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방문위원회 사업에 참여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의 노포를 탐방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국적이 망라된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언어별로 통역이 제공됐다. 여담이지만, 중국어 팀은 중국, 대만, 홍콩 사람들이 묶였다. 참가자들은 서울에 노포가 있다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가졌다. 그들이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얻는 음식점 정보라는 건 역사성까지 담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루트는 피맛골의 청진옥에서 시작해서 열차집, 을지로 3가의 조선옥으로 이어졌다. 평균 업력 80~90년에 달하는, 서울의 식당 역사를 보여주는 집들이다.

 

 

청진옥에서 서울의 노동 음식과 심야 생활의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나무와 물건을 배달하던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을 해장국, 24시간 사람들이 움직이던 1990년대의 등장, 그리고 아직도 하루 종일 불을 끄지 않는 가마솥의 전설에 그들은 놀라워했다. 열차집은 전후 서울의 빈약했던 경제사정을 상징하는 음식인 빈대떡 전문이다. 한 장의 빈대떡에 막걸리나 막소주를 마시던 전후의 가난했던 뒷골목 문화, 나아가 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면서 피맛골의 주역이 된 ‘회사 인간’의 등장을 설명하면서 나는 작은 전율을 느꼈다. 서울의 현대사를 빈대떡 한 접시에 투영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조선옥이 있는 을지로 3가에 이르러서 서울의 발전을 이끌었던 공구상가 등 작은 산업용품 가게들의 역사를 설명하면서는, 우리가 쉽게 포기해버렸던 도시 역사가 얼마나 귀중한지 참가자들에게 충분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이며, 도시민의 삶의 패총이 순간에 허물어지고 빌딩이 솟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외국인인 그들에게 다 말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옥의 육개장과 갈비 맛은 좋았다. 참가자들과 나누는 서울의 맛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의문이 남았다. 도시는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 재생하고 변화한다. 당연한 일이다. 노포들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왜, 어떻게라는 의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은, 도시는 허가권을 가진 관청이 주인이 아니다. 관청의 담당자는 바뀌지만, 시민은 대를 이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을지로 3가 권역의 재개발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개발 이익에서 배제된 세입자들은 이미 시위를 시작한 지 오래다. 허름해서 역사성을 더 온전히 가지고 있는 노포의 해체도 많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누군가 말했다던 “새로 지은 깨끗한 빌딩에 들어가서 장사하면 더 좋지 않은가”라는 몰역사적인 발언도 회자됐다. 청진옥이 피맛골을 부수고 들어선 그 멋없는 새 건물에 옹색하게 세들어 있던 장면을 좋다고 한 서울시민은 없다. 우리는 묻는다. 서울은 누구의 것인가. 도시는 낡으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만 하는 경직된 존재인가, 아니면 그 콘크리트가 숨을 쉬고 있다고 볼 것인가. 영원한 도시는 없다. 그러나 사라지는 존재들에게 합당한 이유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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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없는 나라>. 최근에 나온 한국 화교에 대한 책이다. 한국에서 피차별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화교사 연구서이다. 저간의 이야기야 깊고도 슬프다. 화교 당사자들로서는 가슴 쓰린 기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화교는 조선 말기에 이미 우리 이웃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짜장면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강력한 음식의 추억일 것이다. 나는 짜장면보다 만두야말로 더 화교다운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짜장면은 한국인이 사먹는 음식이었고, 그들의 주식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만두가 있었다. 40~50여년 전, 동네에 화교가 살았다. 그들의 주식은 만두였다.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먹고는 크게 실망했다.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소 없는 만두였다. 원래 중국 만두란 소가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발효시켜서 둥글게 빚은 후 쪘다. 그 집에서 밥을 한다고 하면 대개 만두였다. 밥 대신 만두라니. 소가 있든 없든 그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만두를 밥으로 먹는 그들이 부러웠다. 채소 볶은 것, 더러는 고기 볶은 것을 얹어서 먹었다.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고, 중국식 절인 채소와 같이 먹기도 했다. 그 화교 집안에 또래 친구가 있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그가 김치랑 만두를 함께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한반도에 오래 살면서 음식문화에도 동화되어 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 친구는 화교학교 대신 한국학교를 다녔다. 단 한 번도 만두를 학교에 도시락으로 싸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놀림이 두려워서였다. 피차별 민족이 갖는 근원적 공포였다. 그런 차별은 음식이나 복식으로 구분된다. 복식이 이미 다르지 않았으므로 음식을 두고 그들을 차별했다. 짜장면이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짱깨’가 된 것은 그런 혐오의 상징이다. 그 친구에게 짱골라라거나 짱깨란 말을 했다간 코피 터지게 싸울 각오를 해야 했다. 차별, 피차별에 대해서 인식하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건 차별이었다. 그것 하나는 분명했다. 


그들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도 만들었다. 소가 들어 있는 만두, 그들 말로 파오즈였다. 명절에 화교 친구네 집에서 만두, 아니 파오즈를 잔뜩 쪄서 동네에 돌리던 일이 생각난다. 돼지비계가 들어간 그 만두가 신기했다. 두부나 당면이 없는. 


여담이지만, 많은 중국집들이 이른바 군만두를 직접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타산이 안 맞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군만두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부터였다. 


대림동에 갔다가 옛 생각이 났다. 동포들이 운영하는 만두집이 많았다. 소 없는 커다란 찐빵 격인 그 만두는 엄청난 크기여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꽃빵이라고 부르는 빵도 팔고, 꽈배기도 있었다. 밀가루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화교들의 솜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게들이었다. 한 보따리 사서 뜨끈뜨끈한 그놈을 천천히 씹으며 시장 구경을 했다. 내게 만두를 주던 그 화교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찐두’라는 이름의 그 덩치 컸던 화교 친구.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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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만두

이미 작년의 일이지만, 돼지고기 가격(돈가) 하락이 심각하다. 원래 돈가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구제역 등이 없다면 조금씩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계절도 탄다. 이상하게 작년 여름, 돈가가 안 올랐다. 휴가철 특수가 있는데도 삼겹살이 남아돌았다. 어느 신문에서는 “황금돼지해, 돼지값 싸져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돈가를 안정시킨다고, 여기에다가 주요 무역국과의 교역 문제 때문에 수입돈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돼지고기가 많이 수입되면 가격이 내려가서 소비자(국민)도 좋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위의 신문 기사가 그런 논조다. 그렇다면 축산가는 국민이 아닌가. 그동안 축산 농가는 이런저런 당국의 불편한 처사에도 입을 꾹 막고 살았다. 수입 물량을 늘려도 국산돈의 품질로 돌파하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손님은 좋은 국산 돼지고기를 알아준다는 심리적 방패가 있었다. 수입돈 품질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만의 말씀이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이야기지만, 수입돈의 품질이 국산돈을 능가하는 부분도 많다. 스페인산 고급육은 어지간한 고깃집 광고판에서 발견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베리코 돼지 삼겹살, 목살구이 팝니다.”


선호 부위의 차이 때문에 외국의 삼겹살과 목살 등의 국제가격이 워낙 싸서, 수입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유럽산은 거의 냉동이 유통되지만, 미주 지역은 특별 수송체계를 갖추고 냉장육도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다. 몇몇 마케팅 업체에서는 테스트를 통해서 수입육이 국산육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품종이 비슷한 데다, 사료도 거기서 거기이니 맛이 크게 다를 리 없을 수도 있다. 


