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스릴러 드라마 속 악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드라마에서 범죄스릴러는 우리 시대의 악을 꾸준히 탐구하면서 대세로 떠오른 장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배경으로 사회 곳곳의 의문의 죽음과 그 원인을 해부한 김은희 작가의 <싸인>(SBS, 2011), 2012년 거대권력이 은폐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박경수 작가의 <추적자>(SBS, 2012)의 성공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 이전까지 주로 기이한 연쇄살인범과 대결을 벌이던 범죄스릴러는 <싸인>과 <추적자> 이후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극적 성격이 강화됐다. “세상이 미쳐 날뛰는데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합니까”라는 <추적자>의 유명한 대사처럼, 검은 커넥션을 통해 지배력을 점점 더 공고히 하는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가 사회파 범죄스릴러 붐을 불러왔다.

 

영매와 구마 사제가 주인공인 OCN 드라마 <손 the guest>.

 

 

그런데 최근 범죄스릴러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초월적 악의 등장이다. 악귀, 빙의, 주술 등과 같은 오컬트나 사이비 종교가 자주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귀신 보는 형사의 수사극 <처용>(OCN, 2014~2015), 생령과 퇴마사의 악귀 퇴치극 <싸우자 귀신아>(OCN, 2016), 사이비 종교 집단의 만행을 고발하는 <구해줘>(OCN, 2017), 신기 있는 형사가 과거의 집단학살 사건을 추적하는 <작은 신의 아이들>(OCN, 2018), 영매와 구마 사제가 주인공인 <손 the guest>(OCN, 2018), 유령 탐정과 무당 출신 부검의가 등장하는 <오늘의 탐정>(KBS, 2018) 등이 몇 년 사이에 쏟아져 나온 오컬트, 사이비 소재 드라마다. 원래대로라면 호러, 판타지적 소재를 범죄스릴러처럼 풀어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악령은 주로 가정폭력, 아동학대, 집단 따돌림, 성폭력 등과 같은 사회문제로부터 출몰하고, 초자연적 존재를 이용해 악행을 벌이는 권력 집단도 등장한다.

 

범죄스릴러에 초월적 악의 존재가 기승을 부리게 된 배경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앞서 나열한 대부분의 작품이 장르 전문 채널 OCN 드라마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장르물 진화의 한 결과다. 근래 들어 여러 장르적 요소를 한꺼번에 녹인 복합장르드라마가 유행하는 가운데 극적 소재를 넓히는 과정에서 호러, 오컬트처럼 기존에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매니악한 장르들까지 점점 다채롭게 뒤섞이고 있다. 올해 방영된 <작은 신의 아이들>은 과학 수사물에 샤머니즘을, <손 the guest>(이하 <손>)는 형사 수사물에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을, <오늘의 탐정>은 탐정 추리물에 샤머니즘, 언데드 소재까지 결합했다.

 

스릴러의 범죄 묘사가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하는 경향도 악령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 다중인격 살인마,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넘어 악령의 등장은 초자연적 성격을 빌미로 더 잔혹한 범죄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손>과 <오늘의 탐정>의 첫 살인 장면이 공통적으로 으슥한 심야의 뒷골목이나 외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대낮에 많은 사람이 여가를 즐기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오늘의 탐정>에서는 생령의 조종을 받은 레스토랑 직원이 생일 축하 행사가 벌어지는 테이블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목을 찌르는 장면이 그려졌다. <손>에서는 휴양지에서 가게 홍보 전단을 돌리다 악령에 빙의된 중년 여성이 전단지를 차갑게 내친 젊은 여성을 친구들과 함께 노는 해변에서 잔혹하게 살해했다.

 

더 주목할 만한 배경은 시대와의 연관성이다. 범죄스릴러 드라마의 악은 늘 동시대의 그늘을 대변했다.

 

사회파 범죄스릴러 유행의 배경에 부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면, 요즘의 오컬트 스릴러 붐 현상은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옥스퍼드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전지구적 화두로 급부상한 ‘탈진실 시대’는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객관적 사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상황을 말한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문제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가가 중요해졌다. 이미 정부 기관이 나서서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여론을 조작하고 주술 정치를 적극 실천한 정권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선 더 깊이 와닿는 화두다.

 

시대의 산물인 범죄를 탐구하는 스릴러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범죄와 맞서 싸워야 하는 주인공들도 모두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손>의 주인공 윤화평(김동욱)은 종종 악령과 감응하고, 또 다른 주인공 최윤(김재욱) 역시 구마 사제의 특성상 “나쁜 것들을 접하니까 몸도 영혼도 점점 아파진다”는 경고를 받는다. 형사 강길영(정은채)은 범죄 피해자 가족이라는 아픔 때문에 범인에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런가하면 <오늘의 탐정>의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은 귀신이 되어 점점 어둠의 힘에 가까워지고, 정여울(박은빈)은 생령을 없애기 위해 살인을 결심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의 이 같은 성격은 오히려 ‘탈진실 시대’의 악에 맞서는 효과적인 대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이 쉽게 진실이라 믿는 태도가 ‘탈진실 시대’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오늘의 탐정>에서 악령 선우혜의 위험함을 경고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나쁜 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끊임없이 진실이 무엇인지 의심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객관적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김선영 TV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