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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부근의 금천교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집이 몰려 있다는 소문이 서촌의 재발견과 맞물리면서 몇 년 전부터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시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작업실을 둔 나도 한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출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시장 곳곳에 옹그리고 있다. 잘나가는 시장의 모습은 흐뭇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시장을 지켜온 노포들이 훌쩍 뛴 집세, 프랜차이즈의 공세 등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둘씩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아담집’이 문을 닫았다. 식당 이름처럼 아담하고 고운 할머니 혼자서 37년간 운영한 작은 백반집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기력이 예전만 못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문 닫기 며칠 전 아담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속이 좀 뜨거워졌다. 동시에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오래된 식당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올랐다.

 

 

전북 진안의 ‘왕대포’에도 할머니 혼자 계신다. 무려 44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찾아온 이들에게 배고프면 밥 내어주고, 술 고프면 안주를 내어준다. 타일로 마감한 식탁을 갖춘 왕대포의 안주는 별다를 게 없다. 부침개나 두부가 고작이다. 맛도 별다를 게 없다. 당신 드시던 대로 간을 하고, 당신 드시는 밑반찬들을 툭툭 올려준다. 3000원짜리 막걸리 한 병을 시켜도 계속 뭔가를 챙겨주려고 한다. 과분한 인심이다.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연신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이내 불콰해진다. 날이 서 있는 마음도 바닷가 몽돌마냥 동글동글해진다. 글자로 포획되지 않는 대폿집 분위기는 직접 와서 느껴보는 수밖에 없다.

 

2013년 늦봄, 서울 제기동에 위치한 ‘홍릉각’과의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보면 그저 그런 동네 중국집이 분명했지만 당시 72살의 할아버지 주방장이 발휘하는 요리 공력에 감탄사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강호의 고수가 초야에 은둔해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잡채밥, 삼선짬뽕, 짜장면, 라조육 등을 먹어봤는데 ‘아, 중국집 음식이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맛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중화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서인지 볶음 요리들을 연달아 해치우고 나서도 입안이 마르거나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굴소스를 넣지 않은 ‘옛날식’ 잡채밥은 고상한 맛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맵지 않지만 얇은 튀김옷과 촉촉한 돼지고기가 빈틈없는 앙상블을 이루는 라조육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했다. 건해산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삼선짬뽕의 국물 또한 중후하다기보다 상쾌한 쪽에 가까웠다.

 

그때도 노(老)주방장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많은 손님 치르는 것을 힘겨워했다. 몇 년 사이 단골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자연히 영업시간은 짧아졌고, 칭송이 자자한 정탁 요리(1인당 얼마의 금액을 내고 맛보는 예약 코스 요리)도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식사 메뉴는 부인이 대신 웍을 잡고 내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할아버지를 주방에서 놓아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입이 즐거운 것보다 당신의 건강이 우선이다. 미리 고개 숙여, 허리 굽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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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주말을 앞둔 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에게 일이 생겨 주말에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주중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이번 주말엔 못 오신다. 당장 몇 시간 후에 와주실 하루짜리 베이비시터도 없다. 양가 어르신들은 멀리 있어 오실 수 없다. 그 순간 우리 세 가족은 철저히 고립된 섬이다. 폭풍우 들이치는데 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절망하던 그때,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채 거친 파도를 뚫고 다가오는 구조선 한 척이 보인다. 배 옆구리에 적힌 이름을 자세히 살펴본다. 거기엔 ‘앞집 할아버지’라고 적혀 있다.

 

우리집은 아파트 502호다. 현관을 마주한 501호에는 딸아이를 친손녀처럼 사랑해주시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딸은 앞집 할아버지 품에 안겨 앞집 할머니와 이모들과 몇 시간씩 논다. 산책하고 만화 보고 간식 먹고 춤도 춘다. 이를테면 5층의 모든 어른들이 5층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다. 이 얘기에 친구들은 ‘기적’이라 했다. 어찌 그런 행운이 너한테만, 부럽다, 누가 우리 애들도 그렇게 좀 봐주시면 좋겠다, 흑흑. 이런 반응들의 기저에는 ‘아이는 오롯이 한 가족의 몫이며 누구도 기꺼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각자도생의 현실이 놓여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996년 1월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책을 한 권 냈다. 제목은 ‘It Takes A Village’. 우리말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로 번역될 이 문장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가장 공감해온 말이다. 혼자서 아이 볼 때의 부담을 1이라 한다면 둘이서 아이 볼 때의 부담은 2분의 1이 아니라 4분의 1로 줄어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수준이 아니라, 돌보는 손 하나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온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물론 힐러리 클린턴의 저 문장은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이들 역시 시민이고, 따라서 시민사회 전체가 이 어린 시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미국에서는 논쟁이 붙었다. 당시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밥 돌은 “No!”를 외치며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 온 마을이 아니라 한 가족”이라고 반박했다. 각자도생이라는 거다. 그 해 대선에서 밥 돌은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에게 졌다. 그러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밥 돌의 말에 가깝다. 사회는, 가족 바깥의 사람들은 내 아이를 키워주지 않는다. 내가 겪은 5층의 기적은 어쩌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인 거다.

