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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25 또 다른 10년

영화 <미스틱 리버>에는 25년의 시간이 흐른다. 두 개의 사건, 세 명의 친구 그리고 25년 후 한 여성의 사건. 세 명의 친구는 25년 전의 한 사건을 기억하지만 아무도 발설하지 않는다. 함께 놀던 아이 셋 중 한 명이 아동 성폭행범에게 유인·납치되어 몹쓸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셋 중 둘은 관찰자가 되었고, 한 명은 사건 당사자, 피해자가 되었다.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셋 중 그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마치 전쟁터처럼, 우연히. 하지만 사고로부터 생존한 데이브를 두 친구는 반기지 못한다. 데이브는 결국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실, 이 글은 <미스틱 리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건 성폭력에 대한 글이다. 쓰기 전에 무척 힘들었고, 쓰는 동안도 쉽지는 않았다. 한국 영화로 예를 들자니, 한국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룬 작품은 아직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가니>는 실화를 소재로 했고, 실제 현실적 영향력도 미쳤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영화적으로 소년, 소녀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아동 성폭행 장면을 굳이 영상 장면으로 연출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미스틱 리버>의 한 장면.


이런 맥락에서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볼거리가 되지 않도록 세심히, 면밀히 살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원>은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폭력 문제와는 조금 다른 국면이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성폭력은 심석희 선수와 신유용 선수가 겪었던, 그런 성폭력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때 소설가가 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여고생들을 유인하고 유린했던 그런 사람들의 문제처럼. 


대만의 작가 린이한의 작품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다시 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소설에는 아직 우리가 영화나 소설로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그루밍 성범죄와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고생 팡쓰치는 글쓰기 선생에게 강간을 당한다. 팡쓰치는 리궈화 선생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좋아함은 여고생이 선생님을 향해 갖는 순정어린 존경이었다. 하지만 리궈화는 그 ‘좋아함’을 오십에 가까운 자신의 ‘좋아함’으로 오역해 유린한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아듣겠니?”라면서 말이다. 


리궈화 선생이 팡쓰치에게 처음 폭력을 가했을 때, 가슴 아프게도 팡쓰치는 ‘죄송하다’고 말한다. 할 줄 모르는 게, 마치 숙제를 잘하지 못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성폭력의 희생자였던 소녀는 자책부터 한다. 그리고 그녀는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린 소녀는 정말이지 스스로 너무 작아지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견딜 수 없다. 소설 속 팡쓰치는 결국 정신을 놓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녀가 당했던 폭력이 드러났을 때, 팡쓰치의 부모는 이사를 해서 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간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도망가는 게 최고인 것처럼.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제목은 사실상 반어법이다. 팡쓰치의 첫사랑은 지옥이었다. 아니 거기엔 아예 사랑이 없다. 사랑이라는 거짓말로 꾸며진 폭력만 있었을 뿐.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 책을 쓴 린이한 작가가 소설 내용의 진위와 관련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다는 점이다. 린이한 작가는 직접 들은 내용이지만 자신의 경험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출판된 지 3개월 후 린이한 작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린이한의 부모는 소설 속 팡쓰치가 사실 자신의 딸임을 뒤늦게 밝혔다. 그러니까, 리궈화가 소설 속 허구적 인물이 아니라 린이한의 죽음 이후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생 노릇을 하던, 실존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리궈화 선생은 현실의 법을 통해 단죄를 받았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의 리궈화 선생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그는 무죄였다. 소설 속 팡쓰치는 생존했지만 현실의 린이한은 자살했다. 늘 그렇듯이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가혹하고 지독하다. 


소설을 읽으며 끔찍했던 문장이 있다.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는 여학생을 강간하는 것이 그녀를 붙들어둘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리궈화가 자신이 강간했던 여학생들의 숫자를 헤아리면서 하는 말이다. 이 문장은 “선수 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이라던 한 체육계 인사의 말과 꼭 닮아 있다. 게다가 이 경악할 발언은 이미 2008년, 10년도 전에 KBS 시사기획 <쌈>에서 들춰졌던 말이기도 하다. 10년 전에 이런 일들이 세상에 터져 나왔지만 그 10년 사이에 또다시 피해자가 발생했다.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스틱 리버>의 데이브는 25년이 지난 후에야 용기를 낸다. 25년 전 자신이 끌려갔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어른이 되고 나선 뭔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데이브는 강간 위기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우연히 피해자가 되었던 데이브는 의지와 필연으로 누군가를 구한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작가 린이한은 자신을 곧잘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비유하곤 했다. 성폭력에서 살아남는 것은 곧 아우슈비츠와 같은 충격으로부터의 생존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피해를 당하고도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책과 죄책감은 느껴야 할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 적어도 앞으로 다가올 10년 후에는 더 이상 조재범 같은 사람들이 없도록. 시선을 돌리지 않고 주목을 놓쳐서는 안된다. 운에 맡겨선 안되는 문제,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책임은 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Posted by mx2.0