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1, 2위를 다투는 작품들은 tvN <나의 아저씨>와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다. 이선균과 이지은(아이유)이 주연을 맡은 전자는 무기력한 45세 남성과 상처투성이 21세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손예진과 정해인이 주연을 맡은 후자는 삶에 지친 35세 여성이 편안한 동생 같던 31세 남성과 위안 섞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흥미로운 건, 화제성과 별개로 두 드라마에 대한 여성 시청층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나의 아저씨>를 향해서는 비판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는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선지 두 작품을 비교하는 기사에는 소위 ‘여자들의 이중성’을 비난하는 댓글이 곧잘 달린다. 평범한 중년 아저씨는 혐오하면서 잘생긴 연하남에는 환호한다는 것이다.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포스터

 

하지만 엇갈린 반응의 결정적 원인은 로맨스보다는 여성들의 공감 여부에 있다. 제목부터 보자. 두 작품 모두 호칭을 제목에 넣었으나 <나의 아저씨>는 호칭의 주체와 대상을 다 밝힌 데 비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호칭의 주어가 생략됐다. 전자는 ‘나와 아저씨’의 이야기, 후자는 ‘누나’의 원톱드라마임이 드러나는 제목이다.      

 

그런데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나의 아저씨>는 제목에서 예상한 것보다 아저씨 서사의 비중이 훨씬 크다. 일단 ‘아저씨’에 해당하는 인물부터가 남주인공 박동훈(이선균) 외 그의 형제들이다. 박씨 삼형제가 술을 마시며 ‘아저씨 영화’ 시나리오를 읊어대는 첫 회에서부터 남성 과잉서사의 조짐이 엿보인다. 시나리오 줄거리는 ‘정리해고당한 중년 남자의 비애와 복수’다. 형제 하나가 ‘자기 얘기는 자기만 재밌다’고 면박주지만, 이미 이런 남자들의 진부한 이야기가 대중문화에서 질리도록 반복돼 왔다는 게 더 문제 아닐까. 정작 혼자서 범죄스릴러와 첩보물을 넘나들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 지안(이지은)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박씨 형제의 휴먼드라마 안으로 포섭된다.

 

반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예쁜 누나>)는 로맨스의 외피 아래 철저히 여성 중심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흔히 남녀 주인공 캐릭터 소개와 운명적 인연을 강조하는 작위적 만남을 몰아넣는 기존 로맨스의 도입부와 달리,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의 고단한 업무를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 첫 회 오프닝부터가 무게 중심이 그녀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아내의 자격> <밀회> 등 전작을 통해 꾸준히 멜로에 사회적 시선을 녹여왔던 안판석 PD는 이번에도 로맨스의 틀 안에 30대 싱글 여성의 현실적 고민과 사회적 억압을 디테일하게 담아낸다. 윤진아의 직장 생활 묘사가 대표적이다. ‘개저씨 종합 보고서’를 보는 듯한 “회사 꼰대” 묘사와 성폭력 문화 비판도 인상적인데,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 직장물이 무시해 온 여성들의 다양하고 섬세한 역학관계는 더 흥미롭다. 가령 진아의 순응적 태도가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비판하는 동기 금보라(주민경) 캐릭터는, 여주인공을 질투하는 적 아니면 호의적인 동료로 단순화됐던 주변 여성 인물 묘사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인물이다. <예쁜 누나>는 이 다채로운 관계를 통해 남성들이 조직의 상층부를 점령한 동안, 치열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여성 직장인들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진아가 연인 준희(정해인)의 친구 커플들과 단체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에서도 여성 중심적 시선은 잘 나타난다. 드라마는 “역시 남자들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는 남자 친구들의 썰렁한 방과 달리, 끊임없는 얘깃거리로 훈훈한 여자 친구들 방의 대조적 풍경을 보여준다. 취업, 진로, 직장 내 위치에 관한 고민 등으로 밤을 지새우는 여성들의 대화는 그동안 남성 중심 서사에서 배제당해 왔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예쁜 누나>를 향한 호평의 핵심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있다. 준희와의 로맨스 역시 진아 이야기의 탄탄한 설계가 있었기에 더욱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6년도 미디어다양성 조사연구’에 따르면, 드라마에서 남성들은 현실 인구보다 과대대표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해 드라마 등장인물 중 남성의 비율은 62.3%, 여성은 37.7%였다. 남성 과잉 서사의 현실이 통계로도 입증된 것이다. 실제 근래의 드라마계는 한국 영화판의 남초 현상을 그대로 재연해오고 있었다. 남성 중심 범죄스릴러가 주류 장르가 되고, 남성 투톱물의 ‘브로맨스’가 흥행 코드로 자리 잡으면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점점 소외돼 왔다. 그나마 여성이 주도했던 로맨스 장르에서마저 ‘아재파탈’ ‘영포티’ 등의 신조어와 함께 ‘삼촌로맨스’라는 퇴행 현상이 일어났다.

 

최근의 페미니즘 물결은 이러한 현상에 맞서 여성 서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호응을 보내고 있다. <예쁜 누나>의 호평 역시 JTBC <미스티>, tvN <마더> 등 여성 중심 드라마가 찬사받은 흐름과 이어진다. <나의 아저씨>와 <예쁜 누나>를 향한 대조적 반응이 단순히 ‘삼촌로맨스’에 대한 거부와 ‘연하남 판타지’에 대한 호의로 치부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너무 많은 남자 이야기에 지친 여성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은 것이다.

 

<김선영 TV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