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홀로 있음에 대한 어휘

우고 론디노네, Vocabulary of solitude, 2014-2016, 혼합재료, ⓒUgo Rondinone,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촬영 Stefan Altenburg

있다. 숨쉬다. 자다. 꿈꾸다. 깨다. 일어나다. 앉다. 듣다. 보다. 생각하다. 서다. 걷다. 오줌누다. 샤워하다. 옷입다. 마시다. 방귀뀌다. 똥누다. 읽다. 웃다. 요리하다. 냄새맡다. 맛보다. 먹다. 깨끗이 닦다. 쓰다. 몽상하다. 기억하다. 울다. 낮잠자다. 만지다. 느끼다. 신음하다. 즐기다. 부유하다. 사랑하다. 희망하다. 원하다. 노래하다. 춤추다. 떨어지다. 욕하다. 하품하다. 옷을 벗다. 눕다.

 

여기 우고 론디노네가 선택한 ‘홀로 있음’에 대한 45개의 단어가 있다. 빛의 스펙트럼이 마치 시곗바늘처럼 전시장 천장·벽면·바닥을 타고 시간을 지시할 때, 단어의 뉘앙스와 교감하는 45개의 광대조각은 공간 안에 앉거나 누워 각자의 하루를 보낸다. 동그랗게 붉은 코를 매달고 눈 감은 하얀 마스크들은 한결같이 검은 모자를 쓰고, 작가가 ‘광대’를 키워드로 구글링해 모은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화려한 의상을 둘렀다. 론디노네는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양한 색채로 분광하는 것처럼, 인간 존재의 다채로운 측면을 이렇게 드러내고 싶었단다.

 

론디노네는 작품 앞에서 생각할 필요 없이, 어떤 방향으로 당신의 등을 살며시 밀어주는 작품이야말로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좋은 예술은 결과적으로 당신의 삶을 혁신하고 당신의 걸음을, 당신의 속도를 늦춰줄 수 있다고 믿는다. 45개의 단어를 타고 넘으며 오롯이 고요한 광대의 하루가 나른하다. 이들의 고요한 공기에 휘말려 나의 걸음이, 속도가 조금은 느려졌으려나. 홀로 있음에 대한 작가의 어휘 끝에 단어들을 천천히 보태본다. 관찰하다. 참조하다. 흉내내다. 웅얼거리다. 반성하다. 망각하다. 다시 기억하다. 계속 기억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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