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했다. 한국이 첫 개봉이다. 원산지인 미국보다 하루 더 빨리 한국 시장에 풀린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한국을 첫 개봉지로 선택한 지는 꽤 되었다. <트랜스포머> 두 번째 편이 아시아 정킷을 서울에서 하면서 시작된 변화는 어느덧 한국 최초 개봉의 기시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중요시되는 셈이다. 수적으로 보면 고작 1000만 안팎이지만 한국 시장이 중요시되는 이유에는 여러 맥락이 있다. 아마도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관객들의 적극성이 아닐까 싶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한 25일(수요일) 하루 내내 검색어 상위에 이 영화 제목이 머물렀다. 민감했던 정치적 뉴스나 얼마 남지 않은 남북대화 이슈도 제치고 상위에 랭크된 것이다. 말하자면, 뉴스에서는 종일 선거나 북한 이야기를 하지만 SNS에서는 <어벤져스> 이야기를 한다. 말 그대로 4월25일의 가장 뜨거운 뉴스였던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메인포스터.

 

한국 관객들의 이러한 적극성과 애정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한국 시장을 매우 중요한 홍보의 플랫폼으로 대접해 왔다. 한동안 속을 썩였던 불법 복제나 스크린 촬영 및 유출 문제도 어느덧 선진화된 관객들의 태도 덕분에 사라졌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듯싶다. 똑똑하고 호감을 가지며 적극 영화를 홍보하는, 말 그대로 미국의 거대 영화 시장이 바라는 이상적 관객이 바로 한국 관객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건 미국 시장의 입장이고, 한국에서도 <어벤져스>는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벤져스>를 좀 더 빨리 보고, 좀 더 상세하게 그 세계의 디테일을 알고, 암시적인 쿠키 영상의 단서를 찾아내는 게 말하자면 힙한 관객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반응이 전혀 다른 DC 코믹스 원작 영화들에 대한 한국 관객의 태도를 비교해 봐도 그렇다. <어벤져스>에 대한 한국 관객의 충성도가 훨씬 높고, 흥행도 더 잘된다. 영화 관람 후에도 마블에 비해 DC 작품들에 대해선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그 실망감의 한가운데에는 무거움이 있다. 반대로, <어벤져스>에 대한 한국의 호감에는 가벼움과 농담의 세계에 대한 호감이 있다. 어떤 점에서 마블의 가장 대표적인 히어로라고 한다면 스파이더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말하자면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 출신의 히어로이다. 물론 마블, <어벤져스> 하면 아이언맨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아이언맨 역시 특유의 유머 감각과 섹시함으로 먼저 환기된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이 무겁고, 고독하고, 어두운 영웅으로 떠오르는 데 비해 같은 갑부이지만 아이언맨은 쿨하고 가볍다. 그리고 이런 아이언맨의 세계는 바로 마블의 코드와 상통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없는 것 중 하나가 ‘유머’라는 사실이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김지운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들 <조용한 가족>이나 <플란다스의 개>와 같은 작품을 보면, 독특한 유머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슬랩스틱이나 뻔한 휴머니즘으로 웃기고 울리지 않더라도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에서 꽤나 지적이고, 세련된 유머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천만 영화들이 일 년에 한두 편씩 꼬박꼬박 나오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그 웃음기가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간혹 코믹 영화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의외의 수확으로 정리되곤 한다. 유해진이 주연을 맡았던 <럭키>나 마동석의 러블리한 연기가 화제가 되었던 <범죄도시> 정도가 그럴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대단히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들 사이에서 오래된 조연 배우 출신의 주연이 그들이 가진 특유의 서민적 분위기와 따뜻한 유머로 관객을 웃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여기서의 웃음도 꽤나 무거운 주제를 변주하는 과정에서의 윤활유에 가깝다. 그나마도 유머는 가족애나 인류애와 같은 휴머니즘 코드에 기생하곤 한다. 맘 놓고 웃을 만한 코미디 영화나 맥락과 상황 가운데서 한두 번씩 피식거리면서 웃고 즐기는 유머 코드가 한국 영화에서 거의 사라진 것이다.

 

<어벤져스>의 아이언맨은 심각한 순간일수록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녹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캐릭터들은 이번 편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이는데, 그들은 전작에서처럼 엉뚱한 B급 정서와 대중문화적 취향으로 등장하는 내내 줄곧 웃긴다. 썰렁하고,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어벤져스>멤버들의 웃음은 긴장감을 풀어주고, 관객에게 공감을 높이는 데 성공한다. 이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파국의 결말을 향해 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영화를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말은 몰라도 과정만큼은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벤져스>는 미국 영화 시장의 자본력과 기술력, 인력이 총동원된 대단한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자본력, 기술력, 인력 면에서 한국이 <어벤져스>를 따라갈 수도 없고 또 굳이 따라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큰 나무에 가려 한국의 작은 유머, 코미디, 장르 영화들이 거의 고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로 세계를 정복하자는 유치한 제국주의적 발상이나 역시 미국 영화가 최고라는 식의 사대주의적 발상에 멈춰서는 안된다. 그런 기술력이나 자본력보다 왜 우리 영화에서 웃음과 유머가 사라졌는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