최근 돼지 동결육이 늘고 있다는 시장의 소식이 들려온다. 미처 팔지 못해서 시급히 냉동하는 것을 애초에 냉동하는 것과 구별하여 동결이라고 한다. 최고가여야 할 괜찮은 국산 목살이 동결되어 돼지 뒷다리만도 못한 처참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삼겹살도 마트 등에서 파격가로 팔린다. 킬로그램당 소비자가격이 1만원대에 풀리고 있다. 생산농가는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돼지고기는 1970년대 이후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국내 육식 수요의 상당수를 충족하고 있다. 순댓국이나 족발 같은 서민 음식의 재료가 되는 부산물도 많이 생산한다. 어떤 재료가 지나치게 싸게 팔린다는 건 곧 그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듣기로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판로가 막힌 북미산 돼지고기를 밀어내는 시장으로 한국이 선택됐다고 한다. 삼겹살 불판을 갈자고 했던 분이 노회찬 의원이다. 이제는 다른 의미에서 돼지고기 판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적정 가격이란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이는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다. 급격한 폭락은 산업구조의 뿌리를 흔든다. 싸다고 무작정 이익이 아닌 시스템 아래에 우리는 살고 있다. 축산가와 고기유통에 종사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닌가. 격변하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불안한 요즘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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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사인지는 몰라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장래희망 직업에 요리사가 모두 10위 안에 들었다. 초등학생은 심지어 4위였다. 응답자들이 직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결정한 후에 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요리사가 요즘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힌트였다. 옛날에 의사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고, 아마도 PC통신을 통해 의사들의 감상평이 돌았다. 하나같이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레지던트들이 언제 저렇게 연애하고(드라마에 연애가 빠질 수 없으니까) 얼굴이 반들반들하냐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밖에 못 자서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까치집이며, 연애는 고사하고 외박도 거의 나가기 힘든 저연차 레지던트들의 악성 근로환경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의사들의 일상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외국의 한국드라마 시청자들이 한국인들은 모두 멋지고 옷 잘 입고 폼나는 사람들만 있다고 깊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요리사들이 TV에 등장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제는 이른바 스타셰프, 셀럽 셰프라는 말도 생겼다.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어, 일로 통화하려면 매니저를 통해야 한다고도 한다. 하얀 제복, 멋진 칼솜씨, 여기에 입담까지 갖춘 연예인급 요리사가 대중스타가 되었다. 대중과 미디어는 늘 새로운 사람을 원한다. 요리사는 그 수요에 부응하는 멋진 직업인이었다.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일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요리쇼를 한번 하는데 초청비가 1억원이 넘는다. 1등석 비행기표를 제공해야 하는 요리사도 있다. 우리가 아는 ‘주방장 아저씨’와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산다. 한국도 미디어를 통해서 요리사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치가 올라갔다. 그러나 극소수의 얘기다. 요리사들은 여전히 찬물에 손 담그고 있느라 가벼운 동상에 걸린 것처럼 붉게 부어 있기 일쑤고, 온갖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박봉이다. 식당업이 영세한 탓에 여전히 많은 요리사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장시간 노동이 흔하며, 작업장 환경도 좋지 않다. 건강에 안 좋은 기름 연기와 연료에 노출되어 있고 좁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다. 더구나 오픈된 주방이거나 까다로운 손님을 맞을 땐 3차 스트레스도 받는다. 1차가 고용주, 2차가 동료, 3차는 손님인 셈이다. 언제든 그들은 식당과 음식평을 개인 미디어에 올린다. 그것이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해명할 수 없는 일방적인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대다수 요리사는 우리 주변 평범한 직업인이다. 요리사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초기 단계에서 포기한다. 요리사 지망생은 많은데, 식당은 늘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국의 수많은 요리학과 졸업생 중 요리사로 직업을 이어가는 비율은 아주 낮다. 요리사의 현실을 보여준다. 요리사가 멋있어 보이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현실 속 요리사는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직업이 어디 요리사뿐이겠냐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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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5년 전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머리엔 머플러를 친친 동여매고 입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걸치고 시장 바닥에서 떨며 밥을 먹는 여인들의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 사진을 자갈치시장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는 짧게 사진의 제목을 달았다. “이런 장면에 ‘삶의 현장’ 따위의 설명을 붙이지 말자.” ‘삶은 이어진다’ 같은 것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럽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것이 일상이라고. 그것을 운명이라든가 국외자의 시선을 실어서 감상적인 말로 수식해서는 곤란하다고.

 

 

언젠가 한 요리사 친구가 실직했다. 그야말로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 라면도 떨어졌다. 어느 날 밤에 귀가하는데, 집이 컴컴하더란다. 요금 체납으로 전기도 끊긴 것이다. 인터넷이 거의 없던 시절,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북창동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봤다고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골목에 불어닥쳤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겨울날이었다. 그는 그날 일을 얻지 못했다. 인력사무소 사장이 “칼판 두 명, 불판 두 명!”을 외쳤다. 중식당 전문 인력시장이었다. 그는 양식 전문이었으니 빈손으로 아침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마침 출근시간이었다. 전철 안은 송곳 꽂을 틈도 없이 승객으로 꽉 차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만원 전철 안의 승객조차도 그는 부러웠노라고 했다. 그래도 그들은 밥을 벌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으니까. ‘벼룩시장’을 보고 결혼식장 뷔페에 주말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소갈비 상자를 옮기다가 다쳤다. 허리 근육이 쥐어짠 빨래처럼 뒤틀리더라는 것이었다. 주방장의 선처로 일당을 받아들고 조퇴했다. 그는 동네에서 두부며 반찬거리를 사다가 막걸리집에 주저앉았다. 대낮에 한 잔 마시는데 밖에 마침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술잔에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이 얘기를 그 친구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들었다. 함민복은 <눈물은 왜 짠가>라는 수필을 썼다. 친구의 막걸리잔도 짰을 것이다. 울고났더니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새끼들 입에 밥은 넣어야 하겠다, 뭐라도 하겠다는 투쟁심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아주 깐깐하고 팍팍한 선배가 있었다. 말을 직설적으로 해서 좀 불편한 사이였다. 그가 점심시간이 되자 내게 말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하자. 어디 가서 뜨거운 국물이라도 마시자.”

 

이상하게도 그 선배에 대한 평소의 서운함이 싹 사라지는 말투였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이 말.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삶의 대부분은 먹자고 일하다가 보낸다. 그 먹는 일의 일상이 소중한지 잘 모른다. 하루에 두 끼, 세 끼 이어지는 일이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저 칼바람 속에서 머플러 쓴 시장 여인들의 숟가락질, 친구의 짠 막걸리잔, 그리고 선배의 한마디. 눈 오는 날, 마음이 더 추운 사람들이 오늘도 한 끼 밥을 잘 먹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져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기를. 그렇게 되기를.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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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어른이 술을 권한다. 외지 사람이 잔을 받는다. 드르륵, 낡아서 삐걱거리는 알루미늄 문이 열리고 노인 손님이 몇 패 들어온다. 찌개를 끓여서 막걸리를 돌린다. 미지근한 막걸리다. 여그는 차게 안 마셔. 