 

그러나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우고 구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있다. 내 아이 살기 좋은 세상 되라고, 남의 아이들을 구하러 간 사람. 2014년 4월23일 세월호 참사 일주일 만에 진도로 내려가 24명의 민간잠수사들과 함께 험악한 맹골수도에서 ‘생판 모르는 남의 아이들’을 구하고 지난 6월17일 11살, 9살, 7살짜리 아이 셋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잠수사. 그의 아내 김혜연씨는 한 인터뷰에서 진도에 내려가겠다는 남편을 “애들 때문에 말리다 결국 애들 때문에” 허락하였다 했다. 온 마을이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믿음은 ‘남의 아이들’ 292구를 수습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믿음을 배신당한 채 김관홍 잠수사는 눈을 감았다. 이제 남겨진 그의 세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는 누가 나서줄 수 있을까? 이제 누가 그처럼 나의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구하고 키우는 일에 선뜻 뛰어들 수 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저하거나 계산할 필요 없이, 두려움이나 공포도 없이 한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나설 수 있는 사회, 그런 진짜 기적을 만나고 싶다.

 

서정문 MBC 시사교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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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샤넬이 국내 잡지에 더 이상 광고를 내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뉴미디어에 광고를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효과가 측정되지 않는 오프라인 광고보다는 효율적인 뉴미디어 광고에 더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광고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 혁명이라 부르는 거대한 물결이 현실에서의 물성의 가치를 점점 흐릿하게 지우고 0과 1로 가득한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SNS로 인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사람 사이의 교류 양상이다. 누군가와 대면해 이야기할 물리적 여유, 음성 소통을 할 정서적 여유도 빠듯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좋아요’와 하트, 엄지 표시로 소통한다. 이모티콘이 기호를 넘어서 관계의 확산, 온기까지 느껴지는 감정의 교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NS는 막강한 힘과 지위를 얻고 있다. SNS를 하지 않으면 ‘소통’을 할 수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SNS상에서 전달되는 정보는 사회적인 관계망에 포함된 사람들 간의 경험으로 설득력을 얻고, 이는 취향대로 선택 편집되어 다시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와 기업의 입김은 당연한 듯 행사된다. 샤넬이 잡지 광고를 중단하고 SNS 광고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지극히 현실감 있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채용 시 응시자의 SNS 계정을 살펴 사회적 관계의 건강성 등을 확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 전, 고객의 SNS 계정을 살핀다고 한다. 대상자에게 어떤 친구가 있는지, 어떤 소비행태를 보이는지, 기호, 취향, 정치 성향, 성적 지향까지 그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유추 확인할 수 있으니 면접관과 대출심사관에게 SNS는 더 없이 훌륭한 바로미터가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SNS에 ‘올라간’ 정보들이 사회 속에서 ‘나’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그 관계망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의 일상 사진을 게시해 공유하기도 싫고, 그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소통하길 원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현실의 나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 사회에 어렵사리 발을 들인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숫자의 벽’이다. ‘좋아요’ ‘하트’ ‘엄지’는 둘째 치고 내가 따르고 나를 따르는 그 수의 격차에 먼저 무릎이 꺾인다. 아침 출근길을 보여줄 때도 수입자동차의 엠블럼이 포커스 아웃되더라도 명징하게 보이며, 아이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거실을 보여줄 때도 저 멀리 에르메스의 버킨백의 자취는 영롱하게 앵글에 걸린다. 여행을 떠나는 설렘은 비즈니스 클래스의 샴페인 글라스로 대표되고 투철한 준법정신은 자발적으로 집행한 두툼한 면세신고서 사진으로 완성된다.

 

비참하고 남루한 일상이 있을 수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니 SNS 속 세계는 그들만의 천국 같은 세상이 이어진다. 그 세상의 나 역시 나의 그럴듯한 생활, 매끈하게 포장된 물건들만 전시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나와의 간극이 있을수록 어떻게 보이도록 기획된 ‘나’들의 향연은 아무리 그렇게 보이고 싶어도 원재료 자체가 부족한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안 봐도 되었을 몇 장의 사진 때문에 충분히 행복한 자신의 일상을 폄훼하고 비관한다.

 

뉴미디어의 발달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순기능이 분명히 있고, 산업 측면에서는 가시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만으로 집계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성정이고, ‘좋아요’가 몇 개인지로는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관계다.

 

SNS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혼자다. 관계는 있지만 ‘함께’하지는 않는다. 안부는 따로 묻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레 계층과 서열이 나뉘고 스스로 접근의 수위를 정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과도기’라는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사회관계망에 관한 것이니 사람의 자정작용이 기능할 것이라 믿어볼 뿐. 진짜 ‘나’는 사진 한 장, 팔로어 수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금세 알게 되리라 믿고 싶다.

