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는 동네의 유행은 ‘노포’다. 오래된 가게를 뜻하는 이 한자어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명색이 없다. 가게가 오래 버틸 역사적 조건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무렵 생긴 가게들이 살아남아 있어야 노포 소리를 들을 텐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아 있는 것이 손꼽을 정도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일본은 한반도의 물자수탈을 가속화했고, 팔 음식이 없으니 식당이 배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자 그대로 고사(枯死)였다. 해방 후 물자부족시대에도 식당이 생겨났지만, 역시 6·25전쟁으로 초토화됐다. 중국도 노포가 적은 나라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쳤고, 문화대혁명이 오래된 가게들을 무너뜨렸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일본은 노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일찌감치 식당 문화가 발달한 구대륙인 유럽 못지않다. 일본도 미군의 대공습으로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고, 노포 역시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복구하여 역사를 이어가는 집이 많다. 물론 일본 노포의 대세는 패전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한국에 노포가 적은 건 역사적 이유보다도 사회적 시선 때문인 듯하다. 노포 주인들을 인터뷰하면 먹는장사, 술장사를 깔보는 문화가 있어서 몇 번이고 집어치우려 했다고 술회한다. 피맛골에 그 많던 가게들이 전형적인 ‘노포급’인데, 피맛골이 헐리고 난 후 다른 곳에서라도 업력을 이어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분들을 만나서 말씀을 들었다. “할 만큼 했고, 가게를 옮겨도 언제 또 헐고 부술지 몰라 불안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먹는장사에 대한 곤란한 체험도 컸다고 말한다. 술주정이나 관의 횡포 같은 것들이다.

 

진짜 노포는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최근에는 다시 노포 마케팅이 뜬다. 근거도 없이 몇 대(代)니 하는 홍보를 하는 식당도 생겼다. 갑자기 생긴 식당이 아예 70년, 80년 역사라고 주장하는 집도 봤다. 진짜 노포들도 역사 기록이 별로 없어서 구전 기록에 의존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 같다. 어차피 입증 책임을 묻는 문화도 없으니, 지어낸 오래된 집이라 한들 누가 비난하겠는가 하는 심보다. “우리 할아버지대에 저쪽 지방에서 60년 전부터 밥집을 했었소” 하면 그게 그런 줄 알고 마는 일이 된 셈이다. 남북 분단을 이용하여 몇 대 노포를 대충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집도 있다.

 

이북에서 식당을 했다고 하니, 확인이 애매하고 전쟁과 피란통에 증거 사진 한 장 없는 걸 따져 묻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좋은 징조이기는 하다. 누가 뭐라 하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역사를 쌓아서 노포가 된 식당이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 노포라고 다 존중받을 수준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노포라는 것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집도 많고, 당대에 와서 게으른 후손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 집도 있다. 얼마 전에 들른 한 노포 식당에서 별꼴을 보았다. 내 일행이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은 젊은 주인이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눈은 스마트폰에 열중하면서. 쓸쓸한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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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