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어른이 술을 권한다. 외지 사람이 잔을 받는다. 드르륵, 낡아서 삐걱거리는 알루미늄 문이 열리고 노인 손님이 몇 패 들어온다. 찌개를 끓여서 막걸리를 돌린다. 미지근한 막걸리다. 여그는 차게 안 마셔. 

 

최근 광주에 다녀왔다. 부도심 곳곳의 전통시장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남광주시장, 양동시장, 대인시장. 토요일마다 야시장이 열리는 곳도 많다. 청년과 예술가가 결합해서 시장의 분위기를 바꿔 놓기도 한다. 시장의 힘이 아직은 느껴지는 도시다. 이 시장에는 대폿집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한 바퀴 돌면서 대폿집들의 면모를 쓱 살펴본다. 어떤 집은 “시장에서 파는 무엇이든 가지고 오면 요리해 드린다”고 써 놓았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 무렵, 전라도 해안에서 잡은 맛있는 생선과 해물이 광주에 많이 올라온다. 그 귀하다는 노랑가오리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누워 있고, 표면이 푸르게 빛나는 제철 삼치며, 굵직한 낙지(대낙지라 부른다)도 억센 힘을 자랑하며 함지에서 용을 쓴다. 가을에 태어난 어린 낙지도 있어, 세발낙지 맛을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세발낙지는 품종이 아니라 어린 놈을 그리 부른다. 어물전에서 낙지를 구경하고 있으면, ‘아짐’(아주머니)이 세발낙지 먹는 법을 알려준다. 이놈을 다리 쫙 훑어서 한입에 넣어야 한다고.

 

 

장을 봐서 대폿집에 들어선다. 안줏거리를 건네면, 솜씨 있게 쓱쓱 만들어낸다. 낙지를 탕탕, 도마에 쳐서 참기름과 통깨(이 양념은 전라도 음식의 주인공 격이다)를 술술 뿌려서 낸다. 가오리를 쓱쓱 저미고, 병어는 탕을 끓인다. 새꼬막이 수줍게 나와 있어서 연하게 삶아 백숙을 한다. 꼬막은 까먹는 맛이제. 안주를 함께 나누는 대폿집 손님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디서 오셨느냐, 무슨 일을 하셨느냐 서로 인사를 나눈다. ‘하셨느냐’는 은퇴한 어른에게만 묻는 과거형 질문이다. 그들도, 다 한세상을 힘차게 살아온 양반들. 개인사를 들으며, 사라져버린 시장과 광주라는 도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포는 원래 커다란 잔을 의미한다. 막걸리 같은 술을 딱 한 잔 마실 수 있게 큰 사발에 따라서 냈다. 얼른 마시고 일하러 가야 하거나, 가진 돈이 적어서 한 잔밖에 마실 수 없는 사람에게 최적의 소용이었다. 이제는, 다들 술을 천천히 마신다. 안주도 시켜야 한다. 이제 대폿집에서 대폿잔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인심은 그대로다. 무슨 술이든 한 병 시키면 안주를 한상 깐다. 싸고 흔한 음식이지만 이쪽 말로 ‘개미진’(맛있는) 것들이다. 김치며 번데기, 어묵탕 같은. 술에 딸려 나오는 기본 안주는 무료다. 이 전통은 오랜 것이다. 조선말의 선술집이나 주막에서도 그랬다는 기록이 있다. 전주의 그 유명한 막걸리골목의 인심이나 통영의 ‘다찌집’의 문화도 전통의 소산이다. 이제는 월세 싸고 직원 안 쓰는, 이런 광주의 대폿집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저나 다 사라져갈 대폿집을 기억하고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데, 참 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대포 한 잔 마시러 광주에 가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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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훌훌 뚝딱 말아먹고, 식의 표현이 흔하다. 노동하는 음식, 간편식의 골자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식생활에서는 국과 국밥의 역사가 그랬다. 국밥의 대표격인 설렁탕이나 곰탕은 싸지 않았지만, 속이 든든하고 오래 허기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깃국이었기 때문이다. 국밥이 노동 음식이었다는 근거는 토렴을 든다. 밥을 말아내어 들이마시듯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토렴은 밥알의 온도를 적당하게 해주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식사 속도를 높여주어서 환영받았다는 뜻이다.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시대에 토렴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지혜였다. 특히 한국처럼 대륙성의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술이었을 것이다. 토렴한 국밥을 먹으면서 우리 선조가 버텨온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

 

 

고기에 대한 열망은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부터 수없이 등장한다. 수천년 동안 기근이 이어지다가 불과 30여년 전부터 고기 풍요의 대혁명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간혹 값이 뛰는 채소보다 못한 고기 신세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근자의 일이다. 미국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충분한 양의 사료, 사육 기술의 고급화, 수입육의 대량 공급으로 이제는 고기 자체에 대한 기근은 더 이상 없다. 설렁탕과 곰탕의 주재료인 소고기의 대체품인 닭과 돼지고기의 공급량이 넘치는 것도 그 영향이다.

 

고기를 구워 먹지 못하고 탕으로 내어 먹는 것을 자조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국밥을 서구의 스테이크에 비교해서 생기는 일이다. 소고기 1㎏을 국밥으로 끓이면 10명이 먹고, 스테이크로는 셋이서 먹는다는 수학적 계산을 해보면 선명해진다. 근대 도입기에 이 땅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며 시작된 충격이다.

하지만 유럽도 오랜 기간 우리와 같은 국물 문화를 거쳤다. 유럽도 한때 고기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까닭이다. 산업혁명과 사육 기술의 발달이 고기를 국물로 먹던 시대에서 ‘덩어리’의 시대로 진전시켰다. 위생과 동물 예방의학이 발전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다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쌓으면서 고기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먹는 수프라는 음식은 국밥처럼 적은 고기와 재료를 나눠 먹으려는 열망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수프는 고급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일본과 한국의 기록은 그런 면에서 살짝 코믹한 구석이 있다. 경양식집에서 팔던 밀가루로 만든 싸구려 수프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우리의 추억에는 그런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시내 국밥집이 바글바글해진다. 거칠어진 속을 위로하는 데에는 뜨거운 국물이 최고겠지. 어쩌면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도 같다. 세상 일이 뭐랄까,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게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헛헛한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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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식업을 지탱하는 조미료 중 하나는 공장에서 생산한 산분해 간장이다. 공장에서 만들었다고 달리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간장을 찾으려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업소용 재료를 파는 대형 시장에 가보면, 조선간장이나 양조간장은 찬밥이다. 값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재료비가 올라 힘들 식당 사정은 모르지 않되, 간장에 대한 이해가 애초부터 부족하거나 전무하다. 오래된 ‘노포’ 식당의 다수도 다르지 않다. 양조간장이 소량 들어간 이른바 ‘산분해 간장’을 거의 100% 쓴다. 오래된 노포의 맛, 고향의 맛이라는 근저가 실은 산분해 간장이라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원가 분석을 해봐도, 양조간장(우리가 전통적으로 만들어 쓰는 조선간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양조한 간장)을 쓴다고 해서 주름이 갈 정도는 아니다. 요는, 상대적으로 좋은 간장을 쓰려는 보편적 접근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한식요리사 자격증 시험에는 양념 배합 공식이 있는데, 진간장이 기본이다. 당대의 입맛이 대량생산한 공장 간장에 길들여 있기는 하지만, 이른바 진간장이 볶음이나 조림 등에 표준 간장이다. 학원에서도 그리 가르친다. 조선간장을 요리에 쓰는 자격증 학원은 애초에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진간장이란 원래 고급간장인데, 양조간장에 산분해 간장을 섞은 걸 상품화하면서 이름을 가져다 썼다. 악화가 양화를 밀어냈다고나 할까.