 

맨유의 퍼거슨 전 감독이 남긴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얘기가 언젠가는 뒤집어지길 바란다.

 

조경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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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을 여는 시간이 불규칙해도 괜찮다. 영업시간이 턱없이 짧아도 상관없다. 늘 문전성시라 줄 서서 기다려야 한데도 참을 수 있다. 음식 나오는 시간이 늘어져도 별문제 없다. 내부가 협소해서 옆 사람 어깨 부딪쳐가며 먹어도 큰 불만 없다. 주인장의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과 데면데면한 태도도 대수로울 것이 없다. 괜찮다, 괜찮다. 맛있으니까.

 

능이버섯은 ‘가을 산의 진객’으로 통한다. ‘일(一)능이, 이(二)표고, 삼(三)송이’란 표현은 버섯계에서 차지하는 능이의 존엄과 위엄을 말해준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원조능이버섯국밥’은 용문역 앞 도로변에 자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외관이 허름하다. 인적 드문 산간 마을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다. 내부 분위기도 기묘하다. 직접 그렸다는 ‘문짝 그림’과 군대에 있어야 할 여러 개의 반합이 한쪽에 걸려 있다. 충북 제천의 월악산 자락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식당 주인은 틈만 나면 가깝고 먼 산을 찾아 버섯이나 약초를 캐러 다닌다.

 

 

이 때문에 가게 문 닫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이 집에서 물 한잔이라도 얻어 마시려면 사전에 전화를 해야 한다. 능이버섯전골에는 귀물인 능이버섯을 위시해 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 등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육수는 엄나무, 뽕나무, 가시오가피, 헛개나무 등을 이용해 얻는다. 짙고 웅숭 깊은 맛이다. 전골에 넣어주는 칼국수도 쫄깃하기 이를 데 없다. 전골과 칼국수 이외에 버섯, 콩나물, 부추 등을 넣은 냄비약초밥도 만들어준다.

 

제주 서귀포의 ‘앞바당’은 휴게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주류를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 인근 편의점이나 가게에 들러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장담하건대, 앞바당에서 술 없이 버티는 일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식당 주인 내외는 표정이 별로 없고 말수도 적다. 사근사근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부부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한 식당이 나는 부담스럽다. 앞바당의 기본 식재료는 주인장이 주낙으로 잡아온 붕장어다. 번개탄 화로에 직접 구워 먹으면 된다. 양념장을 따로 준비해주기 때문에 소금구이, 양념구이 둘 다 즐길 수 있다. 오동통한 장어의 풍미도 좋지만 무엇보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서귀포 앞바다를 감상하며 먹는 맛이 흡족하다.

 

충남 공주의 ‘진흥각’은 영업시간이 매정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딱 세 시간이다. 그나마 예전보다 40분이 늘었다.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아 늘 닫혀 있는 것 같은 외관도 특이하다. 진흥각에 탕수육, 군만두, 볶음밥은 없다. 오로지 짜장면, 짬뽕, 짬뽕밥 세 가지만 판다. 자리에 앉아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여느 중국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무지, 양파, 춘장이 말동무가 되어주는데 특히 투명할 정도로 얇게 베어낸 단무지의 맛이 좋다. 베스트셀러는 짬뽕. 깔끔하게 손질된 돼지고기와 오징어, 채소들이 보드라운 면과 함께 국물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건더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진흥각 짬뽕의 백미는 국물이다. 불향이 강하게 묻어 있거나 걸쭉하고 진득한 쪽이 아니라 경쾌하게 구수하고 군더더기 없이 개운한 계통이다. 확실히 해장에도 맞춤한 국물이다. 짜장면도 나쁘지 않다. 짜지 않고 달지 않은, 각이 서 있지 않은 소스가 충분해서 면발에 골고루 묻어난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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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한다. 비타민을 주고는 금방 나을 거라고 말한다. 아이는 약을 먹고 정말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위약에 의한 플라시보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위약 효과는 환자의 심리상태가 병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예로 자주 쓰인다. 위약 효과는 환자가 의사에 대한 신뢰가 클수록, 자신이 먹어서 효과를 본 약과 같다고 생각할 때, 약값이 비쌀수록 커진다고 한다. 플라시보는 기쁨을 주다, 즐거움을 선사하다의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기원한다.

 

징그럽게 더웠던 올해 여름, 우리는 주말마다 한 움큼의 위약을 집어삼켰다. 이 주말을 끝으로 폭염의 기세가 꺾인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들었다. 매주 토요일은 여전히 더웠고 일요일도 변함없이 더웠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 어쩐지 선선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꺾였나? 그러나 수치로 확인되는 더위의 실상은 여전히 광폭할 폭, 불꽃 염의 온도였다. 잠깐이라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결국 기상청은 인디언들의 기우제보다 더한 지구력으로 몇 주간 빌고 빌어 기어코 시원한 월요일을 맞이하게 했다. 기상청의 예보는 위약인 줄 알았지만 기대해보고 싶은 말이었고 계절이 숫자를 바꿔 돌아오자 그래도 숨은 쉴 수 있는 날씨가 이윽고 돌아오긴 했다.

