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영화 <올 더 머니>는 유괴사건을 다루고 있다. 유괴하면, 왠지 어린아이와 연루된 사건만 떠오르지만 한자의 뜻답게, 유괴(誘拐)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잡아 억류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올 더 머니>가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폴 게티의 손자 유괴사건을 다루는데, 그 손자가 18살의 남자아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개 유괴사건은 돈 때문에 발생한다. 게티 3세가 유괴당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부호의 손자이니, 몸값 1700만달러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돈을 요구한 이탈리아 시골의 갱단보다 그 돈을 주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게티 할아버지가 더 잔혹하게 여겨진다. 손주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돈보다는 덜 사랑하는 게 계속 입증되니 말이다.

 

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2007)의 한 장면으로 아이 엄마 오지선(김남주 분·오른쪽)이 형사들과 함께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있다.

 

영화사에는 유괴사건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있다.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의 <밀양>은 아이의 유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고,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의 맨 앞에 놓을 수 있을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에서 두 번이나 아동 유괴사건을 다뤘다. 이창동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모두 허구이지만, 공교롭게도 많은 아동 유괴 영화들은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박진표 감독의 <그놈 목소리>는 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 역시 1978년 발생했던 정효주 유괴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실종 사건까지 범주를 넓히면, <아이들>이나 <체인질링>처럼 많은 작품들이 잃어버린 아이들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유괴’나 ‘실종’은 어린 시절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로 환기되는 단어이다. 아직 세상을 채 이해하지 못했던 유년기에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던 소년·소녀들의 이름, 텔레비전 화면 한쪽에 자리 잡았던 그 아이들의 얼굴 사진은 어쩌면 나에게도 닥칠 위험과도 같은 두려움을 전달해 주었다. 유괴, 실종, 어쩌면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눈물, 그런 이미지들이 파편처럼 흩어진 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괴와 관련된 뉴스를 거의 볼 수 없다. 공개 수배로 전환하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래서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유괴사건 뉴스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다행이다. 하지만 다행으로 여겨도 될 만큼, 과연 세상이 정말 더 안전해진 것일까? 유괴라는 말은 어쩐지 고색창연한 단어가 되어 버렸지만 사실 요즘 뉴스에는 아동과 관련되어 더 끔찍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학대, 폭력, 폭행과 같은 그런 단어들 말이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뉴스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사건들, 이웃집 고교생 언니가 아이를 데려가 목숨을 앗는다거나 의붓어머니가 아이들을 굶기고, 때로는 친부모가 아이를 폭행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사건들이 사회면 뉴스로 등장한 것이다.

 

돈 때문에 다른 가족의 소중한 보물인 아이를 훔치는 유괴범은 공분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제 그 공분은 이웃집 소녀를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고, 자기 자식을 학대하고 폭력을 가한 사람들에게로 옮겨 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사라진 게 아니라 그 모습이 달라졌을 뿐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훨씬 더 나빠진 것일까? 세상이 훨씬 안전해져서 아동 납치 및 유괴 뉴스가 사라진 게 아니듯이 어쩌면 부모들이 훨씬 더 이기적이며 폭력적으로 변해서 아동 학대 뉴스가 많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산재해 있는 성폭력 문제가 이제야 조금씩 뉴스가 되고, 사회적 담론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상처임에 분명하다.

 

많은 민담과 동화에는 많은 계모와 그들이 저지른 학대가 등장한다. 할머니댁에 가는 소녀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는 늑대는 지금, 여기에도 있다. <장화, 홍련>에서 두 자매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계모 역시 지금, 여기에 있다. 많은 동화 속 늑대는 진짜 늑대가 아니라 아이를 노리는 범죄자이며 의붓딸을 괴롭히는 어머니는 일종의 기호이자 상징이다. 그 이야기들 속 어머니는 힘없고, 연약할 뿐 아니라 어딘가 호소하거나 의지할 방법도 힘도 없었던 어린아이들을 괴롭혔던, 그런 폭력의 대명사인 셈이다.
 
인천 여아 유괴 살해 사건이나 고준희양 학대 치사 사건을 보면, 아동 유괴사건은 오히려 고전적인 범죄 사건처럼 보인다. 적어도, 영화에서 다루는 아동 유괴사건의 범죄자들은 ‘돈’이라는 매우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돈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되기도 했지만, 겨우 돈을 노렸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1920년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돈을 노리고 남편이나 애인을 배신하는 여자는 경악의 대상이었다. 팜므 파탈이라고 불렸던 그녀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패륜아의 상징이었다. 돈만 숭배하는 인간은 그렇게 타락한 세상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더러운 돈으로도 구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차라리 돈 때문이었다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유괴와 몸값이라는 뉴스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한 학대와 폭력 때문에, 유괴도 추억이 된 지금, 아이로 살아가기에 세상은 언제나 지독하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