악가들이 그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야 아직 발리에 가 볼 기회가 없었으니 대체 어떤 요소가 그리도 매력있다는 것인지 별로 알 길이 없던 차였는데, 한 미국 친구가 BAM (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 인도네시아의 가믈란을 바탕으로 한 <A House in Bali>라는 오페라가 세계초연될 거라는 소식을 알려줬다.      

 


오페라 <A House in Bali> 트레일러
트레일러만 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이 오페라의 작곡가는 에반 지포린 (Evan Ziporyn. 1959년 시카고 출신). 한국의 청중들에게 그리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의 현대음악가들이 속해 있는 Bang on a Can All-Stars의 멤버이고, MIT 대학의 교수이다. 그의 음악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post-minimalist" 혹은 "가믈란 음악"이라는 단어가 핵심어로 등장한다.

지포린은 20대에 인도네시아의 가믈란을 처음 듣고 음악적으로 "개종"했다고 표현할 만큼 가믈란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인도네시아로 떠나 가믈란 악단에 들어가 악기를 배우면서 그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음악과는 너무나도 다른 새로운 음악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가믈란에 사용되는 민속 악기들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그리고 가믈란 음악의 요소들을 자신의 곡에 담아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포린의 인터뷰 동영상.
(한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죄송 ^^ 얼굴 확인용입니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동명의 비망록 <A House in Bali>에서 가져왔다. 1930년대, 파리 거주 캐나다인 작곡가 콜린 맥피(Colin McPhee)는 파리에서 발리 가믈란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어, 바로 발리로 음악을 찾아 나서게 된다. 부인인 인류학자 제인 벨로(Jane Belo)와 함께. 발리에서 6개월을 보낸 후, 이 부부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지만,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이 지역의 음악을 그대로 두면 얼마 가지 못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다시 발리로 향하게 된다. 1932-1935년, 1937-1938년 이렇게 두 차례, 발리에 머물며 발리의 음악을 채보(악보로 옮기는 일)하고 촬영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맥피가 발리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 책 <A House in Bali>로 출판이 되었다고 한다.


오페라 각색에서, 작곡가 맥피는 영감을 찾아 발리로 와서 서양인들이 모여있는 작은 지역에 머무르며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미술가 월터 스피스(Walter Spies)를 만나게 된다.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서 낯선 나라를 찾아 나선 서양인들의 고민과 갈등, 그들 스스로가 이방인이 되는 경험, 그들이 이 지역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들이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가지 레이어로 구성한 무대였다. 무대의 맨 뒤 쪽에서는 실제로 원작의 주인공 맥피가 촬영해 놓았다는 발리 가믈란 음악의 연주 장면들이 아주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앞의 오른쪽에는 가믈란을 연주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악단들과 최소한의 서양악기로 구성된 앙상블이 오페라 작곡가 지포린에 의해 지휘된다. (오케스트라 공간이 무대와 분리되어 따로 마련되어있는 전통적인 오페라와 달리, 악단이 무대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왼쪽에는 주인공 맥피가 살고 있는 집의 작은 방이 세트로 마련되어 있다. (물론 밖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얼굴 표정들은 카메라로 찍혀, 세트의 위쪽에 마련되어 있는 스크린에 띄워진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클로스업하는 스크린-현재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는 세트-과거의 모습을 담은 영상배경의 3단 구성이었다. 무대의 맨 뒤쪽 배경에 펼쳐지는 영상이 1930년대의 실제 모습이라면, 세트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것의 재현이고, 세트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이라면, 스크린에 보이는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을 끄집어 내고 있었다. 세 가지의 층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에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며 오페라를 따라라기가 좀 산만하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시도였다.   

 

무대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던 발리 전통 가믈란 앙상블


위의 작곡가 지포린에 대한 이야기와, 원작 책을 쓴 맥피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점을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둘 다 작곡가였고, 발리 음악에 심취하여 발리로 떠났었다. 특히 맥피의 경우 (오페라의 아리아 가사로도 등장하는데) '음악적인 영감이 바닥나 어떤 곡도 작곡할 수 없던 시기'에 새로운  음악적 원천을 찾아 발리로 떠난다.
하지만, 실제 맥피의 훗날 이야기를 찾아보니, 맥피는 발리에서 수년간을 보낸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곡을 많이 작곡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결과적으로 작곡가로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반면, 지포린은 발리에서 얻은 음악적인 영감과 소재를 자신의 음악 속에 훌륭하게 섞어내면서 그만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미국에서 매우 각광받는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사로잡은 가믈란의 힘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음악을 들어보니, 일단 금속 소재로 된 여러 대의 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음색이 마치 절의 풍경소리를 모아놓은 듯 참 맑고도 화려하다. 다양한 악기들이 함께 연주하는 이 앙상블 또한 우리나라의 시나위처럼 즉흥연주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 한데,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반복되는 듯 하면서 변형되는 양상이, 미니멀리스트들이 이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던 이유인가 보다.