 

최근 광주에 다녀왔다. 부도심 곳곳의 전통시장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남광주시장, 양동시장, 대인시장. 토요일마다 야시장이 열리는 곳도 많다. 청년과 예술가가 결합해서 시장의 분위기를 바꿔 놓기도 한다. 시장의 힘이 아직은 느껴지는 도시다. 이 시장에는 대폿집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한 바퀴 돌면서 대폿집들의 면모를 쓱 살펴본다. 어떤 집은 “시장에서 파는 무엇이든 가지고 오면 요리해 드린다”고 써 놓았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 무렵, 전라도 해안에서 잡은 맛있는 생선과 해물이 광주에 많이 올라온다. 그 귀하다는 노랑가오리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누워 있고, 표면이 푸르게 빛나는 제철 삼치며, 굵직한 낙지(대낙지라 부른다)도 억센 힘을 자랑하며 함지에서 용을 쓴다. 가을에 태어난 어린 낙지도 있어, 세발낙지 맛을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세발낙지는 품종이 아니라 어린 놈을 그리 부른다. 어물전에서 낙지를 구경하고 있으면, ‘아짐’(아주머니)이 세발낙지 먹는 법을 알려준다. 이놈을 다리 쫙 훑어서 한입에 넣어야 한다고.

 

 

장을 봐서 대폿집에 들어선다. 안줏거리를 건네면, 솜씨 있게 쓱쓱 만들어낸다. 낙지를 탕탕, 도마에 쳐서 참기름과 통깨(이 양념은 전라도 음식의 주인공 격이다)를 술술 뿌려서 낸다. 가오리를 쓱쓱 저미고, 병어는 탕을 끓인다. 새꼬막이 수줍게 나와 있어서 연하게 삶아 백숙을 한다. 꼬막은 까먹는 맛이제. 안주를 함께 나누는 대폿집 손님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디서 오셨느냐, 무슨 일을 하셨느냐 서로 인사를 나눈다. ‘하셨느냐’는 은퇴한 어른에게만 묻는 과거형 질문이다. 그들도, 다 한세상을 힘차게 살아온 양반들. 개인사를 들으며, 사라져버린 시장과 광주라는 도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포는 원래 커다란 잔을 의미한다. 막걸리 같은 술을 딱 한 잔 마실 수 있게 큰 사발에 따라서 냈다. 얼른 마시고 일하러 가야 하거나, 가진 돈이 적어서 한 잔밖에 마실 수 없는 사람에게 최적의 소용이었다. 이제는, 다들 술을 천천히 마신다. 안주도 시켜야 한다. 이제 대폿집에서 대폿잔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인심은 그대로다. 무슨 술이든 한 병 시키면 안주를 한상 깐다. 싸고 흔한 음식이지만 이쪽 말로 ‘개미진’(맛있는) 것들이다. 김치며 번데기, 어묵탕 같은. 술에 딸려 나오는 기본 안주는 무료다. 이 전통은 오랜 것이다. 조선말의 선술집이나 주막에서도 그랬다는 기록이 있다. 전주의 그 유명한 막걸리골목의 인심이나 통영의 ‘다찌집’의 문화도 전통의 소산이다. 이제는 월세 싸고 직원 안 쓰는, 이런 광주의 대폿집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저나 다 사라져갈 대폿집을 기억하고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데, 참 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대포 한 잔 마시러 광주에 가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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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훌훌 뚝딱 말아먹고, 식의 표현이 흔하다. 노동하는 음식, 간편식의 골자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식생활에서는 국과 국밥의 역사가 그랬다. 국밥의 대표격인 설렁탕이나 곰탕은 싸지 않았지만, 속이 든든하고 오래 허기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깃국이었기 때문이다. 국밥이 노동 음식이었다는 근거는 토렴을 든다. 밥을 말아내어 들이마시듯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토렴은 밥알의 온도를 적당하게 해주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식사 속도를 높여주어서 환영받았다는 뜻이다. 전기보온밥솥이 없던 시대에 토렴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지혜였다. 특히 한국처럼 대륙성의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서는 더욱 필요한 기술이었을 것이다. 토렴한 국밥을 먹으면서 우리 선조가 버텨온 세월이 얼마나 길었을까.

 

 

고기에 대한 열망은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부터 수없이 등장한다. 수천년 동안 기근이 이어지다가 불과 30여년 전부터 고기 풍요의 대혁명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간혹 값이 뛰는 채소보다 못한 고기 신세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근자의 일이다. 미국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충분한 양의 사료, 사육 기술의 고급화, 수입육의 대량 공급으로 이제는 고기 자체에 대한 기근은 더 이상 없다. 설렁탕과 곰탕의 주재료인 소고기의 대체품인 닭과 돼지고기의 공급량이 넘치는 것도 그 영향이다.

 

고기를 구워 먹지 못하고 탕으로 내어 먹는 것을 자조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국밥을 서구의 스테이크에 비교해서 생기는 일이다. 소고기 1㎏을 국밥으로 끓이면 10명이 먹고, 스테이크로는 셋이서 먹는다는 수학적 계산을 해보면 선명해진다. 근대 도입기에 이 땅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며 시작된 충격이다.

하지만 유럽도 오랜 기간 우리와 같은 국물 문화를 거쳤다. 유럽도 한때 고기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까닭이다. 산업혁명과 사육 기술의 발달이 고기를 국물로 먹던 시대에서 ‘덩어리’의 시대로 진전시켰다. 위생과 동물 예방의학이 발전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다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쌓으면서 고기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먹는 수프라는 음식은 국밥처럼 적은 고기와 재료를 나눠 먹으려는 열망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수프는 고급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일본과 한국의 기록은 그런 면에서 살짝 코믹한 구석이 있다. 경양식집에서 팔던 밀가루로 만든 싸구려 수프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우리의 추억에는 그런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시내 국밥집이 바글바글해진다. 거칠어진 속을 위로하는 데에는 뜨거운 국물이 최고겠지. 어쩌면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도 같다. 세상 일이 뭐랄까,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게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헛헛한 일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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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식업을 지탱하는 조미료 중 하나는 공장에서 생산한 산분해 간장이다. 공장에서 만들었다고 달리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간장을 찾으려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업소용 재료를 파는 대형 시장에 가보면, 조선간장이나 양조간장은 찬밥이다. 값이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재료비가 올라 힘들 식당 사정은 모르지 않되, 간장에 대한 이해가 애초부터 부족하거나 전무하다. 오래된 ‘노포’ 식당의 다수도 다르지 않다. 양조간장이 소량 들어간 이른바 ‘산분해 간장’을 거의 100% 쓴다. 오래된 노포의 맛, 고향의 맛이라는 근저가 실은 산분해 간장이라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원가 분석을 해봐도, 양조간장(우리가 전통적으로 만들어 쓰는 조선간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양조한 간장)을 쓴다고 해서 주름이 갈 정도는 아니다. 요는, 상대적으로 좋은 간장을 쓰려는 보편적 접근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한식요리사 자격증 시험에는 양념 배합 공식이 있는데, 진간장이 기본이다. 당대의 입맛이 대량생산한 공장 간장에 길들여 있기는 하지만, 이른바 진간장이 볶음이나 조림 등에 표준 간장이다. 학원에서도 그리 가르친다. 조선간장을 요리에 쓰는 자격증 학원은 애초에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진간장이란 원래 고급간장인데, 양조간장에 산분해 간장을 섞은 걸 상품화하면서 이름을 가져다 썼다. 악화가 양화를 밀어냈다고나 할까.

 

조선간장을 마치 오래되고 박제된 간장 정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간편하고 싼, 대량생산형 공장 간장이 있는데 굳이 맛이 짜고 용도가 제한된 조선간장을 뭐하러 먹느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조선간장을 중심으로 해서 볶음이나 무침, 조림 등에도 다채롭게 쓸 수 있는 물건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염도도 낮아지고 있다. 염도를 낮춰서 냉장 발효하는 간장도 나온다. 시장의 편견과 유통 구조의 벽에 부딪혀서 좌절할 뿐이다.

