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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들어오면 문화도 등에 업고 온다. 가장 큰 게 음식이다. 임오군란을 수습하는 와중에 군대를 파견한 청나라와 불평등한 무역협정을 맺은 게 1882년의 일이다. 당연히 중국음식도 들어왔다. 짜장면 전래설도 여기서 출발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달지 않은 호떡이었을 것이다. 밀가루떡을 굽고 파와 춘장을 넣어서 먹었던. 이윽고 짜장면과 따루면(중국식 우동) 같은 게 들어왔다. 이후 수많은 외국 문화가 한국에 건너오면서 음식문화를 퍼뜨리는데, 흥미롭게도 다수가 국수다. 우리 민족이 국수를 정말 좋아하긴 했던 것 같다. 돈 많은 양반들이 ‘낮것상’이라고 하여 점심에 국수를 차려먹는 일이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국수는 맛도 좋고 별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늘 선호도 일등이었다. 메밀로 내린 국수를 기억하는 관서지방 사람들이 남으로 이주하면서 남한 전체에 냉면 유행을 만들어 놓았다. 미군이 퍼뜨린 건 스파게티였다. 커다란 미트볼을 넣는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미국화된 스파게티였다. 여기에 일본 경양식집에서 파는 스파게티(나폴레탄)를 모방했다. 나폴레탄은 미국 군대가 일본 열도에 진주하고 군정을 실시하면서 생겨난 형식이다. 케첩을 쓴 새콤달콤한 스파게티다. 그 밖에도 오븐에 구운 치즈 스파게티니 하는 것들에 침을 흘렸다. 1960~1970년대에 경양식집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도대체 이 시큼하고 질긴 이상한 국수를 왜 먹나 싶었다. 지금 국내에서는 급식용의 유사(?) 스파게티 말고는 거의 외국 수입 제품을 쓰는데, 자료를 보면 1960~1970년대에 국내에서 스파게티 생산이 꽤 활발해서 광고도 하고 그랬다. 역시 국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들이었다.

 

짜장면이 배달음식이 되고, 스파게티가 고급화의 길을 달릴 때 등장한 게 월남국수였다. 호주와 미국 서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소고기 국물의 쌀국수가 강남을 중심으로 번져나갔다. 초기에 이런 가게를 연 집들은 돈도 많이 벌었다. 마치 짜장면을 처음 판 화교들과 스파게티를 보급한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쌀국수는 가볍게 싼값에 먹는 국수라는 본디 의미와 달리 강남에서 고급음식처럼 팔렸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젊은 서버들이 경쾌하게 서비스하는 집이었다. 쌀국수 문화는 지금 이른바 ‘투 트랙’으로 달리고 있다. 프랜차이즈를 통한 기본 공급 루트에 베트남 본토 사람들이 가세했다. 주로 결혼 이주한 베트남 여성들이 본토의 손맛으로 작은 가게를 곳곳에 열고 있다. 한때 이런 국수를 먹으러(진짜 베트남 국수라고 불렀다) 경기 안산시까지 갔는데, 요즘은 서울 시내에서도 종종 보인다. 동남아 특유의 향에 호오가 엇갈리는데, 점차 ‘호’가 늘고 있다. 원래 이상한 풍취도 익숙해지면 더 강렬한 애착을 받게 마련이다. 박항서 축구의 성공으로 베트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이 매력적인 쌀국수도 더 퍼져나갈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외래 국수가 그랬듯이, 군대와 학교 급식에도 등장할 것이다. “와, 오늘 점심은 베트남 국수래!” 국수만 맛있다 하지 말고,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친구들도 좋은 감정으로 잘 사귀었으면 좋겠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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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