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계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이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최고급 주택가 SKY캐슬 사람들의 계층 대물림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는 그 욕망이 치열하게 드러나는 자녀들의 입시 문제를 주요 소재로 한다. 자식이 ‘7살 때부터 아파도 다쳐도 쓰러져도 1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시키는 부모,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14살 아이가 편의점에서 과자를 훔쳐 밟아버리는 기행을 저지르자 돈으로 무마시켜서라도 공부를 계속하게 하는 부모,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한 줄 스펙 때문에 비열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사퇴시켜 자식을 전교회장에 당선시키는 부모 등 자식의 일류대 입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벌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SKY캐슬>이 입시 스릴러로 불리는 이유다.

 

JTBC 드라마 의 한 장면.

 

그런데 이 드라마의 공포를 촉발하는 진짜 요인은 그 뒤에 숨어 있다. 바로 가부장제다. <SKY캐슬> 초반 입소문의 동력이 된 1회 엔딩을 떠올려보자.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흔히 청소년들의 자살로 끝을 맺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캐슬 귀부인들 사이에서 여왕보다 더 부러운 워너비맘”이었던 이명주(김정난)의 충격적인 자살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명주는 외아들 영재(송건희)를 서울의대에 합격시켜 “3대째 의사 가문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입시를 위해 “사육”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들로부터 절연을 통보받았다. 절망한 이명주는 평소 폭력 남편 박수창(유성주)이 그녀와 아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한 사냥총으로 목숨을 끊는다. 이명주의 죽음은, 아무리 최상류층이어도 기혼 여성의 가치가 철저히 남편의 지위와 그것을 이어받을 자녀의 성패에 의해 결정되는 가부장제가 낳은 비극이다.

 

이 같은 비극은 기혼 여성들이 가족 관리 전문가로서 점점 더 많은 역할과 의무를 요구받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한층 심화된다.

 

특히 그 경쟁 구도가 고도로 압축된 자녀교육은 여성들의 부조리한 현실을 제일 첨예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풍자한 이 작품이 입시제도를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래서 <SKY캐슬>은 입시 스릴러이자 가부장제 스릴러다. 이명주의 파국으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그녀와 함께 캐슬의 양대 ‘워너비맘’으로 불린 한서진(염정아)의 이야기로 중심을 옮겨간다.

 

한서진은 이명주보다 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피해자다. 그녀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구박하면서 매일같이 폭력을 휘두르는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성인이 된 뒤에는 신분을 속이고 명문가 자제 강준상(정준호)과 결혼해 SKY캐슬에 입성하는 신분 상승을 이루지만, 시어머니로부터는 ‘아들을 못 낳은 죄’ 때문에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서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완벽한 ‘아내·엄마’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애쓴다. 드라마 공식 인물 소개를 보면 한서진은 “삼시세끼 유기농 식단을 손수 차려내는 데다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은 기본, 푸드코디네이터 뺨치는 테이블 세팅에 푸드 스타일링까지 소화하며 두 딸의 완벽한 학습 매니저인 프로 주부”로 설명된다. 이러한 한서진의 모습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강조된 ‘주부 CEO’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가부장제 위에 쌓아올린 모래성에 불과하다. 서진이 딸 예서(김혜윤)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 이명주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를 위험조차 감수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그 길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다.

 

여러 면에서 <SKY캐슬>은 2012년 정성주 작가가 발표한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의 적통 후계자처럼 보인다. <아내의 자격>은 이 작품보다 한발 앞서서 자녀교육 문제를 통해 ‘아내, 엄마, 며느리’의 자격을 강조하며 기혼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 드라마다. 시댁과 남편의 강요로 인해 대치동으로 이주한 주인공 서나래(김희애)는 아들이 입시학원에서 꼴찌를 하자 엄마의 자격을 의심당한다. 드라마는 결국 집에서 쫓겨난 서나래의 빈자리가 가사도우미와 튜터맘으로 신속하게 대체가 되는 모습을 통해 그림자 같은 기혼 여성의 조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아내의 자격>에서 대치동 사교육의 1인자 홍마녀로 등장했던 이태란이 <SKY캐슬>에서 입시교육에 희생된 아이들을 보호하고 엄마들을 자극하는 이수임으로 출연하는 것도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처럼 다가온다.

 

더 흥미로운 공통점은 가부장제의 억압과 공포를 그리면서도 여성들을 마냥 피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내의 자격> 서나래가 결국 외도를 계기로 자아를 찾으며 가부장제를 탈주했듯이, <SKY캐슬>의 한서진 역시 ‘가부장제의 입맛에 맞게’ 완벽한 기혼 여성의 역할을 탁월하게 연기하는 흥미로운 전략가다. 그녀를 무시하는 시어머니 뒤에서 “당신 아들보다 백배 천배 잘난 딸로 키워낼” 것이라며 싸늘한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극중 이수임이 원래 쓰려던 소설의 첫 제목인 ‘누가 그 여자를 죽였나’가 <SKY캐슬>의 본질을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SKY캐슬의 여성들은 누구보다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김선영 TV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