 

조선간장을 마치 오래되고 박제된 간장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간편하고 싼, 대량생산형 공장 간장이 있는데 굳이 맛이 짜고 용도가 제한된 조선간장을 뭐하러 먹느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조선간장을 중심으로 해서 볶음이나 무침, 조림 등에도 다채롭게 쓸 수 있는 물건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염도도 낮아지고 있다. 염도를 낮춰서 냉장 발효하는 간장도 나온다. 시장의 편견과 유통 구조의 벽에 부딪혀서 좌절할 뿐이다.

 

현재의 한국 간장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일본이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 물자의 보급이 절실했고, 산분해 간장은 그 대안이 됐다. 일본 문화가 한국에 이식되면서 전통 간장의 입지가 줄어든 것도 한 이유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우리 콩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되자 조선간장은 개별 가정에서 부활한다. 물론 이때 시중에서는 적산 기술로 만든 일본식 간장도 여전히 팔렸고, 6·25전쟁 후에 본격적으로 시장을 넓혀 간다. 흥미로운 건 화교들도 간장·된장 시장에서 활약했다는 사실. 지금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된장이 기원이고, 이런 장을 만드는 화교 공장이 된장과 간장을 한국식 식당에도 많이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은 장의 부족을 불러왔고, 대량생산되는 공장의 간장이 크게 퍼졌다. 이후에도 개량형 된장과 간장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밀면서 조선간장은 더욱 위축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조선간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고 있다. 한식의 ‘진짜 맛’은 어쩌면 핵심 조미료인 간장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선간장은 아직 안 죽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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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먹는다. 먹는 행위에 대해 논란도 많다. 개고기며, 고래고기 섭취 같은 것들이다. 개별적인 집단의 오랜 문화와 새롭게 동물을 보는 시선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도 요즘 크게 확장되고 있다. 유럽의 몇 나라는 랍스터를 산 채로 삶는 조리법을 금지했다고 한다. 랍스터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은 문어는 어쩌나 싶다. 문어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이 종이 아주 영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산시장에 가면 문어들이 답답한 망에 갇혀 수족관에 들어 있다. 그들의 지능이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문어를 삶을 때 대개는 산 채로 넣는다. 그것이 표준 요리법이다. 아마 문어와 비슷한 낙지도 지능이 높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산낙지 투하’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면, 방송 화면과 개인 블로그를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몸부림치는 산낙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무엇이 선이고 옳은 일인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투하’라니. 이런 말은 군사용어 같다. 원자폭탄에 뒤따르는 말이 바로 이 단어가 아닌가.

 

 

꽃게를 삶는 방법도 그렇다. 뒤집어서 내장이 흐르지 않게 산 채로 넣으라고 한다. 가장 맛있게 삶는 법이라고 한다. 꽃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죽여서 넣으면 맛이 없어지는지 실험이나 연구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그저 무의식중에, 아니 애초에 의식하지 않고 그런 요리법을 믿어왔다.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차제에 동물을 요리할 때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현장에서 수많은 재료를 다루고 요리하는 요리사들에겐 이런 원칙이 필요하다. 재료를 죽이는 것이 요리사의 숙명인데, 경우에 따라 심리적 부담을 안는다.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듯하다. 확장하면, 가축 도살에도 미친다. 요리사는 대개 고작(?) 해산물을 죽이지만, 그들이 쓰는 재료 중 하나인 고기는 도살장에서 도축된다. 그 일에 종사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을 그들이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축 도살에 동물 윤리의 세세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다. 건조한 룰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아직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외면하고 있다. 효율이 우선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동물 윤리와 복지에 대한 촘촘한 규정이 만들어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그 비용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지에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다. 한마디로 고기값이 오를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하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에도 돈이 드는 격인데, 다양한 논의가 있어야 이런 부담은 낮추면서 잡는 이나 먹는 이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풀어놓고 본격적인 얘기도 하기 전에 경제논리만 들이대서야 언제 인간의 일이 나아지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잡식동물이고, 먹을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건, 먹는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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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고른 장소는 놀랍게도 한 햄버거 체인점이었다. 그와 점심을 먹고 나니 쟁반 위에 온갖 일회용품이 가득했다. 그를 만나 나눈 얘기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쟁반 위에 쌓여 있던 알록달록한 쓰레기는 이미지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일회용품을 거침없이 쓴다. 심리적으로 찜찜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 며칠 전에 한 행사에 갔더니 도시락을 나눠줬다. 먹고 나니 역시 한 보따리의 일회용품들이 남았다. 일회용 수저, 그 포장지, 국물을 담는 그릇, 반찬도 각기 다른 일회용 그릇에 담겨져 최종적으로 역시 일회용품인 ‘틀’ 안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모두 담는 별도의 비닐포장지까지. 거기에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도 더해지고 말이다. 두 사람이 다 먹고 제공된 비닐에 담아보니, 쌀 한말들이 정도의 부피가 생겼다. 우리 마음에도 그만큼의 부담감이 쌓여버렸다.

 

 

일회용품은 번다한 일상을 간편하게 해주지만, 반드시 두 가지 후유증을 남긴다. 물론 하나는 환경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죄책감이다.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심리적 통증까지 겪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래도 되는 거야?’

 

지난 여러 정부에서 일회용품 금지 법률을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풀어버렸다. 일상적으로 들르는 커피숍에서 일회용품에 음료를 담아 소비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버린 쓰레기가 얼마이며, 일회용품을 생산하기 위해 쓴 에너지는 또 어느 정도이겠으며, 다시 재활용하기 위해 쓰는 비용과 환경오염 문제는 얼마나 심각했을지 가늠키조차 어렵다. 일회용품 문제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수거와 재활용을 잘해도 후유증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재활용을 100%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열처리를 해야 하므로 환경오염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요즘 미래 세대에 주는 부담으로 꼽는 지구 기상 대이변의 주범인 ‘온실가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우려로 다시 일회용품 규제가 시작됐다. 환영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작 일선의 커피숍에서 머그잔과 유리잔을 써보니 반대하는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무 문제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더운 커피는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오니 어쩌니 염려를 벗어나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이스커피는 투명한 유리잔이 주는 촉감까지 상쾌해졌다. 혹시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 않던가. 아니, 그동안 왜 그렇게 일회용품을 써야 했지? 아무 문제 없잖아?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일회용품을 많이 쓰는 나라는 미국이다. 게다가 재활용률은 형편없이 낮다. 우리는 이른바 경제발전국 중에서 일회용품 사용률은 낮고, 재활용률은 높다. 우리가 아무리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도 거대 에너지 사용국인 미국이 시큰둥하면 지구 환경 악화를 막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고민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어쨌든 머그잔에 담긴 커피는 더 맛있으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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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 명절에는 만두를 빚는다 하였는데, 어디까지나 한수 이북의 일이다. 남쪽의 만두는 중국인들의 몫이었다. 동네에 화교가 좀 살았는데, 명절에 푸짐하게 만두를 빚었다. 엄밀히 말하면 파오츠(包子)였다. 만두(만터우)는 화교들에게는 속을 채우지 않는 일상의 밀가루 음식이었다. 발효시켜 부풀린 후 쪄서 밥으로들 먹었다. 그걸 얻어먹어본 적도 있다. 짭짤한 나물과 채소 볶은 것을 그 밀가루 만두, 실은 빵이라고 할 음식에 얹어 먹었다. 소 없는 만두란 참 심심했지만, 부풀린 반죽이 씹히는 결이 인상 깊었다. 그 만두를 잊지 못해서 대림동 상가에 종종 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진짜 ‘만두’를 판다. 거대하게 부풀려서 왕만두라고 해야 할 밀가루 빵을 팔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 정주지는 바꾸어도 음식은 쉬이 바꾸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만두를 먹게 된 것은 호기심 많은 어머니 덕이었다. 집에서 만두를 빚지 않는 남쪽 고향 출신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이북식 만두를 배웠다. 어른 손바닥만 한 만두를 빚었다. 세 개만 먹어도 어른이 배부를 크기였다. 비계 섞인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고 부추를 엄청나게 많이 넣는 것이 바로 이북식이라고 했다. 두부는 거의 쓰지 않았고, 겨울엔 김치로 만들었다. 역시 부추를 넣은 여름식 만두가 맛있었다. 소가 아무리 좋은들 만두피가 더 중요한 몫이란 걸 만두를 직접 빚으면서 알았다. 반찬이 좋은들 밥이 나쁘면 별무소용인 것처럼.

