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있다. 오십 보나 백 보나 별반 차이 없다는 의미다. 도토리 키재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큰 차이가 없으니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더 보란 뜻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아냥으로 쓰인다. 뭐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호들갑이냐, 오십보백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화에 있어서 오십 보 차이는 엄청나다. 오십 보가 뭐냐, 단 열 걸음 차도 크다. 그 약간의 차이를 위해 다들 노력하고, 그렇게 한 오십 보쯤 먼저 나가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렇게 오십 보 내딛은 사람들이 문화의 코드를 만들어 낸다. 뒤샹이 처음으로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놓았을 때, 앤디 워홀이 수프 깡통을 그려내기 시작했을 때, 그게 바로 오십 걸음의 차이가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에 민감해야 한다. 차이를 발견하면 그 점을 주목해 주는 게 소비자의 의무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너의 결혼식>과 <암수살인>은 약간 다른 발걸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

 

 

<너의 결혼식>은 멜로드라마이다. 두 남녀가 만나 호감을 느끼며 우여곡절을 겪다가 사랑하고 헤어진다. 만약 우여곡절을 겪다가 사랑을 이루는 데서 끝났다면 이 영화는 아주 평범한 로맨스 영화로 남을 뻔했다. 하지만, <너의 결혼식>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헤어짐의 과정까지 보여준다. 이 헤어짐의 과정 속에서 영화는 로맨스에서는 멀어지지만 좀 더 현실적인 세계와 만난다. 성사가 아니라 이별이니 굳이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로맨스가 아니라 멜로드라마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너의 결혼식>이 장애물을 두고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는 뻔한 멜로드라마도 아니란 사실이다. <너의 결혼식>은 로맨스의 관습에서도 오십 보 더 나아가고 멜로드라마의 공식에서도 오십 보 나아간다. 그러므로 새로운 로맨스, 다른 멜로드라마로 차별화되는 것이다.

 

그 차별화는 바로 현실성에 있다. <너의 결혼식>은 전형적인 첫사랑 서사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건축학개론>과 같은 첫사랑 서사 말이다. 고등학생 황우연(김영광)은 전학 온 여학생 환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우정과 사랑 사이 어디에서 감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은 승희의 갑작스러운 이사와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복잡한 가정환경으로 멀어진다. 대학을 가고, 재회하게 되는 과정들은 코믹한 톤으로 시종일관 가볍게 흘러간다. 무거워지는 것은 대학 졸업 이후이다.

 

대개의 첫사랑 영화는 첫사랑의 순간과 현실을 점프 컷하듯 비약해서 그 차이와 변화를 강조한다. 순결했던 아이의 타락, 순진했던 아이의 환멸 과정에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여기서 타락은 여자의 몫이고 성장은 대개 남자의 몫이다. <말죽거리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어른이 되는 순간, 한가인은 어느새 삶에 찌들어 빛을 잃었고, <건축학개론>의 서연 역시 말똥말똥한 눈의 수지가 만취에 욕을 내뱉는 한가인으로 바뀐다.

 

하지만 <너의 결혼식>에서 바뀐 것은 오히려 남자 쪽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였지만, 그녀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은 세상에 다치고 패배하자 비겁하게 첫사랑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건 그녀, 환승희와의 결별이라기보다는 그녀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과의 이별에 더 가깝다.

 

여자가 변해서 남자가 성장한다는 식이 아니라 남자가 변해서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이 약간의 변화는 첫사랑의 오래된 관습을 무너뜨린다. 세상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십 보의 차이에서 영화 <너의 결혼식>은 꽤나 어른스러운 멜로드라마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변화는 <암수살인>에서도 발견된다. <암수살인>은 드러나지 않다보니 집계되지 않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다.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는 범죄, 말하자면 영화 <버닝>의 해미(전종서)가 사라졌지만 종수(유아인) 외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암수살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십 보 차이는 바로 형사의 변화다. 대개 한국형 범죄영화에서 형사는 생활고에 찌들어 있거나 비리에 무감해져 있기 일쑤였다. 아니면 정반대로 통제 불능의 정의감으로 사고뭉치 취급을 받는 인물들이 많았다. <공공의 적>의 설경구나 <끝까지 간다>의 이선균, <VIP>의 김명민 캐릭터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수살인>의 주인공 형사는 일단 가난하지 않다. 운 좋게 부자 아버지와 형을 둔 덕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이다. 고급 세단을 소유하고, 취미로 골프를 친다.

 

무엇보다 다 자비로 충당한다. 어딘가에서 돈을 뜯는다거나 횡령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자기 돈으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 윤택함이 사건 수사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 고과나 승진이 아니라 순전히 범죄에 대한 알 권리와 형사로서의 도덕적 의무,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책임에 의해 움직이는 유형의 인물이 태어난 것이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희한한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이 오십 보 차이로 인해 <암수살인>의 수사극은 완전히 달라진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형 주인공이나 그것을 추적해 가는 과정은 사실 기존의 수사극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의 약간의 차이로 인해 영화는 달라진다. 이 오십 보 차이가 변화하기 어려운 범죄영화의 관습에 또 어떤 차별성을 유발할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십 보 백 보는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오십 보만큼 차이난다. 오십 보가 아니라 십 보의 차이도 중요하다. 그 약간의 차이가 삶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이건 비단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오십 보 나은 사람의 그 오십 보를 인정해줘야 한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