 

누진세는 예방주사였다. 너무 떠들었다. 몇 백만원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고작 깎아주는 금액이 몇 만원이라고 했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합격통지서처럼 떨며 기다린 것은 이상한 체험이었다. 온 국민이 그 얘기만 하기로 정한 것처럼 누진세를 걱정했던 것치고는 ‘괜찮은’ 요금이 나왔다. 사실, 전년, 전월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이 높은 금액이었는데도 백 몇 만원이 아니어서 괜찮은 마음이 생겨났다. 예방주사를 너무 맞은 덕이었다. 예방주사의 미덕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해외여행 간 셈 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 “쌩쌩 틀었는데도 백만원이 안 나왔다. 다행이다.” 누진세 폭탄 얘기가 온 나라를 뒤엎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얘기들이다.

 

헬조선, 숟가락 계급론 등 청년들은 자조하고 걷힐 것 같지 않은 어둡고 탁한 기운은 청소년, 장년층에까지 금방 스며들었다. 여러 가지 유행어를 거느리며 등장한 단군 이래 최고라 해도 아쉽지 않을 이 자조의 기운은 수긍해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수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며 2016년의 자조 시리즈는 엉뚱하게 힘을 얻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보다는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흙수저이지만 아르바이트는 있다, 헬조선 같지만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흙수저지만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를 보니 살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등. 최악의 상황을 사회가 먼저 특정해주고 나니 나는 그 계급은 아닌 것 같은 안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현실을 현실로 볼 수 없는 사회. 소통이 안될 때 덩달이 시리즈가 유행했고 미래가 암울할 때 허무 시리즈가 우리를 웃겼다. 지금은 시리즈 대신에 기준을 낮춰 억지로 힘을 내야 하는 사회를 건너가는 중이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너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다음주에는 시원해질 것이며 나온다는 전기요금은 생각보다 덜 나왔으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으냐는 긍정적 자조가 유행하는 상황이다.

 

노시보. 플라시보의 반대 효과를 의미한다. 진짜 약을 처방해도 그 약이 해롭다고 생각하거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환자의 부정적인 믿음 때문에 약효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플라시보에 속다 보면 진짜 약이 듣지 않는다. 유행이 그러니 핑퐁게임하듯 최악을 특정해 웃고 있긴 하지만 이 유행이 길어지면 웃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조경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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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가 팔아야 하는 물건은 배였다. 거대한 선박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을 가슴에 얹고 아버지는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쿠웨이트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영국으로, 베네수엘라로 떠도는 이주민의 삶을 살았다. 언어, 기후, 문화, 모든 것이 낯선 타국에서 아버지는 홀로 외롭게 1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견디며 배를 팔았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성장해야 했던 우리 형제들, 남편의 부재 속에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 엄마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엄마는 매일 저녁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셨다. 푸른색 항공 편지를 빼곡하게 채워가던 엄마의 글씨.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매일 빨간색 우체통에 넣어졌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해외 각국에서 보내오는 엽서를 우편함에서 제일 먼저 발견해 엄마에게 배달하는 재미, 거기에 붙어 있는 우표를 수집하는 재미에 빠졌고, 아버지가 큰 배를 판다는 자랑스러움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막내인 내가 한창 귀염을 떨었을 네 살 때 먼 길을 떠났던 아버지는,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기쁨도 잠시. 기업은 아버지를 차갑게 내던졌다. 젊은 인력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을 바치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반납하며 회사에 충성한 대가였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폭풍 같은 시절을 겪었다. 미국의 희곡작가 아서 밀러가 1947년에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반세기가 지나 지구 전체에서, 숱한 세일즈맨들의 가족에게서 그대로 재현됐다.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내며 독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었던 나는, 대학 졸업 후 번듯한 기업에 취직했다. 아버지와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취직을 하고 보니 세일즈 업무였다.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해도 결국 판매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일. 기업이 어떻게 충실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배신할 수 있는지 일찌감치 보았던 나는, 입사 일 년도 안 돼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언젠가 해고자가 될 거라는 불안감 속에 사느니, 스스로 자발적인 해고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헤매던 나는 마침내 영화라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문화 노동자가 되었다. 고용도, 해고도 없는, 나 스스로 나를 고용하는, 열정과 건강이 다하는 날이 퇴직일이 되는 직업. 정기적인 수입도, 4대 보험도, 휴일도 없고, 일은 고되지만, 행복하다. 내 카메라가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가장 억울한 피해를 입는 약자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기계쯤으로 여기는 기업이, 비인간 동물들을 생명으로 여길 리 없다. 아버지를 내쳤던 그 기업은 아름다운 산과 강을 갈기갈기 파헤쳐 끝없이 이윤을 증식했다. 고함 한번 못 지르고 자본의 포크레인에 희생되는 야생과 비인간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인간의 예의라 생각한다. 카메라는 나의 자존감이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 포스터.