 

현재의 한국 간장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일본이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군수 물자의 보급이 절실했고, 산분해 간장은 그 대안이 됐다. 일본 문화가 한국에 이식되면서 전통 간장의 입지가 줄어든 것도 한 이유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우리 콩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되자 조선간장은 개별 가정에서 부활한다. 물론 이때 시중에서는 적산 기술로 만든 일본식 간장도 여전히 팔렸고, 6·25전쟁 후에 본격적으로 시장을 넓혀 간다. 흥미로운 건 화교들도 간장·된장 시장에서 활약했다는 사실. 지금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된장이 기원이고, 이런 장을 만드는 화교 공장이 된장과 간장을 한국식 식당에도 많이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전쟁은 장의 부족을 불러왔고, 대량생산되는 공장의 간장이 크게 퍼졌다. 이후에도 개량형 된장과 간장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밀면서 조선간장은 더욱 위축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조선간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고 있다. 한식의 ‘진짜 맛’은 어쩌면 핵심 조미료인 간장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선간장은 아직 안 죽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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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먹는다. 먹는 행위에 대해 논란도 많다. 개고기며, 고래고기 섭취 같은 것들이다. 개별적인 집단의 오랜 문화와 새롭게 동물을 보는 시선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도 요즘 크게 확장되고 있다. 유럽의 몇 나라는 랍스터를 산 채로 삶는 조리법을 금지했다고 한다. 랍스터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은 문어는 어쩌나 싶다. 문어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이 종이 아주 영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산시장에 가면 문어들이 답답한 망에 갇혀 수족관에 들어 있다. 그들의 지능이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문어를 삶을 때 대개는 산 채로 넣는다. 그것이 표준 요리법이다. 아마 문어와 비슷한 낙지도 지능이 높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산낙지 투하’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면, 방송 화면과 개인 블로그를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몸부림치는 산낙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무엇이 선이고 옳은 일인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투하’라니. 이런 말은 군사용어 같다. 원자폭탄에 뒤따르는 말이 바로 이 단어가 아닌가.

 

 

꽃게를 삶는 방법도 그렇다. 뒤집어서 내장이 흐르지 않게 산 채로 넣으라고 한다. 가장 맛있게 삶는 법이라고 한다. 꽃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죽여서 넣으면 맛이 없어지는지 실험이나 연구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그저 무의식중에, 아니 애초에 의식하지 않고 그런 요리법을 믿어왔다.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차제에 동물을 요리할 때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현장에서 수많은 재료를 다루고 요리하는 요리사들에겐 이런 원칙이 필요하다. 재료를 죽이는 것이 요리사의 숙명인데, 경우에 따라 심리적 부담을 안는다.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듯하다. 확장하면, 가축 도살에도 미친다. 요리사는 대개 고작(?) 해산물을 죽이지만, 그들이 쓰는 재료 중 하나인 고기는 도살장에서 도축된다. 그 일에 종사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을 그들이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축 도살에 동물 윤리의 세세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는 않다. 건조한 룰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아직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외면하고 있다. 효율이 우선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동물 윤리와 복지에 대한 촘촘한 규정이 만들어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그 비용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지에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다. 한마디로 고기값이 오를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하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에도 돈이 드는 격인데, 다양한 논의가 있어야 이런 부담은 낮추면서 잡는 이나 먹는 이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풀어놓고 본격적인 얘기도 하기 전에 경제논리만 들이대서야 언제 인간의 일이 나아지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잡식동물이고, 먹을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건, 먹는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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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고른 장소는 놀랍게도 한 햄버거 체인점이었다. 그와 점심을 먹고 나니 쟁반 위에 온갖 일회용품이 가득했다. 그를 만나 나눈 얘기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쟁반 위에 쌓여 있던 알록달록한 쓰레기는 이미지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일회용품을 거침없이 쓴다. 심리적으로 찜찜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 며칠 전에 한 행사에 갔더니 도시락을 나눠줬다. 먹고 나니 역시 한 보따리의 일회용품들이 남았다. 일회용 수저, 그 포장지, 국물을 담는 그릇, 반찬도 각기 다른 일회용 그릇에 담겨져 최종적으로 역시 일회용품인 ‘틀’ 안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모두 담는 별도의 비닐포장지까지. 거기에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도 더해지고 말이다. 두 사람이 다 먹고 제공된 비닐에 담아보니, 쌀 한말들이 정도의 부피가 생겼다. 우리 마음에도 그만큼의 부담감이 쌓여버렸다.

 

 

일회용품은 번다한 일상을 간편하게 해주지만, 반드시 두 가지 후유증을 남긴다. 물론 하나는 환경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죄책감이다.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심리적 통증까지 겪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래도 되는 거야?’

 

지난 여러 정부에서 일회용품 금지 법률을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풀어버렸다. 일상적으로 들르는 커피숍에서 일회용품에 음료를 담아 소비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버린 쓰레기가 얼마이며, 일회용품을 생산하기 위해 쓴 에너지는 또 어느 정도이겠으며, 다시 재활용하기 위해 쓰는 비용과 환경오염 문제는 얼마나 심각했을지 가늠키조차 어렵다. 일회용품 문제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수거와 재활용을 잘해도 후유증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재활용을 100%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열처리를 해야 하므로 환경오염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요즘 미래 세대에 주는 부담으로 꼽는 지구 기상 대이변의 주범인 ‘온실가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우려로 다시 일회용품 규제가 시작됐다. 환영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작 일선의 커피숍에서 머그잔과 유리잔을 써보니 반대하는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무 문제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더운 커피는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오니 어쩌니 염려를 벗어나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이스커피는 투명한 유리잔이 주는 촉감까지 상쾌해졌다. 혹시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 않던가. 아니, 그동안 왜 그렇게 일회용품을 써야 했지? 아무 문제 없잖아?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일회용품을 많이 쓰는 나라는 미국이다. 게다가 재활용률은 형편없이 낮다. 우리는 이른바 경제발전국 중에서 일회용품 사용률은 낮고, 재활용률은 높다. 우리가 아무리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도 거대 에너지 사용국인 미국이 시큰둥하면 지구 환경 악화를 막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고민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어쨌든 머그잔에 담긴 커피는 더 맛있으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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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 명절에는 만두를 빚는다 하였는데, 어디까지나 한수 이북의 일이다. 남쪽의 만두는 중국인들의 몫이었다. 동네에 화교가 좀 살았는데, 명절에 푸짐하게 만두를 빚었다. 엄밀히 말하면 파오츠(包子)였다. 만두(만터우)는 화교들에게는 속을 채우지 않는 일상의 밀가루 음식이었다. 발효시켜 부풀린 후 쪄서 밥으로들 먹었다. 그걸 얻어먹어본 적도 있다. 짭짤한 나물과 채소 볶은 것을 그 밀가루 만두, 실은 빵이라고 할 음식에 얹어 먹었다. 소 없는 만두란 참 심심했지만, 부풀린 반죽이 씹히는 결이 인상 깊었다. 그 만두를 잊지 못해서 대림동 상가에 종종 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진짜 ‘만두’를 판다. 거대하게 부풀려서 왕만두라고 해야 할 밀가루 빵을 팔고 있는 것이다. 민족이 정주지는 바꾸어도 음식은 쉬이 바꾸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만두를 먹게 된 것은 호기심 많은 어머니 덕이었다. 집에서 만두를 빚지 않는 남쪽 고향 출신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이북식 만두를 배웠다. 어른 손바닥만 한 만두를 빚었다. 세 개만 먹어도 어른이 배부를 크기였다. 비계 섞인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고 부추를 엄청나게 많이 넣는 것이 바로 이북식이라고 했다. 두부는 거의 쓰지 않았고, 겨울엔 김치로 만들었다. 역시 부추를 넣은 여름식 만두가 맛있었다. 소가 아무리 좋은들 만두피가 더 중요한 몫이란 걸 만두를 직접 빚으면서 알았다. 반찬이 좋은들 밥이 나쁘면 별무소용인 것처럼.