 

미련한 짓이었지만, 학창 시절에 많이 먹기 겨루기의 대상은 만두였다. 스테인리스나 양은 찜통에 9개씩 담긴 찐만두를 몇 개나 먹나 다퉜다. 하필 찐만두가 선택된 것은 아마도 차곡차곡 높이 쌓이는 찜통이 보기에도 그럴싸했을 것이고, 만두의 개수로 자랑 삼기 쉬웠기 때문일 것 같다. 찜통이 탁자 위로 끝없이 솟았다고 허풍을 쳤으며, 찐만두를 모두 세어보니 100개를 먹었네, 200개를 먹었네 했다.

 

마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쪽의 만두 사정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해도는 만두를 예쁘게 빚고 평안도로 가면 커지고 투박하다고 했다. 신의주까지 북상하면 왕만두가 있다고 했다. 중국 국경으로 갈수록 만두가 커지고 터프해졌다고 한다. 먹어볼 수 없으니 이 또한 막막한 일이다. 전에, 단둥까지 가서 거리 만둣집에서 요기했다. 엄청나게 큰 만두를 두 개 담아 1인분으로 팔았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맛있는 만두였다. 그 가게에서 이북으로 건너가는 압록강 철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북한 만두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먹었다. 언젠가 강헌 선생이 얘기한, 황해도 만두의 전설도 보고 싶다.

 

겨울이면 돼지를 잡고, 만두를 빚은 후 무명실에 꿰어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는 처마에 매달아 얼렸다는 전설의 만두를. 대통령이 가고, 문화예술인이 가니 우리 또한 갈 기회가 없겠는가. 대동강가에서 철갑상어 요리도, 숭어국도 좋지만 나는 만두가 먹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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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법률 이름에도 쓴다. 특히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개에 관한 논의가 많다. 사람 눈에 잘 띄고, 오랜 애호 역사가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기르던 개를 잡던 시절에도 차마 제 손을 쓸 수 없어서 먼 곳의 개와 바꾸기도 했다. 개 식용 논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대부분의 식용 개는 음식이 될 목적으로 처음부터 사육된다는 점이다. 하나 축산 관련법에는 빠져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와중에 이들 사육견의 고통은 말도 못한다.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대부분 최소한의 사육 환경을 지키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킨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이것은 법률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양심의 한계를 의미한다.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인간의 연민 같은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육장마다 제각각이고, 개들에 대한 연민도 결국 돈으로 바꿀 인간의 욕망 앞에서, 또 효율 앞에서 무너지게 마련이다. 개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돼지와 닭보다 훨씬 나쁜 환경에서 지낸다. 개고기 식용 금지냐 아니냐 이전의 현실적 문제다. 어쨌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많이 먹는 ‘공식’ 육종은 어떤가. 며칠 전 뉴스에서 베트남의 돼지 도살 문제가 떠올랐다. 마을의 오랜 축제에서 돼지를 노상 도살하는 문제가 언급된 것이다. 인권, 환경단체에서는 이것이 축제에 참가한 아이들의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우려를 표했고, 마을 어른들은 전통의 문제이니 참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은 늘 다른 시각의 충돌을 일으킨다. 제주도에서도 전통적으로 돝추렴이 있었다.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돼지를 잡아 나눠가지는 행사를 말한다. 이 역시 동물복지 논란에 의해 중지되었다. 이것은 법률에 의해서도 불법이니 큰 반발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저변에는 도대체 해준 것도 없는 ‘뭍’의 권력이 왜 제주사람이 전통적으로 돼지 잡는 것에까지 관여하느냐는 불만이 있었다.

 

돼지와 닭, 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농장’의 모습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운 노동이 존재한다. 사료비가 곧 이익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악성 효율, 그 효율에 맞추기 위한 학대, 다시 거기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도 있다. 동물을 다루는 데 웬 인권이냐고. 노동 환경 자체가 동물을 학대하기 쉬운 조건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건 돼지 잡는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시작하자 해도, 당장 입에 넣을 치킨과 삼겹살 값도 없는데 동물복지 운운이 무슨 사치냐는 말도 나온다. 실은, 이런 모든 문제는 자본에서 비롯한다. 돼지와 닭까지도 세계화와 자본의 ‘수직계열화’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치킨집 사장의 눈물, 배달앱의 개입, 실업과 청년문제까지 단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는 우리 사회 문제가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장차 이 일을 어찌 할 것인지 막막하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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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농사법이 발달해 제철 개념이 많이 사라졌다. 찬 바람 불면 농익은 포도가 맛있는 때인지라, 아는 농민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7월에 출하를 마쳤단다. 시설 재배로 바꾸면서 출하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철을 앞당기면 작물값이 좋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여러 이점도 더 있다. 유기농 재배하기도 편하고(인근 밭에서 벌레가 넘어오기 어렵다), 재배와 수확에 편리하게 환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바람이 싸늘해지고, 대낮에도 긴팔을 입어야 할 때 먹는, 잘 익은 과일의 맛을 생각하면 전통적인 제철이 그립기는 하다.

 

 

복숭아도 제철이 당겨진 듯하다. 포도야 넝쿨처럼 자라고, 키 작게 기르기 좋아서 일찌감치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치지만 복숭아도 그럴 줄 몰랐다. 복숭아도 이젠 시설 속에서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덕에 더 빨리 다디단 복숭아 맛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시장에 이미 좋은 복숭아가 많이 나오고 있다. 물 많고 달아서 즙이 줄줄 흐르는 백도와 황도의 맛! 예전에 늦여름 시장에 가면 복숭아 냄새가 시장이 가득 찰 지경이었다. 어떤 향기로움도 대체할 수 없는 복숭아만의 녹진한 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차가운 우물물을 퍼서 복숭아를 함지에 담가두면, 마당에 복숭아 향이 퍼졌다. 복숭아 독이 오른다고 어린애들은 만지지 못하게 했지만, 함지에 손을 담그고 복숭아를 빠득빠득 씻던 재미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어머니는 늘 어딘가 상처 입고 한 곳이 갈색으로 짓무른 것을 즐겨 사들였는데, 달리 이유가 있었다. “어디 이운 데가 있어야 달고 진해. 한 곳이 물러진 복숭아는 빨리 상하는데, 우리가 사주면 장사꾼도 좋지.” 과연 어머니의 말씀은 옳았다. 복숭아는 설탕에 재어둔 것처럼 달았다. 씨에 붙은 과육까지 빨아먹었다. 바삐 먹어치운 후 입술 주변에 남던 옅은 통증도 기억나지 않는가.

 

함께 일했던 요리사 후배가 있었다. 추석 휴가를 받을 때면, 그이에게 직원들이 부탁을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복숭아였다. 집안에 복숭아 농장을 하는 이가 있어서 그 무렵이면 우리에게 보낼 복숭아를 챙겼던 것이다. 복숭아가 얼마나 실하고 좋은지, 상자를 받으면 넘쳐나던 향으로 어질어질해질 정도였다. 나는 늘 ‘파지’라고 부르는 걸 주문했다. 시장에 낼 때 아무리 맛이 좋아도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상처가 있으면 받아주지 않거나 제값을 못 얻는다. 그런 건 이렇게 ‘직거래’로 팔곤 하는데, 오히려 나 같은 이에겐 각별하게 맛있는 놈이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이랄까. 더 달고 향 좋은 놈이 상처 입는 법. 껍질을 살살 벗기면 뭉클한 속살이 가득한, 맛 좋은 복숭아였다.