지포린의 음악이 post-minimalist라고 불리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음악에 영향받아 시작되었다는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조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까지 주는 반면, 지포린의 음악은 가믈란 음악이 지닌 장점들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현대의 작곡기법과 잘 섞어냈다. 미니멀리스트의 음악보다는 음악적으로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

잠시 곁다리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등장하는 발리 씬. 영화로 만들면 이런 이야기 정도 밖에 안 나올 줄
알고는 있었지만, 미국 작가님의 거창한 자아찾기는 발리라는 'exotic space'에서 소박함을 가장한 'extravagant'한 비주얼을 제공하며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책으로 읽었을 때 작가의 진실성이 느껴져서 더 나았던 것 같다.)


몇주 전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를 책과 영화로 본 이후, (특히 주인공이 발리에 머무는 부분에서) 서양인들이 '발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이 남다르구나 싶은 생각은 했었는데, 오페라에서도 '발리'를 이야기 한다니 갑자기 왜 이리 발리를 가지고들 난리인가 싶었다.
나중에 이 오페라를 소개해줬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글래스 같은 미니멀리스트 이외에도 미국의 현대 작곡가들 가운데 하나의 라인, 전통을 이룰만큼 가믈란 음악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의 무리들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말씀. 미국 음악가들의 발리 음악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중후반을 관통하는 생각보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 초연인지라, 내용도 모르고 음악도 모르며 보다가 조는 것은 아닐지 내심 걱정했는데,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구성의 악기 앙상블과 민속무용, 아리아들 때문에 졸 틈도 없이 1시간 반이 흘러갔다. 짧아서 더욱 좋았던... (이 글도 너무 길어졌다. 짧은 것이 미덕인데...)

오페라 <A House in Bali>는 영감이 고갈된 작곡가, 다른 나라 음악의 채보를 위해 그 나라로 떠난 서양인 (이건 오늘날에도 종족음악학자들이 많이 하는 작업), 동양으로 떠났던 초창기 서양인들의 관점들(등장인물로 작곡가/인류학자/화가가 등장하는 것도 무척 상징적이다), 이런 조금은 무게 있는 이야기들이 얽혀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소재로도 오페라가 만들어지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런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어도 뉴욕에서는 매진이 되더군요...^^) 아무튼,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등의 이분법 사이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무대예술의 형태로 잘 엮어낸 흥미로운 오페라였다.


10/16/2010 @ 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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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지난 주에 AMS/SMT Annual Conference가 있어서 인디애나폴리스에 다녀왔다.(AMS는 American Musicological Society의 약자이고 SMT는 Society for Music Theory의 약자) 각각의 단체가 매해 학회를 여는데, 2년에 한번씩은 함께 모여 학회를 한다.

뉴욕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인디애나폴리스. 착륙 직전 비행기 밖을 내려다보니, 뉴욕과는 사뭇 다른 정경이 펼쳐졌다. (사실 '아주 많이' 다른 정경이었다.) 농사철에는 밭으로 쓰였을 법한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근처에 옥수수밭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설마 했었지.

창밖의 정경에 다소 실망을 했지만, 공항에 내려보니 역시...공기가 너무 좋았다. 자연이 더욱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랄까.

공항도 얼마나 새건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규모나 시설면에서 인천공항에 뒤지지 않는 듯 했다. (뉴욕 JFK공항은 공항 자체는 크지만, 참 시설도 별로고, 여행자들 고생을 많이 시킨다.)

인디애나폴리스와 이 공항을 급호감으로 만들어준, 공항의 설치물 하나.

낡은 여행가방들로 만들어 놓은 의자다. 가방 하나하나를 보면, 거의 폐품 활용 수준이지만, 이렇게 엮어 놓으니 어찌나 그럴듯 해 보이던지.

 



물론, 사람들 앉으라고 만들어놓은 의자는 아니다. 뒤에 계신 분처럼, 사람들 않는 벤치는 따로 있다. 나름 작품이라는 말씀.

아랫 사진은 더 큰 소파 버전.


다양한 색깔, 모양새의 여행용 가방들이 만들어낸 재미난 눈요깃거리였다. 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공항의 컨셉트에도 참 적당한...

낡고 닳은 물건에 새생명을 불어넣어준 어떤 예술가에게 박수라도 보내고 싶게 만들어준, 재미난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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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