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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1 우래옥 냉면

1970년대 후반 중학생 시절에 학교 옆에 있는 창경원에 자주 갔다. 당시 비원은 개방하기 전이었고, 창경원은 일제에 의해 공원으로 바뀌어 그때까지도 동물과 놀이기구가 있었다. 물론 낙타도 있었다. 봄에는 버찌를 따 먹으러 갔고, 가을에는 백일장을 치렀다. 이미 철거된 후이지만, 창경원 앞에는 전차가 다녔다고 들었다. 그 전차 얘기를 다시 들은 건 시내 굴지의 북한식당 우래옥의 김지억 전무에게서다. 1962년에 입사해 올해로 53년째 월급을 받고 있는 국내 최장수 ‘근로소득자’이기도 한 그는 옛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낸다. 1899년 처음 생긴 서울 전차는 1968년 11월 없어지기 전까지 노선을 계속 확장했다. 그중 아주 오래된 노선이 돈암동과 을지로4가를 오갔다. 바로 을지로4가 앞에 우래옥이 있었고, 여름이면 창경원 구경을 마친 인파가 이 가게 앞 종점에서 내려 냉면을 먹으러 왔다. 외식거리가 별달리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워낙 냉면의 인기가 높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하루 2300여 그릇을 말았다고 한다. 그때 냉면기계는 자동이 아니어서 사람 두엇이 매달려 체중을 실어 면을 뽑았다.

“힘들었지.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준다고만 하면 일할 사람은 구하기 쉬웠어.”

우래옥은 대한민국 냉면의 전범으로 꼽힌다. 1946년 개업했으니 독보적이다. 곱고 진한 육수와 품질 좋은 메밀면, 거기에 조용하면서도 품위 있는 고명까지 우래옥 냉면의 개성은 이미 설명이 사족이 된다. 장안의 좀 ‘먹는’ 사람들은 냉면에 대해 한두 마디씩 해야 대접을 해주는 풍토가 있다. 서울지역에 생겨난 다수의 냉면집은 대부분 우래옥 냉면을 경쟁으로 삼아 면을 만들어냈다. 그 오랜 도전의 시기에도 우래옥은 최고의 자리에 살아남았다. 김 전무는 최근 젊은 사람들이 냉면을 즐기는 풍토에 대해서 기쁜 모양이다. 그의 말대로 ‘무(無)맛이 맛인’ 평양냉면을 젊은이들이 먹어내는 게 기쁜 게다. 제각기 먹으면 그만인 게 또 음식의 기호인데, 그는 몇 가지 ‘팁’을 낸다.


“게자(겨자)와 식초를 잘 쳐서 먹는 게 제대로 먹는 법이지. 냉면이 차니까 속이 탈 날 수 있어. 매운 게자로 덥혀주는 게야. 식초도 맛을 돕고, 탈을 막아주지.”

젓가락으로 두툼하게 잡아 꾹꾹 넘기는 것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애호가들의 비법도 있다. 메밀로만 만든 순면을 시키거나, 고기를 빼고 그 돈값만큼 면을 더 얹어내는 ‘민자’도 좋다. 순면은 여름에 주문하면 아주 고역이다. 메밀의 특성이 늘어지기 때문에 여름엔 보통 전분을 더 넣기도 하는데, 메밀로만 면을 뽑자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민자는 달라고 하는 이에겐 내곤 하는데, 메밀값이 비싸 식당에서는 반가운 주문이 아니다. 이번주는 서울이 35도를 기록, 기상관측 이래 백 몇 년 만의 더위였다고 한다. 점심시간 지나 느긋하게 우래옥에 들러 한 그릇하고 김 전무에게서 옛 냉면 얘기를 듣는 건 어떨까 싶다. 그는 국내 최고령 총지배인이자 급사장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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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