 

올해부턴 이것도 어렵게 됐다. 그 후배가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 복숭아밭에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제일 먼저 복숭아를 생각했다. 이제 곧 수확철인데 나무에 온전히 매달려 있을지. 그건 복숭아만의 일이 아니겠다. 올해 유난한 더위에 농사짓느라 고생한 농민들의 수확물을 태풍이 다 떨궈버리지는 않을지. 다들 기도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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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언제 파스타가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열강의 공사들이 궁에 들어오고, 그들을 접대하느라 파스타가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서양 음식물을 수입한 해관(세관) 자료가 있다. 와인과 샴페인, 과자류와 국수의 수입이 있었다.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근대식 호텔이 서울에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물자는 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수입했다. 파스타는 서양인에게 중요한 음식이었다.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요리도 간편했다. 당시 어떤 조리법을 썼을지 궁금하다. 100년 넘게 흐른 지금, ‘모든 재료’가 파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된장이나 간장 파스타가 있었을까. 아마도, 서양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니 서양 재료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토마토소스와 고기볶음, 치즈 같은 것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지금은 우리 식재료와 파스타의 융합이 흔하다. 묵은지 파스타도 있다. 곱창을 볶아 올리기도 하고, 국물 넉넉한 떡볶이 스파게티도 팔린다. 서양재료여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파스타집이 ‘이태리면집’이니 ‘이태리백반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의 반영이다. 외래 것을 우리 문화에 동화시켜 독자적으로 즐기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때 시중의 말로 유명했던 “남이사!(남이 뭘 하건 말건!)”다.

 

파스타는 우리 음식문화에 생각보다 더 깊게 들어와 있다. 굳이 그걸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전제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울 정도다. 파스타집에 가면, 국수를 먹듯 후룩 후룩 하는 ‘흡입 소음’이 자연스럽다. 이탈리아에선 없는 소리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뭐 이런 거다. 이 소음을 일본에서는 ‘누하라’라고 해서 약간의 공론이 있다. 누들 + 허래스먼트, 즉 스파게티 먹는 소리가 남에게 괴롭힘을 준다는 뜻이다. 원래 일본 국수는 소리 내서 먹는 것이 결례가 아닌데, 파스타를 먹을 때 소리를 내는 건 교양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나온 논의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거 없다.

 

학교 급식에 파스타가 나온 지 오래다.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더러는 밥에 딸려나오는 반찬처럼 제공된다. 무엇이든 밥반찬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일본인이 원조다. 포크커틀릿도, 햄버그스테이크도 쌀밥의 반찬으로 팔린다. 다만 “빵으로 할까요, 밥으로 할까요”는 남아 있다. 서양식인 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요리의 뿌리는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단체급식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의 급식에도 파스타가 등장한다. 가장 흔한 건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다. 마카로니 샐러드라고도 한다. 왕년에 이른바 ‘한정식’에도 나왔던 음식이다. 파스타는 밥까지 만나서 완벽하게 동양화 내지는 한국화되었다.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주면 좋겠다. 김가루도 넣고, 김치 다진 것도 섞어서 말이다. 한 문화는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면서 변형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직장인들에게 동네 파스타집의 인기 메뉴를 알려드린다. 얼큰한 속풀이 해장 파스타다. 부장님도, 이사님도 젊은 직원들 따라가서 입에 안 맞는 크림파스타 안 드셔도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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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후배가 귀국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재미있는 대목. “그쪽 사람들이 농 반 진 반으로 한국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 유럽 베이컨(삼겹살이 재료다) 값을 올렸다는 거다.”

 

한국은 세계 삼겹살의 20% 정도를 소비한다. 인구 대비 엄청난 양이다. 세계 17개국 내외에서 수입한다는 것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돼지를 대량으로 기르는 나라는 웬만하면 한국에 수출한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비교우위에 있는 모든 부위가 해당한다. 족발, 목살, 갈비, 등뼈 등이다. 한국에선 비싼데 외국에선 헐값인 부위다. 한때 수입 삼겹살 구분법으로 ‘오돌뼈가 붙어 있느냐’를 보라고 했다. 이젠 의미없다. 한국 기호에 맞춰 뼈를 함께 잘라 정형해서 수입한다. 수입은 냉동이라고? 아니다. 냉장도 꽤 된다. 이베리코 돼지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스페인 명품이다. 물론 여러 등급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한국의 수수한 길거리 고깃집에서 이베리코를 파는 걸 보고 유럽인 관광객이 놀란다고 한다. 대개 돼지를 세세하게 잘라 정형하지 않는 유럽에서는 한국의 특정한 기호에 맞춰 이익을 낸다. 이른바 항정살, 가브리살 등이다. 일본만 해도 흔한 등심 돈가스가 약간 다르다. 한국은 등심만 튀기는 반면, 일본은 붉은 살이 섞여 있다. 바로 가브리살, 즉 등심 덧살이라는 부위다. 그래서 일본과 돈가스 맛이 다르다고들 한다.

 

황학동이라고도 하고, 청계천이기도 한 중앙시장은 원래 양곡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릇과 주방설비 가게가 많다. 이곳에는 ‘불판’만 전문적으로 파는 집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고기 굽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인도 총 몇 종이나 있는지 모른다. 대략 세어보면 100종이 넘는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솥뚜껑형, 사각철판형 등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고 돌, 합금, 무쇠, 스테인리스, 강철 등 소재로도 나눌 수 있다. 석쇠처럼 불꽃이 직접 닿는 형은 적은 편이다. 삼겹살은 불에 잘 타고 기름이 일어 석쇠 같은 형태는 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속은 안 익었는데 겉만 탄다. 야외에서 숯불 피워 삼겹살을 굽다가 낭패를 보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석쇠는 대개 소고기용이다. 삼겹살은 사실 그리 오래된 구이 형태의 외식이 아니었다. 먹더라도 주로 찌개나 보쌈용으로 쓰였다. 한식요리를 다룬 오래된 책 어디에도 삼겹살 구이는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잘 상해서 유통이 어렵고, 잘 익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이용으로 각광받지 못했다. 가격도 싸지 않았다. 1950~60년대 신문에는 ‘공설시장 가격’이라는 일종의 물가 안내 기사가 나오는데, 부위 불문하고 소와 돼지 고기 가격이 비슷했다. 미국에서 다량의 사료가 수입되고 식용유 산업이 발달하면서 콩깻묵 같은 부산물이 흔해졌다. 돼지고기 양산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삼겹살집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불판을 가는 문화가 없었다. 점차 위생과 건강을 따지는 손님의 요구에 맞춰 불판이 가벼워지고, 갈아주는 문화가 생겼다. 삼겹살 불판 교체를 비유로 들면서 정치개혁을 온몸으로 실천하던 분이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그가 꿈꾸던 새 불판 교체는 아직도 요원하다. 시민들과 함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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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구 1000만명에 식당 숫자는 12만 개가 넘는다. 식당 한 개에 80여명의 인구가 물려 있다. 서울시에 그토록 식당이 많은 건 대부분 생계형 영세업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떡볶이집, 김밥집, 분식집, 삼겹살집, 호프집, 치킨집이 다수를 차지한다. 알다시피 이런 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레드오션의 절정이고, 이른바 ‘인테리어가게 돈 벌어주는’ 조기 폐업이 다수다. 흔히 도시 노동자들의 이동 순서가 회사-삼겹살집이나 치킨집-말단 노동이라고 한다.