 

미련한 짓이었지만, 학창 시절에 많이 먹기 겨루기의 대상은 만두였다. 스테인리스나 양은 찜통에 9개씩 담긴 찐만두를 몇 개나 먹나 다퉜다. 하필 찐만두가 선택된 것은 아마도 차곡차곡 높이 쌓이는 찜통이 보기에도 그럴싸했을 것이고, 만두의 개수로 자랑 삼기 쉬웠기 때문일 것 같다. 찜통이 탁자 위로 끝없이 솟았다고 허풍을 쳤으며, 찐만두를 모두 세어보니 100개를 먹었네, 200개를 먹었네 했다.

 

마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쪽의 만두 사정은 어떨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해도는 만두를 예쁘게 빚고 평안도로 가면 커지고 투박하다고 했다. 신의주까지 북상하면 왕만두가 있다고 했다. 중국 국경으로 갈수록 만두가 커지고 터프해졌다고 한다. 먹어볼 수 없으니 이 또한 막막한 일이다. 전에, 단둥까지 가서 거리 만둣집에서 요기했다. 엄청나게 큰 만두를 두 개 담아 1인분으로 팔았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맛있는 만두였다. 그 가게에서 이북으로 건너가는 압록강 철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북한 만두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먹었다. 언젠가 강헌 선생이 얘기한, 황해도 만두의 전설도 보고 싶다.

 

겨울이면 돼지를 잡고, 만두를 빚은 후 무명실에 꿰어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는 처마에 매달아 얼렸다는 전설의 만두를. 대통령이 가고, 문화예술인이 가니 우리 또한 갈 기회가 없겠는가. 대동강가에서 철갑상어 요리도, 숭어국도 좋지만 나는 만두가 먹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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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법률 이름에도 쓴다. 특히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개에 관한 논의가 많다. 사람 눈에 잘 띄고, 오랜 애호 역사가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기르던 개를 잡던 시절에도 차마 제 손을 쓸 수 없어서 먼 곳의 개와 바꾸기도 했다. 개 식용 논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대부분의 식용 개는 음식이 될 목적으로 처음부터 사육된다는 점이다. 하나 축산 관련법에는 빠져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와중에 이들 사육견의 고통은 말도 못한다.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대부분 최소한의 사육 환경을 지키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킨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이것은 법률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양심의 한계를 의미한다.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인간의 연민 같은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육장마다 제각각이고, 개들에 대한 연민도 결국 돈으로 바꿀 인간의 욕망 앞에서, 또 효율 앞에서 무너지게 마련이다. 개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돼지와 닭보다 훨씬 나쁜 환경에서 지낸다. 개고기 식용 금지냐 아니냐 이전의 현실적 문제다. 어쨌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많이 먹는 ‘공식’ 육종은 어떤가. 며칠 전 뉴스에서 베트남의 돼지 도살 문제가 떠올랐다. 마을의 오랜 축제에서 돼지를 노상 도살하는 문제가 언급된 것이다. 인권, 환경단체에서는 이것이 축제에 참가한 아이들의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우려를 표했고, 마을 어른들은 전통의 문제이니 참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은 늘 다른 시각의 충돌을 일으킨다. 제주도에서도 전통적으로 돝추렴이 있었다.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돼지를 잡아 나눠가지는 행사를 말한다. 이 역시 동물복지 논란에 의해 중지되었다. 이것은 법률에 의해서도 불법이니 큰 반발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저변에는 도대체 해준 것도 없는 ‘뭍’의 권력이 왜 제주사람이 전통적으로 돼지 잡는 것에까지 관여하느냐는 불만이 있었다.

 

돼지와 닭, 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농장’의 모습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운 노동이 존재한다. 사료비가 곧 이익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악성 효율, 그 효율에 맞추기 위한 학대, 다시 거기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도 있다. 동물을 다루는 데 웬 인권이냐고. 노동 환경 자체가 동물을 학대하기 쉬운 조건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건 돼지 잡는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시작하자 해도, 당장 입에 넣을 치킨과 삼겹살 값도 없는데 동물복지 운운이 무슨 사치냐는 말도 나온다. 실은, 이런 모든 문제는 자본에서 비롯한다. 돼지와 닭까지도 세계화와 자본의 ‘수직계열화’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치킨집 사장의 눈물, 배달앱의 개입, 실업과 청년문제까지 단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는 우리 사회 문제가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장차 이 일을 어찌 할 것인지 막막하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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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요즘은 농사법이 발달해 제철 개념이 많이 사라졌다. 찬 바람 불면 농익은 포도가 맛있는 때인지라, 아는 농민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7월에 출하를 마쳤단다. 시설 재배로 바꾸면서 출하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철을 앞당기면 작물값이 좋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여러 이점도 더 있다. 유기농 재배하기도 편하고(인근 밭에서 벌레가 넘어오기 어렵다), 재배와 수확에 편리하게 환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바람이 싸늘해지고, 대낮에도 긴팔을 입어야 할 때 먹는, 잘 익은 과일의 맛을 생각하면 전통적인 제철이 그립기는 하다.

 

 

복숭아도 제철이 당겨진 듯하다. 포도야 넝쿨처럼 자라고, 키 작게 기르기 좋아서 일찌감치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치지만 복숭아도 그럴 줄 몰랐다. 복숭아도 이젠 시설 속에서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덕에 더 빨리 다디단 복숭아 맛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시장에 이미 좋은 복숭아가 많이 나오고 있다. 물 많고 달아서 즙이 줄줄 흐르는 백도와 황도의 맛! 예전에 늦여름 시장에 가면 복숭아 냄새가 시장이 가득 찰 지경이었다. 어떤 향기로움도 대체할 수 없는 복숭아만의 녹진한 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차가운 우물물을 퍼서 복숭아를 함지에 담가두면, 마당에 복숭아 향이 퍼졌다. 복숭아 독이 오른다고 어린애들은 만지지 못하게 했지만, 함지에 손을 담그고 복숭아를 빠득빠득 씻던 재미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어머니는 늘 어딘가 상처 입고 한 곳이 갈색으로 짓무른 것을 즐겨 사들였는데, 달리 이유가 있었다. “어디 이운 데가 있어야 달고 진해. 한 곳이 물러진 복숭아는 빨리 상하는데, 우리가 사주면 장사꾼도 좋지.” 과연 어머니의 말씀은 옳았다. 복숭아는 설탕에 재어둔 것처럼 달았다. 씨에 붙은 과육까지 빨아먹었다. 바삐 먹어치운 후 입술 주변에 남던 옅은 통증도 기억나지 않는가.

 

함께 일했던 요리사 후배가 있었다. 추석 휴가를 받을 때면, 그이에게 직원들이 부탁을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복숭아였다. 집안에 복숭아 농장을 하는 이가 있어서 그 무렵이면 우리에게 보낼 복숭아를 챙겼던 것이다. 복숭아가 얼마나 실하고 좋은지, 상자를 받으면 넘쳐나던 향으로 어질어질해질 정도였다. 나는 늘 ‘파지’라고 부르는 걸 주문했다. 시장에 낼 때 아무리 맛이 좋아도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상처가 있으면 받아주지 않거나 제값을 못 얻는다. 그런 건 이렇게 ‘직거래’로 팔곤 하는데, 오히려 나 같은 이에겐 각별하게 맛있는 놈이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이랄까. 더 달고 향 좋은 놈이 상처 입는 법. 껍질을 살살 벗기면 뭉클한 속살이 가득한, 맛 좋은 복숭아였다.

