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간절함이 나를 울렸군요. 그대는 햅~격!” tvN의 퇴마판타지 드라마 <화유기>에서 배우 차승원이 연기하는 요괴 우마왕은 인간계에서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의 심사위원으로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내를 넘어 아시아 대중문화시장을 주무르는 거물로 묘사된다. 무대 위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오디션 참가자에게 그가 화려한 쇼맨십과 함께 “햅~격!”을 외치는 순간은 매번 <슈퍼스타> 프로그램 최고의 분당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도 뜨겁다.

 

추락사고가 발생한 <화유기> 세트장. 무너졌던 천장이 보수된 흔적이 흰색 선으로 보인다. 언론노조 제공

 

흥미로운 것은 첫 장면에서 그에게 간절함의 눈물을 체험케 한 참가자의 사연이다. 사실 그녀의 정체는 오디션을 위해 체중을 무리하게 감량하다가 사망한 가수지망생의 원혼이었다. 한을 풀기 위해 다른 참가자에게 잠시 들러붙었던 원혼은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합격 판정을 듣고 비로소 이승을 떠난다.

 

<화유기>는 고대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특별한 소명을 타고난 삼장(오연서)과 그를 수호하는 악동 요괴 손오공(이승기), 그리고 신선이 되고자 수행하는 요괴 우마왕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유독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떠도는 원혼이나 악귀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첫 회 오디션 참가자 원혼의 사연은 비록 사소하게 스쳐지나갔지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비슷한 에피소드로 변주되고 있다. 가령 루시퍼기획사의 대표 스타 중 한 명인 톱모델 앨리스(윤보라)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가 ‘식충 요괴’의 먹잇감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기뻐하지만 서서히 요괴에게 에너지를 흡수당하며 거식증으로 말라간다. 요괴는 모든 것이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라 주장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욕망을 배태한 것은 조금의 체지방도 허용하지 않는 연예산업구조다.

 

좀비 소녀 진부자(이세영)의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가 좀비로 되살아난 진부자의 진짜 정체는 유명 걸그룹 육성프로젝트에서 아깝게 탈락한 연습생이다. 기억을 모두 잃고 홈쇼핑 중독 좀비가 된 소녀의 모습 위로는 생전에 욕망을 억압한 채 연습에만 매달렸던 스트레스가 겹쳐진다. 앨리스가 진부자를 연습생으로 알고 함부로 대하는 장면에서도 그녀가 생전에 겪었던 처우가 암시된다. 루시퍼기획의 메인 춤연습실은 ‘아티스트’가 아닌 연습생들에게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그 너무도 뚜렷한 간극 사이에서 진부자처럼 수많은 ‘절박한’ 스타 지망생들이 아무도 모르게 눈물과 땀을 흘리다가 곧 잊혀진다. 걸그룹 연습생 실종 사건이 뉴스로까지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진부자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엔터업계의 원혼 이야기가 메인 플롯의 곁가지인데도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드라마 바깥의 현실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탈락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그룹 연습생, 혹독한 경쟁을 뚫고 데뷔에 성공한 뒤에도 거식증에 시달리다가 활동을 중단한 걸그룹 멤버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반짝하고 사라진 참가자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화유기>가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tvN의 모회사인 CJ E&M의 대표적 콘텐츠인 <슈퍼스타K>와 <프로듀스101>을 코믹하게 패러디하는 데서도 나타나듯이 엔터업계 원혼 에피소드는 대부분 흥미 위주 묘사에 그친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곳곳에 원혼들의 비극적 사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부조리한 시스템이 이미 일상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화유기>야말로 그 부조리한 엔터업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데 있다. <화유기>는 최근 열악한 제작 시스템 문제로 큰 논란을 빚었다. 촉박한 제작 일정을 소화하지 못해 대형 방송사고를 내는가 하면, 부실한 세트장에서 새벽까지 작업하던 스태프가 천장 일부가 허물어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사태를 두고 쏟아진 논평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와 본인 SNS에 드라마 제작 실태를 고발한 배우 허정도의 말이다. 이한솔씨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가 죽음을 택한 이 PD가 생전에 괴로워하던 반인권적 제작 환경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고 비판했다. 허정도 역시 3년 전 한 드라마 세트장에서 스태프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며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국내 엔터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피와 땀과 눈물 위에 외벽만 화려한 부실 건물을 세우고 있었다. <화유기> 사태가 충격적인 것은 단지 과거에 비해 개선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제작 지원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노동조건은 한층 혹독해졌다. 드라마 트렌드가 복합장르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화면을 필요로 하고, 고화질 영상기술 발전으로 디테일에 신경 써야 하는 내적 조건, 소위 ‘쪼개기 발주’로 불리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의 외적 현실 등이 대표적이다. <화유기> 사태는 이제 엔터업계가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경고의 마지노선과 같다. 천장이 무너졌다. 다음엔 무엇이 무너질 것인가.

 

<김선영 TV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