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비극과 원했던 바를 결국 갖게 되는 비극 말이다. ‘비극’을 떠올리면 참담한 결말과 파국이 떠오른다. 처참하게 망가진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도 그려진다. 햄릿, 맥베스, 오셀로, 오이디푸스. 대개 비극의 주인공들은 무엇인가를 강렬히 원했던 사람이다. 맥베스는 권력을 원했고, 오셀로는 의심의 종결을 원했으며, 오이디푸스는 정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 문제는 그토록 원했던 그것이 파국의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쪽보다는 원했던 것을 갖는 쪽이 더 비극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원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소설, 영화, 드라마와 같은 서사의 주인공들은 욕망하는 이들일 때가 많다. 욕망하는 인물들은 돈, 사랑, 명예, 권력. 거의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원한다. 그런데 인생은 꽤 공평해서 하나를 좇으며 나머지 셋까지 갖기는 어렵다. 주인공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돈을 따르는 자는 사랑, 권력, 명예를 버리기도 하고, 사랑을 선택한 인물들은 나머지를 외면하기도 한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적어도 어린 시절, 우리는 욕망하는 하나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원작인 영화 <갈매기>의 여성 인물 ‘나나(시얼샤 로넌)’도 그렇다. 그녀는 ‘명예’를 위해서는 뭐든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 나나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걸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명예와 가장 먼,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콘스탄틴(빌리 하울)은 ‘사랑’을 추구한다. 그는 마침내 유명작가로의 ‘명예’를 얻지만 그것이 사랑을 가져오지는 못하자 자살하고 만다. <갈매기> 속의 인물들은 서로에게서 결코 받을 수 없는 것들을 갈망한다. 욕망은 결핍 속에서 무너지고 인생은 엇갈림 가운데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뤄진 바람은 단 하나이다. “순진한 시골처녀를 심심풀이로 파멸”하고자 했던 작가 트리고린의 욕망 말이다.

 

원하는 삶이 비극이라면 비극의 반대는 어떤 삶일까? 알폰소 쿠아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에 해답의 단서가 있다. <로마>가 2018년 최고의 작품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마>는 클레오와 소피아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소피아 집안의 가정부이자 육아도우미인 클레오가 주인공에 더 가깝다.

 

영화가 시작되면 차고로 쓰는 대문 앞 공간을 물청소하는 클레오의 모습이 비친다. 클레오는 물청소를 하고, 아침 식사를 챙기고, 설거지를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다시 저녁 식사를 챙기고, 다림질을 마무리 짓고는 잠이 든다. 대문 앞을 아무리 물청소해도 애완견 보라스는 또 똥을 싸놓고, 꺼내 놓았던 접시는 다시 씻어 넣어야 하며 그 접시는 내일 아침 또 꺼내 쓴 후 다시 닦고 정리해야 한다. 영화는 ‘일상’이라는 반복되고 지루한 삶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일상의 공간은 우리가 ‘서사’를 통해 만나왔던 욕망이나 결핍의 공간과 완전히 다르다. 무엇인가를 강렬히 원하는 그런 시공간이 아니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반복의 세계이다. 말하자면, 클레오나 소피아는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얼핏 지루해 보이고, 무료해 보인다.

 

클레오와 소피아가 원하는 게 있다면 단 하나, 지루한 일상의 패턴이 고스란히 지켜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그녀들의 이 작고 소박한 바람도 지켜주지 않는다. 클레오는 원치 않은 아이를 갖는다. 그러다 원하지 않았던 그 아이를 잃고 만다. 소피아는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난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클레오는 아이를 잃고, 소피아는 이혼을 한다. 두 사람 다,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결과들을 떠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두 사람은 힘들어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고통스럽지만 결국 현실을 껴안는다. 두 사람은 원치 않는 일과 마주치고 만다. 그건 욕망의 결과라기보다 삶의 부산물에 가깝다. 욕망을 갖고 선택을 한 것은 두 여인의 남자들이다. 클레오의 애인 페르민은 임신한 여자 친구를 버리고, 학살자의 편에 선다. 소피아의 남편은 다른 여자를 선택하고, 가족을 떠난다. 어쩌면 소피아와 클레오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당한 사람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피아와 클레오야말로 인생의 고수이다. 우리는 늘 원하는 것을 따르는 강렬한 사람들을 영화에서 보아 왔지만 삶이 그런 역동성으로만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서 행복을 찾았던 여자들의 바람이야말로 우리가 돈, 명예, 권력, 사랑과 같은 거창한 욕망 뒤로 미뤄 놓았던 삶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삶은 돈과 명예, 권력과 사랑을 탐하는 역동성이 아니라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길들이는 평범함 가운데서 견고해진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 지루한 반복에서 삶의 박동을 느끼는 것,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진리를 깨달아가는 삶. 이 가운데서 삶은 비극이 아닌 무엇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비극의 반대말이 희극이 아니라 일상인 이유이다.

 

<강유정 |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