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도 변화를 탄다. 임오군란 이후에 화교들이 들어오고, 호떡집으로 시작한 중국집 역사는 이제 100년을 훌쩍 넘는다. 부침도 심했다. 한때 최고급 요릿집,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누는 요정 같은 중국집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고급 중국식당은 호텔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화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늘 여러 가지 제한으로 영업에 부담을 줬다. 중국집에서만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한 적도 1960년대에 있었다. 한국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중국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 세대는 배달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같은 식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지만. 우선 사라진 메뉴가 많다. 먼저 우동. 달걀을 살짝 풀고 파와 양파, 갑오징어를 넣은 맑은 국물의 우동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우동이라는 메뉴 자체를 안 파는 중국집이 많고 팔더라도 옛날과 달라졌다. 갑오징어값이 너무 비싸 5000, 6000원 하는 우동값에는 불가능한 재료가 되어버렸다.

 

 

기스면도 보기 힘들다. 맑은 닭 국물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와 고운 면이 들어간 국수였다. 짜장면과 짬뽕처럼 볶아서 만드는 요리와 달리 뭐랄까 얌전하고 기품 있는 요리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면을 중국집에서 사먹을 수 없다. 더러 파는 집이 있어서 시켜보았는데 옛날 맛이 아니고 성의도 없다. ‘기스’란 계사(鷄絲)를 화교들이 부르는 말로 가느다랗게 닭고기를 찢어서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중국요리가 한국에선 거의 튀기고 볶는 자극적인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찌고 삶는 요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요리이기도 하다.

 

울면도 이젠 전설이다. 걸쭉한 전분을 풀어 뜨겁게 먹는 이 면은 겨울의 특미였다. 특히 이것을 먹는다는 건 뭔가 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만만하지 않았다. 간이 되어 있을 뿐, 특별히 자극적인 맛이 없는, 그래서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국수. 맵고 달고 시고 짠 면과 싸우면서 장렬히 사라지다시피 한 역사적인 음식이다. ‘뎀푸라’라고 부르는 요리도 이젠 거의 없어졌다. 탕수육과 같은 음식이되, 소스를 붓거나 곁들여 내지 않는 고기 튀김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도 어른들이 좋아했다. 달고 신 소스가 없으므로. 게다가 소스가 안 나오니까 값이 조금 싸고 양도 더 많았다. 그 고기 튀김을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푼 작은 소스접시에 찍어먹으며 고량주를 마시는 것이 중국집 멋을 아는 어른들의 풍류였다. 불과 기름에 탄 맛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고소함의 극치였던 고기 튀김, 아니 뎀푸라. 그리고 또 사라진 것은 홀에다 대고 외치는 중국어 주문이었다.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에서도 주문만큼은 중국어(대개 좀 제멋대로이긴 했다)로 하곤 했다. 그것이 ‘정통’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만드는지도 모르는 배달 짜장면과 짬뽕, 맛없는 서비스 군만두로 중국집을 기억하게 된다. 심지어 배달원도 외주회사의 마크를 달고 있으니. 시절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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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