 

 

회사의 고용에서 밀려나면 더 가혹한 개인 경쟁상태로 내몰리고, 그마저 폐업하면 일당 노동자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월급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전통적 업종들이 폐업하는 것도 이런 계층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지물포, 페인트가게, 전기상, 세탁소, 슈퍼마켓, 문방구, 이발소 등은 이제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엿한 세탁소 사장님들은 대형 세탁체인의 말단으로 떨어지고, 슈퍼마켓 주인도 본사의 ‘현장 영업대행자’에 불과한 편의점 주인이 된다. 이마저도 이익이 안 나면 최저임금 수준의 경비원, 청소용역업의 파견직 노동자로 살아나간다. 버스나 지하철의 새벽 첫차가 얼마나 만원인지 안 본 사람은 모른다. 시내로 출근하는 말단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가득 메운다. 이런 와중에 청년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용이 안되니 자영업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그 목표가 대개 카페와 술집, 식당이다(벤처는 아무나 하나). 망원동이니 연남동이니 하는 신흥 유흥지구의 가게를 가보라. 상당수가 생애의 첫 본격 직업으로 요식업을 택한 친구들이다. 소비 인구는 줄고, 시장에 진출하는 청년들까지 넘치면서 요식업 시장은 일대 격전지가 되었다. 어딘가 뜬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가게를 얻고, 그렇게 영업을 열심히 하다보면 가겟세가 오른다. 가겟세, 즉 임대료는 곧 부동산(건물) 가치의 바로비터다. 그렇게 건물 가치를 올려주는 건 집안 돈 끌어대어 영업한 어린 친구들인데, 이익은 건물주가 획득하게 된다. 영업 실패로 종잣돈을 까먹고 물러나도 이미 올라간 임대료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건물 가치 하락을 바라지 않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려줄 리 만무하고, 법망을 피해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나 요구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청년 창업에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고용이 늘지 않으니, 창업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그 시장이 불행히도 가장 망하기 쉽다는 요식업이라는 건 그야말로 나라의 불행이 되고 만다. 아버지는 회사 다니다가 쫓겨나서 고깃집 하다가 폐업하면 경비원이 된다치고, 그 아버지의 종잣돈을 얻어서 호프집과 카페 열어서 문 닫은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허망한 말 말고, 그들이 시민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장사가 안되는 건 그저 “너희들이 운이 나빴어”라고 하고 끝날 일인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들을 정말 어찌할 것인가(칼럼 제목은 이오덕 선생의 산문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에서 차용).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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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에 잠시 다녀왔다. 제주의 변화는 국토 중에서 아마도 가장 극적일 것이다. 고립, 격리 같은 낱말이 떠올랐던 세기를 지나 일종의 거대한 카오스 상태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다수의 제주 사람들이 도시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젠 도 전체의 땅값이 폭등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안 와도 경기는 여전히 좋다. 저비용항공사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비행편이 국내 여행객을 열심히 실어나르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공항이 포화상태여서 공항 건물에 브리지를 대기 힘들다는 뜻이다. 제주도 남쪽 서귀포를 들렀다.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시장으로 유명한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올레 걷기 운동의 영향으로 시장 이름까지 바꾼 곳이다. 활력이 넘친다. 시장 구경이 흥미롭다. 후지와라 신야는 1970년대 한국의 시장을 보고 “시장이 있으면 국가가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 에너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의 시장 정도가 아닐까.

 

 

이 시장의 명물은 많지만 내 눈에는 이 시장 사람들, 넓게는 서귀포 사람들의 매무시를 꼽게 된다. 먼저 소개할 것은 시장 ‘원보마트’ 앞 세 분의 할머니다. 딱 일정한 거리로 세 분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처음 봐서는 무얼 파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종이로 잘 갈무리하고 포장한 ‘무엇’을 놓고 좌판을 벌여놓았다. 대단히 비싸고 귀한 물건처럼 보인다. 누군가 주문하면 그때서야 그 무엇이 드러난다. 바로 동태다. 과거 제주에는 동태가 귀했다고 한다. 동해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루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다. 동태포를 주문하자,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의 검은 막을 벗겨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세한 손길로 손질에 들어간다. 막칼로 대가리며 몸통을 서너 번 툭툭 잘라서 주는 게 고작인 ‘뭍’에 비하면 보물을 다루듯 한다. 경탄이 나온다. 그렇게 동태포를 떠서 팔고는 이내 다시 좌판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지켜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소리내어 손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기야, 동네 손님들이 빤한데 불러 외친들 무슨 소용일까만.

 

다른 좌판에 내놓은 채소와 미역, 다시마도 어찌나 예쁘게 진열해 놓았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민속공예(?)를 보는 것 같다. 그 좌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장 손님이 미감의 충족을 받을 듯한. 마침 자리돔 철이라 손질해서 파는 할머니들이 많다. 역시 채반에 가지런히 놓은 모양이 예술 수준이다. 건어물 가게 앞 말린 참돔은 또 얼마나 참하고 예쁘던지. 내장을 발라내고 하나하나 이쑤시개를 꽂아 내장 안이 잘 마르도록 해서 진열해놓았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 한 식당에 들어갔다. 두 할머니가 낮에만 장사하는 금복식당이라는 비빔밥집이다. 단돈 3000원. 입에 착착 붙는 비빔밥을 그득하게 먹었다.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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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우선은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냉면은 냉면일 뿐 ‘물냉면’이란 없다. 냉면은 당연히 육수가 시원하게 들어가는 것이므로 굳이 ‘물’이란 접두어는 사족이라는 뜻이다. 함흥냉면은 냉면 아니냐고 하면 슬쩍 이런 말을 흘린다.

 

“원래 함경도에서 비빔국수로 먹던 것을 전후 평안도 실향민의 평양냉면에 맞서 함흥냉면이라고 작명했다.”

 

 

아마도 이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냉면이 아닌 것도 아니다. 얼음처럼 이가 시린 냉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운 면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의 함흥냉면과 비슷한 것이 북한에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명태회국수다. 함경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이것과 유사한 음식이 강원도 속초에서 명태 고명을 얹은 함흥냉면으로 남아 있어서 그 연관성을 짚어볼 수 있다. 알다시피 속초는 함경도 실향민이 대거 월남하여 성장한 도시다. 북한의 요리책에는 명태회국수가 실려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많이 먹는다. 흥미로운 건, 서울의 함흥냉면도 명태회국수와 아주 닮아 있다는 점이다. 함경도에서는 명태나 조개 등 해산물을 국수에 얹어 먹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이런 해산물 국수에도 육수를 쓴다. 면 1인분이 200g이면 육수 반 컵을 곁들인다. 국수에 부어서도 먹지만 따로 육수만 그릇에 내기도 한다. 남한의 함흥냉면 먹는 법과 아주 비슷하다. 보통 함흥냉면집에 가면 뜨거운 육수를 컵에 부어서 내어주지 않는가.

 

북한에 함흥농마(전분)국수도 있다. 이것이 서울에서 파는 함흥냉면을 영락없이 닮았다. 고구마 전분을 주로 쓰는 남한과 달리 감자 전분이 주재료다. 면을 뽑고 여기에 참깨와 고춧가루를 뿌리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아 얹는다. 뜨겁게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여름에 먹기 좋다. 남한의 함흥냉면이 차갑고 달고 맵게 만들어지지만, 북한에서는 구수한 비빔국수처럼 즐긴다. 사족이지만, 함경도에도 아예 얼음 같은 육수를 쓰는 함경도 냉면이 따로 있다. 평양냉면과 비슷한데, 면이 전분이라는 점이 다르다.

 

함흥냉면은 비교적 조리법이 쉽게 전파되어 일찍이 서울 곳곳은 물론 전국적으로 잘하는 집이 꽤 널리 퍼졌다. 그래도 역시 서울 중구 오장동 일대와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 쪽을 원조로 꼽는다. 오장동의 한 유명 가게는 한여름이면 평양냉면집 못지않게 줄을 선다. 워낙 올여름 평양냉면의 위세(?)에 눌려 여론의 눈길을 못 받고 있을 뿐이다.

