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냉면이다. 작년 여름, 냉면에 관한 여러 논쟁이 있었다. 진짜 평양냉면이 무엇이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 치면 ‘맛치(痴)’인가 하는 자문과 엉성한 자답이 있었다. 엉성하다고 표현한 것은, 냉면은 결국 대한민국(남한)의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뜻한다. 속칭 면스플레인(면+익스플레인[explain])이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냉면 먹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행위에 대한 힐난이었다. 그러던 중에 올봄 남북 예단 교류를 통해 이른바 붉은 다대기(양념장)까지 넣어서 나오는 북한 냉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겨자와 식초조차 치지 말아야 한다는 냉면 순수파(!)의 코가 납작해져버릴 일이었다.

 

나는 왕년에 1960년대에 나온 북한 요리책을 좀 보았다. 중국에서 입수한 책을 공항으로 가져오다가 이적표현물이라고 압수당한 일도 있다. 요리책이 이적표현물이 된 건 무리도 아니었다. 이렇게 떡하니 적힌 말이 요리책에 수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강 이런 식이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랭면은 민족의 자랑입니다. 인민이 랭면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 모두 랭면을 애호하여 민족의 기개를 드높입시다.”

 

어쨌거나 당시 북한의 냉면 조리법도 다 달랐다. 책마다, 시기마다 다른 조리법이 실렸다. 고기로 닭과 꿩을 쓰거나, 돼지와 소를 쓰거나, 아니면 고기란 고기는 다 들어가는 조리법도 있었다. 면의 배합도 달랐는데, 요즘처럼 메밀이 적지는 않았다. 색깔도 지금보다 희었다.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평양의 냉면도 현지에서 들려오는 말을 옮기자면 옥류관은 대외용이고, 인민은 다른 집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판국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는 치지 말라는 둥, 붉은 양념을 넣는 건 바보짓이라는 둥 하는 남한 인사들의 말이 얼마나 허망한가.

 

 

나는 냉면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전국을 도는 것도 모자라 일본, 중국의 냉면집을 섭렵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다 각기 사정에 따라 냉면을 말아먹을 뿐, 우열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오사카와 모리오카 일대에는 평양식 냉면집이 꽤 많다. 그러나 이들의 면은 거의 밀가루와 전분의 배합이고, 메밀은 아예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바라는 전통의 메밀집이 있는 일본에서는 어설프게 메밀국수를 내는 게 현지 손님의 기호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각기 알아서 면을 뽑고 육수를 내고 만들어내지만 어느 것도 ‘평양냉면이 아니야’ 하는 비난을 할 이유가 없다. 시대와 장소, 사람의 변화에 따라 음식은 변한다. 유럽의 한식당에서 맛이 묘한 김치찌개를 먹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지의 배추와 양념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맛의 소인배요, 옹졸한 국수주의다.

 

참, 북한에서 출판한 요리책에서 여러 가지 냉면 조리법은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었다. ‘맛내기 조금’이 꼭 들어간다는 사실. 맛내기는 MSG, 즉 우리의 미원에 해당하는 북한 말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 부분만큼은 일찌감치 통일이 되었던 것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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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