 

새삼스레 옛일을 반추하는 건,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보았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배를 짓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내 아버지가 팔아야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배를, 이 사람들이 이렇게 지었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화이트칼라였던 아버지의 노동은 블루칼라 주인공들의 노동과는 많이 다르지만, 기업의 칼날 앞에 고통받는 노동자로서의 현실은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만든 김정근 감독은 인쇄소, 신발공장에서 일하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두 노동자의 투신 이후 노동자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카메라를 들었다.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시작으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0년 삶을 찾아 5년간 카메라를 들고 뛴 끝에,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완성했다. 영화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을 사진관에 초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는 그들에게 조명이 드리워진다. 기업의 성장지표와 고도성장 뒤에서 단 한 번도 ‘조명’되지 못한 채 ‘그림자’로 살아왔던 그들에게 빛이 닿는 순간이다. 영화는 뉴스에서 ‘붉은 띠를 두른 투사’ 이미지로 묘사되는 노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경청’한다. 별다른 극적 장치도, 화려한 CG도 없이 인터뷰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는 그 어떤 픽션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것은 쥐똥 묻은 도시락, 줄줄이 이어지던 동료들의 죽음 속에서도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땀 흘리는 노동이, 부끄럽지 않은 삶이 주는 감동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던 19세 청년, 에어컨 실외기 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숨졌다. 2014년 한 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 하루 평균 다섯 명이 희생됐다. 조선업계엔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벼랑 끝에 매달린 ‘그림자들’을 위한 헌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8월25일 극장 개봉했다. 상업영화에 밀려 전국 15개가 채 안 되는 극장에서 상영되지만,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극장을 찾아가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기업의 횡포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동료들의 손을 굳게 잡고 있는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그대는 분명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용기라고, 또 누군가는 희망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영화 속 김진숙씨의 말처럼, ‘마음’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린 섬이 아니다.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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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장을 다니며 누리는 최고의 사치는 일과를 마치고 한잔 꺾는 것이다. 물론 강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허름한 식당에서 지역의 별미를 곁들인다. ‘곁들인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술은 종(從)이고 음식이 주(主)가 된다. 지역 별미 중 해장 음식이 들어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다음날 일정이 한결 수월해진다.

 

지금껏 경험한 지방의 속풀이 음식 중에는 장흥 매생이국, 삼척 곰칫국, 영동 올갱이국, 거제 생대구탕 등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겨울 새벽 바다로 나가 허리를 굽힌 채 손으로 훑어가며 거둬들이는 매생이는 숭고한 노동의 산물이다. 푸른 윤기 속에 바다의 향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폭 삭은 김장김치를 넣어 끓이는 곰칫국은 생선살이 부드러워 뼈만 잘 발라내면 거의 들이마시게 된다. 부추와 아욱 등을 투입한 올갱이국 역시 애주가들의 속을 확실하게 풀어준다. 해장의 대명사인 콩나물국밥을 전주 혼자서 오로지하는 것은 아니다.

 

 

군산 월명동에도 20여년간 주당들의 쓰라린 속을 달래준 고마운 해장국집이 있다. 살짝 뭉툭한 국물, 억세지 않은 콩나물, 생기를 유지하고 있는 밥알, 촉촉한 달걀이 공생하면서 한 그릇의 따뜻한 위로가 완성된다.

 

개인적으로 첫손에 꼽는 해장 음식은 평양냉면과 막국수다. 산뜻한 국물이 가슴을 뻥 뚫어주고, 보들보들한 면발이 목울대로 치고 넘어가야 온몸의 세포들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날 통음으로 몸 컨디션이 엉망일 때면 ‘우래옥’의 평양냉면과 김치말이냉면 앞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까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주문해서 미친 듯이 욱여넣을 때도 있다.

 

이번 생애, 몸무게를 덜어내는 일은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갈비와 양지를 넣고 우려낸 ‘반룡산’의 가릿국밥도 혈관 속 알코올 찌꺼기를 말끔하게 청소해준다. 밥은 나올 때부터 맑디맑은 국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 위에 잘게 찢은 양지를 비롯해 선지, 두부, 무, 대파 등이 올라 있다. 어느 하나 모나지 않고 유순하다.

 

긴 세월 동안 ‘내 영혼의 맑은 수프’인 닭곰탕을 굳건히 지켜온 ‘황평집’도 여간 고맙지가 않다. 국물은 말갛고, 방울방울 떠 있는 닭기름의 자태는 영롱하다. 살코기를 씹으면 단단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마치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가장 탱글탱글한 부위는 닭껍질. 주문 시 껍질을 많이 넣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밥을 말기 전, 다진 마늘을 넣어보자. 고소하고 여릿한 국물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마늘의 알싸한 향이 닭곰탕의 풍미를 확 올려준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다진 양념장이나 깍두기 국물의 도움은 받을 필요가 없다.