 

예지동에 있는 가게들은 양이 많기로 유명했다. 친구들과 그걸 먹으러 가서 얘기를 나누다가 면이 불면 많은 양의 퍽퍽한 국수를 넘기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때 육수를 조금 부어서 굳은 면을 풀어 먹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약간의 육수를 면에 넣어 먹기도 하는 함경도식의 명태회국수나 함흥농마국수와 먹는 법이 비슷하다. 평양의 냉면을 먹고 온 사람들은 많은데, 함경도의 이런 국수들을 먹어봤다는 인사들은 못 봤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평양냉면이 인기였다고 하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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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관련 책의 출간이 아주 많아졌다. 관련 책만 내는 전문 출판사가 있을 정도다. 새로운 개념의 판매술과 별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일본의 한 서점에는 제일 좋은 자리에 음식 책을 배치한다. 음식 책도 카테고리가 세분되고 있다. 주로 조리법을 담은 책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인문과 사회과학으로 음식을 다룬 책의 비중이 커졌다. 역사에서도 음식사, 음식사회사와 문화사 책도 많다. 음식을 통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에서 이 분야의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 몇몇 박사급들이 배출되고, 외국 유학 가서 전공하는 이가 생겨날 만큼 음식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먹는 일은 즐겁지만, 그 이면의 불편한 진상(眞相)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도축장을 취재하거나 에너지 과소비 산업인 축산업과 우리가 늘 불안해하는 GMO 산업의 진실 같은 것 말이다. 이제 그런 책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개는 번역서다. 그동안은 출판시장이 어마어마한 영어권의 일이었다. 가까운 일본도 “이게 책으로 나와서 팔릴까” 싶은 책도 내는 나라다. 몇 년 전인가, <이베리코를 사러>라는 일본 책을 본 적이 있다. 이베리코 돼지는 정말 도토리만 먹여 키우는지 궁금해서 스페인 현지를 들락날락한 ‘오타쿠’ 필자의 작품이다. 한국에선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집요한 음식 책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제는 시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치킨 시장만을 깊게 판 책이 국내 저자에 의해 출간되어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축산업의 바탕을 떠받치는 노동 체험을 기록한 역작도 나왔다.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이다.

 

처음 장부터 충격으로 시작한다. 산란계들-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달걀의 생산자들-을 돌보는(?) 농장에 취직한 필자의 묘사는 상상을 넘어선다. 케이지에 갇힌 닭들은 심하게 말하면 도화지만 한 크기에 네 마리가 ‘때려넣어진’ 상태다. 너무 좁아서 닭이 닭을 깔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일년에 300개씩 알을 낳느라 닭의 뼈가 너무도 약해서 닭 날개를 잡아들기만 해도 뼈가 부러진다. 악취와 닭의 비명으로 가득 찬 현장음이 활자의 갈피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닭에 생기는 이, 그것을 죽이려는 살충제 살포 같은 최근의 이슈들도 이 책에서는 생생한 현장으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2주 만에 농장을 탈출한다. 그의 표현을 요약하면 ‘미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동물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는 또렷한 증거다. ‘식품=가격’의 프레임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모름지기 지금 우리 식품과 요식 산업의 저변은 저런 설명하기 불편한 세상을 ‘깔고 앉아’서 유지되는 듯하다. 너무 힘들고 고단한 이런 노동을 한국인이 환영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외국 노동력에 기댄다. 양계장은 물론이고 축산, 어업, 농업 전반의 일이다. 한국인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돼지 분뇨를 치우다가 질식사한 것도 결국 외국인 노동자였다. 먹거리의 비명이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침묵하는 아우성이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일을 다시 들여다볼 시기다. 이미 늦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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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도 변화를 탄다. 임오군란 이후에 화교들이 들어오고, 호떡집으로 시작한 중국집 역사는 이제 100년을 훌쩍 넘는다. 부침도 심했다. 한때 최고급 요릿집,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누는 요정 같은 중국집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고급 중국식당은 호텔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화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늘 여러 가지 제한으로 영업에 부담을 줬다. 중국집에서만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한 적도 1960년대에 있었다. 한국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중국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 세대는 배달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같은 식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지만. 우선 사라진 메뉴가 많다. 먼저 우동. 달걀을 살짝 풀고 파와 양파, 갑오징어를 넣은 맑은 국물의 우동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우동이라는 메뉴 자체를 안 파는 중국집이 많고 팔더라도 옛날과 달라졌다. 갑오징어값이 너무 비싸 5000, 6000원 하는 우동값에는 불가능한 재료가 되어버렸다.

 

 

기스면도 보기 힘들다. 맑은 닭 국물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와 고운 면이 들어간 국수였다. 짜장면과 짬뽕처럼 볶아서 만드는 요리와 달리 뭐랄까 얌전하고 기품 있는 요리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면을 중국집에서 사먹을 수 없다. 더러 파는 집이 있어서 시켜보았는데 옛날 맛이 아니고 성의도 없다. ‘기스’란 계사(鷄絲)를 화교들이 부르는 말로 가느다랗게 닭고기를 찢어서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중국요리가 한국에선 거의 튀기고 볶는 자극적인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찌고 삶는 요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요리이기도 하다.

 

울면도 이젠 전설이다. 걸쭉한 전분을 풀어 뜨겁게 먹는 이 면은 겨울의 특미였다. 특히 이것을 먹는다는 건 뭔가 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만만하지 않았다. 간이 되어 있을 뿐, 특별히 자극적인 맛이 없는, 그래서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국수. 맵고 달고 시고 짠 면과 싸우면서 장렬히 사라지다시피 한 역사적인 음식이다. ‘뎀푸라’라고 부르는 요리도 이젠 거의 없어졌다. 탕수육과 같은 음식이되, 소스를 붓거나 곁들여 내지 않는 고기 튀김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도 어른들이 좋아했다. 달고 신 소스가 없으므로. 게다가 소스가 안 나오니까 값이 조금 싸고 양도 더 많았다. 그 고기 튀김을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푼 작은 소스접시에 찍어먹으며 고량주를 마시는 것이 중국집 멋을 아는 어른들의 풍류였다. 불과 기름에 탄 맛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고소함의 극치였던 고기 튀김, 아니 뎀푸라. 그리고 또 사라진 것은 홀에다 대고 외치는 중국어 주문이었다.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에서도 주문만큼은 중국어(대개 좀 제멋대로이긴 했다)로 하곤 했다. 그것이 ‘정통’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만드는지도 모르는 배달 짜장면과 짬뽕, 맛없는 서비스 군만두로 중국집을 기억하게 된다. 심지어 배달원도 외주회사의 마크를 달고 있으니. 시절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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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냉면이다. 작년 여름, 냉면에 관한 여러 논쟁이 있었다. 진짜 평양냉면이 무엇이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 치면 ‘맛치(痴)’인가 하는 자문과 엉성한 자답이 있었다. 엉성하다고 표현한 것은, 냉면은 결국 대한민국(남한)의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뜻한다. 속칭 면스플레인(면+익스플레인[explain])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냉면 먹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행위에 대한 힐난이었다. 그러던 중에 올봄 남북 예단 교류를 통해 이른바 붉은 다대기(양념장)까지 넣어서 나오는 북한 냉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겨자와 식초조차 치지 말아야 한다는 냉면 순수파(!)의 코가 납작해져버릴 일이었다.

 

나는 왕년에 1960년대에 나온 북한 요리책을 좀 보았다. 중국에서 입수한 책을 공항으로 가져오다가 이적표현물이라고 압수당한 일도 있다. 요리책이 이적표현물이 된 건 무리도 아니었다. 이렇게 떡하니 적힌 말이 요리책에 수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강 이런 식이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랭면은 민족의 자랑입니다. 인민이 랭면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 모두 랭면을 애호하여 민족의 기개를 드높입시다.”

