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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16 그리운 막국수의 ‘품격’

강원도 오갈 때 1단 기어로 힘겹게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운전자가 아니어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 가파른 내리막길도 많았다. 터널이 뚫리고 길이 좋아졌다. 금세 오가는지라 옛날부터 찾던 재미가 하나 줄었다. 차도 사람도 지칠 무렵 산간에서 뭔가를 먹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막국수는 단연 일품이었다.

강원도 막국수는 유래가 있는 음식이다. 관서지방의 메밀국수가 평양과 서울로 이어지면서 ‘냉면’이라는 이름을 얻는 동안, 조용히 산간과 해안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도시의 냉면 다수가 본래의 슴슴하고 구수하며 소박한 맛을 잃고 온갖 복잡한 꼼수들의 공세를 받을 때 조용히 메밀향을 뿜고 있을 뿐이었다.

여러 연구자들에 의하면, 강원도 막국수도 계통이 있다고 한다. 영동과 영서로 나뉘고, 다시 춘천은 그 고장만의 맛을 가지고 있고, 내륙의 군사지역인 인제·원통 쪽은 또 다른 맛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고장의 막국수라면 무엇이든 좋다. 허름한 ‘스레트’를 얹은 낡은 새마을시대의 한옥에 간판 삐뚜름 달고 있는 막국숫집이 좋은 것이다. 서울 냉면처럼 육수의 배합이 어떻네, 메밀 함량을 따지지 않고 말아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허름한 장지문이 달려 있고, 주인네가 쓰는 옷장과 반닫이를 가구 삼아 앉았다. 새마을보일러가 절절 끓어서 잘못 앉으면 엉덩이를 데이는 그런 방바닥이었다. 오래되어 호마이카 칠이 부스스 일어난 교자상과 철제다리 달린 ‘시장표’ 개량 밥상으로 막국수를 받아먹던 맛이란! 겨울에는 동치미가 새콤하고 쿰쿰했으며, 여름에는 간장으로 간을 해서 시커멓고 달달한 육수를 부어 먹었다. 식사시간이 지나 주문하면 방에 앉아 친구와 환담하던 주인이 슬슬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낡은 기계분틀이 윙윙거리며 일으키던 소음,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담아주던 육수의 맛도 온몸에 남아 있다. 막국수는 ‘막’ 갈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막소주나 막장처럼 격식없이 먹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냉면의 발전 역사에는 기생집과 풍류, 한량이 끼는데, 막국수는 농한기 산촌의 심야먹거리라는 메밀국수의 본령이 깃들어 있다. 한겨울 밤, 초겨울에 화전을 갈아 수확한 메밀을 빻고 흔한 동치미 국물 말아서 먹던 민중의 밥상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 산림녹화사업이 활발해지고, 화전은 금지되었다. 메밀을 갈던 농민들이 도시로 유입되어 새로운 도시노동자군을 채웠다. 구로공단과 산업화의 역사에는 사라지는 강원도의 막국수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국산 메밀은 너무 비싸서 제대로 한 그릇 말면 1만원으로도 어림이 없다고 한다. 1950년대 이후 미국 밀가루가 물밀듯 들어오기 전, 우리는 메밀로 대부분의 가루음식을 충당했다. 고급 음식이던 밀가루가 지천인 대신, 메밀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래도 강원도의 내륙, 인제와 원통으로 가면 ‘쩡한’ 동치미에 말아낸 순메밀국수를 하는 집들이 몇몇 있다. 절절 끓는 아랫목은 없지만, 혹시라도 생각나면 차를 돌려볼 일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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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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