 

‘황금콩밭’은 서울 시내에서 최고 수준의 두부를 선보이는 집이다. 어떤 부재료의 부축도 받지 않는 생두부의 맛부터 음미해야 하지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두부젓국이다. 새우젓으로 간을 한 맑은 두붓국(고춧가루가 뿌려져 있기는 하다)인데, 두부의 편안함과 새우젓의 거슬리지 않는 짠맛이 매끄러운 조화를 이룬다. 특히 이 집 새우젓의 상태가 상당히 좋다. 짜면서도 뒷입맛이 달다. 두부젓국을 먹다보면 또다시 음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하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장’의 뜻을 찾아보면 ‘전날의 술기운을 풂.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해장국 따위와 함께 술을 조금 마심’이라고 나와 있기는 하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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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큰 불만을 갖고 살지는 않았다. 머리가 좀 크고 그에 비해 어깨는 넓지 않아 가분수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게 된 초등학교 이후, 내 몸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 좀 못생겼고, 내 느낌보다 볼품없는 몸매를 갖고 있다. 딱히 아쉽진 않다. 아니 않았다고 고쳐 써야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 게티이미지(gettyimages)

 

신생아 시절, 딸아이는 교과서적으로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배고프다고 울었다. 두 시간 주기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 건 논산 훈련소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땐 차가운 밤공기 속 초소에서 별을 세는 호사라도 누렸는데, 아이가 허기를 호소하는 밤에 낭만 따위는 없다. 아내가 일어나면 젖을 물리고, 내가 깨면 미리 짜둔 모유를 데우거나 분유를 탄다. 그리고 촙촙촙촙, 젖을 빠는 소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리듬만이 방을 가득 채운다.

 

강제적인 불면의 밤에 익숙해질 무렵, 일이 터졌다. 그 밤 아내는 야근으로 집을 비웠고 나는 아이 옆에 누워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아이가 칭얼대며 깼다. 동시에 나는 5분 대기조처럼 부엌으로 달려가 잘 훈련된 병사처럼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분유를 탔다. 후다닥 방으로 돌아와 아이를 다리 위에 눕혀 젖병을 물렸다.

 

하지만 분유를 다 먹고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이유 모를 울음이었다. 젖꼭지를 물리고, 동요도 불러 봤지만 소용이 없다. 사흘 같은 30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던 울음은, 마침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 의해 종결됐다. 해답은 간단했다. 가슴. 바로 그 가슴. 아내는 윗옷을 걷어 올린 후 아이를 안아 젖을 물렸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고요가 순식간에 찾아왔다. , 신이시여.

 

언제 어디서든 아이의 불편과 불안과 불만을 해소해주는 건 아내의 가슴이다. 반면 나에겐 별 게 없다. 엄마 가슴을 흉내 낸 공갈 젖꼭지만이 나의 전부다. 하지만 아이는 귀신처럼 뭣이 중헌지를 안다. ! 하고 내뱉은 공갈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를 때, 내 마음도 바닥을 뒹군다.

 

내 몸에 대한 본격적인 불만은 이때 생겨났다. 왜 내겐 가슴이 없는 걸까. 적어도 육아 중인 남자에게는 젖 물릴 가슴이 생겨야 하는 것 아닌가. 아빠 혼자 아이를 봐야 할 때는 어쩌라고 엄마에게만 가슴을 허락한 것인가.

 

신이 있다면 그는 제 손으로 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 디테일이 떨어지는 양반일 거다. 우리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머지않은 미래, 가슴 달린 아빠들이 등장하려나. 아이에게 엄마만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빠만 줄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한다. 왜 내겐 가슴이 없느냐며 가슴을 쳐봐야 달라질 게 없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촬영 때문에 한 달 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세 살배기 딸이 곁에 오지 않았다. 어색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현관에 배웅 나온 딸이 건넨 말은 또 와”. 이 말에 상처 입은 그는 이렇게 썼다. “나와 함께한 3년이라는 축적된 시간이 딸의 내면에서는 완전히 리셋돼 있었다.”

 

결국 시간인 것 같다. 끊김이 없는 시간. 빈 화분에 흙을 채워 넣어 다지듯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면, 언젠가 가슴이 없는 내 품에서도 딸이 세상의 불안과 불만을 잠시 잊을 수 있겠지. 그러리라 믿는다. 그랬으면 좋겠다.

 

서정문 MBC 시사교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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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열기가 대륙을 넘나들며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문화계를 넘어 여러 분야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송중기라는 배우가 또 하나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2008년 영화 <쌍화점>에서 조인성을 따르는 미소년 친위대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송중기는 잘생긴 꽃미남중 한 명이었다. 이후 출연작에서도 선이 고운 미소년’ ‘여자보다 예쁜 남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 앞에 자리 잡았다. 영화 <늑대소년> 등 연기 변신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작품에서도 캐릭터와 대비되는 고운비주얼이 화제였다.