 

올해부턴 이것도 어렵게 됐다. 그 후배가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 복숭아밭에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제일 먼저 복숭아를 생각했다. 이제 곧 수확철인데 나무에 온전히 매달려 있을지. 그건 복숭아만의 일이 아니겠다. 올해 유난한 더위에 농사짓느라 고생한 농민들의 수확물을 태풍이 다 떨궈버리지는 않을지. 다들 기도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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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언제 파스타가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열강의 공사들이 궁에 들어오고, 그들을 접대하느라 파스타가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서양 음식물을 수입한 해관(세관) 자료가 있다. 와인과 샴페인, 과자류와 국수의 수입이 있었다.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근대식 호텔이 서울에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물자는 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수입했다. 파스타는 서양인에게 중요한 음식이었다.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요리도 간편했다. 당시 어떤 조리법을 썼을지 궁금하다. 100년 넘게 흐른 지금, ‘모든 재료’가 파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된장이나 간장 파스타가 있었을까. 아마도, 서양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니 서양 재료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다. 토마토소스와 고기볶음, 치즈 같은 것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지금은 우리 식재료와 파스타의 융합이 흔하다. 묵은지 파스타도 있다. 곱창을 볶아 올리기도 하고, 국물 넉넉한 떡볶이 스파게티도 팔린다. 서양재료여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파스타집이 ‘이태리면집’이니 ‘이태리백반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의 반영이다. 외래 것을 우리 문화에 동화시켜 독자적으로 즐기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때 시중의 말로 유명했던 “남이사!(남이 뭘 하건 말건!)”다.

 

파스타는 우리 음식문화에 생각보다 더 깊게 들어와 있다. 굳이 그걸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전제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울 정도다. 파스타집에 가면, 국수를 먹듯 후룩 후룩 하는 ‘흡입 소음’이 자연스럽다. 이탈리아에선 없는 소리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뭐 이런 거다. 이 소음을 일본에서는 ‘누하라’라고 해서 약간의 공론이 있다. 누들 + 허래스먼트, 즉 스파게티 먹는 소리가 남에게 괴롭힘을 준다는 뜻이다. 원래 일본 국수는 소리 내서 먹는 것이 결례가 아닌데, 파스타를 먹을 때 소리를 내는 건 교양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나온 논의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거 없다.

 

학교 급식에 파스타가 나온 지 오래다. 아이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더러는 밥에 딸려나오는 반찬처럼 제공된다. 무엇이든 밥반찬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일본인이 원조다. 포크커틀릿도, 햄버그스테이크도 쌀밥의 반찬으로 팔린다. 다만 “빵으로 할까요, 밥으로 할까요”는 남아 있다. 서양식인 빵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요리의 뿌리는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단체급식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의 급식에도 파스타가 등장한다. 가장 흔한 건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다. 마카로니 샐러드라고도 한다. 왕년에 이른바 ‘한정식’에도 나왔던 음식이다. 파스타는 밥까지 만나서 완벽하게 동양화 내지는 한국화되었다.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주면 좋겠다. 김가루도 넣고, 김치 다진 것도 섞어서 말이다. 한 문화는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면서 변형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직장인들에게 동네 파스타집의 인기 메뉴를 알려드린다. 얼큰한 속풀이 해장 파스타다. 부장님도, 이사님도 젊은 직원들 따라가서 입에 안 맞는 크림파스타 안 드셔도 된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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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후배가 귀국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재미있는 대목. “그쪽 사람들이 농 반 진 반으로 한국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 유럽 베이컨(삼겹살이 재료다) 값을 올렸다는 거다.”

 

한국은 세계 삼겹살의 20% 정도를 소비한다. 인구 대비 엄청난 양이다. 세계 17개국 내외에서 수입한다는 것도 이제 비밀이 아니다. 돼지를 대량으로 기르는 나라는 웬만하면 한국에 수출한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비교우위에 있는 모든 부위가 해당한다. 족발, 목살, 갈비, 등뼈 등이다. 한국에선 비싼데 외국에선 헐값인 부위다. 한때 수입 삼겹살 구분법으로 ‘오돌뼈가 붙어 있느냐’를 보라고 했다. 이젠 의미없다. 한국 기호에 맞춰 뼈를 함께 잘라 정형해서 수입한다. 수입은 냉동이라고? 아니다. 냉장도 꽤 된다. 이베리코 돼지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스페인 명품이다. 물론 여러 등급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한국의 수수한 길거리 고깃집에서 이베리코를 파는 걸 보고 유럽인 관광객이 놀란다고 한다. 대개 돼지를 세세하게 잘라 정형하지 않는 유럽에서는 한국의 특정한 기호에 맞춰 이익을 낸다. 이른바 항정살, 가브리살 등이다. 일본만 해도 흔한 등심 돈가스가 약간 다르다. 한국은 등심만 튀기는 반면, 일본은 붉은 살이 섞여 있다. 바로 가브리살, 즉 등심 덧살이라는 부위다. 그래서 일본과 돈가스 맛이 다르다고들 한다.

 

황학동이라고도 하고, 청계천이기도 한 중앙시장은 원래 양곡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릇과 주방설비 가게가 많다. 이곳에는 ‘불판’만 전문적으로 파는 집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고기 굽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인도 총 몇 종이나 있는지 모른다. 대략 세어보면 100종이 넘는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솥뚜껑형, 사각철판형 등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고 돌, 합금, 무쇠, 스테인리스, 강철 등 소재로도 나눌 수 있다. 석쇠처럼 불꽃이 직접 닿는 형은 적은 편이다. 삼겹살은 불에 잘 타고 기름이 일어 석쇠 같은 형태는 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속은 안 익었는데 겉만 탄다. 야외에서 숯불 피워 삼겹살을 굽다가 낭패를 보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석쇠는 대개 소고기용이다. 삼겹살은 사실 그리 오래된 구이 형태의 외식이 아니었다. 먹더라도 주로 찌개나 보쌈용으로 쓰였다. 한식요리를 다룬 오래된 책 어디에도 삼겹살 구이는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잘 상해서 유통이 어렵고, 잘 익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이용으로 각광받지 못했다. 가격도 싸지 않았다. 1950~60년대 신문에는 ‘공설시장 가격’이라는 일종의 물가 안내 기사가 나오는데, 부위 불문하고 소와 돼지 고기 가격이 비슷했다. 미국에서 다량의 사료가 수입되고 식용유 산업이 발달하면서 콩깻묵 같은 부산물이 흔해졌다. 돼지고기 양산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삼겹살집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불판을 가는 문화가 없었다. 점차 위생과 건강을 따지는 손님의 요구에 맞춰 불판이 가벼워지고, 갈아주는 문화가 생겼다. 삼겹살 불판 교체를 비유로 들면서 정치개혁을 온몸으로 실천하던 분이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그가 꿈꾸던 새 불판 교체는 아직도 요원하다. 시민들과 함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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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구 1000만명에 식당 숫자는 12만 개가 넘는다. 식당 한 개에 80여명의 인구가 물려 있다. 서울시에 그토록 식당이 많은 건 대부분 생계형 영세업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떡볶이집, 김밥집, 분식집, 삼겹살집, 호프집, 치킨집이 다수를 차지한다. 알다시피 이런 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레드오션의 절정이고, 이른바 ‘인테리어가게 돈 벌어주는’ 조기 폐업이 다수다. 흔히 도시 노동자들의 이동 순서가 회사-삼겹살집이나 치킨집-말단 노동이라고 한다.

