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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좋아하는 술안주가 있을 텐데, 나는 동치미 한 사발이다. 그 맑은 순수의 짠맛 한 그릇이면 술이 외롭지 않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얻어먹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밥집이나 고깃집에서 주는 건 대다수가 ‘가짜’다. 동치미=冬沈이라는 문자 그대로 겨울에 푹 잠겨 익은 동치미가 아닌 것이다. 그 제조 비법(?)이야 뻔하게 예상이 가능하다. 간간한 소금물에 잘 삭은 게 아니라 급조한 ‘이미테이션’이다. 동치미라고 부르는 게 무색하다. 익힌 것이 아니니 사카린과 빙초산과 설탕과 사이다에 또 ‘무엇무엇’을 넣어 맛을 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동치미를 잘 만들어서 익히자면, 공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보통 식당에서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김치라도 겨우 담가서 파는 집도 희귀해진 판에 동치미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이 동치미라는 녀석은 변덕이 심하다. 물이 많이 잡히고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니 발효 조절이 힘들다. 동치미는 일종의 물김치이니 익히자면 공간도 건더기 중심의 김치보다 많이 든다. 김치냉장고며, 그것을 놓을 공간이 충분할 리 없다(요즘의 임대료는 공간에 돈을 깔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동치미 엑기스’라는 것도 판다. 동치미 맛을 내는 조제품이란다. 여기에 무를 썰어서 대충 소금 친 후 이 엑기스와 물을 섞어 그럴듯하게 동치미를 만들어낸다.

 

동치미의 악전고투는 다 이유가 있다. 만들고 저장하는 데 돈이 드는데, 정작 손님에게 돈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기 구워 파는 식당에서 동치미(라고 부르는 어떤 존재)는 공짜로 몇 번이고 ‘리필’되는 싸구려 음식이다. 이 복잡한 속내의 동치미가 식당 주인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려면 식당 창업 교육을 가보면 된다. 이런 교육 현장에는 관련 상품을 선전하는 상인들이 많이 나온다. 첨단의 포스 시스템부터 사채업자들까지 다양하다. 이 자리에 동치미를 판다는 상인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엄두가 안 나는 동치미를 사철 공급해주는 업자다. 이런 제품이라도 사서 쓰면 나쁘지 않을 텐데, 이것도 돈이 들어가니 그다지 인기가 없다. 한 그릇에 50~100원이면 뚝딱 ‘조제’를 해낼 수 있는데 굳이 진짜 동치미를 사서 쓸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된 신문을 뒤적이는데, 평안도식 동치미 만드는 법이 실려 있어서 눈길이 갔다. 이름도 특이하다. 와싹 동치미, 쪼개 동치미. 와싹은 아마도 입에서 씹히는 질감을 말하는 것 같고, 쪼개 동치미는 숟갈로 무를 쪼개듯 파내어 담그는 것이라고 한다. 칼로 정연하게 썰지 않은 무의 부정형의 질감이 입맛을 더 돋울 듯하다. 대동강도 얼어버릴 한겨울, 평안도 사람들은 뜨뜻한 아랫목에 앉아 동치미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며 지냈다지. 고깃국물이 있으면 섞어 넣고 없으면 순전히 동치미 맛으로 먹는 국수.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냉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익은 동치미 한 그릇, 침이 고인다. 어디 동치미 잘하는 집이 없을까. 돈을 받아도 좋다. 그래야 부담 없이 한 그릇 더 청할 수 있을 테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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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