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킹덤>은 한국형 장르물의 거장 김은희 작가의 신작이다. 김은희 작가는 그동안 SBS <싸인>(2011), <유령>(2012), <쓰리데이즈>(2014), tvN <시그널>(2016) 등 대표작들을 통해 장르물과 한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결합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킹덤> 역시 조선 땅에 창궐한 괴이한 역병의 실체를 추적하는 역사극에, 탐욕스러운 권력과 그 아래 신음하는 약자들의 고통을 담아낸 김은희표 장르 드라마다.

 

<싸인>에서 <킹덤>까지, 이른바 김은희 월드의 주요한 특징은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를 해부’하는 데 있다. 예컨대 김은희 월드의 시초가 된 드라마 <싸인>은 ‘메스로 사회를 해부한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수많은 억울한 죽음의 사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 병폐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드라마에는 부정한 권력자에서부터 평범한 얼굴의 사이코패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살인자들과 죽음의 양상이 등장하지만, 그 근본적 토대에는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 권력의 편에 서서 부검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이명한(전광렬)의 “죽은 사람들은 잊혀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은 이를 관통하는 대사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1의 한 장면.

 

소위 ‘한국형 사회파 스릴러물’은 대부분 부패한 거대 권력과 이에 맞서는 공익적 영웅들의 대결 구도를 취한다. 김은희 월드 역시 외견만 보면 이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선악 구도의 이면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명한의 대사처럼 ‘역사의 방관자’로서 군중이 만들어낸 공감불능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요컨대 김은희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죽음은 부정한 권력과 방관자로서의 군중이 만들어낸 마비된 윤리와 공감력 상실이라는, 한국 사회의 병리적 증후를 반영하고 있다.

 

이듬해 방영된 <유령>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이버 범죄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공감과 애도는커녕 죽음을 조롱하는 소위 ‘고인드립’이 유행하는 시대의 그늘을 비판한다. 작품의 핵심 플롯인 톱스타 신효정(이솜) 사망 사건의 배후에는,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근거 없는 성추문을 유포하고 그가 죽은 후에도 ‘신효정놀이’라는 이름으로 악성 게시물 테러를 서슴지 않는 군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살인의 진범과 함께 신효정 죽음의 공모자로 소환된다.

 

그런가 하면 <쓰리데이즈>는 대통령이 사라진 삼일간의 이야기 안에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공감 능력을 급속도로 잃어가기 시작한 IMF 외환위기 시절의 그림자를 녹여낸다. 악의 최종 보스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진실을 은폐한 재벌 회장이지만, 드라마는 그와 손잡았던 대통령을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지지한 국민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또 다른 대표작 <시그널>에서는 공감력 상실 시대의 정점을 보여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환기한다. 이 드라마가 장기 미제사건과 공소시효 문제를 다룬 것도 그 가슴 아픈 죽음의 역사에 대해 너무나 빨리 망각해가는 시대를 향한 반성의 목적이었다. 작품에서 첫 번째 미제사건으로 다뤄진 김윤정 어린이 유괴살인사건은 15년 전 일어난 일이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잔혹한 살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공소시효를 며칠 남기고서야 겨우 회자된다.

 

그동안 유족인 어머니만이 진실을 밝혀달라는 절규의 팻말을 들고 매일같이 경찰서 앞을 외롭게 지켜야 했다.

 

올해 발표한 <킹덤>은 공감력 상실 시대를 넘어 애도 불능 시대의 좀비 아포칼립스 버전이다. 이제 죽음은 죽음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 사회의 병폐는 조선을 “살아있는 시체”들의 세상으로 만든 기이한 역병으로 은유된다. 부패한 위정자들은 두 번의 전란에서 백성들을 화살받이로 앞세운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의 마지막 고혈까지 빨아 권력을 유지한다. 그들의 탐욕이야말로 역병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 아래서 백성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인육을 먹은 뒤 사람들의 살과 피를 탐하는” 좀비, ‘생사역’이 된다. 역병이 ‘조선의 끝’에서부터 퍼졌다는 설정은 지리상으로 한양과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을 의미하면서, 그 이전에 권력층과 가장 동떨어진 최하층의 약자들부터 죽어갔다는 것을 상징한다. ‘비단옷 입은 양반 시신과 누더기옷을 입은 천것들의 시신’을 구분해, 전자는 예법대로 장례를 잘 치른 뒤에 깊이 묻고 천것들은 불태워버리자는 이방의 한 대사는, 죽은 뒤에도 비참하게 버려지는 이들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

 

이쯤에서 <싸인> 방영 당시 김은희 작가와 세계관을 공유한 공동집필자 장항준 감독이 ‘PD저널’과 진행한 인터뷰를 인용해본다. 장 감독은 “보통은 산 사람을 살리는 데 관심이 많지만 죽은 사람의 죽음을 규명하는 게 얼마나 사회 정의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삶보다 죽음인 듯하다.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는 그 단적인 사례다. <싸인>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그들을 추모하려 했던 윤지훈(박신향) 박사는 “인종, 나이, 이런 거 없이 부검대에 올라오면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죽음 이후의 풍경이 더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의 그늘을 드러내는 시대에 김은희 월드가 한층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다.

 

<김선영 TV평론가>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