 

 

회사의 고용에서 밀려나면 더 가혹한 개인 경쟁상태로 내몰리고, 그마저 폐업하면 일당 노동자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월급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전통적 업종들이 폐업하는 것도 이런 계층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지물포, 페인트가게, 전기상, 세탁소, 슈퍼마켓, 문방구, 이발소 등은 이제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엿한 세탁소 사장님들은 대형 세탁체인의 말단으로 떨어지고, 슈퍼마켓 주인도 본사의 ‘현장 영업대행자’에 불과한 편의점 주인이 된다. 이마저도 이익이 안 나면 최저임금 수준의 경비원, 청소용역업의 파견직 노동자로 살아나간다. 버스나 지하철의 새벽 첫차가 얼마나 만원인지 안 본 사람은 모른다. 시내로 출근하는 말단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가득 메운다. 이런 와중에 청년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용이 안되니 자영업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그 목표가 대개 카페와 술집, 식당이다(벤처는 아무나 하나). 망원동이니 연남동이니 하는 신흥 유흥지구의 가게를 가보라. 상당수가 생애의 첫 본격 직업으로 요식업을 택한 친구들이다. 소비 인구는 줄고, 시장에 진출하는 청년들까지 넘치면서 요식업 시장은 일대 격전지가 되었다. 어딘가 뜬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가게를 얻고, 그렇게 영업을 열심히 하다보면 가겟세가 오른다. 가겟세, 즉 임대료는 곧 부동산(건물) 가치의 바로비터다. 그렇게 건물 가치를 올려주는 건 집안 돈 끌어대어 영업한 어린 친구들인데, 이익은 건물주가 획득하게 된다. 영업 실패로 종잣돈을 까먹고 물러나도 이미 올라간 임대료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건물 가치 하락을 바라지 않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려줄 리 만무하고, 법망을 피해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나 요구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청년 창업에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고용이 늘지 않으니, 창업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그 시장이 불행히도 가장 망하기 쉽다는 요식업이라는 건 그야말로 나라의 불행이 되고 만다. 아버지는 회사 다니다가 쫓겨나서 고깃집 하다가 폐업하면 경비원이 된다치고, 그 아버지의 종잣돈을 얻어서 호프집과 카페 열어서 문 닫은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허망한 말 말고, 그들이 시민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장사가 안되는 건 그저 “너희들이 운이 나빴어”라고 하고 끝날 일인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들을 정말 어찌할 것인가(칼럼 제목은 이오덕 선생의 산문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에서 차용).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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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에 잠시 다녀왔다. 제주의 변화는 국토 중에서 아마도 가장 극적일 것이다. 고립, 격리 같은 낱말이 떠올랐던 세기를 지나 일종의 거대한 카오스 상태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다수의 제주 사람들이 도시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젠 도 전체의 땅값이 폭등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안 와도 경기는 여전히 좋다. 저비용항공사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비행편이 국내 여행객을 열심히 실어나르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공항이 포화상태여서 공항 건물에 브리지를 대기 힘들다는 뜻이다. 제주도 남쪽 서귀포를 들렀다.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시장으로 유명한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올레 걷기 운동의 영향으로 시장 이름까지 바꾼 곳이다. 활력이 넘친다. 시장 구경이 흥미롭다. 후지와라 신야는 1970년대 한국의 시장을 보고 “시장이 있으면 국가가 필요없다”고 했다. 그런 에너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의 시장 정도가 아닐까.

 

 

이 시장의 명물은 많지만 내 눈에는 이 시장 사람들, 넓게는 서귀포 사람들의 매무시를 꼽게 된다. 먼저 소개할 것은 시장 ‘원보마트’ 앞 세 분의 할머니다. 딱 일정한 거리로 세 분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처음 봐서는 무얼 파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종이로 잘 갈무리하고 포장한 ‘무엇’을 놓고 좌판을 벌여놓았다. 대단히 비싸고 귀한 물건처럼 보인다. 누군가 주문하면 그때서야 그 무엇이 드러난다. 바로 동태다. 과거 제주에는 동태가 귀했다고 한다. 동해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루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다. 동태포를 주문하자,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의 검은 막을 벗겨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섬세한 손길로 손질에 들어간다. 막칼로 대가리며 몸통을 서너 번 툭툭 잘라서 주는 게 고작인 ‘뭍’에 비하면 보물을 다루듯 한다. 경탄이 나온다. 그렇게 동태포를 떠서 팔고는 이내 다시 좌판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지켜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소리내어 손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기야, 동네 손님들이 빤한데 불러 외친들 무슨 소용일까만.

 

다른 좌판에 내놓은 채소와 미역, 다시마도 어찌나 예쁘게 진열해 놓았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민속공예(?)를 보는 것 같다. 그 좌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장 손님이 미감의 충족을 받을 듯한. 마침 자리돔 철이라 손질해서 파는 할머니들이 많다. 역시 채반에 가지런히 놓은 모양이 예술 수준이다. 건어물 가게 앞 말린 참돔은 또 얼마나 참하고 예쁘던지. 내장을 발라내고 하나하나 이쑤시개를 꽂아 내장 안이 잘 마르도록 해서 진열해놓았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 한 식당에 들어갔다. 두 할머니가 낮에만 장사하는 금복식당이라는 비빔밥집이다. 단돈 3000원. 입에 착착 붙는 비빔밥을 그득하게 먹었다.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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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우선은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냉면은 냉면일 뿐 ‘물냉면’이란 없다. 냉면은 당연히 육수가 시원하게 들어가는 것이므로 굳이 ‘물’이란 접두어는 사족이라는 뜻이다. 함흥냉면은 냉면 아니냐고 하면 슬쩍 이런 말을 흘린다.

 

“원래 함경도에서 비빔국수로 먹던 것을 전후 평안도 실향민의 평양냉면에 맞서 함흥냉면이라고 작명했다.”

 

 

아마도 이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냉면이 아닌 것도 아니다. 얼음처럼 이가 시린 냉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운 면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의 함흥냉면과 비슷한 것이 북한에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명태회국수다. 함경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이것과 유사한 음식이 강원도 속초에서 명태 고명을 얹은 함흥냉면으로 남아 있어서 그 연관성을 짚어볼 수 있다. 알다시피 속초는 함경도 실향민이 대거 월남하여 성장한 도시다. 북한의 요리책에는 명태회국수가 실려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많이 먹는다. 흥미로운 건, 서울의 함흥냉면도 명태회국수와 아주 닮아 있다는 점이다. 함경도에서는 명태나 조개 등 해산물을 국수에 얹어 먹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이런 해산물 국수에도 육수를 쓴다. 면 1인분이 200g이면 육수 반 컵을 곁들인다. 국수에 부어서도 먹지만 따로 육수만 그릇에 내기도 한다. 남한의 함흥냉면 먹는 법과 아주 비슷하다. 보통 함흥냉면집에 가면 뜨거운 육수를 컵에 부어서 내어주지 않는가.