 

그러나 잘생긴 외모로 승부하는 스타들이 늘 그러하듯 작품 밖에서 보여주는 스타일은 실망스러웠다. 2013년 한 시사회장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레이 체크무늬 코트와 그레이 진, 그레이 도트 무늬 머플러에 빨간 니트 모자를 믹스매치한 모습은 내내 교복만 입다가 난생처음 사복을 입은 대학 신입생을 연상케 했다. 송중기의 밝은 이미지에 빠진 스타일리스트의 격한 팬심이거나 활동비 절약을 위해 초보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한 매니지먼트의 실수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랬던 그가 2016남자 송중기 스타일시대를 열었다. 육군 현역 만기전역 후 군인 유시진으로 돌아온 그는 외국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 골드베이지색의 특전사복을 입었다. ‘군인하면 떠오르는 카키색 군복을 비롯해 그가 선보인 다양한 밀리터리룩은 군복 패션을 핫 트렌드로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송중기가 드라마에서 입은 카키색 정복과 베이지색 사막복, 특전사 제복은 임의로 수정하거나 변경이 불가한 정복으로 촬영 후 반납도 드라마 소품실이 아닌 국방부에 했을 정도로 제약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복 옴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건 송중기의 소화력 덕분이었다.

 

특히 전장에서 돌아온 유시진 대위가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고백 신은 우르크의 황금빛 사막과 성당을 배경으로 베이지색 특전사복과 허리춤에 손을 올린 자연스러운 애티튜드까지 유시진 스타일을 한 컷에 담은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군복은 규칙과 규율에 맞춰 조직의 뜻에 따르는 남자의 대의명분을 보여주는 복식이다. 그런 제복을 패션으로 승화시키고 선글라스와 베레모, 시계 등 액세서리는 패션 잇 아이템(원하는 아이템)’으로 각광받게 하고 있으니, 단지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닌,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에서의 군복 패션이 남자의 강인함으로 표현되었다면 이후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스타일은 신사송중기의 아이덴티티를 완성해 가고 있다. 군더더기는 모두 뺐다. 블랙, 그레이, ‘톤 앤드 톤(동일 색상의 다른 톤으로 매칭)’으로 심플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블랙 슈트는 보타이를 함께하면 정통 파티복으로, 톤 앤드 톤 블랙 타이를 함께하면 예를 갖추는 복장으로, 남색 도트 무늬 타이를 믹스매치하면 비즈니스클래식 슈트의 완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이기도 하다. 송중기는 이러한 패션 공식을 영리하게 소화하며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디올 옴므 컬렉션에서는 과감한 레드 슈트로 2016년 하반기 패션을 예고하는 글로벌 패션스타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체크무늬에서 블랙&그레이로, 소년스러움에서 댄디&심플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는 송중기는 차기작 <군함도>에서 독립군 역을 맡아 또 한 번 파격적인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미소년을 벗고 남자를 입은 그가 다음엔 어떤 스타일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윤혜미 패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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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아, 디테일이 스타일이란다.” 신입 PD 시절 선배가 건넨 첫 조언이다. 서른 개의 프레임이 모여 1초가 되는데, PD는 한 프레임의 시간에도 민감해져야 한다고 했다. “아주 자세하게 관찰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야 돼. 그런 디테일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PD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거야라는 선배의 말을 뼈에 새겼다. ‘디테일을 아는 몸이 됐달까.

 

<PD수첩><불만제로>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디테일을 놓치면 치명상을 입는다. 잘못 쓴 내레이션 한 줄이 자칫 소송으로 이어진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를 떠올리면 된다. 아름답고 거대한 건축물이라도 볼트와 너트 같은 사소한 것을 챙기지 않으면 명작이 될 수 없다. PD로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딸아이에게도 이어졌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14개월 된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건전지가 들어가는 동요책이다. 손가락 마디만 한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면 내장된 동요가 재생된다. 언제 어디서나 발랄하게 동심의 세계를 소환하는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나도 동요 노랫말과 재생 순서까지 통째로 외운다. ‘컴백홈필승이 수록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디테일병()이 도져 노랫말이 거슬리기 시작한 거다. “삐악삐악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그리고 이어지는 가사 따당따당 사냥꾼”. 어린 동물들의 애교 섞인 울음소리에 기분 좋아지려는데 총 든 사냥꾼이 아이들을 쫓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펼쳐져 당혹스럽다. 힘내서 도망가렴 병아리야 송아지야!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이 노랫말도 신경 쓰인다. 1950년에 만들어진 노래다. 생계 때문에 아이를 집에 두고 일해야 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만, 집에 혼자 아기를 둔다는 가사는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나를 더 괴롭히는 동요는 이거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토마토가 주인공이다. 노랫말은 이렇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빠알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찌익).”

