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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에서 진급에 눈이 먼 박 중위(이준혁 분)는 원작보다 평면적인 악역으로 각색됐다. <신과 함께>의 한 장면.

여름에 잠잠했던 영화관이 겨울에 들썩인다. <강철비>로 시작해 <신과 함께>를 거쳐 <1987>까지 매주 새롭게 개봉하는 한국 영화마다 화제다. 설과 추석으로 양분되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개봉 시기가 이제는 여름, 겨울이라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졌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는 일종의 서사적 관습이 있다.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거의 다 판타지인데, 대개 극명한 선과 악의 대립을 그린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도 서사적 관습이 있다. 선과 악의 뚜렷한 구분과 신파가 그것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진급에 눈이 먼 박 중위(이준혁 분)는 원작보다 평면적인 악역으로 각색됐다. <신과 함께>의 한 장면.

 

그런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선과 악은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가상의 판타지 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역사 위에 세운 사실적 허구이기 때문이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장준환 감독의 <1987> 등이 그렇다. 실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매우 민감했던 사안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매우 가까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심지어 아직까지 명확한 인과관계나 진상조차 파악되지 못한 일들이기에 그것을 다루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규명되지 못한 사건일수록 인과응보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인과응보를 위해 선과 악은 더욱 단단하게 분리되고 견고하게 대립한다. <택시운전사>의 사복조장(최귀화)은 악이고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은 선이다. 주인공 김사복(송강호)은 두말할 것 없이 선이다. <택시운전사>는 이렇듯 선한 집단과 악한 집단으로 양분되어 있다. 선하면서 악하거나, 악하면서도 선한 구석을 가진 그런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선과 악이 완강히 나뉘고 이면을 가진 인물이나 복합적인 인물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1987>의 세계도 유사하다. 박처장(김윤석) 무리는 악이고 당직 검사, 신문사 기자 등은 선의 집단에 속해있다. 그래도 어떤 점에서 <1987>은 <택시운전사>의 세계보다는 훨씬 더 성숙한데, 왜냐면 특정한 영웅 하나의 활약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김사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적을 다루지만 <1987>은 여러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드디어 만들어진 변화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런 식의 선악의 이분법은 사실 매우 유아적인 소망 충족에 가깝다. 말하자면 콩쥐가 상을 받고, 팥쥐가 벌을 받듯이 한국적 신파의 중심에 인과응보로 고착된 선악의 이분법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기대와 달리 악은 평범하다. 좀 더 인간학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쉽게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악한 면과 선한 면이 있다. 악하기만 한 악당이나 선하기만 한 영웅은 안타깝게도 현실엔 없다. 다만 이야기, 영화에서만 등장할 뿐이다. 인간이 가진 입체성을 보는 데에는 여러 면에서 거리가 필요하다. 심리적 거리와 판단의 거리, 두 개 모두가 필요한데, 가령 영화 <밀정>에서 반간(이중스파이) 주인공을 다룰 수 있었던 것도 이 거리 덕분이다. 그래도 적어도 일제강점기 친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로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 1980년대의 일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직 차갑고, 냉정하게 말하기에는 너무 가깝고 객관적으로 말하기엔 객관이 될 명징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규명조차 되지 않은 일이기에 영화는 허구를 통해서라도 정의를 요구한다. 지금 우리는 그 30년 전의 역사를 일종의 한국적 판타지의 방식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광주, 6월항쟁 등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과 모순을 말하기엔 그래서 세상살이의 복잡함을 담아내기엔 아직 제대로 역사적 호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정한 권력은 악이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힘들은 선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단순한 선악 이분법이 한국 대중 영화 전반에 퍼져있는 일종의 흥행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도시>에서 장첸(윤계상)·위성락(진선규)은 악, 마석도(마동석)는 선이고, <청년경찰>에서 두 경찰대생은 선이고 대림동의 조선족들은 모두 악이다. 범죄자는 모두 악이다. 물론 범죄는 그르다. 하지만 범죄와 선악의 개념은 구분되어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오래된 격언은 이 구분 위에서 성립된다.

 

문제적인 것은 지금 거의 모든 한국 영화들이 선명한 선악 대립 구도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처럼 강력한 선악의 이분법 위에서 신파가 만개한다. <신과 함께> 원작은 선과 악의 대립이 좀 희미한데, 그래서 군 생활 중 억울하게 죽게 된 병사이야기를 자홍의 동생 수홍(김동욱) 이야기로 삽입했다. 이 과정에서 박중위(이준혁)는 진급에 눈이 먼 평면적인 악의 자리에 선다.

 

이 선악의 대립은 마침내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용서의 이름으로 용해된다.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그래서 영화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모순을 단순명쾌한 선과 악의 구도로 잘라 낸다. 우리는 모순투성이 세상을 너무 잘 알기에 선명한 권선징악의 세계를 구매한다. 하지만 모순이 생각의 힘을 기른다. 영화처럼 보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불완전하다. 신파가 사소한 해결감은 주지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 블록버스터 외에 다양한 영화들이 꼭 해내야 하는 일들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