 

북한에 함흥농마(전분)국수도 있다. 이것이 서울에서 파는 함흥냉면을 영락없이 닮았다. 고구마 전분을 주로 쓰는 남한과 달리 감자 전분이 주재료다. 면을 뽑고 여기에 참깨와 고춧가루를 뿌리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아 얹는다. 뜨겁게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여름에 먹기 좋다. 남한의 함흥냉면이 차갑고 달고 맵게 만들어지지만, 북한에서는 구수한 비빔국수처럼 즐긴다. 사족이지만, 함경도에도 아예 얼음 같은 육수를 쓰는 함경도 냉면이 따로 있다. 평양냉면과 비슷한데, 면이 전분이라는 점이 다르다.

 

함흥냉면은 비교적 조리법이 쉽게 전파되어 일찍이 서울 곳곳은 물론 전국적으로 잘하는 집이 꽤 널리 퍼졌다. 그래도 역시 서울 중구 오장동 일대와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 쪽을 원조로 꼽는다. 오장동의 한 유명 가게는 한여름이면 평양냉면집 못지않게 줄을 선다. 워낙 올여름 평양냉면의 위세(?)에 눌려 여론의 눈길을 못 받고 있을 뿐이다.

 

예지동에 있는 가게들은 양이 많기로 유명했다. 친구들과 그걸 먹으러 가서 얘기를 나누다가 면이 불면 많은 양의 퍽퍽한 국수를 넘기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때 육수를 조금 부어서 굳은 면을 풀어 먹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약간의 육수를 면에 넣어 먹기도 하는 함경도식의 명태회국수나 함흥농마국수와 먹는 법이 비슷하다. 평양의 냉면을 먹고 온 사람들은 많은데, 함경도의 이런 국수들을 먹어봤다는 인사들은 못 봤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평양냉면이 인기였다고 하니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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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음식 관련 책의 출간이 아주 많아졌다. 관련 책만 내는 전문 출판사가 있을 정도다. 새로운 개념의 판매술과 별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일본의 한 서점에는 제일 좋은 자리에 음식 책을 배치한다. 음식 책도 카테고리가 세분되고 있다. 주로 조리법을 담은 책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인문과 사회과학으로 음식을 다룬 책의 비중이 커졌다. 역사에서도 음식사, 음식사회사와 문화사 책도 많다. 음식을 통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학과에서 이 분야의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 몇몇 박사급들이 배출되고, 외국 유학 가서 전공하는 이가 생겨날 만큼 음식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먹는 일은 즐겁지만, 그 이면의 불편한 진상(眞相)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도축장을 취재하거나 에너지 과소비 산업인 축산업과 우리가 늘 불안해하는 GMO 산업의 진실 같은 것 말이다. 이제 그런 책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개는 번역서다. 그동안은 출판시장이 어마어마한 영어권의 일이었다. 가까운 일본도 “이게 책으로 나와서 팔릴까” 싶은 책도 내는 나라다. 몇 년 전인가, <이베리코를 사러>라는 일본 책을 본 적이 있다. 이베리코 돼지는 정말 도토리만 먹여 키우는지 궁금해서 스페인 현지를 들락날락한 ‘오타쿠’ 필자의 작품이다. 한국에선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집요한 음식 책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제는 시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치킨 시장만을 깊게 판 책이 국내 저자에 의해 출간되어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축산업의 바탕을 떠받치는 노동 체험을 기록한 역작도 나왔다.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이다.

 

처음 장부터 충격으로 시작한다. 산란계들-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달걀의 생산자들-을 돌보는(?) 농장에 취직한 필자의 묘사는 상상을 넘어선다. 케이지에 갇힌 닭들은 심하게 말하면 도화지만 한 크기에 네 마리가 ‘때려넣어진’ 상태다. 너무 좁아서 닭이 닭을 깔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일년에 300개씩 알을 낳느라 닭의 뼈가 너무도 약해서 닭 날개를 잡아들기만 해도 뼈가 부러진다. 악취와 닭의 비명으로 가득 찬 현장음이 활자의 갈피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닭에 생기는 이, 그것을 죽이려는 살충제 살포 같은 최근의 이슈들도 이 책에서는 생생한 현장으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2주 만에 농장을 탈출한다. 그의 표현을 요약하면 ‘미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동물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는 또렷한 증거다. ‘식품=가격’의 프레임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모름지기 지금 우리 식품과 요식 산업의 저변은 저런 설명하기 불편한 세상을 ‘깔고 앉아’서 유지되는 듯하다. 너무 힘들고 고단한 이런 노동을 한국인이 환영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외국 노동력에 기댄다. 양계장은 물론이고 축산, 어업, 농업 전반의 일이다. 한국인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돼지 분뇨를 치우다가 질식사한 것도 결국 외국인 노동자였다. 먹거리의 비명이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침묵하는 아우성이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일을 다시 들여다볼 시기다. 이미 늦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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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도 변화를 탄다. 임오군란 이후에 화교들이 들어오고, 호떡집으로 시작한 중국집 역사는 이제 100년을 훌쩍 넘는다. 부침도 심했다. 한때 최고급 요릿집,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누는 요정 같은 중국집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고급 중국식당은 호텔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화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늘 여러 가지 제한으로 영업에 부담을 줬다. 중국집에서만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한 적도 1960년대에 있었다. 한국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중국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 세대는 배달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같은 식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지만. 우선 사라진 메뉴가 많다. 먼저 우동. 달걀을 살짝 풀고 파와 양파, 갑오징어를 넣은 맑은 국물의 우동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우동이라는 메뉴 자체를 안 파는 중국집이 많고 팔더라도 옛날과 달라졌다. 갑오징어값이 너무 비싸 5000, 6000원 하는 우동값에는 불가능한 재료가 되어버렸다.

 

 

기스면도 보기 힘들다. 맑은 닭 국물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와 고운 면이 들어간 국수였다. 짜장면과 짬뽕처럼 볶아서 만드는 요리와 달리 뭐랄까 얌전하고 기품 있는 요리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면을 중국집에서 사먹을 수 없다. 더러 파는 집이 있어서 시켜보았는데 옛날 맛이 아니고 성의도 없다. ‘기스’란 계사(鷄絲)를 화교들이 부르는 말로 가느다랗게 닭고기를 찢어서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중국요리가 한국에선 거의 튀기고 볶는 자극적인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찌고 삶는 요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요리이기도 하다.

 

울면도 이젠 전설이다. 걸쭉한 전분을 풀어 뜨겁게 먹는 이 면은 겨울의 특미였다. 특히 이것을 먹는다는 건 뭔가 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만만하지 않았다. 간이 되어 있을 뿐, 특별히 자극적인 맛이 없는, 그래서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국수. 맵고 달고 시고 짠 면과 싸우면서 장렬히 사라지다시피 한 역사적인 음식이다. ‘뎀푸라’라고 부르는 요리도 이젠 거의 없어졌다. 탕수육과 같은 음식이되, 소스를 붓거나 곁들여 내지 않는 고기 튀김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도 어른들이 좋아했다. 달고 신 소스가 없으므로. 게다가 소스가 안 나오니까 값이 조금 싸고 양도 더 많았다. 그 고기 튀김을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 푼 작은 소스접시에 찍어먹으며 고량주를 마시는 것이 중국집 멋을 아는 어른들의 풍류였다. 불과 기름에 탄 맛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고소함의 극치였던 고기 튀김, 아니 뎀푸라. 그리고 또 사라진 것은 홀에다 대고 외치는 중국어 주문이었다.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에서도 주문만큼은 중국어(대개 좀 제멋대로이긴 했다)로 하곤 했다. 그것이 ‘정통’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만드는지도 모르는 배달 짜장면과 짬뽕, 맛없는 서비스 군만두로 중국집을 기억하게 된다. 심지어 배달원도 외주회사의 마크를 달고 있으니. 시절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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