 

주스나 케첩이 된다는 건, 과정을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다. 끓는 물에 데쳐진 후, 믹서에 무자비하게 갈린다. 케첩이 되는 건 더 고통스럽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린 상태에서 30분간 더 끓여진다. 육감적인 빨간 옷을 입고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며 한 세상 재밌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왜 토마토는 누군가에게 꿀꺽삼켜지는 주스가 되거나 달걀말이 위에 찌익뿌려지는 케첩이 되어야 하나? 나는 이 노래가 이른바 헬조선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열정과 꿈을, 아니 사람 자체를 갈아 넣어야 돌아가는 헬조선의 애국가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딸아이의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아이가 마흔다섯이 되는 2060년엔 노동인구 100명이 노인 101명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뉴스가 우울을 더한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아직 있다. 노래의 마지막 줄이 다른 이야길 하고 있어서다. “나는야 춤을 출 거야(헤이!) 뽐내는 토마토.” 그래, 기왕 태어난 거 발랄하게 춤추면서 살겠다는 토마토가 하나쯤은 있구나. 나는 딸이 이 마지막 토마토가 됐으면 좋겠다. 자기를 지키면서,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는 삶. 아이가 자신을 갈아 넣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어야 한다. ‘한국이 싫지만그렇다고 내 아이가 나중에 춤조차 출 수 없는 곳이 되어선 안되니까 일단 정신 단단히 붙잡고 있는 수밖에.

 

서정문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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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어 주걱이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밥, 숟가락으로 들기름을 쓱쓱 발라 구운 김, 남의 살 하나 넣지 않고 푸성귀로 끓인 국, 달큰한 양념으로 조린 두부, 멸치볶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여기에 계절이 불러 올라온 김치 한 종지면 충분했던 식단. 집밥에 고기반찬, 화려한 특별식은 필수사항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가결한 것은 엄마였다. 태어난 때가 1960년이거나 1990년이거나 상관없이 집밥의 기원은 여기 있었다. 검박하거나 화려하거나 맛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집밥이란 익숙한 맛과 모양, 그리고 가족의 피와 살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벌어와 만든 부모의 정성이 집밥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외식경영 전문가가 집밥을 제목으로 달고 나온 한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 때 장외에서 때 아닌 엄마전쟁이 벌어진 것은 일견 당연했다.

 

엄마의 노동력이 밖에서도 필요한 시대, 엄마는 집밥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집밥이 없을 순 없었다. 엄마가 하지 않아도, 엄마가 사다놓거나 아빠가 시켜주어도 집에서는 밥을 먹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집밥의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의 정성, 집의 따뜻함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에서 출발했지만 집밥의 범주는 자연스레 집에서 먹었을 법한 음식으로 확장되었다.

 

집밥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들어서자 집밥은 편의점의 도시락, 패밀리 레스토랑의 메뉴, 소셜커뮤니티의 테마, 한식을 주로 하는 식당의 콘셉트가 되어 집밖으로 나와 질주했다. 집밥처럼 생긴 식당밥, 집밥이라 불리는 가게 밥을 먹으라 권했고, 집밥과는 다르지만 집밥이라 생각하고 먹기엔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 집밥과 입속 집밥이 다르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집밥은 엄마가 한 밥이 아니라 집에서 해 먹는 밥이라고 집밥의 주창자가 고쳐 말하자 집밥은 오늘 존재감이 오히려 명확해졌다. 집에서 해 먹는 밥, 준비하기 쉽고 만들기는 더 쉽고 입에는 착 달라붙는 밥이면 집밥으로 충분했다.

 

자신감이 붙은 집밥 만들기는 누군가를 집으로 부를 수도 있게 했다. 집밥을 해두고 불렀다는 말은 피차 거창한 음식 하나 없어도 부담이 없었다. 집밥으로 대동단결한 격의 없음은 사람 사는 맛, 일상의 소소한 재미로 거듭났다. 집밥이 돌아돌아 본뜻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 손맛이 밴 된장으로 끓여낸 우리 집만의 된장찌개, 우리 엄마가 제일 잘하는 비지찌개가 없어도 정서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을 두루 만족시킨 집밥이 내 식탁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족한 기분이 드는 식탁이면 집밥이 된 것이다.

 

서울 청담동의 한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셰프의 레시피가 고스란히 담긴 푸드 박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람 수에 맞게 재료와 양념 모두를 딱 맞춰 신선하게 배달하는 것. 박스를 열어 동봉한 레시피대로 요리해 먹으면 자투리 채소 하나 남기지 않고 바로 끝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 우리 엄마 혹은 아빠가 만든 버섯 크림 리소토가 맛있다고 하고 그 기억으로 집밥을 채워갈 것이다. 새로운 집밥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일상, 밥상머리 교육. 밥을 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집밥은 집밖으로 나갔다가 트렌디한 옷을 입고 다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컴포트 푸드로 불릴 때는 영화 얘기 같고 솔푸드로 불릴 땐 에세이 같던 집밥이 제 이름을 찾고 집에서 해 먹는 밥이 되자 오롯해진 것.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엄마가 하든 군인 아들이 하든 함께 밥을 지어 먹는 걸로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영혼의 허기를 메워가고 있다. 김범수는 가족의 마법이라 노래했다. 이적은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밥이 뭐길래. 밥은 밥이지만 밥이 아니라는 말이 착 감긴다.

 

조경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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