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없는 나라>. 최근에 나온 한국 화교에 대한 책이다. 한국에서 피차별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화교사 연구서이다. 저간의 이야기야 깊고도 슬프다. 화교 당사자들로서는 가슴 쓰린 기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화교는 조선 말기에 이미 우리 이웃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짜장면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강력한 음식의 추억일 것이다. 나는 짜장면보다 만두야말로 더 화교다운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짜장면은 한국인이 사먹는 음식이었고, 그들의 주식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만두가 있었다. 40~50여년 전, 동네에 화교가 살았다. 그들의 주식은 만두였다.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먹고는 크게 실망했다.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소 없는 만두였다. 원래 중국 만두란 소가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발효시켜서 둥글게 빚은 후 쪘다. 그 집에서 밥을 한다고 하면 대개 만두였다. 밥 대신 만두라니. 소가 있든 없든 그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만두를 밥으로 먹는 그들이 부러웠다. 채소 볶은 것, 더러는 고기 볶은 것을 얹어서 먹었다.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고, 중국식 절인 채소와 같이 먹기도 했다. 그 화교 집안에 또래 친구가 있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그가 김치랑 만두를 함께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한반도에 오래 살면서 음식문화에도 동화되어 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 친구는 화교학교 대신 한국학교를 다녔다. 단 한 번도 만두를 학교에 도시락으로 싸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놀림이 두려워서였다. 피차별 민족이 갖는 근원적 공포였다. 그런 차별은 음식이나 복식으로 구분된다. 복식이 이미 다르지 않았으므로 음식을 두고 그들을 차별했다. 짜장면이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짱깨’가 된 것은 그런 혐오의 상징이다. 그 친구에게 짱골라라거나 짱깨란 말을 했다간 코피 터지게 싸울 각오를 해야 했다. 차별, 피차별에 대해서 인식하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건 차별이었다. 그것 하나는 분명했다. 


그들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도 만들었다. 소가 들어 있는 만두, 그들 말로 파오즈였다. 명절에 화교 친구네 집에서 만두, 아니 파오즈를 잔뜩 쪄서 동네에 돌리던 일이 생각난다. 돼지비계가 들어간 그 만두가 신기했다. 두부나 당면이 없는. 


여담이지만, 많은 중국집들이 이른바 군만두를 직접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타산이 안 맞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군만두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부터였다. 


대림동에 갔다가 옛 생각이 났다. 동포들이 운영하는 만두집이 많았다. 소 없는 커다란 찐빵 격인 그 만두는 엄청난 크기여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꽃빵이라고 부르는 빵도 팔고, 꽈배기도 있었다. 밀가루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화교들의 솜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게들이었다. 한 보따리 사서 뜨끈뜨끈한 그놈을 천천히 씹으며 시장 구경을 했다. 내게 만두를 주던 그 화교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찐두’라는 이름의 그 덩치 컸던 화교 친구.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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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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