 

어쨌거나 당시 북한의 냉면 조리법도 다 달랐다. 책마다, 시기마다 다른 조리법이 실렸다. 고기로 닭과 꿩을 쓰거나, 돼지와 소를 쓰거나, 아니면 고기란 고기는 다 들어가는 조리법도 있었다. 면의 배합도 달랐는데, 요즘처럼 메밀이 적지는 않았다. 색깔도 지금보다 희었다.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평양의 냉면도 현지에서 들려오는 말을 옮기자면 옥류관은 대외용이고, 인민은 다른 집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판국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는 치지 말라는 둥, 붉은 양념을 넣는 건 바보짓이라는 둥 하는 남한 인사들의 말이 얼마나 허망한가.

 

 

나는 냉면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전국을 도는 것도 모자라 일본, 중국의 냉면집을 섭렵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다 각기 사정에 따라 냉면을 말아먹을 뿐, 우열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오사카와 모리오카 일대에는 평양식 냉면집이 꽤 많다. 그러나 이들의 면은 거의 밀가루와 전분의 배합이고, 메밀은 아예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바라는 전통의 메밀집이 있는 일본에서는 어설프게 메밀국수를 내는 게 현지 손님의 기호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각기 알아서 면을 뽑고 육수를 내고 만들어내지만 어느 것도 ‘평양냉면이 아니야’ 하는 비난을 할 이유가 없다. 시대와 장소, 사람의 변화에 따라 음식은 변한다. 유럽의 한식당에서 맛이 묘한 김치찌개를 먹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지의 배추와 양념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맛의 소인배요, 옹졸한 국수주의다.

 

참, 북한에서 출판한 요리책에서 여러 가지 냉면 조리법은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었다. ‘맛내기 조금’이 꼭 들어간다는 사실. 맛내기는 MSG, 즉 우리의 미원에 해당하는 북한 말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 부분만큼은 일찌감치 통일이 되었던 것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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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공화국이라는데, 나는 치킨제국 같다. 군림하는 황제와 복종하는 신하들이 있을 뿐이다. 먹는 이들도, 치킨을 튀기는 일선의 장사꾼들도 제국의 신하들 같다. 복종은 길고, 말은 짧다. 치킨값과 재료값은 제국이 정하는 대로다. 경기가 나빠서 치킨이 더 팔린다는 분석이 있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다. 외식비가 없어 배달 치킨으로 만족하는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치킨 튀기는 이들도 쏟아졌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월급 반 토막에 직원 수 반 토막이었다. 나가라, 나가라, 다 나가라였다. 그때 우리는 치킨 맛을 깊게 혀에 들였다. 뭐든 물건 잘 팔아서 부자 되고 떵떵거리는 거야 뭐라 할 게 못 된다. 그러나 강남 요지에 불쑥불쑥 솟은 치킨 회사 사옥을 보면, 늘 신문을 장식하는 갑질 기사가 떠오른다. 왜 유독 치킨 회사 오너들은 갑질로 문제를 일으킬까.

 

 

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갑자기 부자가 되었지만, 위기관리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갑질이야 어떤 회사든 늘 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최근에는 하루에 ○○마리만 튀긴다는 치킨회사 광고가 눈에 자주 띈다. 그 정도만 튀기고, 기름 싹 갈아버리는 깨끗한 치킨이라는 뜻이다. 더도 말고 그 정도만 팔아주면 가맹자도 회사도 먹고살 것이라는 소박한 계산도 있으리라. 그 광고를 본 치킨 장수가 말했다. “하루에 그렇게 ○○마리 파는 것도 쉽지 않은데.” 더 팔지 않겠다는 광고인데, 실은 그것조차 팔 수 없는 치킨 장수가 더 많다는 뜻이다. 치킨은 우리 사회의 어떤 상징이다. 거대해지고 있지만 실속 없이 몰락하는 자영업, 청년실업과 치킨집 창업, 막장 같은 배달업의 위험, 거기에 재료가 되는 닭 생산의 미궁 같은 이야기도 있다. 언젠가 닭 생산 회사를 취재했다. 동물복지 닭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딱 한마디가 지금도 귀에 맴돈다.

 

“저희 회사는 도계장까지 수송해올 때 케이스에 담아 이동합니다. 도계 라인으로 넘길 때도 케이스로 안전하게 처리하지요.”

동물복지 닭이 아닌 경우는?

 

“빨리 작업을 해야 하므로 차량의 닭장에서 도계장 쪽으로 닭을 손으로 잡아 던집니다.”

 

나른하고 더운 오후, 끔찍한 상태로 닭장에 갇혀 이동한 후 잡혀 던져지는 닭의 ‘활공’이 눈에 그려졌다. 그 닭들이 마지막으로 누릴 자유였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치킨에 미쳐 있다. 거기서 거기인, 바삭한 맛과 매운 양념맛을 고르고 어쩌면 파와 마늘이 들어간 별미(?), 두 마리 제공의 마릿수 유혹에 빠져 브랜드를 고르기도 한다. 앞서 닭 전문가에게 우문 하나를 던졌다. 왜 세 마리 치킨은 히트치지 못할까요.

 

“그럼 치킨집 사장님들이 죽습니다. 한 마리도 힘든데 세 마리를 튀겨야 하잖아요.”

그래도, 이 난리통 같은 경쟁에 주문만 있다면야 기름 연기를 뒤집어쓰면서 까짓 세 마리, 아니 네 마리인들 튀기지 못할쏘냐, 싶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치킨집 사장님들 굶을까 봐 닭을 한 마리라도 더 시키고 앉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힘들어 닭 한 마리로 위안받고 있는 것인가.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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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예술단이 귀환했다.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9년’은 참으로 길었다. 그 시간을 뛰어넘어 걸그룹 멤버들이 냉면 먹는 장면의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그것은 달라진 세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유통되었다. 한때 남북관계 호시절에는 평양에서 ‘진짜’ 평양냉면을 먹어본 인사들이 많았다. 맛에 대한 평들도 다양했다. 그 도시의 냉면이 더 이상 화제도 아니었다. 정치나 사업 하는 이들 중에서 옥류관 냉면 한번 못 먹어본 사람은 끝발 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평양 왕래객이 많았다. 평양에 가지 않더라도 대안이 많았다. 금강산 관광 가서도 평양냉면을 사먹을 수 있었다. 북한의 설명대로라면 ‘평양과 똑같은 냉면’을 팔았으니까.

 

 

방북 예술단은 많은 화제와 후일담을 생산하는 중이다. 단연 대중의 관심은 냉면 시식기다. 면 색깔이 검은 걸 보니 감자전분을 많이 섞거나 메밀 겉껍질을 넣은 막국수 스타일이 아니냐는 관전평(?)도 나왔다. 평양냉면을 두고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남한 냉면보다 평양냉면이 진짜라는 걸 주장한다고 하여 냉면 종북주의자니 하는 말도 나왔다. 예전 남북 왕래 시기에는 없던 말들이다. 남북이 냉랭하게 지내는 동안 오히려 남쪽에서는 평양식 냉면을 둘러싼 흥미로운 그림이 많이 생겨났다. ‘냉부심’(냉면에 대한 고집스러운 자부심)이며, ‘식초, 겨자 논쟁’도 있었다. 고춧가루를 뿌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토론도 벌어졌다. 각자 다른 해석이 난무했다. 예전에 고기에는 누린내가 났으니 식초를 뿌렸을 뿐, 요즘 고기는 질이 좋아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어디까지나 추정인 이야기다. 옛 민간의 냉면 취식에 관한 권위 있는 조사가 있을 리도 만무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남한의 냉면광들은 신주처럼 모시는 굵직한 강령을 어느 정도 정리한 듯하다. 식초, 겨자는 안 치는 게 세련된 자세이고, 메밀 함량이 높아서 향기로운 면을 취할 것이며, 가위는 대지 않는 것이 정통이라는 것 따위다. 정작 북한에서는 옥류관 냉면의 메밀 배합이나 육수의 비밀 같은 건 입밖에도 내지 않고 있으니, 이 또한 허무한 반쪽짜리 냉부심이 아닌가 모르겠다. 사실, 원래 냉면이라는 것도 김치처럼 가게며 집안마다 다른 조리법이 있었을 텐데 하나의 정통을 찾으려는 태도가 무리일 뿐이다. 냉면 조리법을 적어 놓은 북한의 책을 보면 하나같이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수령님은 랭면은 평양의 자랑이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그래 놓고는 책마다 조리법이 다 다르다. 육수만 해도 소고기만 쓰거나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와 돼지에 닭고기까지 넣는가 하면, 꿩고기를 더하는 설명도 나온다. 동치미나 김칫국도 넣는가 하면 빠져 있기도 하다. 냉면은 다 자기 색깔이 있다. 하다못해 고깃집에서 내는 냉면은 냉면이 아니랴. 그러니 냉면 종북주의도, 오히려 남한 냉면이 더 맛있다는 냉면 남한독자노선(?)도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기야 중국의 유명한 북한식당에서 팔아온 냉면이 실은 남한 사람의 입맛을 겨냥해서 개량한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던 때도 있었으니.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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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먹는 동네의 유행은 ‘노포’다. 오래된 가게를 뜻하는 이 한자어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명색이 없다. 가게가 오래 버틸 역사적 조건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무렵 생긴 가게들이 살아남아 있어야 노포 소리를 들을 텐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아 있는 것이 손꼽을 정도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일본은 한반도의 물자수탈을 가속화했고, 팔 음식이 없으니 식당이 배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자 그대로 고사(枯死)였다. 해방 후 물자부족시대에도 식당이 생겨났지만, 역시 6·25전쟁으로 초토화됐다. 중국도 노포가 적은 나라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쳤고, 문화대혁명이 오래된 가게들을 무너뜨렸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일본은 노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일찌감치 식당 문화가 발달한 구대륙인 유럽 못지않다. 일본도 미군의 대공습으로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고, 노포 역시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복구하여 역사를 이어가는 집이 많다. 물론 일본 노포의 대세는 패전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한국에 노포가 적은 건 역사적 이유보다도 사회적 시선 때문인 듯하다. 노포 주인들을 인터뷰하면 먹는장사, 술장사를 깔보는 문화가 있어서 몇 번이고 집어치우려 했다고 술회한다. 피맛골에 그 많던 가게들이 전형적인 ‘노포급’인데, 피맛골이 헐리고 난 후 다른 곳에서라도 업력을 이어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분들을 만나서 말씀을 들었다. “할 만큼 했고, 가게를 옮겨도 언제 또 헐고 부술지 몰라 불안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먹는장사에 대한 곤란한 체험도 컸다고 말한다. 술주정이나 관의 횡포 같은 것들이다.

 

진짜 노포는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최근에는 다시 노포 마케팅이 뜬다. 근거도 없이 몇 대(代)니 하는 홍보를 하는 식당도 생겼다. 갑자기 생긴 식당이 아예 70년, 80년 역사라고 주장하는 집도 봤다. 진짜 노포들도 역사 기록이 별로 없어서 구전 기록에 의존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 같다. 어차피 입증 책임을 묻는 문화도 없으니, 지어낸 오래된 집이라 한들 누가 비난하겠는가 하는 심보다. “우리 할아버지대에 저쪽 지방에서 60년 전부터 밥집을 했었소” 하면 그게 그런 줄 알고 마는 일이 된 셈이다. 남북 분단을 이용하여 몇 대 노포를 대충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집도 있다.

 

이북에서 식당을 했다고 하니, 확인이 애매하고 전쟁과 피란통에 증거 사진 한 장 없는 걸 따져 묻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좋은 징조이기는 하다. 누가 뭐라 하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역사를 쌓아서 노포가 된 식당이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 노포라고 다 존중받을 수준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노포라는 것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집도 많고, 당대에 와서 게으른 후손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 집도 있다. 얼마 전에 들른 한 노포 식당에서 별꼴을 보았다. 내 일행이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은 젊은 주인이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눈은 스마트폰에 열중하면서. 쓸쓸한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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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혼밥’은 사회적 자폐라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자폐자다. 어려서부터 혼밥을 좋아했다. 밥집에 혼자 앉아 기다리고 먹는 일은 효율적인 즐거움을 준다. 배도 채우고, 맛을 음미하는 기쁨을 제대로 즐겨볼 수 있다. 동행이 없으니 온전히 밥에 집중할 수 있다. 나물에 들기름을 쳤는지 참기름을 발랐는지 쉬이 안다. 혼자서 밥집 탁자에 앉아 기다리는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가 요리사가 된 건, 아마도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밥과 사람의 교통을 단순하게 들여다보는 훈련 같은 것 말이다. 주문을 넣고 주방에서 호응하고 일관된 동작으로 내 앞에 밥이 놓이는 과정에 내 마음을 섞는다. 엇, 밥 푸는 저 아줌마의 손 좀 봐. 번개 같군. 국밥 토렴은 정말 예술이야. 생활의 달인에 나오실 만하겠는걸. 점심시간이 끝나서 한가할 무렵,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 재방송을 틀어주고, 아줌마는 내게 추가 반찬을 가져다주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한다.    

 

 

실은, 혼밥의 조건이 있다. 일종의 심리적 불문율 같은 걸 지키게 된다. 아마도 개념 있는(?) 혼밥족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일 텐데, 오후 서너 시에는 밥집에 가지 않는다는 거다. 간혹 이런 시간에 밥집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여서 당황하게 될 때가 있다. 적막한 식당에 흐릿한 형광등만 켜져 있는데, 인기척을 듣고 낮은 탁자 뒤에 몸을 눕혔던 아줌마가 고단하게 일어나는 걸 보게 되는 일. 불편해진다. 그들의 휴식을 내가 빼앗은 것은 아닐까. 고단한 낮잠을 깨웠으니 밥이 모래알같이 서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도 혼밥 하는 이들이 그 시간이면, 편의점에 가고 마는 것은 아닐지. 장사가 잘 되어서 쉬는 시간도 없이 늘 바삐 돌아가는 밥집은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이런 집에서는 식당 구석구석을 관찰하게 된다. 일하는 이들의 차림새며,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 심지어 프라이팬에 생선을 지지는 동작까지 보곤 한다. 한 끼 6000원 하는 밥집에서 돈 드는 주방복이며 유니폼을 지급하는 건 언감생심일 것이고, 그 틈을 주류회사가 메워주고 있구나. 평생을 식당에서 일하며 위생복이라고는 ‘참이슬’과 ‘카스’표 앞치마밖에 안 입었을 아줌마들의 곱슬 파마머리가 마음을 흔든다.  

    

그네들은 부엌에서 지지고 볶지 않을 때도 무엇인가 끊임없이 일한다. 대체로 빈 손님상을 작업대 삼아 멸치 똥을 떼어내고, 쪽파를 손질한다. 부추를 다듬고 열무의 흙을 닦아낸다. 6000원, 7000원 하는 낮은 밥값을 지탱하는 건 순전히 그들의 쉼 없는 노동이다. 언젠가 유명한 밥집의 사장 아줌마를 인터뷰했다. 그는 질문에 답하면서도 손으로는 연신 삼겹살에 오르는 마늘을 저미고 있었다. 그 아줌마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반쯤 감긴 눈은 그이가 쉬어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잠과 각성의 중간 정도 되는, 일종의 반수면 상태 같은 눈. 그 아줌마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일이 사는 거고, 사는 기 일이지 뭐. 언제 쉬냐고요? 명절엔 쉬지요.”

그이가 억지로 웃었지만, 눈은 여전히 반쯤 감긴 상태였다. 밥집에서 나는 늘 슬프고 분하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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